送年(송년)의 인사, 陰陽(음양)과 道(도), 그리고 이데아
2010.12.31 호호당의 김태규님
봄과 여름에는 만물이 생겨나고 뻗어가며 가을 겨울이면 거두고 시든다. 이처럼 세상과 자연, 그 속의 모든 사물은 한 번 펼쳤다가 한 번 닫기를 부단히 반복한다.
한 번 펼치고 한 번 닫힌다는 것, 또 이것이 반복된다는 것, 이는 우리 조상들이 혹독한 자연 속에서 삶을 이어가면서 얻게 된 커다란 洞察(통찰)이었다.
이 통찰을 아주 오래 전에 수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쳐 지어진 ‘周易(주역) 계사전’은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한 번 陰(음)하고 한 번 陽(양)하는 것을 일러 道(도)라고 한다.’ 자연과 사물의 갖은 변화를 압축해서 陰陽(음양)이라 했던 것이고 그런 식으로 영원히 반복되는 것을 자연의 길, 즉 道(도)라 했던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道(도)라는 것은 ‘세상과 자연과 우주가 늘 변화하면서도 실은 늘 반복해서 다니는 길’을 말하는 것이다. 참 소박하고 아름다운 표현이 아닐 수 없다.
당신이 아침에 집을 나섰다가 저녁이면 집으로 들어오니 그것 또한 道(도)인 것이다. 개인의 삶만이 그런 것이 아니라 사회도 그렇다.
젊은이들은 변화를 요구하고 개혁을 갈망한다. 뭐 다른 이유 실은 없다, 그저 한 번 펼치고 싶은 욕구인 것이니. 그러다가 나이가 들고 세상이 녹록하지 않음을 알게 되고 욕망도 식어드니 그저 밝고 건강하게 살다가는 것 이상 없음을 알게 되니 이는 이제 한 번 닫을 때인 것이다.
젊어선 이러하고 나이 들면 저러하니 그 또한 道(도)인 것이다. 이처럼 주역 계사전은 ‘음양은 자연의 변화이고 그것의 반복과 순환을 도’라 했던 것이다.
음양이고 도라 했지만, 이와 같은 통찰은 주역 계사전만이 아니라 인류 역사상 다양한 문명들에서 존재했다. 동시에 이는 감성이나 감정이 개입되지 않은 순수한 理性的(이성적) 통찰이라 하겠다. 달리 말하면 主知主義(주지주의)적인 통찰이다.
그러나 인간의 감성이나 감정이 들어간 생각도 있으니 이는 이데아(Idea)에 관한 관념이다. 인간의 역사는 혹독한 자연 환경에서 살아남고자 투쟁하는 과정이었다.
먹고 사는 것이 힘들고 짝을 지어 자식 낳아 기르다 보면 어느덧 죽어야 하는 삶의 실존적 조건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상상력이 풍부한 인간은 이게 삶의 전부라면 너무 시시한 것이니 삶이 결코 이래서는 아니 되며 또 아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인간은 하나의 소망 또는 願望(원망)을 가지게 되었다. 사실이나 현실에 입각한 이성적 통찰이 아니라 혹독한 현실에서 살면서 가지게 된 강렬한 ‘바람’이었다.
유한한 물자와 피할 수 없는 결핍, 유한한 삶과 피할 수 없는 죽음을 인간은 고분고분히 받아들이기가 싫었던 것이다. 인간은 어느 동물보다 상상력이 뛰어난 영특한 존재이니 당연하다 하겠다.
그리하여 인간은 이데아에 관한 관념을 가지게 되었다. 이데아 하면 주로 그리스 철학, 플라톤의 사상이 대표적이지만 이 또한 인류 역사의 다양한 문명에서 존재했으며 오히려 그 原流(원류)는 인디아 문명이고 힌두 철학이라 하겠다.
눈앞의 現象(현상)이란 헛된 것이며 實在(실재)적인 것이 아니다. 눈앞의 현상 말고 本體(본체)가 있으며 그 본체는 현상을 ‘超越(초월)’한 진실한 존재이다. 이렇게 하여 현상을 臨時(임시)적이고 헛된 것으로 보고 그 너머에 초월하여 존재하는 실체가 있다는 생각이 바로 이데아 관념이다.
각박한 우리 삶의 현실은 결코 삶의 전부가 아니며 그래서도 아니 된다, 이런 힘들고 시시한 삶이 아니라 그 너머에 진정하고도 영원한 삶, 삶다운 삶, 영원불멸의 삶이 존재할 것이라는 생각이니 사실 이는 이성적 통찰이 아니라 인간의 소망과 바람이 투영된 것이다.
우리는 사실 눈앞의 현상을 떠나서 그 어떤 진실도 입증해낼 수가 없다. 그런데 이데아 사상은 그 눈앞의 현상 저 너머에 진정한 무엇이 있다고 생각하니 사실 이는 바람이고 願望(원망)이다.
불교의 가르침 역시 그 출발점에서 눈앞의 현상이 임시적이고 가공의 것이며 어떤 因緣(인연)에 의해 잠시 모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것에 집착하면 그로서 苦痛(고통)의 원인이 된다고 말하며 그 고통에서 벗어나려면 눈앞의 현상이 임시적이고 헛된 것이라는 것을 투철하게 알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변명이란 저술을 통해 다음과 같이 얘기하고 있다.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마시고 죽으라는 판결을 받았을 때 소크라테스는 그다지 개의치 않고 독배를 마신다. 그러면서 얘기한다. 눈앞의 이 삶이 가공의 것일 수 있고 죽음 저 너머에 영원한 삶이 있을 수도 있으니 나는 이 독배를 마시고 죽는 것이 그리 두렵지 않다고.
불교의 이런 가르침이나 플라톤의 이데아나 실은 같은 맥락인 것이다. 지금까지 나는 두 가지 생각의 흐름에 대해 얘기했다. 먼저는 음양과 도에 관한 것이었고, 또 하나는 이데아 관념에 관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관념, 이성적 통찰과 감성적 원망이 지금으로부터 약 천 년 전에 중국의 한 사상가에 의해 종합이 되었다.
두 사상을 하나로 종합한 이는 程頤(정이)라고 하는 철학자였다. 형 程顥(정호)와 함께 우리가 흔히 性理學(성리학)이라 부르는 학문을 열었던 사람이다.
性理學(성리학)은 바로 음양과 도를 이데아 사상과 종합한 학문이라 해도 무방하다. 음양과 도는 중국 고유의 철학이고 이데아는 인도로부터 전래된 불교를 통해 전달되었으니 이를 새롭게 종합한 중국 철학이 바로 성리학인 것이다.
음양과 도는 중국의 유교와 도교가 공유하는 사상이고 여기에 불교적 사고가 들어가니 성리학은 사실 ‘유불선’ 三敎(삼교)의 종합이다.
정이는 주역 계사전의 말을 재해석했다. 주역 계사전은 ‘한 번 陰(음)하고 한 번 陽(양)하는 것을 일러 道(도)라고 한다.’고 했다. 이에 정이는 ‘한 번 陰(음)하고 한 번 陽(양)하는 까닭이 道(도)’라고 말한 것이다.
음양을 떠나서는 당연히 도가 없지만 음양하게 하는 까닭이 도라는 것이다. 음양을 氣(기)라 하고 道(도)를 理(리)라고 정의했으니 이리하여 理氣(이기)라는 새로운 중국 철학이 등장한 것이다.
그러나 정이를 비롯한 중국 철학자들은 理(리)와 氣(기)를 전혀 구별되는 다른 것으로 본 것이 아니었다. 다시 말해 이데아 사상처럼 초월적 실체와 눈앞의 현상을 구별한 것이 아니라, 理(리)는 氣(기)를 통해 제 모습을 드러낸다고 파악했다.
정이는 氣(기)의 작용인 現象(현상) 자체 속에서 理(리)를 찾아야지 현상을 떠나 달리 理(리)는 없다고 했다. 그리하여 理(리)를 體(체)로 여기고 氣(기)가 작용한 결과인 '현상이나 사물'을 用(용)으로 하는 體用(체용)이론을 세웠다.
체와 용은 모두 실재적인 것이며 체는 用(용)안에 있고 체와 용은 짝하여 서로 떨어지지 않는다고 정이는 보았던 것이다. 이것이 성리학의 바탕 논지가 되었다. 플라톤의 이데아 사상이 본체와 현상을 다른 것으로 구별했던 것과 차이가 크다 하겠으니 어디까지나 主知主義(주지주의)적이었던 중국 철학의 모습이라 하겠다.
명철한 철학자 정이, 그리고 그 親兄(친형)으로서 훨씬 인간미 넘치는 철학자 정호는 이렇게 하여 성리학의 기초를 세웠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성리학이라 하지만 실은 그냥 理學(이학)이라 하기도 한다.
오늘 세밑에 대놓고 철학 얘기를 했다. 세밑에 하는 철학 얘기가 생뚱맞은 것도 같지만 호호당 식의 송년 인사라고 받아주시면 고맙겠다. 쉽게 말하려 했지만 아무래도 그런 것 같지가 않아 마음이 조금 불편하다.
새해에는 기존의 명리학 강좌 외에 그간 중단했던 고전강독을 재개할 생각이다. 교재는 송대 이학가였던 주돈이와 장재, 정호와 정이가 남긴 말들을 朱熹(주희)가 정리한 近思錄(근사록)을 할 예정이다.
好好堂(호호당)이 글이 아니라 말로 들려주는 고전강독은 발랄하고 참신하여 오늘날 일반인 누구나 들어도 즐거울 터인데, 그런 점이 널리 알려지지 않는 것을 안타까이 여길 뿐이다. 새해에는 많은 참여가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고 즐거운 날들이 되기를 기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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