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이제 많이 컸거든, 응 알아 인정해, 미중 정상회담의 의미
2011.1.21 호호당의 김태규님
이번 미중 정상회담에 대해 오늘 아침 조선일보에는 이번 회담이 ‘헬싱키 협약’과 유사하다는 평론이 올라왔다. 참 이럴 때 대략 난감하다. 우리나라 일반 국민들 중에 헬싱키 협약이 도대체 무엇이었는지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사실상 隱語(은어)이고 코드인 셈이다. 코드란 일종의 암호인 것이고.
코드를 쓰면 일반인과의 소통은 되지 않지만, 나름 좋은 점도 있다. 코드를 알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선 전달이 쉽고 간편하다는 장점이 그것이다.
하지만 국제정치 문제 전문지가 아니라 일반 신문에 ‘헬싱키 협약’이란 영문도 모르는 코드를 들먹이면 그건 뚱딴지인 셈이고 또 그것에 바탕을 두고 자신의 생각을 주장하는 것은 적절하지가 않다고 본다.
만일 조선일보가 좋은 신문이라면 그런 코드에 대한 해설기사를 기자가 보충해주는 것이 독자에 대한 예의이고 배려일 것이다. 좀 無禮(무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선일보를 거명하니 미안함 마음이지만 그래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정평이 있는 신문이기에 지적을 하게 되었다.
말이 나온 김에 ‘헬싱키 협약’이란 것이 무엇이었는지 자세히 설명하기는 그러니 이럴 땐 극도의 압축적 설명을 하는 것이 이해하기에 좋을 것 같다. (헬싱키 협약에 대해 구체적으로 검색해보고 싶은 분은 그 출발점으로 위키피디어에 가셔서 ‘Helsinki Accords’를 쳐보면 되겠다.)
헬싱키 협약이란 냉전이 진행 중이던 1975 년에 미국과 소련이 상호 공존을 위해 서로의 체제와 세력권을 인정하는 가운데 유럽 여러 나라들, 특히 소련의 위성국가인 동구권 나라들의 인권상황에 대해서 소련이 좀 더 신경을 써주면 미국도 사사건건 소련에 대해 딴지를 걸지 않겠다는 미국의 주문이 반영된 합의였다.
이번 미중 정상회담에서 오바마는 중국의 인권 문제와 민주주의, 위엔화 절상 문제, 북핵 문제 등에 대해 중국이 좀 더 신경을 써야한다고 주문함과 동시에 중국이 이제 많이 커서 예전의 소련 비슷한 정도가 되었으니 그에 따른 예우를 미국이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이번 회담으로 노벨 평화상을 탄 류샤오보 문제라든가 티베트 인권 문제, 중국의 민주주의 채택 문제, 위엔화 절상 그리고 북핵 문제 등에 중국은 물론 외면적으로나마 다소 협력하는 자세를 보일 것이고, 그 반대급부로서 명실 공히 G 2 의 위상을 가져가게 되었다.
구체적으로 합의된 것은 없지만 원래 정치적 합의란 다 이런 선에서 그치기 마련이다. 그러니 이런 내용이 예전 미소간의 헬싱키 협약과 유사하다는 말을 조선일보 평론은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헬싱키 협약은 그것이 그 이후에 미친 영향을 놓고 다양한 해석이 있으니 그 중에 대표적인 것 하나를 소개한다. 소련이 협약 체결 이후 동구권 나라들의 인권과 사상의 자유에 대해 어느 정도 인정해준 것이 결국 소련이 1991 년에 붕괴하게 되는 근본 원인이 되었다는 해석이다. CIA 출신이고 현 오바마 정부에서 국방장관을 맡고 있는 로버트 게이츠 역시 그런 사고방식으로 북한을 바라보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이런 해석의 영향 때문인지 예전에 우리 정치 쪽에서도 내가 기억하고 있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2006 년 무렵, 당시 노무현 정부의 이종석 통일부 장관이 했던 말이다. 6자회담이 인권과 안보를 연계시키는 헬싱키협약을 모델로 삼아야 한다는 미국의 한 상원의원의 주장에 대해 ‘개인적으로 반대하며 정부차원에서도 검토해본 적이 없다’고 밝혔던 일이 그것이다.
이종석 씨의 말인 즉 헬싱키협약이 북한의 체제변동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인식이 있기 때문에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이는 당시 노무현 정부의 북한 정책을 추진하던 사람들의 친북한 성향, 다시 말하면 민족해방(NL)계열의 사고방식을 잘 나타냈던 말로서 내 기억에 남아있다.
그러나 소련이 붕괴한 것은 헬싱키 협약이 원인이 아니라 헬싱키 협약 자체가 내적으로 붕괴해가던 소련의 사정을 반영하고 있었던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원인과 결과에 대해 이처럼 반대로 생각할 수도 있는 법이고, 미국의 일부 사람들이 냉전 승리 이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지만, 나는 어디까지나 헬싱키 협약은 소련 붕괴의 원인이 아니라 소련이 붕괴해가는 일련의 과정에 생긴 일이었다고 본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에 대해 내 나름의 근거를 제시해본다면 다음과 같다. 러시아(이전 소련)은 戊辰(무진)에 바닥이고 戊戌(무술)에 기세의 정점, 그리고 그 10 년 뒤인 戊申(무신)에 그 모습이 가장 절정인 나라이다.
그러니 1928 년부터 일어나기 시작했고 1958 년에 힘의 절정이며 1968 년에 가장 위세를 떨쳤다. 특히 1968 년에 있었던 ‘프라하의 봄’ 사건, 체코의 자유화 운동을 탱크로서 무참하게 짓밟았던 사건은 소련의 힘이 강대하다는 인상과 함께 소련이 더 이상 말로서 위성국들을 리드할 수 없음을 보여준 사건, 다시 말해 소련의 한계를 드러낸 사건이었다.
소련의 운세를 다시 보면 1958 년부터 기세가 내리막이고 그로부터 17.5 년이 지나면 본격적인 겨울로 접어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5 년이 지나면 입동이고 그로부터 2.5 년이 지나면 본격 추위가 오는 소설이니 그렇다.)
따라서 그 해가 바로 1975 년이 된다. 그리고 바로 이 해에 소련은 미국과 함께 헬싱키 협약을 체결했으니 이는 내부적으로 이미 자신감을 잃은 소련이 마치 크게 善心(선심)이라도 쓰는 양 양보를 한 것이었다.
원래 세상에 동일한 일은 없는 법. 이번 미중 회담이 헬싱키 협약과 유사한 면도 있고 또 전혀 다른 면도 있다. 사람들은 어떤 새로운 일이 생기면 과거의 경험 속에서 유사한 점을 찾아 참고로 하려는 것이니 이에 대해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이번 미중 회담이 헬싱키 협약과 같은 면부터 찾아본다. 현재 중국은 불쑥 자랐고 미국은 금융위기 이후 몹시 虛(허)해졌다. 그 결과 미국은 처음에 위엔화 문제나 인권 문제 등에서 세게 나가다가 슬며시 양보하고 있다. 북핵 문제 등에서나 좀 큰 소리를 내는 정도가 전부이다.
그리고 국빈만찬을 베풀면서 ‘야, 중국아, 니가 약간만 형님 말을 듣는 시늉만 하면 내 쾌히 너를 인정해줄게, 글로벌 투 라고 말야’ 하면서 오히려 슬쩍 아부를 한 것이 이번 회담이다. 과거 소련이 미국에게 밀렸던 것처럼 이번에는 미국이 중국에게 밀리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다른 점을 보면 헬싱키 때와는 상황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당시 헬싱키 때는 소련이 미국에게 뒤지기는커녕 오히려 앞서가는 면도 보였지만 지금은 아무리 그래도 미국이 훨씬 중국보다 훨씬 앞선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다만 예전에는 중국을 쥐 잡듯이 몰아붙이던 기세의 미국이라면 이번 회담에서는 자세를 훨씬 유화적으로 바꾸었을 뿐이다. 이 모두 돈이 궁한 탓인데, 중국은 역시 ‘이인자’ 답게 그 사정을 알고 보잉 여객기 200 대를 지르면서 형님 뒷주머니에 용돈 좀 찔러넣으면서 이렇게 얘기했다.
‘아따, 성님, 이거 일단 좀 쓰시면서 좋게 좋게 해자구요.’ 엉거주춤한 자세로 용돈을 받은 미국이라 허 참! 하면서 혼자소리를 되뇔 뿐이다.
미국의 국운이 현재 60 년 주기 상에서 한창 겨울 추위가 진행 중이라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고, 중국은 2008 년이 기세의 정점이니 왕성한 힘을 과시하는 국면에서 맞이한 것이 이번의 미중 정상회담이다.
따라서 이번 정상회담의 사실상 승자는 오바마 대통령이 아니라 후지타오 주석이니 그는 의기양양하게 귀국 비행기에 올랐을 것이다. 서태평양의 패권을 절반은 아니라 해도 40 % 정도까지 그 지분을 미국으로부터 양도받은 셈이고, 내년으로 임기가 만료되는 후진타오로서는 재임 중에 자랑스럽고도 굵직한 업적을 하나 남긴 것이다.
이번 미중 정상회담은 절대강자이긴 하지만 쇠락의 기운을 보이고 있는 미국과 이제 욱일승천의 기세를 타고 있는 중국 간에 있었던 일대 談判(담판)이었다.
이번 담판의 성격을 한 마디로 줄이면 ‘난 나야, 너하고는 달라, 너하고 같을 이유는 없어, 내가 네 꼬리는 아니잖아’였다. 이를 한자로 쓰면 求同存異(구동존이)가 된다. 풀이하면 ‘같으면 좋고 다른 것은 일단 내비도’가 된다.
뻗어가는 중국의 힘을 여실히 엿볼 수 있었던 이번 미중 정상회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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