상담에 응하지 않는 이유
2011.5.20 호호당의 김태규님
달은 구름 사이로 들고 나며 놀고, 구름은 달을 품었다 놓았다 했다.
私心(사심) 품은 것은 달인가 구름인가? 품안에 달을 품었으니 懷中抱月(회중포월), 그렇다면 범인은 구름인 걸까, 이 구름 저 구름 사이를 戱弄(희롱)하는 달에게는 과연 아무런 혐의가 없단 말인가?
뒷산 정자로 가는 오르막 계단에서 강아지들을 풀어놓고 잠시 밤하늘을 바라보던 나는 갑자기 현기증을 느꼈다. 부드러운 바람에 슬쩍 실려 온 진한 향기, 이건 또 무슨 혼을 놓게 하는 향이지? 하고 주위를 살피려는 순간 알았다, 아카시아 향이었다.
둘러보니 여기저기 아카시아 나무들이 어둠 속에서 하얀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었다. 아카시아 꽃들이 싱그러운 초여름을 열고 있었다. 반가워서 절로 ‘야 이놈들, 아카시아’ 하며 낮게 탄성을 질렀다.
아카시아는 한때 천대를 받았다. 억세고 가시가 있어 더 그랬던 것이리라. 아카시아는 고대 그리스 말 ‘아키스’에서 왔으니 그 뜻은 ‘가시’이다. 하지만 그 가시는 어릴 적에 주변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함이지 다 자라면 가시가 없어진다. 또 무척이나 유용한 나무라고 한다.
마치 어릴 적에 가정이 불우하여 반항하는 문제아였던 사람이 역경을 이겨내고 성장해서 부드러운 인품으로 변한 것과도 같으니, 아카시아를 내 사랑할 밖에.
몽글몽글한 아카시아 꽃, 코를 밀어 넣어 냄새를 맡은 다음 하나를 따서 입안에 넣고 씹어 보았다. 향기로운 단맛이 여전했다.
정자에 올라 저들끼리 잘도 노는 달과 구름을 보면서, 가지고 간 목검을 휘두르며 練劍(연검)도 하면서, 강아지들 노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겨울 이겨내고 울창해가는 나무들을 대견한 마음에 쓸어주기도 하면서 생각해보았다.
부단히 상담 요청은 들어오는데, 그에 응하지 않는 것이 과연 잘하는 일인가를 좀 생각해볼 필요가 있었다.
전에 주식투자 강좌를 하다가 맥이 빠져서 그만 두었다. 가르쳐주고자 했지만, 배우려는 사람은 드물고 당장 돈이 되는 것만 알려달라고 해서 그만 두고 말았다.
운명상담을 하지 않는 이유도 마찬가지, 눈앞의 급한 사정에만 관심이 있고 그를 모면할 생각만 할 뿐, 정작 어떻게 하면 인생을 잘 경영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그러니 맥이 빠져 상담을 하지 않는다. 운명상담이 119 구조대는 아니지 않는가!
모두마다 하나밖에 가지고 있지 않은 소중한 삶인데 그것이야말로 더 없는 보석인데, 보석을 닦고 아껴서 잘 가져갈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저 저는요, 당장의 이 어려움만 벗어나면 나머지는 아무 문제가 없으니, 이거 언제쯤이면 벗어날 수 있는가만 알려 주시지요 하는 식이다. 문제가 있어서 그런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모르고 벗어날 방도나 시기만 물어온다.
낚시 학교에 와서 물고기 한 마리만 달라는 것이지만, 낚시 학교 교장에게는 그 물고기가 없다. 낚시 학교가 생선가게는 아님이다.
그러니 그런 부질없는 상담에 응하느니, 그 시간에 여러 사람들에게 인생을 어떻게 하면 잘 경영해 갈 수 있는지에 관해 글을 써서 들려주겠다는 생각으로 이 블로그를 하고 있다.
이런 글 저런 글을 그냥 천천히 읽어나가다 보면 얻는 것이 있을 것이요, 느끼는 바가 있을 것이니 거의 매일 글을 하나씩 올린다.
글 한편 쓰는데 드는 노력과 정력이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 능히 이해할 것이니, 그 성의를 봐서라도 시간이 가면 절로 삶에 대해 여러 생각과 반성을 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서 이 블로그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건 됐고 내 인생의 주기와 운세 흐름에 대해, 과연 언제쯤이면 확 풀릴 건지만 알면 그만이다 하는 마음에서 상담 요청이 끊이지 않는다.
그저 시간만 가면 되는 일이 아닌 것임에도 그저 얼마만큼의 시간만 지나면 되느냐에 관심이 있어 한다.
그런데 이 세상에 고통 없이 배울 수 있는 것이 어디에 있으며, 시간만 지나면 되는 일이 세상에 또 어디에 있겠는가?
겨울의 나무가 그저 햇빛이 길어지고 따듯해져서 봄이면 저리 꽃을 피우고 여름이면 무성할 수 있다고 생각하신다면 誤算(오산)이다.
나무 나름으로 추운 겨울에도 열심히 무언가를 준비하고 기다리며, 봄이 오면 꽃을 피우고 여름이면 무성한 잎새를 내기 위해 정말이지 안간힘을 다한다는 사실이다. 그래야만 가을에 이르러 열매를 맺고 한 해를 마무리할 수 있다.
그런데 그 나무가 찾아와서 언제면 봄이 와서 꽃을 피우고 여름이 와서 잎사귀 무성할 것이며, 가을은 언제쯤이나 와서 내 삶의 결실을 볼 수 있을까요 하고 묻는다면 내 뭐라 답하리.
또 그간 어떤 경위인지 모르겠으나 그간 나름의 많은 노력을 통해 결실을 보고 또 누렸던 자가 이건 정말이지 성에 차지 않으니, 내 삶의 가을은 언제 쯤이면 오나요 하고 물어본다면 무어라 답할까?
이미 가을 지났는데요, 그러니 이제 겨울을 앞두고 있는데요 하고 답하자니 아이고머니 그게 가을이었고 그게 겨우 결실이었다고요? 하고 失色(실색)을 한다.
그러면 아니지요, 잘 생각해보세요, 겨울이라고 다 나쁜 것은 아니랍니다, 겨울도 잘 지내면 그거야말로 우아하고 좋은 계절이랍니다 하고 설득을 시켜보려고 하지만 영 아니올시다 하는 표정으로 걸음을 돌린다.
그러니 정작 들려주고 싶은 얘기는 운도 떼기 전에 상담은 끝나 버린다.
저마다의 삶과 운명이 얼마나 빛나는 보석 같은 것인지 그 일부라도 맛을 보여주기도 전에 휙 하고 떠나가 버리니 남은 사람은 그저 황당해할 뿐이다.
아니 이 보세요, 당신이 가진 그거 진짜 대단한 것이라니깐요 하고 말 좀 해주고자 해도 그런 거 말고 언제 돈이 되느냐만 관심이 있으니 답답할 노릇이다.
정말로 가르쳐 주고픈 것은 모두마다 그 속에 가진 것이 어떤 누구와도 비교할 필요도 없이 정말 대단한 것이라는 사실인데, 좀 더 알고 나면 畏敬(외경)할 그 무엇이건만 타인과 비교해가면서 자신의 삶을 함부로 대하고 마구 써대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실컷 고생하고 노력한 것이 결과적으로 아쉬움을 남긴다면 그거 허무하다.
그러나 삶의 저 기막히게 신비로운 구조를 조금이라도 알고 나면 고생은 배우는 과정이고 그 배운 것으로 노력을 하니 실천이다. 그리하여 가지게 된 것이 있을 것이니 크고 작고를 떠나 즐거움인 것이다.
그러나 삶의 구조를 전혀 모르고 지낸다면 고생할 때 배운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내가 실천한 것이 무엇인지 모르니 결실을 얻고서도 그것이 결실인지도 모르니 마음 허하고 아쉬울 것이며 또 시간이 지나 그마저도 잃게 되면 悔恨(회한)만 가슴에 안고 세상을 떠나야 한다면 어찌 아니 안타까우리.
그러니 이런 것들을 상담 한 번으로 미처 알려드릴 수가 없다는 생각에서 이렇게 열심히 글을 쓰고 또 올린다.
우리 모두의 삶은 진실로 빛나는 보석이고 신비로운 노래라고 감히 자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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