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 강아지로 시작하는 道(도), 저 자연의 순환에 관한 이야기 >>>★★★★신체적 삶의 주기

◆자연운명학

by 21세기 나의조국 2011. 3. 17. 12:59

본문

강아지로 시작하는 道(도), 저 자연의 순환에 관한 이야기   

2011.3.17  호호당의 김태규님

 

 

‘夏至(하지)에 이르러 陰(음)이 陽(양)에 올라타면 이로서 萬物(만물)은 死滅(사멸)로 접어든다’는 회남자의 말을 어제에 이어 다시 얘기해본다.

 

어제는 이 문구로 시작해서 性理學(성리학)과 하느님, 그리고 합리성에 대해 얘기했지만 오늘은 방향이 전혀 다른 얘기가 될 것이다. 음양오행의 이치 또는 자연의 순환에 대한 얘기이다.

 

얘기는 우리 집 강아지 ‘봉이’로부터 시작해본다.

 

지난 2월 20 일경 ‘봉이’가 돌연 털갈이를 시작했다. 겨우내 털이 빠지지 않아 좋았는데 우수가 되자 그 털을 갈아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자 찍찍이 롤러를 가지고 봉이 털을 밀어대며 뽑는 일이 우리 식구들의 취미생활이 되고 있다.

 

어느 누가 찍찍이 테이프에 봉이 털을 많이 묻혀내느냐 하는 시합, 하지만 내가 단연 일등인 것이 집안의 카리스마인 아빠가 잡으면 꼼짝 못하고 참아주기 때문이다.

 

털을 롤러로 뽑으면서 생각에 잠겼다. 야, 이 강아지도 우수가 되니 봄맞이 작업을 하는구나, 나무도 물을 올리기 시작하는 우수이고 강아지도 이처럼 생리의 변화를 보이건만 왜 우리 인간은 특별한 ‘티’가 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워낙 방한시설이 잘 되는 집에 살아서, 다시 말하면 문명화가 우리로 하여금 우수가 되어도 특별한 변화가 없도록 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다.

 

나아가서 그러다보니 우리 인간은 자연의 순환에서 벗어나 존재한다는 착각을 하게 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문명화로 인한 이 착각은 엄청난 착각이라 본다.

 

여기서 논의를 한 번 크게 도약 또는 비약해보자.

 

아침 신문을 보니 마이크로소프트가 최근 들어 빌빌 대고 있고, 창업주인 빌 게이츠도 자사주를 대거 처분했다는 기사가 있었다.

나는 빌 게이츠가 지금 걷고 있는 운명의 행로를 정확하게 알고 있다.

 

그 양반은 2007 년으로서 운명의 小寒(소한) 추위를 맞이했고, 내년이면 운세의 바닥인 立春(입춘)을 맞이할 예정이다.

 

빌 게이츠, 한때 세계 최고 갑부였고 지금도 빠지지 않는 부자인 그 사람이 지금 운명의 가장 힘든 길을 걷고 있다는 생각을 과연 어느 누구가 할 수 있겠는가?

 

툭 하면 거액의 기부를 일삼는 그 양반이 지금 실은 무척이나 외롭고 힘든 길을 가고 있으리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가까운 측근을 제외한다면 이 세상에 그런 사실을 알고 있는 이는 나 호호당 밖에 없을 지도 모른다.

 

돈이 있은 즉 행복이라는 等式(등식)에 빠져 지내는 일반 사람들에게 있어 빌 게이츠가 지금 불행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기는 정말 어려울 것이고 그게 정상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방 빌 게이츠는 외롭고 힘든 삶을 보내고 있다. Bill is now crying!

 

(물론 돈이 많으면 행복할 거라는 믿음으로 당신이 살고 있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것 없다. 세상은 실로 오묘해서 돈이 많으면 행복하다는 믿음도 옳은 얘기이고, 돈이 행복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것도 옳은 말이기 때문이다.)

 

내가 이 블로그를 통해 운명을 얘기하면서 節氣(절기)를 자주 거론하는데, 그것을 상징적 비유로만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한다.

 

우리가 자연의 순환으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지 않고 있다면, 다시 말해 문명화된 인간으로서 그 순환으로부터 벗어나 있다면 내가 사람의 운명을 이렇다 저렇다 말하는 것이 모두 오류일 수밖에 없다는 얘기가 되기 때문이다.

 

한 개인의 命(명)과 運(운)을 말하고 나아가서 국가와 사회의 운을 얘기할 수 있는 모든 근거는 세상 존재하는 모든 것이 저 자연의 순환에 입각해있다는 생각에서 출발하고 있는 것이고 또 그런 까닭으로 빌 게이츠가 지금 돈에 파묻힌 채 울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세상은 또 묘하다, 당신이 지금 헐벗고 굶주린 상태에서 울고 있다면 모든 이로부터 온정을 받을 수 있지만, 돈에 파묻힌 자는 그런 온정을 기대하기가 어렵다는 사실이 말이다.)

 

우리가 저 자연의 영원하고도 변함없는 循環(순환)으로부터 벗어나 있지 않다는 사실, 봄맞이 털갈이를 하는 우리 강아지 ‘봉이’와 인간인 내가 그 점에 있어 사실 큰 차이가 없다는 말을 하기 위한 지금까지의 얘기였다.

 

이 말은 종교학자 미르치아 엘리아데가 평생 설파했던 주제이며, 칼 융이 그토록 애써서 전달하려 했던 原型(원형)이기도 하다.

 

그러니 앞서의 얘기, ‘夏至(하지)에 이르러 陰(음)이 陽(양)에 올라타면 이로서 萬物(만물)은 死滅(사멸)로 접어든다’는 회남자의 말로 다시 돌아가 보자.

 

이 말을 가지고 이번에는 生理學(생리학)적 설명을 해보겠다.

 

나는 오늘날 우리의 신체적 삶의 주기를 기본적으로 72 년으로 파악한다.

 

태어나서 처음 18 년간은 봄이고 다음 18 년은 여름이며, 이런 식으로 18 년씩 계절을 지나 72 세가 되면 한 주기를 마치게 된다는 생각이다.

 

여기서 내가 인생의 四季(사계)를 72 년이라 하고, 한 달을 6 년으로 잡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72 세가 지나면 일종의 回春(회춘)을 맞이하게 되지만, 그 삶은 대개의 경우 그로부터 12 년을 넘기지 못하고 사멸하게 되는데 이는 우리 삶이 겨울을 지나고 다시 입춘 그러니까 봄을 맞이한 뒤 양력 4월 초의 淸明(청명)절을 넘기지 못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86 세까지 사는 사람은 따라서 꽃피는 봄에 세상을 떠나는 것이니 나름 好時節(호시절)에 맞이하는 죽음이라 하겠다.

 

4월 초에 피어나는 가장 아름다운 꽃이 무언가? 뭐니 해도 벚꽃이 아닌가? 그래서 나는 가끔 상상해본다, 나도 오래 살아서 벚꽃 만발하는 좋은 봄날에 죽어야지, 그러기 위해서는 마음 곱게 먹고 성질 대충 부리면서 살아야지 하는 각오를 늘 하게 된다. A Finale of Life with Cherry Blossom!, 생각만 해도 멋지지 않은가!

 

더 욕심 부리면 그 나이가 되어서도 여전히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야지 하는 생각, ‘리틀 괴테’가 되어 가능하다면 홀로만의 연애라도 곁들이면서 말이다. 크흐!

 

(글을 쓰면서 나는 시방 놀고 있다.)

 

그러나 지금 이런 얘기를 하자는 것이 아니라, 72 년을 한해로 하는 우리의 삶에 있어 夏至(하지)는 언제인가를 말하려는 것이다.

하지는 양력 6월 20일경에 있다. 5월 초부터 입하가 되어 여름이고 8월 초 입추로서 가을이니 하지는 그 날들의 정중앙에 있다.

 

아까 생후 18 년이 지난 때부터 36 세에 이르는 기간을 우리 신체의 여름이라 했으니 그 중앙점을 잡아보면 27 세가 된다. 우리나이로 28 세 즈음이다.

 

이 무렵에 우리 몸의 성장과 생리 조절 기능은 최고조에 달한다. 동시에 老化(노화)가 시작되는 변환점이다. 노화, 여성들이 몸서리치는 그 노화가 바로 이 무렵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안티 에이징(anti aging)이란 말이 있는 모양인데, 무협지에서는 朱顔術(주안술), 즉 붉은 얼굴을 유지하는 기술이다. 주로 마교의 여교주, 영화 ‘동방불패’에 나왔던 임청하가 각본상 그런 주안술의 대가였다는 기억이 난다.

 

그래서 생각해본다, 돈 벌어먹을 궁리, ‘안티 에이징은 28 세부터 시작하세요, 그렇지 않으면 늦습니다’ 라고 광고를 해대면 왕창 떼돈을 벌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공상 그리고 몽상을 말이다. 얼굴에 미세한 기미 하나라도 생기면 일본 원전 폭발에 준하는 난리법석을 떨면서 장사한다면 돈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이처럼 노화가 27 세 무렵에 시작된다는 말은 ‘夏至(하지)에 이르러 陰(음)이 陽(양)에 올라타면 이로서 萬物(만물)은 死滅(사멸)로 접어든다’는 말과 전적으로 동일한 얘기인 것이다.

 

27 세부터 이미 사멸의 기운이 스며드는 것이다.

 

다시 얘기해보자, 72 년에 걸치는 커다란 주기 말고 그냥 한해를 주기로 하는 얘기를 해보자.

 

6월 20일 정오 무렵 해가 가장 높게 떠서 지상으로 그 백열의 빛을 내리쏠 무렵이 陽氣(양기)의 절정인 것이다.

 

그 백열의 태양광 아래 작물은 사정없이 자란다, 쑥쑥 자란다.

 

가장 맹렬하게 성장하는 그 무렵이 바로 頂點(정점)인 것이다. 변화율이 최대인 지점이 夏至(하지)이고 양기의 절정인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착각한다, 하지는 빛의 정점이지 열의 정점은 아니기 때문이다.

 

한해를 통틀어 가장 더운 때는 하지로부터 한 달이 지난 7월 20 일경의 大暑(대서)이다. 이는 우리 삶의 신체적 주기에 있어 27 세로부터 6 년 뒤인 33 세가 되니 그 무렵 우리는 몸과 마음이 가장 뜨겁다.

 

그리고 무더위가 막바지 기승을 부리는 때는 대서로부터 보름이 지난 處暑(처서), 즉 양력 8월 20일 경이니 사람의 나이는 39 세가 된다.

 

그 무렵 사람은 가장 과감하고 행동적인 시기에 이른다. 이른바 擧事(거사)의 시기이고 그 대부분의 거사는 미친 정열로 인해 실패로 마무리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예전에 상담할 때, 이 무렵 성급한 욕심에 참지 못하고 거사했다가 피보고 기죽어서 용기를 달라고 삶의 길을 제시해달라고 무수한 젊은이들이 나를 찾아왔다. 늘 말하듯 이 나이는 마치 물가에 내놓은 아기와 같다는 말을 나는 한다.)

 

‘夏至(하지)에 이르러 陰(음)이 陽(양)에 올라타면 이로서 萬物(만물)은 死滅(사멸)로 접어든다’는 말이 장난이 아님이다.

 

우리는 결코 자연의 순환으로부터 동떨어져 있지 않으며, 자연의 순환과 함께 갈 때만이 우리의 삶은 온전하고 행복할 수 있다.

할 말 한도 없고 끝도 없지만, 오늘은 대충 이 정도 그치기로 한다.

 

다시 생각나면 더 얘기를 이어가겠다.

 

부디 이 봄날을 잘 즐기시길, 쌀쌀하다고 빼면 좋은 봄날 며칠 없다는 사실을 상기하면서.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