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어 외롭지 않으려거든
2011.4.19 호호당의 김태규님
나이를 먹어 노년이 되면 느끼게 되는 한결같은 감정이 있으니 그것은 ‘외로움’이라 한다. 외롭고 서운한 생각이 자꾸 들어 눈물이 나기도 한다고 한다. 아직 나 호호당은 그런 나이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나이 드신 분들로부터 얘기를 많이 들었다.
겪어보지 않은 일이라 감히 뭐라 단언하기는 그렇지만, 오랜 시간 생각해오면서 하나의 답을 얻었다.
과연 우리가 늙어서 외롭지 않으려면 미리부터 어떤 준비를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暫定的(잠정적) 결론을 얻었다. 오늘은 그 점에 관한 얘기이다.
(이 블로그를 읽는 독자들은 대부분 나이가 많지 않을 것이니 어쩌면 관심이 없는 얘기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주변에 연세 드신 분들이 있을 것이니 그 분들을 이해하기 위한 차원에서도 읽어두시면 좋지 않을까 한다. 노골적으로 말하면 당신도 노인 되는데 그리 많은 세월 남은 것 아니라는 사실이다.)
흔히 늙어서 돈이 없으면 추레하고 처량해진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다. 그리 틀린 말은 아닐 것이고 일종의 상식이라 하겠지만, 그 상식 속에는 허점이 있을 수도 있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식욕도 떨어지고 의욕도 약해져서 스스로를 위해서는 크게 돈을 쓸 곳도 없는 것이 정상일 텐데 왜 돈이 필요하다는 것일까?
나이 들면 찾아오는 사람도 적어지니 돈이라도 있어야 불러서 밥도 사주고 용돈도 줄 수 있을 것이며 그래야만 외롭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자식들이 있다 해도 모두들 제 일에 바빠서 여간하면 찾아오기가 쉽지 않은 세상이고 말이다.
그러나 돈이라도 있으면 사람 마음 거기서 거기인 까닭에 가끔이라도 얼굴을 내비치게 된다는 생각도 있는 것이다.
좀 더 바란다면 제법 적지 않은 돈이 있다면 그걸 바라는 마음에서라도 더 자주 찾아올 것이라는 기대도 있을 것이다.
반대로 아주 곤궁해지면 결국 자식이나 가까운 친지들에게 부담만 줄 뿐이니 외로움에 더하여 비참함까지 느끼게 될 것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도 있을 것이고.
오늘날 우리 사회의 노인 우울증은 상당 부분 이런 요인들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그게 돈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평생 돈만 있으면 행복할 수 있다는 믿음 하나로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이다보니 늙어서도 돈만 있으면 외롭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행복은 돈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진실이다.
나이 들어 외롭지 않으려면 두 가지를 준비해두어야 한다고 본다.
한 가지는 나이 들은 뒤에도 ‘자신만의 활동’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를 보면 남성들이 여성에 비해 노후에 더 외롭고 비참해 진다.
평생 처자식 먹여 살리느라 직장과 일에 매여 세월을 보낸 결과 퇴직 후 정작 꾸준히 할 수 있는 자신의 활동을 뚜렷하게 가지고 않고 있는 경우가 많다. (기껏해야 등산이니 다리 아프고 관절 약해지는 등산도 적당히 해야 할 일이다. 산도 무거워서 부담스러워 할 것 같다.)
沒趣味(몰취미), 시간을 바삐 보낼 수 있는 취미나 재주 한 가지 없이 그저 바보처럼 열심히 옆 사람과 경쟁하고 전쟁하느라 세월을 다 보내고 있는 우리 사회의 남자들이다. (땅따먹기나 할 줄 아는 참 멍청한 당신들이다!)
부동산이 어떻고 주식이 어떻고 하면 열심히 책도 사보고 글도 찾아 읽으며 강연회에도 찾아가는 당신들이지만 정작 자신의 노후 활동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그러니 노후에 외롭고 비참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말이다.
거기에 더하여 우리 한국 남성 특유의 권위 의식으로 인해 직장 그만 두고 나면 만나게 되는 환경 부적응의 문제도 있다.
불러주는 곳 없고 월급 주겠다는 곳이 없다면 동네라도 매일 비 들고 나가서 쓸면 될 일을, 체면 때문에 그런 일 하지도 못한다.
평생 돈 버느라 세월 보냈다면 이제는 돈 안 버는 일 좀 해도 될 것을 체면 때문에 아니면 나는 이제 무용지물이라는 自虐(자학)까지 해가면서 방구석을 지키는 우리 남성들이다. 그래서 ‘三食(삼식)이’라는 말이 나온다.
뭘 하면 노후에 즐겁게 지낼 수 있을 것이라는 점에 대해 제대로 배우지 못한 탓이 아닐까! 지식은 많을지 모르겠으나 정작 無學(무학)이고 無識(무식)인 것이다.
취미활동을 餘技(여기)라 부르기도 한다. 餘技(여기)란 남는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즐겁게 보내기 위해 하는 재주나 기술이란 뜻이다.
나이 들어 시간이 많이 남을 것이니 젊어서 여기라도 하나 익혀두면 그야말로 보람을 느끼며 즐거운 여생을 보낼 수 있지 않겠는가 말이다.
지금 쉽게 말을 하니 그까짓 거 하겠지만, 중년 무렵 별 기대 없이 손을 댄 단순한 것 하나가 당신의 노후를 좌우할 수도 있다는 거 잊지 말기를.
또 그런 여기 정도야 나이가 들어 배우면 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도 하겠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가 않다. 나이 들어 배우면 문자 그대로 여기로 끝나고 만다. 어떤 일이든 10 년을 해야 기초가 생기고 20 년을 하면 나름 그 방면에 개안을 하게 되며 30 년을 하면 마스터가 된다.
내 말은 나이 들어 마스터의 경지까지는 아니더라도 그에 버금가는 경지에까지 도달하려면 지금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어렵다는 것이다. 그냥 수강료 바치는 학생이 아니라, 우연히 시작한 일이 당신 평생 해온 일보다 더 진지하고 또 더 큰 보람과 수확을 안겨다 줄 수 있는 바탕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여기라고 해서 여유롭게 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야말로 노후를 위해 모든 것을 다 걸아야 하는 중요한 일일 수 있다. 餘技(여기)야말로 보람찬 餘生(여생)을 즐기기 위한 필수 아이템이라는 사실
또 그 정도가 아니라 해도 나름 진지해지면 바빠져서 자식들 찾아와도 어서 돌려보내고 싶은 마음도 들 수 있는 것이다. 너희들 바쁠 텐데 뭣하러 자주 찾아오니, 어서 돌아가라, 이 애비도 바쁘다 하면서 말이다.
이런 면에서 우리 사회의 노년 여성들은 여전히 쓰임이 많고 재활용도가 높으며 아울러 친구도 많아서 비교적 즐겁게 시간을 보내는 것 같지만 그 역시 餘技(여기)를 익혀두거나 자신만의 활동을 준비해두는 것이 훨씬 보람찬 여생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우리가 노후를 위해 준비해야 할 일이 있으니 그것은 늙어서도 여전히 후배들에게 자식들에게 또 어린 사람들에게 무언가 주고 베풀 것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점에 대해 보통 사람들은 그것이 바로 ‘돈’이라는 착각들을 한다.
돈? 물론 누구나 좋아하고 반기는 것이 사실이지만, 나이 들어 누구나 그런 돈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그리고 돈을 떠나 잘 생각해보면 베풀 수 있고 줄 수 있는 것이 실로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살면서 책을 통해 배운 지식이나 체험을 통해 얻은 지혜가 있다면 그 역시 뒷사람들에게 가르쳐주며 베풀 수 있는 것이 될 것이 아니겠는가.
나무를 키울 줄 안다면 나무 심고 키우는 기술을 손자들에게 가르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것이고, 털실로 옷을 짤 줄 안다면 그 또한 줄 대상이 되는 것이다. 뭐든 좋은 것이다.
부모님 찾아가면 꼭 돈이 아니라 해도 뭔가 얻어오는 것이 있다면 자식들은 부모님 열심히 자주 찾아갈 것이고, 후배들도 그럴 것이며 어린 사람들도 즐거운 마음으로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찾아가자고 졸라댈 것이다.
한문에 조예가 있다면 꼭 손자만이 아니라 여러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문학당을 열어도 될 것이다. 수강료 아주 조금 받아서 그 돈으로 아이들 아이스크림 사줘가면서 가르치면 될 일이 아닌가.
그리고 나이든 사람은 살아온 경륜이 있어 중년의 선생처럼 급한 마음도 없다. 그저 가르치다가 아이가 잘 배우지 못하면 허허 웃으며 조바심 내지 말고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하면 된다고 가르칠 수 있는 실로 좋은 선생님이 될 수도 있다.
자신만의 활동이 있어 바쁘고 또 베풀 것이 있다면 노후는 결코 외롭지 않을 것이다.
가장 좋은 것은 자신만의 활동이란 것이 바로 베푸는 것과 직결이 될 때가 가장 이상적이라 하겠다.
앞서 말했듯이 한문 가르치는 서당을 연다면 가르치는 일이 활동인 것이고, 그로서 후인들에게 베푸는 것이 되니 어떻게 나이 들어 외롭고 비참해질 수 있겠는가 말이다.
老小(노소)가 교류하면 老人(노인)은 외롭지 않을 것이고, 少年(소년)은 유익한 즐거움을 얻을 것이다. 소년이 유익하면 노인은 보람을 찾을 것이니 그보다 더 풍요로운 여생이 달리 어디 있겠는가?
매일 돈 버느라 그리고 남보다 더 빨리 많이 벌어서 은퇴할 궁리도 적당히 할 일이다. 그보다는 노후에 활동할 준비를 해야 할 것이고, 베풀 수 있는 것을 미리 익히고 준비해두어야 행복한 노년을 보낼 수 있다는 사실 좀 새겨두시면 좋으리라.
내가 이런 것도 생각하는 걸 보니 나 역시 나이가 들어가나 보다. 그리고 자랑이지만 호호당 블로그 늙어서도 이어갈 생각이다.
날씨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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