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ximize Your Life! (죽음에 대한 은근한 기대)
2011.4.3 호호당의 김태규님
익은 봄이 완연하다, 이제 계절의 뚜껑을 열어 봄을 맛있게 먹어도 될 때가 되었다. 당신도 여기 소담하게 담아낸 한 공기의 봄을 드셔보시기를.
어젯밤 강좌 뒤풀이 자리에서 ‘나는 죽음에 대해 어떤 기대감 같은 것을 가지고 있는데’ 하면서 ‘썰’을 풀었다.
어떤 책에서 삶은 주로 고통이며 행복이란 마치 목마른 사람이 물을 마셨을 때의 감각에 지나지 않는다는 그런 글을 읽었었다.
행복이란 일시적인 해방감일 뿐, 삶의 대부분의 시간들은 고통으로 채워진다는 그런 주장이었다.
아마 여러분들도 이런 얘기를 들어봤거나 책에서 읽었을 것이다. 제법 설득력이 있는 주장이다.
인간이 살면서 느끼는 감각적 쾌감 중에서 가장 직접적이고 강렬한 것을 들라면 아마도 성적 오르가즘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이 오르가슴이란 것은 근육의 강렬한 긴장과 수축이 일시에 이완되면서 얻어지는 일종의 해방감이다. 앞서의 목마른 자가 물을 마셨을 때의 해방감과 상당히 유사하다.
오르가슴이나 목마름이 해소되었을 때의 쾌감은 모두 해방감이다. 무엇으로부터 풀려났을 때 얻게 되는 것이니 그것은 모두 일종의 ‘릴리스(release)’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등산을 즐기는 이가 정상에 올랐을 때 얻는 즐거움 역시 이제 더 이상 근육을 고생시키지 않아도 되는 까닭으로 얻는 해방감이며, 마라톤의 즐거움 역시 극단적인 고생으로부터 해소되면서 얻는 해방감이다.
우리가 살면서 그토록 돈을 벌고자 하는 이유도 당신이 유독 물질적인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돈이 없음으로서 받아야 하는 각종 불편함 또는 고통으로부터 해방에 지나지 않을 때가 많다.
(카드사용 명세서 연신 날아드는 무서운 세상이니 서방이나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돈 없이는 살 수 없는 우리의 처지, 참으로 그렇다, 쩝)
그런가 하면 상사에게 갖은 인격적 모욕을 당해가면서 그놈의 밥줄 때문에 직장을 다니는 모든 샐러리맨들의 꿈 역시 다름 아니라 구속받지 않고 편하게 자신의 적성에 맞는 일을 하는 것이니 그 또한 알고 보면 일종의 해방감을 기대하는 것에 불과하다.
하고자 하는 말은 결국 해방감이 주는 일시적인 만족감이 쾌감이고 또 행복인 경우가 허다하다는 사실이다.
자 과연 그렇다면 이제 본론으로 들어간다.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그 두려움은 살아있는 우리가 죽음을 경험한 적도 없고 죽음에 대해 전혀 모르기에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타인이나 동물의 사체를 본 적은 있어도 정작 그 죽음 자들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 들어본 적이 없는 우리이다.
게다가 죽어가는 자가 고통으로 힘겨워하는 모습은 더러 보게 된다, 사실 많이 보지도 않으면서 영화를 통해 보게 되니 아무튼 죽음은 우리에게 두려운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죽음 역시도 고통을 수반하는 삶으로부터의 해방일 수 있다는 생각, 따라서 그 또한 어쩌면 굉장한 쾌감으로 다가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사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몸 어느 한 구석이라도 언제나 불편함을 느끼며 살아간다. 그렇지 않으면 돈 문제로 걱정하거나 기타 등등 우리의 정신과 마음을 편치 못하게 하는 일들이 너무나도 많다.
그래도 산다는 것이 죽는 것보다 좋다고 나 역시 인정하고 있지만, 어쩌면 죽는 순간 커다란 해방감, 릴리스를 느끼면서 황홀한 쾌감에 빠져들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지긋지긋한 삶, 그래도 잘 살아보겠다고 발버둥치는 이 ‘삶’으로부터 벗어난다면 그 또한 엄청난 해방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죽으면 의식도 없을 터인데 그런 해방감이 있겠느냐 하는 질문을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우리 인간이 죽은 다음에도 뇌의 일정 부분은 일정 시간 활동을 계속 한다는 의학적 가설도 있다는 점이다.
대뇌 밑에 존재하는 ‘시상하부’와 같은 곳은 극미량의 산소 공급만으로도 상당 시간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는 주장이 제법 유력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죽은 뒤의 경험, 이른바 ‘임사체험’을 통해 천국을 보았다는 사람, 커다란 튜브를 통해 저 세상으로 가다가 돌아온 사람의 얘기, 그런 모든 것들이 사후에 일정 시간 활동하는 우리 뇌의 어떤 작용일 가능성도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임사체험의 증언을 보면 모두가 어떤 커다란 행복감을 얘기하고 있다. 그러니 어쩌면 그 행복감이란 것 역시 삶이 주는 무게로부터의 해방, 죽기 전 받는 육체적 정신적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이 가져다주는 삶의 마지막 오르가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나는 가지고 있다.
나는 지금 종교적 차원의 뭐 거창한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철학을 얘기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죽음이라는 것이 커다란 해방감을 어느 정도의 시간 간격인지는 모르겠지만 능히 가져다 줄 수 있다는 그 가능성에 대해 말하고 있을 뿐이다.
내 말은 우리가 죽음을 모르다 보니 지나치게 죽음 자체를 무서워하고 있다는 생각이고, 어쩌면 죽음 자체가 가져다주는 삶의 마지막 황홀경도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을 제시해보는 것이다.
나는 죽음에 대해 오래 전부터 여러 가지 기대를 안고 살아간다. 혹시 저 세상이 있지는 않을까 하는 기대, 영혼의 존재에 대한 비밀을 알게 될 수 있다는 지적 호기심, 여기에 죽음의 순간에 이어 찾아오는 엄청난 압도적인 황홀경에 대한 기대 등등 많은 기대를 해보며 살고 있다.
너 죽고 잡냐? 하면 당연히 ‘아니요’ 이다. 일단 살만큼 최선을 다해 살아본 다음에 얘기일 뿐이다.
그러나 훗날 내가 죽음의 순간을 맞이할 무렵이면 나는 꽤나 흥분할 것 같다, 드디어 인생 최후의 비밀을 까보는 순간일 것이니 두려움보다는 기대가 더 클 것 같다.
그러니 진지하게 죽음이라는 게임에 임하려는 내 곁에 아들이나 며느리 손자들이 징징 울어대면 얼마나 성가실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이놈들아, 시끄럽다, 지금이 얼마나 중요한 순간인데 너희들이 울고불고 난리야 하며 야단 칠 것 같다. 다만 호통 치는 내 목소리가 과연 제대로 새어나오기는 할는지 모르겠다.
결국 내 삶의 철학은 죽음까지도 흥미로운 게임으로 바라보면서 내개 주어진 삶을 최대한 알뜰하고도 살뜰하게 빼먹어 보자는 얘기로 집약된다. 그러니 이 기막힌 삶의 장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신 부모님들에게 새삼 감사드린다. 잘 쓰다 가겠습니다!
Maximize Your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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