穀雨(곡우), 세상을 만들어내는 交合(교합)의 때여!
2011.4.21 호호당의 김태규님
어제 4월 20일은 穀雨(곡우)였다. 곡우에 대해 이미 두 번에 걸쳐 글을 올린 바 있으니, 프리스타일 12 번 ‘곡우에 비 내리니 천지교태라!’, 353 번 ‘경인의 해, 곡우를 맞이하여’란 글이 그것이다.
이제 세 번째로 곡우에 대해 얘기하려 한다. 내년은 물론 앞으로도 계속 곡우가 되면 말을 할 것이다. 그만큼 곡우의 意義(의의)는 크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는 부디 앞의 글들도 꼭 읽어보시기 바란다.)
곡우는 천지교태의 때라 얘기했는데, 天地交泰(천지교태)란 말이 무슨 말인가?
하늘의 커다란 남성적 기운과 땅의 커다란 여성적 기운이 서로 만나서 하나가 된다는 말이다. 더 쉽고 노골적으로 말하면 한해를 통해 남성인 하늘과 여성인 땅이 처음 섹스(sex)를 시작하는 때이니 바로 ‘에로스(eros)’적 사랑의 때가 곡우이다.
우리 인간은 有性生殖(유성생식)을 한다. 유성생식이란 암수가 짝을 지어야만 후손을 이어갈 수 있는 생명의 스타일이란 말이다. (반면 아메바와 같은 단세포 동물은 짝을 짓지 않고 자체의 세포분열을 통해 새로운 개체를 만들어내는 삶의 스타일이니 이를 무성생식이라 한다.)
우리 인간을 포함한 모든 유성생식체는 전 生涯(생애)를 통해 가장 중차대한 일이 두 가지가 있다. 이 두 가지 일을 제외한 나머지 사항들, 가령 당신이 사회적으로 출세하느냐 성공하느냐 하는 문제는 사실 아무 일도 아니다. 해도 좋고 안 해도 사실 상관이 없다.
그러니 우리는 가장 중차대한 두 가지 일에 대해 알아야 할 것이니, 귀를 닦고 잘 들어보시기 바란다.
그 하나는 남녀가 만나 나누는 에로스적 사랑이고 또 하나는 죽음이다.
다시 말해 사람은 이성과 짝을 지어 사랑을 하니 그로서 자식을 낳으며, 그러다가 노쇠하여 죽게 되는 것이니 그것이 우리의 삶이다.
모든 유성생식체에게 주어진 가장 두려운 숙명은 죽음이며, 그 죽음에 대한 최고의 報償(보상)은 에로스 사랑인 것이다.
에로스 사랑을 플러스(+)적 가치라 하고 죽음을 마이너스(-)적 가치라 한다면 그 둘을 합치면 정확하게 제로(0)가 된다. 그 둘은 정확하게 서로를 상쇄하는 等價物(등가물)인 셈이다.
우리가 태어나 한 세상 살다가면서 에로스 사랑보다 더 한 기쁨은 없고, 죽음보다 더 두려운 것은 없으니 이 얼마나 의미심장한 일인가!
그래서 세상의 모든 대중가요는 남녀 간의 사랑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우리가 세상을 향해 내놓을 수 있는 최고의 宣言(선언)이 있다면 무엇일까?
그것은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리라!’ 하는 선언일 것이다. 이 말속에는 죽음이 들어있고 또 사랑이 들어있으니 죽음과 사랑이 서로를 상쇄한다는 것을 알리는 말이고, 우리가 세상을 향해 내놓을 수 있는 최고 지선의 생명 선언인 것이다.
‘검은 머리 파뿌리될 때까지 사랑하여라’고 하는 올드 스타일의 혼인 주례사는 그 선언을 조금 달리 표현했을 뿐이다.
하지만 모든 선언이 으레 그렇듯이 선언은 선언의 文句(문구)대로 이루어지기가 어렵다. (그래서 선언이기도 하지만!)
죽음이 갈라놓기 전에 두 사람의 애정은 식어드는 것이 더 일반적이고, 그래서 기존의 짝을 떠나 또 다른 짝을 찾아 나서기도 한다. 이를 죄라 한다면 ‘사랑의 죄’가 되는데, 이 방면에 있어서는 특히 남성의 罪(죄)가 크다.
나 호호당 역시 남자지만 내 살아보니 이 세상 모든 罪(죄)와 悲劇(비극)은 남자가 짓는다. 거의 대부분 그러하니 남자는 기본적으로 못된 존재이다! 여자도 죄를 짓지만 기껏해야 방조한 죄 또는 응한 죄에 그친다.
바람을 피고 죄짓기를 일삼으며 세상을 끊임없이 분란과 투쟁으로 몰아넣는 남자는 역사 발전의 주역이자 원동력, 陽(양)의 힘이며, 반면 여성은 남자들이 저질러놓은 분란과 투쟁을 끊임없이 쓸어담으며 그런대로 살만한 세상을 유지해가는 거대한 陰(음)의 힘이니 여성의 이름은 平和(평화)인 것이다.
오, 대단한 말썽꾼인 남성이여, 오, 평화의 위대한 어머니인 여성이여!
(왜 남자가 사랑의 죄를 짓는 주범인지 그리고 변화 발전의 원동력인가에 대한 문제는 또 다른 주제이니 다시 글을 마련하고자 한다.)
돌아와서, 남녀의 사랑과 죽음, 이 가장 중요한 일에 대해 모든 사회는 어떤 형태로든 가장 큰 의미를 부여하고 그에 따른 儀式(의식)을 가지고 있으니 바로 ‘결혼식’과 ‘장례식’이다. 이 두 예식은 가장 중요한 慶事(경사)이고 弔事(조사)인 것이다.
어려서 고딩이 시절에 아마도 물었을 것이다. 인생이란 무엇인가를?
이제 아시겠는가. 사랑하고 죽는 것이 삶인 것이다.
사랑은 좋으나 죽음은 싫다. 인간은 이 矛盾(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종교를 만들었다. 유일신의 기독교와 유태교, 이슬람교가 있지만 그 외에도 여러 형태의 종교가 존재하니 이는 우리 인간이 창조해낸 가장 위대한 문화라 하겠다.
(감히 비밀을 밝히자면,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하고 인간을 만든 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이 하느님을 창조하고 모든 신을 만들었다. 나아가서 우리 인간이 신을 창조했기에 신은 우리 의식 속에 실재한다. 신은 의식적 실재이다.)
그리고 모든 종교는 그리고 모든 종교적 감정은 우리로 하여금 죽음을 초월하게 하는 그 무엇을 제시하고 있으니 그것은 에로스적 사랑이 아니라, 아가페(agape)적 사랑이다.
아가페 사랑은 예수가 했다고 전해지는 말, ‘이 빵은 나의 살이요 이 포도주는 나의 피이니’ 하는 더 이상 아름다울 수 없는 시적 표현으로 제시되고 있다.
세상 살면서 가장 소중한 것이 내 목숨일진대 그 목숨은 살과 피로 이루어져있다. 그런데 그 소중한 살과 피를 주어서라도 또 다른 무엇을 살리고픈 마음이 아가페 사랑이다.
그 아가페 사랑은 보통의 사람들에게 있어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으로 존재한다. 하지만 성숙된 종교적 시야를 가진 사람의 눈에 세상 만물이 다 자식 같으니 어느 누구에도 자신의 살과 피를 줄 수 있는 것이다. 바로 아가페 사랑이다. 그로서 우리는 죽음을 넘어설 수 있는 것이다.
죽음보다 더한 사랑이고 죽음을 넘어서게 하는 사랑인 것이다.
(그러나 죽음을 넘어서게 하는 사랑의 믿음이 있다고 해서 그 믿음으로 비행기를 탈취하여 건물을 들이받아 수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9.11 테러를 보라, 그것이 바로 종교적 광신이고 가장 몹쓸 믿음의 형태이다.
대표적인 예라 하겠지만, 그 말고도 종교의 이름으로 즉 죽음을 넘어서는 사랑에 대한 믿음이 있다고 해서 그것이 타인이나 그 어떤 것에 대한 미움과 증오로 표현되고 발출된다면 그것은 어떤 논리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건만 이 세상은 종교적 광신으로 얼룩져가고 있는 현실이다.)
유성 생식을 하는 인간의 삶에는 에로스 사랑과 죽음이 존재할 뿐이니 이에 우리 인간은 아가페 사랑이라는 특유의 의식을 가짐으로써 죽음마저 초월할 수 있는 존재로 진화해온 것이다.
이제 돌아가자, 원점으로.
어제가 곡우였다.
곡우에 와서 왜 어떤 이유로 하늘과 땅이 에로스적 사랑의 교합을 하는가? 두 번에 걸친 글을 통해 이미 설명했으니 간단히 얘기하자.
4월 20일 경이 되면 동지 때부터 길어지기 시작한 햇빛으로 겨우내 식고 얼어붙은 땅이 서서히 데워져서 이제 드디어 작물을 길러낼 수 있는 온도와 습도로 맞추어진다. 땅은 이제 어느덧 햇빛으로부터 받은 地熱(지열)을 땅위 대기 속으로 뿜어내기 시작한다.
이를 일러 옛 사람들은 天氣(천기)가 下降(하강)하고 地氣(지기)가 上昇(상승)한다고 표현했다.
땅속에 얼어붙어 있던 습기가 지열과 함께 대기 속으로 오르니 이 무렵 하늘은 흐리고 구름 끼고 비 오는 날이 잦다. 천지간 수분을 머금은 공기의 對流(대류)가 활발해진다.
생명은 열과 수분을 통해 만들어지고 생성된다.
그러니 곡우로서 남성인 하늘과 여성인 땅이 사랑의 교합을 하고 그로서 생명을 잉태하는 것이다.
하늘과 땅은 거대한 허공 속에 수분으로 만든 구름으로 커튼을 치고 따뜻한 열기로서 그 속을 온화하게 데우니 이는 신랑신부가 드는 洞房(동방)이 만들어진 셈이다. 그 속에서 하늘과 땅은 가슴 떨리는 사랑의 행위를 시작하는 것이 곡우의 때이다.
3월 20일 경 춘분으로서 눈빛을 교환하고 눈치를 살피며 마음 싱숭생숭해 하던 하늘과 땅은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난 穀雨(곡우)로서 이윽고 서로의 마음과 몸을 열어젖히고 있다. (농부는 그 힘을 빌려 씨앗을 뿌리고 우리 모두 그 힘을 빌려 올해의 생산을 시작한다.)
생성과 생산의 위대한 神話(신화)는 신화 책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바로 지금 우리 눈앞에서 천지라는 거대한 스케일로서 이 순간 펼쳐지고 있다.
그러니 우리 또한 교합의 때이고 생성과 생산의 마음인 것이니, 恍惚(황홀)하지 않은가!
실로 恍兮(황혜)하고도 惚兮(홀혜)하도다.
사랑의 비여, 내려라!
P.S.
플라톤이 정의한 사랑의 단계이자 종류는 총 4가지로
육체적 사랑 (Eros)
도덕적 사랑 (Philia),
정신적(신앙적) 사랑(Stergethron), : 스테르게트론
그리고 마지막 단계로 무조건적인 사랑 (Agape)이다.
플라톤의 주장을 따르자면
사랑은 육체적인 사랑에서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서서히 발전해 간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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