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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운명학

by 21세기 나의조국 2011. 4. 5.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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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時代(시대)의 黎明(여명)에서 (1)   

 2011.4.4  호호당의 김태규님

 

 

黎明(여명)에서 黎(여)는 ‘검다’는 뜻이고 明(명)은 ‘밝다’는 것이니 어둑한 새벽, 먼동이 틀 무렵을 말한다. 우리 대한민국이 이제 그 여명의 때를 맞이하고 있다.

 

누구나 관심 있어 하는 아파트로 얘기를 시작해보자.

 

1960 년대 후반, 서울의 인구가 급팽창하고 무허가 판자촌 문제가 불거지자 서울시는 적극적으로 이 문제 해결에 나섰다.

 

1968 년 당시 김현옥 서울시장은 2000 동에 달하는 서민 아파트를 짓겠다는 발표를 했지만, 1970 년 날림으로 지은 ‘와우 아파트 붕괴’로 인해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그러자 다시 시도한 것이 중대형 고급 아파트인 서울 동부 이촌동의 ‘한강 맨션 아파트’였다.

 

한강 맨션 아파트! 당시 모든 한국인들에게 있어 선망의 대상이었다. 가끔 나는 이 아파트를 1970 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 속에서 만나보게 된다

 

달러벌이를 하는 수출 기업의 중년 사장과 청순한 미모의 여주인공, 그리고 가진 것은 없으나 눈썹 진한 남자 주인공이 펼치는 삼각관계를 소재로 하는 영화 등에서 한강 맨션 아파트의 내부가 등장한다.

 

한강이 저 멀리 내다보이는 실내에는 우아한 음악이 흐르고, 와인글라스나 양주잔이 소품으로 등장한다. 그 속에서 남녀 주인공들은 1970 년대의 서울 표준 억양으로 대화를 나눈다.

 

그 장면은 당시 우리 대한민국 사람들의 心魂(심혼)을 흔들어놓았다. 남자들은 나도 저런 거 가져야지, 저런 아파트 속에 멋진 애인을 두고 살아야지 하는 의욕을 불태웠고, 여자들은 나는 저런 아파트에 살 거야, 저 정도의 재력을 가진 남자에게 시집갈 거야 하면서 미래를 상상했다.

 

당시 패티 김을 위시하여 잘 나가는 연예인들이 앞을 다투어 입주한 한강 맨션 아파트는 1970 년대 중반 우리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있어 ‘장밋빛 인생’의 더 없는 모델이었다.

 

한강 맨션은 욕구의 일대 폭발을 불러 일으켰으니 다음 게임이 시작되었다.

 

1974 년 무렵 오늘날 동작대교 남단에 위치한 반포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강남 개발의 신호탄이 되었고 여기에 불을 지른 것이 1976 년 무렵의 압구정동 현대 아파트였다. 고 정주영 회장이 월남전 특수가 끝나자 남아도는 인력과 장비를 활용하기 위해 시도한 사업이었다. 그리고 대박이었다.

 

나는 우리나라 아파트 붐에 대해 1970 년 한강 맨션을 始原(시원)으로 하고 1976 년 압구정 현대 아파트를 元年(원년)으로 한다. 1970 년은 庚戌(경술)년이고 1976 년은 丙辰(병진)년이다. 이 두 시점이 중요하다, 기억해 두시길 바란다.

 

이 블로그를 통해 나는 세상 만물은 30 년이 지나면 반대 흐름이 생기게 되며 36 년이 지나면 누구나 그 반대흐름을 감지하게 된다는 말을 자주 한다.

 

그렇다면 보라, 1970 년부터 샘에서 물줄기가 솟기 시작했으니 30 년이 지난 2000 년에 와서는 그 샘의 물줄기가 마르기 시작했다.

 

또 1976 년부터 거대한 흐름이 본격화되었으니 2006 년에 와서 흐름은 마지막 절정에 달할 것이다. (2006 년 우리는 아파트를 향한 절정의 러시를 목격했었다.)

 

그리고 다시 말해서 1970 년으로부터 36 년이 지난 2006 년부터 상류 샘의 물줄기가 마르기 시작했다는 것이 감지되기 시작했고, 1976 년으로부터 36 년이 지난 2012 년, 내년부터는 상류가 아니라 눈앞에 보이는 하류의 물줄기마저도 현저하게 줄어들게 될 것이다.

 

세상이 이런 식으로 흘러가고 변화해간다.

 

아파트 붐이란 결국 일반 국민들, 특히 중산층의 욕구 폭발과 생활 향상과 맞물려 있다. 그리고 아파트 붐과 정확하게 동행한 것이 바로 교육 붐이었다는 사실이다.

 

아파트 붐이 현실 욕구의 반영이었다면 교육 붐은 미래를 준비하는 욕구의 반영이었다. 아파트와 교육, 이 두 가지는 1976 년부터 36 년간 우리의 自畵像(자화상)을 그려낸 거대한 원동력이었다.

 

그 결과 지금 우리 대한민국 사람들이 가진 것 또는 자산이라곤 아파트와 학력(학벌)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가 되었다.

 

어느 아파트 사는데? 어느 대학 나왔는데? 이 두 가지 질문이면 능히 상대를 가늠하고 평가하기에 충분하다. (어떤 젊은 총각이 아버지는 타워 팰리스에 살고 본인은 미국 아이비 리그 출신이라면 최상급 스펙이다.)

 

1976 년은 丙辰(병진)년이고 1964 甲辰(갑진)년으로부터 시작된 우리의 발전 노력이 드디어 구체화되기 시작한 시점이다. 그리고 그 줄기찬 흐름은 드디어 36 년이 지난 내년 壬辰(임진)년으로서 성찰의 때로 들어선다.

 

이는 양적 발전, 즉 확장과 성장의 때가 이제 마무리되고 질적 성숙의 때로 들어선다는 것이다.

 

성찰이나 자기반성, 이런 것들은 퇴계 이황 선생과 같은 도학자가 아닌 우리가 여전히 일이 잘 풀려나가고 있을 때는 좀처럼 갖는 법이 없다. 뭔가 꼬이거나 실패했을 때, 또는 피를 보고 나서야 갖는 것이 성찰이고 자기반성이다.

 

성찰의 때, 자기반성의 시대가 오고 있다고 나는 확신한다. 하지만 여전히 그 빛은 어둠 속에 있어 그를 일러 黎明(여명)이라 앞에서 했다.

 

그러고 나니 김성종씨의 소설, 그보다는 MBC에서 1991 년 개국 30 주년을 기념하여 제작한 최초의 블록버스터 드라마로 널리 알려진 ‘여명의 눈동자’가 생각난다.

 

(1991 년은 우리가 한참 잘 나가면서 한껏 희망에 부풀었던 때였으니 그런 드라마가 히트를 친 것도 당연 시대흐름과 연관이 있었던 것이다.)

 

아파트와 학력으로 압축되는 우리 사회, 그리고 여기에 기여했던 많은 것들이 있다.

 

우리의 학문과 사상, 종교, 정치와 이념, 심지어는 성형 수술까지 실로 수많은 것들이 실은 아파트와 학력 사회의 형성에 기여를 하거나 일조를 했고 더러는 묵과하고 방조를 했다.

 

다음 글에서는 그런 것들에 대해 간단하게나마 살펴보고자 한다. 총체적으로 정리 한 번 해보자는 얘기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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