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차이나 프라이스(China Price) (1)

중국관련

by 21세기 나의조국 2011. 2. 8. 21:04

본문

차이나 프라이스(China Price) (1)

2011.2.6 호호당의 김태규님

 

 

연휴 기간 중 모처럼 한가롭게 책방에 들렀더니 ‘차이나 프라이스’란 제목의 책을 발견했다.

 

미국의 여기자가 세계의 공장이 된 중국 경제의 실상을 기사 형식으로 쓴 책이었다. 내용은 중국이 수출을 통해 대단한 위세를 떨치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중국 노동자들의 엄청난 희생이 있음을 고발하는 내용이었다.

 

저자 자신이 꽤나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제법 흥미롭겠다 싶어서 샀지만, 읽는 도중 나는 아무런 충격을 받지 않았다. 저자에겐 충격적인 사실이 내게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저 내가 알고 있는 중국이었고 또 1970 년대 내가 겪었던 대한민국의 모습이었을 뿐이었다.

 

차이나 프라이스, 그 어떤 나라보다도 저렴하고 싼 중국 제품의 가격을 일컫는 말이다. 우리가 흔히 ‘마데’라고 하면 ‘찌질하고 싸구려’인 메이드 인 차이나를 의미하는 것과 거의 유사한 뉘앙스의 말이다.

 

저자는 기자 출신답게 참 부지런히 중국 내 여러 공장들을 돌아다니며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과 익명의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중국 노동자들의 열악한 실상을 파헤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들은 중국 친구들로부터 얘기를 통해 그리고 내가 중국을 돌아다니며 눈으로 직접 보고 들었던 그저 그런 일들일 뿐이었다. 어쩌면 내가 그 여기자보다 더 험한 중국의 실상을 보았던 것 같기도 하다.

 

그 책이 미국에선 제법 충격을 주면서 제법 팔려나간 모양이다. 그러나 그 정도 내용은 우리나라에서 나이 50 대 이상의 사람들은 굳이 중국을 가보지 않아도 너무 잘 알고 있는 것들이다. 1960-1970 년대를 거쳐 오면서 우리가 겪은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책을 뒤적거리다가 끝내 흥미를 잃고서는 한 구석으로 밀쳐놓고 말았다. 독후감? 미국의 재기발랄한 젊은이들은 그들의 조상이 얼마나 비참한 상황 속에서 오늘의 제국을 건설했는지에 대해 아예 깡그리 잊은 것인지 아니면 뭘 모르는 건지 의아하다는 소감이다.

 

이는 비단 미국 젊은이의 문제만이 아니라 우리 젊은이들도 그럴 수 있을 것 같아, 중국 위엔화의 환율 문제에 앞서 ‘차이나 프라이스’에 대한 얘기를 먼저 하게 되었다.

 

1980 년대 시절 ‘형사 콜롬보’라는 아주 재미난 미국의 수사 드라마가 있었다. 기억하시는 분들도 제법 될 것이다. 콜롬보 경위는 늘 후줄근한 레인코트와 구겨진 혼방 양복 그리고 싸구려 와이셔츠 차림으로 등장했다.

 

콜롬보 형사는 돈 많은 부자 용의자 앞에서 겸연쩍은 표정으로 ‘정말 비싼 자켓을 입으셨군요, 뭐 저야 늘 이런 ’한국‘산 최저가 싸구려 셔츠만을 입을 수밖에 없는 형편’이라는 대사를 한다. 형사 콜롬보가 인기를 끌던 시절 미국인들에게 마데는 중국제가 아니라 우리 ‘한국제’였던 것이다. 메이드 인 코리어가 바로 ‘마데’였던 것이다.

 

당시 나는 모 은행 지점의 외환 창구에서 직업 용어로 ‘네고’라고 하던 수출환어음 매입 업무를 하고 있었다. 거래처 중에 와이셔츠를 미국으로 대량 수출하는 기업이 있었던 터라 대사를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

 

당시 수출기업이라 하면 우리나라에선 달러벌이로 나름 애국하는 기업이고 잘 나가는 기업 취급을 받고 있었는데, 우리 기업이 정성껏 만든 제품이란 것이 그저 싼 맛에 미국시장에서 소비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나니 가슴이 다 서늘해졌다. 나 역시 기껏해야 그런 물건을 수출하는데 있어 하나의 미미한 부품에 불과하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일찍이 동서양의 古典(고전)을 섭렵한 바 있고, 동서양의 역사에도 해박하며 영어는 물론 중국어 그리고 여타 외국어도 제법 알고 있는 나름 일류 교양인인 내가 겨우 저 찌질하게 먹고 사는 메카니즘 속의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볼트나 너트 정도에 불과하구나 생각하니 속에서 열불이 치밀었다.

 

그런가 하면 은행의 지위 높으신 분들은 툭하면 훈계조로 ‘미국가면 이렇건만 지금 너희들은 겨우 이 정도구나’를 부단히 되풀이하면서 안 그래도 구겨진 자존심을 마구 구겨대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웃기는 분들이셨어요!)

 

그러니 내가 그런 미국 물 좀 드셨다고 거들먹거리는 사람들이 힘을 주는 은행이란 직장을 오래 다니고 싶은 마음이 없어진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차라리 白首(백수)하고 말지!

 

(세월 가면 좀 나아질 줄 알았더니 2000 년대 들어서는 오히려 치성을 부리면서 영어 공부에 전 국민적 에너지를 마구 허비하는 것을 보면서 지낸다. 다시 말해 예전보다 더 나를 웃겨주니 여전히 백수에 만족하며 지낼 밖에 도리가 없다.)

 

지금 내가 말하고 있는 것이 바로 ‘코리언 프라이스’이니, 차이나 프라이스를 이해하지 못할 까닭이 전혀 없음을 얘기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너무 자존심 상해할 이유도 없다. 영국이 잘 나가던 시절 아메리칸 프라이스가 있었고 일본 역시 한때 자팬 프라이스로 돈을 벌었으며 우리 역시 이제 거의 극복하긴 했지만 여전히 코리안 프라이스가 존재한다.

 

지금은 차이나 프라이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인디언 프라이스의 시대가 올 것이니 그렇다. 저 잘난 주체사상의 나라 북한의 김정일이가 몽매에도 그리고 있는 것 또한 ‘노스 코리안 프라이스’를 통해 달러벌이를 좀 해보자는 것이니 두말 할 나위가 없다. (저도 글로벌 시장에서 구두 좀 닦게 해줘요!, 이것이 목하 김정일이 부르짖는 미국과의 ‘국교 정상화’란 사실이다.)

 

가진 것 없는 자가 돈을 벌려면 구차하고 치사하지만 원래 그렇게 버는 법이고 그것이 致富(치부)의 첫걸음이다. (참 내가 써 놓고도 새삼 무서운 말이고 또 진리이다.) 반대로 致富(치부)한 자가 구차했던 올챙이 시절을 깡그리 망각해버리면 그게 또 쇠하고 망하는 始發(시발)인 셈이니, 돈은 이런 식으로 돌고 또 돈다.

 

돈이 돌아다니면서 부가 옮겨가는 것, 이 또한 자연이 보여주는 저 위대한 循環(순환)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세계 어느 나라 공장도 따라오지 못할 정도로 싼 가격에 제품을 출하하는 오늘날 중국의 물건 가격을 차이나 프라이스라 한다.

 

서울 시중에서 20 만원에 팔려나가는 세계 유명 브랜드 선글라스를 납품하는 중국 공장의 출고가는 불과 4천원, 이것이 차이나 프라이스의 실체이다. 4 천원에 출고되는 선글라스의 재료비와 부대비용은 3천6백원, 인건비는 3백원, 나머지 1백원은 공장주의 몫이다. 이것이 차이나 프라이스이다.

 

미국의 월마트는 중국 제품을 미국 내 시장으로 공급하는 최대의 유통업체이다. 이 월마트의 구매 담당자들은 중국 공장을 뒤지고 다니며 가장 저렴한 가격에 납품할 수 있는 공장주들을 찾아다닌다. 그 어떤 품목이든 제발 납품 좀 하게 해 달라고 애원하고 읍소해오는 중국의 공장주들이 수백에서 수천은 된다.

 

그러니 월마트의 담당자는 어마어마한 무식한 권력자가 되어 납품업자의 가격에서 재료비와 부대비용을 제외하면 사실상 제로(zero) 베이스까지 인하시킬 수 있다는 환상 아닌 환상을 가지게 된다. 구매담당자 입장에서 생산에서 차지하는 인건비를 사실상 제로로까지 밀어붙여도 될 것 같은 착각을 하기 마련인 것이 바로 차이나 프라이스인 것이다.

 

인건비가 제로에 가깝다는 말은 인간의 값어치가 제로에 가깝다는 말과 정확하게 ‘동어의’가 된다. 월마트의 구매담당자 눈에 중국 공장 노동자들의 가치 또는 가격은 사실상 ‘없음’인 것이다.

 

중국에서 수출 제품을 만드는 노동집약형 공장의 노동자들은 시간당 평균 0.4 달러 수준으로 알고 있다. 하루에 평균 12 시간 노동이 기본이니 하루 일당은 4.8 달러, 우리 돈으로 5천3백원, 한 달에 두 번 정도 쉬니 한 달 수입이 많아야 15 만원 정도에 불과하다.

 

선진국 그리고 우리 역시 제법 대우가 좋은 기업의 노동자일 경우, 한 달 총수령액이 적으면 2백 5십만원 많으면 5 백만원 정도가 표준이다. 16 배에서 32 배 정도의 차이가 난다.

 

그러니 차이나 프라이스를 이길 선진국 공장은 존재하지 않는다. 중국은 작년에 1조 6천억 달러어치를 수출했지만, 이 물건들을 선진국 시장에서 팔려나간 최종소비자 가격으로 환산해보면 16 조 달러 어치는 능히 될 것이다.

 

다시 말해 14 조 4천억 달러는 유통과정에서 주로 선진국 기업들과 대리점들의 영업이익으로 돌아갔고 그것을 통해 선진국 그리고 우리 기업의 경영주들과 직원들의 몫으로 분배되었다는 얘기이다.

 

더 얘기하면 작년 중국이 수출한 1조 6천억 달러 중에서 중국이 재료비와 부품비용, 전기료 등의 부대비용을 차감하면 중국인들의 손에 들어간 금액은 대략 3 천억 달러에 불과할 것이고 그것을 가지고 공장주와 노동자들이 나눠 가졌다는 얘기가 된다.

 

3천억 달러의 몫이라 하니 많아 보이는가?

 

현재 중국의 제조업 노동자 수는 1억 4천명 정도라 한다. 중국 인구의 1/10 정도 수준이다. 공장주인이 3 천억 달러 중에서 한 푼도 가져가지 않고 노동자들에게 고스란히 돌려준다고 가정하고 계산해보면 노동자 한 사람의 몫은 2140 달러 정도가 된다. (3천억 달러/1억4천만명=2142 달러)

 

다시 말해 공장노동자들의 한해 총수입이 2140 달러라는 얘기이다. 그러나 현실은 거기서 공장 주인이 다시 일부를 가져가고 있기에 현재 중국에선 성공한 기업인들이 연이어 속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중국 노동자들이 실제 가져가는 액수는 더욱 적을 수밖에 없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앞서 미국의 여기자는 이런 사실을 고발하면서 스스로 충격을 받고 있다. 당연히 착취라고 말할 수 있다. 지당한 얘기이다. 하지만 우리 역시 그런 속에서 자본을 만들고 기술을 축적하면서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건설했다.

 

그러면 중국 노동자들은 우리 돈으로 겨우 한해에 2백3십만원 정도의 수입으로 어떻게 생계를 꾸릴 수 있는 것일까? 글이 길어졌으니 다음 글에서 잇기로 한다. 설 연휴라 할 일도 없고 해서 이처럼 열라 글을 올리고 있다.

 

 

 

차이나 프라이스(China Price) (2)

2011.2.8 호호당의 김태규님

 

 

중국 노동자들의 한해 수입이 기껏해야 230 만 원에 불과한데 어떻게 생계를 이어갈 수 있는 것인지, 궁금증을 제기했다. 그것은 중국정부가 위엔화를 의도적으로 엄청나게 저평가시킨 상태로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1 위엔의 우리 돈과의 비율은 174 원 정도이다. 그러나 정작 중국에 가서 돈을 써보면 실질적인 가치가 훨씬 높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가령 상하이라면 500 원 정도의 가치가 있고, 상하이에서 떨어진 안휘성의 허페이와 같은 시골 도시로 가면 1000 원 이상의 가치가 있다.

 

그런 까닭으로 중국 노동자들은 한해 230 만원 정도의 수입으로도 생활을 하고 또 절약해서 저축까지도 하고 있다. 공식 환율이 아니라 환율을 그 나라에서의 구매력에 기초하여 평가해야 한다는 구매력 평가(PPP) 기준이란 것이 있다.

 

미국 달러를 기준으로 우리 원화는 약 30 % 정도 저평가되어 있고, 중국 위엔화는 무려 70-80 % 정도가 저평가되어 있는 것으로 되어있다. 인디아나 동구권의 일부 나라는 그 보다 더 심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이 구매력 평가설도 그리 정확한 것은 아니다. 같은 나라일지라도 지역에 따라 또 계층에 따라 돈의 실제 가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가령 우리나라 관광객들이 태국을 여행하면 호텔이나 관광지 등을 돌아다니게 되는데 거기서 느끼는 돈의 사용가치와 실제 태국인들 사이에서 체험할 수 있는 돈의 가치는 달라도 아주 많이 다르다.

 

환율을 실제 가치보다 낮게 유지하는 것은 수출을 늘리기 위해 자국의 물건을 해외시장에 덤핑으로 내다판다는 것과 같다. 과거 일본이 그랬고 우리 역시 그러했으며 오늘의 중국이 그러고 있다.

 

그러나 그 상대가 되는 미국이나 선진국들 역시 그런 사실을 알고 있지만 선진국의 소비자 입장에선 오히려 반가운 일이기에 그냥 놔두면서 간혹 환율조작국 운운하면서 정치적인 이용만 거듭할 뿐이다.

 

오늘날의 문제는 다름이 아니라 전 세계가 저렴한 ‘차이나 프라이스’에 아주 철저하게 中毒(중독)이 되고 말았다는 점이다.

 

차이나 제품은 오늘에 와서 우리를 포함한 선진국 소비자들을 중독시키고 말았으니 이는 마치 중국 청나라 말기에 영국인들이 중국으로 아편을 대량 공급하는 바람에 중국인들이 아편중독에 빠져들었던 일을 상기시킨다.

 

여기서 잠깐 얘기를 돌려서 양극화 문제를 얘기해보자. 오늘날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은 물론 우리 역시 富(부)의 兩極化(양극화)가 맹렬히 진행되고 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요인이 있으니 하나는 ‘차이나 프라이스’ 때문이고 또 하나는 ‘테크놀로지’로 인한 자동화 때문이다.

 

엄밀히 따져보면 두 가지 요인 모두 미국이 원인이다. 차이나 프라이스를 가능케 한 것도 미국이고 정보기술(IT)의 선두주자 역시 미국이기 때문이다. 정보기술은 모든 생산 측면에서 사람의 손길을 줄여나가고 있다. 자연히 일손이 덜 필요해지니 일자리가 감축될 수밖에 없다.

 

차이나 프라이스는 선진국 소비자들에게 당장은 달콤하지만, 장기적으로 시간을 두고 보면 자국 산업의 위축으로 일자리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어찌 되었든 간에 선진국이나 우리와 같은 準(준)선진국의 일자리는 줄어들 수밖에 없는 구조가 형성된 것이니 이것이 양극화의 원인인 것이다.

 

그러나 양극화는 선진국이나 준선진국만이 아니라 중국과 같은 덤핑 수출 대국 내부에 있어서도 맹렬히 진행되고 있다. 양극화는 따라서 오늘날 汎(범)세계적인 거대한 조류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고 이에 따라 빈부 차이는 물론 환경문제 동물보호 등등 수많은 부작용을 만들어내고 있다.

 

구제역이란 것이 별 이상한 병도 아니고 독감 정도에 불과한 것인데, 겨우 한해에 20 억 원 어치의 육고기 수출을 위해 수백만 마리의 소와 돼지를 잔인하게 ‘살처분’하게 된 것도 따지면 여기에 원인이 있다. (우리가 생명을 고귀하게 여긴다면 이럴 순 없는 노릇이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글로벌리제이션에 맹렬히 반대하고 있는 좌파의 주장이 과연 옳은 것일까? 심정적으로 동조는 하지만, 여전히 낡은 맑시즘에 입각한 논리를 세우고 있는 좌파의 주장은 너무나도 고루하고 진부해서 도저히 그것으로서 오늘의 복잡다단한 현상과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태부족이다 싶다.

 

어찌 되었건 간에 우리 대한민국이야말로 미국이 주도하는 글로벌리제이션의 최대 수혜자 중에 하나인데 말이다. 그러니 좌파의 주장을 들을 때마다 ‘상상력의 빈곤’을 느끼곤 한다.

 

오늘날의 문제는 낡은 보수와 낡은 진보의 논리로서 해결될 일이 아닌 것이다. 어디까지나 현실을 바라보는 냉철한 눈을 통해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實事求是(실사구시), 이야말로 길을 찾아가는 영원한 정신이어야 할 것이다.

 

설 연휴에 심심풀이로 ‘허쉬’ 초콜렛을 하나 먹었다. 영어 철자로 'Hershey', 먹으면서 포장지를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시중에서 ‘허쉬’ 초콜렛 하나의 가격이 얼마인지 나는 모른다. 직접 사먹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포장을 살펴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1960 년대 시절, 어릴 적 가정 형편이 무척이나 부유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내 소망 중에 하나가 허쉬 초콜렛 하나를 통째로 나 혼자 다 먹어보는 것이었을 정도로 허쉬 초콜렛은 아주 대단히 고가의 물건이었다. 기막힌 향과 맛의 허쉬 초콜렛은 정말이지 당시 최빈곤국인 우리나라 아이들에게 그저 꿈의 음식이었다.

 

그런 허쉬를 나는 설날 연휴, 심드렁한 표정을 지으며 아니 이게 왜 이리 맛이 없지 하면서 먹고 있었다. 허쉬를 포함한 미제 ‘차콜리트, 아니 세상의 모든 초콜렛이 다 그저 그렇다. 벨기에 초콜렛은 물론 갖은 기교를 다 부린 프랑스제 ‘쇼콜라’도 그저 그렇다.

 

지금 중국 노동자들은 아주 저렴한 임금을 받아가며 예를 들자면 자녀에게 허쉬 초콜렛을 마음껏 사줄 수 있는 날을 꿈꾸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들의 몸값은 차이나 프라이스, 꿈은 허쉬 초콜렛인 것이다.

 

그 바람에 우리나 선진국의 대다수 사람들은 중국인들에겐 꿈의 음식인 허쉬를 아무 부담 없이 그리고 별 맛을 느끼지 못하면서 먹고 있다. 비만한 몸매를 걱정해가면서 얌전하고도 순순하게 兩極化(양극화)를 당해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발전이란 것이 기껏해야 생소한 베트남 국수를 먹거나 아니면 어릴 적 엄마가 자주 해주시던 ‘카레’를 ‘커리’로 달리 소리를 내는 것 정도라는 생각이다. 우리가 소득 1만 달러에서 2만 달러로 넘어오면서 변한 것이라곤 와이셔츠를 드레스 셔츠라 부르게 되었고, 소주나 맥주에서 와인으로 입맛을 옮겼을 뿐이다.

 

정보혁명의 결과 길을 가면서 그 놈의 핸드폰 때문에 일견 미친 놈 소리 듣기에 딱 알맞게 되었으니 이건 도대체 무엇인가? 그러나 이 모든 허접스런 것들을 미국의 제국주의와 신자유주의, 자본주의의 탓이라 덮어씌우자니 그 또한 뭔가 허접하기만 하다.

 

차이나 프라이스에 중독된 오늘의 세상, 누가 가해자이고 피해자이며 또 공범자는 너무나도 많은 것 같아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으니 ‘에라 만수대신이야 중국제 마데나 즐기고 볼 일’이다.

 

겨우내 무진장 춥더니 그래도 立春(입춘)이라고 봄 春(춘)을 하나 붙이니, 천지도 좀 민망했는지 ‘온도 대방출’을 통해 날씨를 포근하게 만들고 있다.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