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펼쳤으니 이젠 거둘 때라! (1)
2010.12.25 호호당의 김태규님
1981 년 9월 추분 무렵 갑자기 낭보가 울려 퍼졌다. ‘쎄울’이라는 이상한 발음과 함께 1988 년 올림픽 개최지가 대한민국 서울로 결정이 났다.
그 소식은 우리나라의 모든 일들이 급속도로 좋아지고 펼쳐지는 長氣(장기)의 때에 들어섰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물론 그 때는 그게 그건지 몰랐었지만.)
1981 년 올림픽 개최 소식 이후 5 년이 지나자 그간의 모든 약동하는 기운들이 결집하여 꽃을 피워내기 시작했다.
1986 년에 들어서자 만성 적자에 허덕이던 우리 무역수지가 최초로 흑자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이는 그 10 년 전 박정희 대통령의 철권통치 아래 중화학공업 육성과 수출에 나라와 민족의 모든 것을 걸었던 정책의 찬란한 개가였고 결실이었다.
長氣(장기)란 60 년을 주기로 기운이 부쩍 자라는 10 년을 말한다. 우리는 1981 년 이후 초기 10 년 동안 ‘해서 안 되는 일이 없었고 뭐든 도전하면 이루어졌다’, 과연 장기의 때라 이르기에 하등의 손색이 없었다.
그리하여 10 년이 지난 1991 년 무렵, 3당 합당이라는 이름하에 평화적으로 군부 통치에서 문민 통치로 넘어가는 대타협 또는 빅딜을 이룰 수 있었으니 그것은 ‘한국판 名譽革命(명예혁명)’이었다.
만일 그 때 군부가 권력 이양을 망설이거나 주저했다면 광화문 광장은 국민의 붉은 피로 물들고 얼룩이 질 수도 있었을 것이니 진정한 무혈혁명이고 명예로운 혁명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통사람’을 자처한 노태우 전 대통령의 공적을 높이 산다.)
그러니 1981 년부터 10 년의 세월을 통해 우리는 경제를 선진화했고 정치적으로 민주화를 꽃피웠으며, 세계만방에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알리고 소개하는 88 올림픽 잔치를 치렀으며 또 그를 바탕으로 오늘에 이르러 선진복지국가에 준하는 기틀을 마련할 수 있었으니 실로 ‘위대한 成就(성취)의 時代(시대)’였다고 하겠다.
물론 나의 이런 주장은 오늘날 날선 좌우 이념 투쟁 속에서 쉽게 수용되지 않겠지만, 먼 훗날 역사책에는 반드시 그렇게 기록될 것이라 본다.
그러면 이제 그 長氣(장기)의 때로부터 중간을 생략하고 그 반대의 기운에 대해 얘기해보자. 1981 년부터 30 년, 60 년 주기의 절반이 지난 2011 년 가을부터는 소리는 같으나 뜻은 전혀 반대인 藏氣(장기)의 때가 도래하기 때문이다.
長氣(장기)의 長(장)은 자란다는 뜻이고 藏氣(장기)의 藏(장)은 감춘다는 것이니 정반대인 것이다. 모든 약동하던 기운들이 어느새 시들해지더니 마침내 사라져 버린 것처럼 느껴지는 때가 藏氣(장기)의 때이다.
내년 가을 무렵이면 어떤 신호가 나올 것이다. 앞서 서울 올림픽 개최 소식이 신호탄이었다면 내년 가을 무렵에는 그 반대를 알리는 신호탄이 울릴 것이라는 얘기이다. 어떤 신호가 울려올 것인지 나 역시 모르긴 마찬가지이지만 ‘나올 것’이라는 것만은 알고 있다.
그리고 그로부터 5 년이 지나면 약동하는 기운이라곤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완연히 깨닫게 될 것이라 본다. 때는 2016 년 丙申(병신)년이 되니 국운 상 節氣(절기)로 파악하면 해가 가장 짧은 冬至(동지)에 해당된다.
(동지 다음 날 동해안의 일출을 보고 돌아온 사람이 다시 국운의 동지 얘기를 하니 기분 참 묘하다.)
따라서 내년 가을부터 10 년간 우리는 그 무엇을 해도 쉽게 되는 법이 없고 하나같이 어려운 藏氣(장기)의 때를 맞이하는 것이다. 상황이 어려워지면 사람은 왜 일이 어려워졌는가를 이모저모 살펴보는 눈을 가지고 있다.
처음에는 부분적인 데에서 원인을 찾고자 할 것이고 그것들을 이리저리 손을 보아도 여전히 어려우면 근본적인 틀을 원점에서부터 생각하면서 과감하게 버릴 것은 버리고 고칠 것은 고치려는 시도를 하게 된다. 그러다가 그마저도 어려우면 아예 틀을 근본에서부터 새롭게 짜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내년 가을부터 시작해서 2021 년에 이르는 10 년간의 기간, 즉 藏氣(장기)의 때는 바로 그런 省察(성찰)과 修正(수정)의 기간이 될 것이라 본다. (지금 나는 이 글을 쓰면서 스스로 참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라는 사람은 참으로 대중적 인기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는 생각도 해본다.
어떻게 되든 희망을 얘기해야 할 것이며 어려울수록 더욱 더 장밋빛 희망을 ‘질러대야’ 할 판국에 ‘성찰’ 그리고 ‘수정’과 같은 재미없는 얘기를 늘어놓고 있으니 말이다.
대중적 인기가 지극히 없는 노태우 전 대통령을 한국판 명예혁명의 주요한 당사자라는 얘기를 하지 않나, 독재로 악명을 떨친 박정희를 우리가 오늘날 잘 살게 된 바탕이자 근원이었다는 말을 하지 않나, 당장 배가 불러 터져도 시원치 않을 판국에 앞으로 10 년 동안 되는 일이 없을 것이라는 ‘재수 없는’ 얘기를 하고 있으니 이거야 원 흥행이 될 까닭이 없다 싶다. 하지만 그게 그런 걸 내 어이 하리!)
돌아와서 얘기하면 성찰과 수정의 10 년이 될 것이라 했다. 함부로 판을 확 걷어치우고 철저히 뜯어고쳐야 한다는 식의 대학교 1학년 M/T 수준의 얘기는 하지 않겠다. (그런데 '멤버십 트레이닝'이란 어휘는 아무래도 우리가 지어낸 말 같다.)
무엇을 성찰하고 또 수정해야 할 것인지를 얘기하려면 그게 말이 쉽지 엄청난 얘기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시간을 두고 몇 번에 걸쳐 앞으로의 10 년 동안 각 방면에 걸쳐 성찰하고 수정하게 될 것으로 여겨지는 것들을 하나씩 애기해볼 까 한다.
오늘은 그런 자리를 마련하기 위한 말머리였다고 하면 되겠다. (이 겁나게 추운 孟冬(맹동)의 밤에도 호호당은 동작동 국립묘지 뒷산 지킴이로서 길고양이와 뒷산 산새들 그리고 여타 동물들 보급 작전에 나선다. 스스로 박수, 짝짝짝!)
한 번 펼쳤으니 이젠 거둘 때라! (제2회, 정치#1)
2010.12.27
政治(정치)는 모든 사람이 관심을 갖는 대상이자 모든 사람이 비난을 하는 분야이다.
사이비 지도자가 나라를 망친다, 자본과 결탁한 기득권이 정치를 주무른다, 당리당략에 따라 움직일 뿐 소신이 없다, 저런 놈이 대통령이라니 차라리 이민을 가고 싶다, 저런 놈에게 한 표를 던진 내 손이 원망스럽다,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세상을 만드는 놈들이 바로 정치인들이다, 국회의원에게 주는 세비가 아깝다 등등 정치에 대한 원망과 비난은 이루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
정치란 權力(권력)을 놓고 경쟁하는 場(장)이고 권력이란 대중의 票(표)에서 나오는 것이기에 표와 권력을 얻기 위해 갖은 흑선전과 비방, 선동이 당연히 활개를 치는 곳이고 또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이는 사실 정치가 그만큼이나 중요하다는 것을 反證(반증)하고 있다. 그러면 지금부터 간단하게나마 정치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아보기로 하자.
정치가 목표로 하는 것은 국가 공권력인 바, 우리의 경우 국가 공권력은 한해만도 국가예산 대략 300 조 이상, 지자체 예산 180 조 원의 돈을 주무른다. 거기에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 무수한 준 권력단체와 정부 투자 기관들이 있다.
정치를 통해 국가의 공권력을 장악하면 그 막대한 돈을 이리 옮기고 저리 주며 또 갈라주기도 하고 나눠준다. 그리고 그 모든 돈은 물론 외국으로도 일부 나가지만 대부분은 우리 중 누군가의 손으로 들어간다.
이런 일들을 심하게 얘기하면 권력을 잡은 사람들의 입맛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으니 실로 엄청난 利權(이권)이 아닐 수 없으며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만일 정치권력이 오로지 대통령 한 사람의 손아귀에 있다면, 즉 대통령 독재라면 앞서 말한 바 해마다 국가 및 지자체 예산 480 조원을 포함한 엄청난 돈을 대통령의 생각이나 마음, 그 때의 기분에 따라 누구에게 줄 것인지 결정된다는 얘기가 된다.
480 조원의 돈을 한 사람 당 1억원씩 나누어 준다고 가상해보면 대통령이 먹여 살리는 사람의 수는 무려 4백 8십만 명이 된다. 물론 그 돈을 받는 사람은 처자식과 주변 사람을 먹여 살릴 것이니 대략 3 배수를 하면 1천4백4십만, 줄여서 1천5백만의 사람이 대통령을 통해 먹고 살게 될 것이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대통령 독재가 되면 그에게 명줄 달아놓고 살아야 하는 사람이 무려 1천5백만명이 될 것이니 이런 엄청난 권력이 어디 있겠는가. 다시 말해서 우리가 대통령 독재를 하게 된다면 대통령의 손에 1천5백만 명의 ‘생사여탈권’을 쥐어주게 되는 셈이다. 實感(실감)이 가시는가!
또 독재 대통령이 한 사람 당 1억원씩 나눠주다 보면 그것을 받는 사람이 저마다 나름 보험조, 답례조, 인사조의 명목으로 은밀히 그 1 %인 1백만원씩만 갖다 바친다면 그것만 해도 한해에 4 조 8천억의 비자금이 대통령 주머니 속으로 들어갈 것이다.
(여기서 왜 물건비는 계산하지 않느냐 하겠지만 사실 물건비란 것 역시 따져보면 누군가의 인건비에 지나지 않는다는 정도로 그치고자 한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정치권력보다 더한 利權(이권)은 없다는 점이다. 그러니 정치에 대해 우리 국민들이 엄청난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무진장 욕을 해대는 것도 당연한 일인 것이다.
결국 정치하는 사람들이란 바로 이 엄청난 이권을 저마다 어느 정도 차지해보려고 열심히 난타전을 펼치는 선수들이라 하겠으며 그중에서 이른바 국가대표, 요즘에는 줄여서 ‘국대’에 해당되는 정치선수가 국회의원인 것이다.
당연히 민주헌법은 그 엄청난 이권을 대통령은 물론 소수의 집단이 독차지하지 못하도록 다양한 제도적 장치를 두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의 경우 한해에 480 조의 돈이 정치라는 필터를 통해 누군가에게 넘어간다는 사실에는 ‘아무런 변함’이 없다.
이처럼 정치는 엄청난 이권을 다루는 분야이지만 정치에는 또 다른 특성이 있으니 그것은 정치가 너무나도 막대한 이권인지라 그를 다소나마 감추기 위해 또 다른 추상적 價値(가치)와 名分(명분)이라는 것으로 재포장을 한다는 점이다.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라는 아주 고전적이고 이제는 낡아빠진 대의명분에서부터 실로 다양한 名分論(명분론)이 존재하는 곳이 정치의 場(장)이다.
이렇다 할 명분이 없다면 억지나 생떼를 써서라도 명분을 만들어내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상대를 끌어내려야 한다. 심지어는 백주 대낮에 색맹이 아닌 한 누가 봐도 선명한 붉은 색인 것도 푸른색까지는 아니라도 보라색 정도로는 바꿔놓을 수 있어야 한다.
(청천백일하의 붉은 색을 보라색으로 바꿀 수 있는 까닭은 그것이 보라색일 될 때 이익을 볼 수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 우리 정치인들은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특히 우리나라에서 野黨(야당)하면서 5 년 버티려면 그 정도야 식은 죽 먹기처럼 할 수 있어야 한다.
민주화된 우리나라이건만 민주당이 ‘MB 독재’를 외치는 것이 억지인 것이고, 천안함 사건을 북한 소행이 아닐 수도 있다고 한 것 역시 붉은 색을 푸른색까지는 아니더라도 보라색으로 둔갑시켜버린 실제 사례이니 실로 대단한 정치적 기량이고 絶技(절기)가 아닐 수 없다. 존경한다!
돌아와서 내가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아무튼 정치는 그 어느 분야보다도 중요하다는 점이다. 정치가 잘 되면 경제를 포함한 모든 분야가 발전할 것이고 정치가 꼬이면 나라의 미래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그러면 이제 지난 30 년간 우리 정치가 어떤 구조로 변해왔는지에 대해 애기해보자. 이 글의 기본 주제가 낡은 틀의 ‘성찰’과 ‘수정’이니 말이다.
그러면 1981 년부터 지금까지의 30 년 동안 우리 정치가 어떤 모습으로 틀이 지어져왔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1981 년부터 10 년간은 모든 것이 쭉쭉 뻗어가는 長氣(장기)의 기간이라 했다.
이 기간은 이른바 제5 공화국 시절이었으며 전두환과 노태우라는 두 사람이 통치를 했다. 한편으로 이 기간은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 특히 운동권 세력들의 움직임이 화려한 절정을 이룬 ‘대격동의 시대’였다.
군부집권 세력은 그러나 지금에 와서 돌이켜볼 때 안정적인 경제정책을 시행하여 마침내 1986 년부터 우리 산업이 일거 비약할 수 있는 안전판을 제공했고 이는 오늘날 우리 경제가 선진화될 수 있었던 초석이 되었다.
이에 미국의 레이건 정부가 한국의 ‘탈권위화’를 종용했던 것도 민주화 달성에 크게 기여했다. 대격동의 시대였지만 다행히도 우리는 한발 한발 서서히 민주화로 발걸음을 옮겨가기 시작했고, 마침내 노태우의 6.29 선언으로 민주화로 가는 큰 고비를 넘어섰다.
노태우의 민주화 이행 선언은 물론 국민의 절대적인 여망과 운동권 세력의 부단한 도전이라는 압박 하에서 있었던 일이긴 하지만, 전두환 노태우로 대변되는 군부집권 세력이 그런 요구를 수용한 것 역시 대승적 결단이 아닐 수 없다.
군부집권 세력은 얼마든지 무력으로 그런 요구를 묵살하고 권력을 이어갈 수 있는 힘을 가진 것 또한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군부집권세력은 그것이 시대의 흐름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민주화 이행을 약속함으로써 대타협을 만들어내었으니 이를 두고 나는 ‘무혈혁명’이고 ‘명예혁명’이라 하는 것이다.
주택 2백만 호 건설이라는 중산층의 민심을 공략하는 공약을 통해 직선제에서 정권을 창출한 노태우는 일관되게 탈권위적 정책을 실시했으니 그 상징이 ‘보통사람의 시대’였고 ‘물태우’였다.
스스로를 물이라 비하하면서 몸을 낮춘 것은 권력의 속성상 실로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음에도 노태우 대통령은 감히 그렇게 했으니 국민의 민복을 위해 大德(대덕)을 쌓았다고 하겠다.
이어서 더욱 결정적인 일이 생겨났으니 1990 년의 3당 합당이다. 당시 민주정의당(노태우)과 통일민주당(김영삼), 신민주공화당(김종필)이 합당하면서 명실 공히 문민정부로 들어서는 물꼬를 텄다.
물론 이를 놓고 김대중의 평민당과 운동권 세력들은 일제히 보수끼리 뭉친 3당 야합이라 비난했지만, 사실 우리가 더 이상 큰 혼란을 겪지 않고도 문민정부로 이행, shift 해갈 수 있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국운이 長氣(장기)로 들어서면서 일어났던 정치 방면의 일이었다. 결국 1981-1990 년의 기간 동안 우리는 정치면에서 커다란 발전을 이룩한 것이다.
길어졌으니 다음 글에서 나머지 1991 년부터 2010 년에 이르는 기간의 국운 변화와 정치 흐름을 살펴보기로 하자. 정치는 물론 경제, 사회, 문화 등등 여러 방면을 다 언급하려면 꽤나 긴 시리즈 글이 될 것 같다. 도중에 다른 글도 쓰면서 진행해가고자 한다.
그러고 보니 날이 많이 푸근해졌다. 날이 흐린 것을 보니 눈이 올 것도 같다. 여러분의 마음도 푸근해졌으면 좋겠다.
한 번 펼쳤으니 이젠 거둘 때라! (제3회, 정치#2)
2010.12.28
앞글에서 국운의 長氣(장기)인 1981-1990 년 사이에 우리 정치 역시 長足(장족)의 발전을 했다고 했다. 그러면 1991 년부터 2000 년 사이에 있었던 일을 보기로 하자. 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이 기간은 化氣(화기)의 때였다. 양적 성장이 이제 질적인 무엇으로 변해가는 때를 말한다. 化氣(화기) 직전인 1990 년 3당 합당을 통해 민권 이양의 길을 텄던 우리는 드디어 1992 년 말 김영삼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이른바 文民(문민) 시대를 열었다.
줄이면 文(문)의 시대로 들어선 것이다. 이는 경찰이나 군대와 같은 물리적 강제력은 권력의 배경으로 숨어들고, 논리와 주장을 통해 민심을 얻고 그것으로 권력을 잡고 또 유지하는 시대로 들어선 것이다.
‘까라면 까던 시절’, 명령의 시대에서 이제는 권유와 설득, 말로 해야 하고 말로서 타협해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말로 해야 하고 타협을 통해 일을 해야 하니 모든 방면에서 급속한 변화와 발전을 기대하기는 어렵게 되었다.
(자식 놈 공부 좀 하라고 좋은 말로 권유해보라, 그 자식 놈 공부하는 것이 무슨 벼슬도 아니면서 요리저리 핑계대면서 늦장만 부리지 않던가! 문의 시대 그리고 민주화란 이런 것이다.)
가령 4대강만 해도 그렇다. 4대강 정비가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사실 내가 뭘 알랴! 다만 그동안 수십 년 동안 정부가 하자고 해서 잘못된 것은 별로 없었으니 이번에도 그러리라 여길 뿐이다.
그런 4대강도 예전 같으면 ‘정비해!’ 하면 얼마 안 가서 척척 정비가 되던 시대에서 4대강은 왜 하는데? 하고 따지고 드는 시대가 된 것이고,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운하 결코 하지 않는다고 公言(공언)을 해도 ‘결국 운하 할 거면서’ 하고 우겨도 되는 시대가 바뀐 것이다.
양쪽에서 나름 학자들과 논자들이 나와 찬반 양론을 펼치지만, 이미 답을 정해놓은 마당에 그들의 주장 역시 객관성을 인정하기는 어렵다. 그저 편이 있을 뿐이다.
야당 입장에서 4대강을 정비해서 결과가 좋으면 대통령의 공적이 될 것이니 좋을 리 없는 것이고, 심지어는 FTA 해서 좋으면 그 또한 그럴 것이니 야당은 볼 것도 없이 일단 반대하고 나선다.
물론 나중에 4대강 정비를 잘 한 것으로 판명이 나면 뭐라 변명해야 하지? 하고 걱정할 정도의 심약한 정치인은 한 명도 없다. 그럴 정도면 아예 국회의원이 되지도 않았다. 그냥 내가 언제 반대했는데, 잘하라는 뜻이었지 언제 내가 4대강 자체를 반대했었냐고 정색을 하면 끝이다.
文(문)의 시대란 이처럼 그 무엇도 상대가 선뜻 동의해주지 않는 한 쉽게 되는 일이 없어 심하게 얘기하면 데드락(dead lock)의 시대가 된 셈이다. 대통령이라도 해도 국회에서 여소야대가 되면 사실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거의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닌 시대가 된 것이다.
‘效率(효율)의 시대’는 이제 막을 내렸다. 그런데 재미난 것은 우리 대한민국 사람들의 성정이다. 우리는 1960 년대 세계에서 가장 빈곤했던 나라였지만 죽어라 억척같이 일함으로써 그 가난에서 탈피했다. 남극 북극은 물론 지옥이라도 돈만 된다면 선착순 내지는 소위 ‘빽’을 써서라도 갈 마음이 있는 국민들이었고 사실 지금도 그런 면에서 큰 차이는 없다.
‘다이나믹 코리안’이고 ‘스피디한 코리안’이 우리 아닌가! 힘차고 빠른 대한민국인 것이다. 한국 축구만 봐도 그렇다. 골 결정력은 지지리도 없지만 힘이 좋고 빠르다는 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 국민들의 심정적 속도와 효율에 대한 추구는 지금도 여전하건만, 文(문)의 시대는 속도와 효율 면에서 대단히 불편하다. 여기에 우리 현실과 바람 사이에 커다란 괴리가 발생하고 있다.
문의 시대에서 정치는 비효율적일 수밖에 없으니 마치 우리나라 민사재판과도 같다. 민사법정에서 재판관은 어디까지나 합의를 종용한다. 하지만 소송 당사자는 끝까지 가서 마침내 재판관은 할 수 없이 재량 판결을 내린다. 또 그러기까지 몇 년이 걸린다. (재판 오래하면 패가망신한다는 말이 빈말이 아니다.)
우리 국민이 속도도 좋고 힘찬 것이 사실이지만, 타협하는 데 있어서는 너무나도 서툴다. 타협은 비겁한 것이고 나아가서 패배로 받아들이는 면도 있다. 그러나 민주정치, 文(문)의 정치는 그 본질에 있어 타협이 전부인 것을 어찌하리.
우리는 해마다 연말의 예산안 처리는 으레 날치기 통과가 기본이다. 여타 중요한 안건 역시 그렇다. 그러면 으레 언론에서는 정치의 후진성을 지적하면서 형식적인 비판을 좀 한다. 무슨 대학 교수가 나와 이러면 아니 된다고 고상한 멘트 좀 하고는 지나간다. 그리고는 때가 되면 또 날치기 통과 한다.
물론 그것이 정치의 후진성이긴 하지만, 나는 좀 색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날치기 통과는 우리식의 여야 간 타협의 산물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국정을 책임 진 여당 입장에서는 통과시키지 않을 수 없는 안건이고, 야당입장에서 의석수가 적으니 신사답게 다수결 주의에 따라 그냥 통과시킨다면 그것은 지지해준 국민들에 대해 자칫 무력하고 무책임한 모습으로 인식될 수도 있다.
그래서 여야는 어쩌면 의식하지 않는 가운데 나름의 타협을 이룬 것이 ‘날치기 통과’ 방식이라 본다. 다시 말해 현재로서는 날치기가 최선의 타협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고급 순모 자켓을 걸친 의원들이 의장석을 둘러싸고 밀고 당기는 가운데 옷이 찢어지고 때로는 피도 약간 흘린다. 나아가서 공중부양도 좀 한다. 그러다가 떠밀려 나가거나 실려 나간다. 아주 훌륭한 퍼포먼스가 아닐 수 없다.
야당의 입장에선 그냥 당하지만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셈이고, 여당은 다소 욕을 먹긴 해도 책임 여당으로서의 할 일을 한 것이다. 날치기 통과는 우리 현실, 즉 우리 국민 정서를 배려한 정치연극이자 나름의 타협이다. (내년에는 보다 더 스펙타클한 쇼를 보여주세요, 기대할게요.)
김영삼의 문민정부가 시작되면서 우리는 민주화를 달성했다고 잠시 감격해했지만,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이처럼 지극한 비효율이었다. 게다가 우리는 1991-2000 년의 기간 중에 지방자치제마저 실시되었다. 이로서 비효율은 가일층 커질 수밖에 없었다.
좋아진 것이 있다면 정치로 생활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의 일자리가 늘어난 점이라 하겠다. 그 또한 분명 일자리 창출인 것이고 과거처럼 집권당의 대통령이나 당수가 비자금을 받아 나눠주는 방식에서 지방자치체라는 하부 단위에서 알아서 월급도 받고 또 지역 토호들과 짜웅(?)해서 먹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정치적 부패는 그런 면에서 중앙집중 방식에서 더 분산되고 일반화되었다.
文(문)의 시대는 대통령의 권력을 분산시켰고 레임덕이 오는 주기도 대단히 빨라졌다. 김영삼 대통령이나 김대중 대통령은 임기 초반 잠깐 힘을 쓰고는 바로 무력화되었다. 김영삼 대통령은 아들이 밖에서 술 좀 얻어먹고 다니면서 거들먹거린 죄로 개망신을 했고, 김대중 대통령은 그까짓 모피 몇 장에 휘말려 정권의 뿌리가 흔들릴 정도까지 갔었다.
선진제도라는 명목으로 도입된 청문회는 스캔들 들추기 경연장이 되고 말았으니 청문회 자체가 스캔들이었다. 이 모두 사람은 옛사람인데 제도는 물 건너온 것이라 그렇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타산지석이 결국 타산의 짱돌이어서 그런 것일까.
이것이 1991 년부터 2000 년까지를 변화의 시대, 줄여서 化氣(화기)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변화가 너무나 커서 문의 시대에 들어 우리 정치는 몸살을 앓을 정도가 된 것이다.
그러니 아직 우리가 민주시스템이라는 이 새 꼬까옷에 대해 여전히 적응이 부족하다는 느낌이다. 아직은 거추장스러워한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영삼 대통령 초기 아직은 대통령의 말발이 먹히던 시절, 군부의 하나회를 해체하고 금융실명제라는 엄청난 변혁을 단행함으로써 비자금과 검은 돈의 행로를 원천봉쇄할 수 있는 제도가 확립되었다는 사실을 망각해선 아닌 될 것이다.
그런가 하면 김대중 시대에 들어 복지로 가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아니 될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 북한에 대해 공존의 길을 함께 걷자고 먼저 손을 내밀어 개방을 유도하고자 했으니 그 또한 체제경쟁에서 시장경제와 민주제도를 택한 우리가 옳았음을 입증한 것이다.
비록 아쉽게도 햇빛정책이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어도 그 자체로서 긍정적 평가를 받아야 할 것이다. 한 마디 하면 백 마디 말로 돌아오는 것이 말이다. 우리는 그 말의 시대, 시끄러운 爭論(쟁론)의 시대, 반면 弱者(약자)의 말도 들어주어야 하는 시대로 들어선 것이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간단하다. 서양은 재판 많이 해도 망하지 않는 것은 결국 타협을 보기 때문이고, 우리는 아직 그 타협에 익숙하지 않다. 정치 역시 그런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간 우리는 최선을 다하여 발전을 거듭해 온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면 이제 2001-2010 년까지의 기간을 보기로 하자. 이 시기는 국운 상으로 거두는 시대, 즉 收氣(수기)의 때가 된다. 수기란 수확을 걷어 들이는 때니 나름의 풍요도 있었을 것이다.
다음 글에서 이어가기로 한다. 밤새 눈 소복이 내리더니 아침에는 雪國(설국)을 만들어놓았다. 새벽 한 시가 넘은 시각 아들과 함께 뒷동산 정자에 올라 내리는 눈을 한참 동안 감상했다. 눈이 나뭇가지를 스치며 내는 사락거리는 소리는 겨울의 音律(음률)이었다.
한 번 펼쳤으니 이젠 거둘 때라! (제4회, 정치#3)
2010.12.29
이제 최근인 2001 년부터 올해까지의 우리 정치에 대해 말할 때가 되었다. 이 기간은 收氣(수기)의 때, 즉 수확을 걷어 들이는 때이니 나름 풍요로운 때라 하겠고, 당연히 우리 정치도 나름의 결실을 거두었다.
이 시기의 주된 정치인은 노무현과 이명박이라는 두 인물이다. 두 사람 모두 정치적으로 반대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선 엄청 싫어하는 사람들이다. 뇌무현 그리고 쥐박이라 할 정도로 ‘안티 팬’이 유난히 많은 사람들이다.
하지만 미운 감정 지우고 좀 객관적인 눈으로 보면 두 사람 모두 대단한 영웅들이다. 두 사람 모두 빈한한 집안에 태어나 어릴 적에 많은 고생을 겪으면서 마침내 우리의 대통령 자리에까지 올랐으니 성공신화라 하겠다.
노무현 대통령은 변호사, 인권 변호사, 정치인으로 성공을 한 사람이고 이명박 대통령은 일개 샐러리맨에서 기업인, 그리고 정치인으로서 성취를 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 對照(대조) 또한 뚜렷하다. 노무현 대통령은 말 많은 것이 장점이자 단점인 사람이었고, 이명박 대통령은 말 없음이 장점이자 단점인 사람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혜성과 같이 나타나, 말로 시끄러운 爭論(쟁론)의 시대에 그 탁월한 언변과 엄청난 선동 능력으로 대중의 감성을 자극하고 심금을 울려놓았던 최고의 흥행 스타였다. 노무현 시대는 실로 대중의 시대였고 대중흥행의 시대였다. 특히 사회적 약자들이 가장 행복해했던 시대가 아니었을까 싶다.
반면 이명박 대통령은 임기 초반 촛불 시위로 시청과 광화문 광장이 아수라판이 되어도 한 마디 말도 없이 그저 묵묵히 지켜보던 사람이다. 냉철하기 이루 말할 수 없는 사람이고 현실적 실용주의자이다. 말로서 사회적 약자를 어루만지기보다는 실천적 대안을 찾는 사람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그 화려한 언변으로 집권 초기에 통합을 지향하기 보다는 분열을 조장한 면도 있었다. 대한민국의 역사적 정통성을 부정하는 것 같은 말을 한 것이 그것이다.
개인의 역사 인식이니 그걸 뭐라 할 순 없다고 본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헌법에 정해진 민주적 절차에 의해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된 사람으로서 대한민국의 정통성에 대해 의문을 제시한다는 것은 분명 적절치 않은 처사였다.
그런 말은 정변이나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자나 할 수 있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이런 거 하나로 이해하기에는 대단히 복잡하고 특이한 개성의 소유자였다.
한나라당에게 연정을 하자는 제안을 한 것을 보아도 그렇고 또 나라를 위한 길이라는 판단이 서자 자신의 지지기반인 좌파로부터 과감히 등을 돌리고 FTA를 추진한 것이 그렇다. 세상에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담대한 정치인은 아마도 다시 없을 것이다.
매력 덩어리, 모순 덩어리, 氣槪(기개)와 强骨(강골)의 사나이가 노무현이었다. 이 정도의 대중적 매력을 지닌 정치인은 아마도 앞으로 좀처럼 나타나기 어려울 것이라 본다. (저승에서나마 마음 편히 지내시기를 이 자리를 통해 빌어본다.)
다시 돌아와서 이명박 대통령은 대중적 매력 면에서 노무현 대통령보다는 떨어지지만, 사실 우리가 먹고 사는 일에 가장 신경을 많이 쓰는 경제 대통령이며 경제적 외교 면에서 이 이상의 적임자도 없을 것이다. 동시에 사회적 약자에 대한 나름의 배려도 조용하지만 철저한 사람이다.
나는 우리 역대 대통령들이 모두 시대가 부여한 召命(소명)을 주어진 여건 내에서 최선을 다해 철저하게 수행한 훌륭한 인물들이라 평가한다. 모두 영웅들이라 여긴다.
過(과)도 없지 않았지만 功(공)이 훨씬 더 컸다는 것이 내 생각이며, 모두들 덜도 더도 말고 성실하고 근면한 한국인의 典型(전형)이었다 여긴다.
그 결과 우리의 대통령들은 근면 성실한 한국인들을 훌륭하게 이끌었기에 오늘에 이르러 G 20 정상회담을 개최할 수 있었다. 이는 우리가 세계의 이름 없는 변방에서 중앙 무대로 당당히 진출했음을 알리고 있지 않은가.
아직 우리가 이미 민주제도를 채택했음에도 그 본질이자 정신인 타협의 정신에 익숙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고, 여전히 우기고 고집하는 것이 조선시대의 올곧은 선비정신을 계승하는 양 쳐주는 세태도 남아있으며 정치적 부패도 지방자치제 이후 더 분산되어서 그렇지 실은 더 일반화된 것도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간 우리는 정말 잘해왔다고 본다.
자랑스럽지 않은가! 나는 우리 대한민국 국민 모두에게 훈장을 주어도 된다고 본다.
그러나 여전히 아쉬운 것들이 많다. 하지만 세상은 그 어떤 변화도 사람이 ‘수용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변해가는 것이지 일순에 改變(개변)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세상을 살아오면서 그리고 동서고금의 역사를 통해서 배웠다.
그러니 이제 아쉬운 점은 세월을 두고 하나씩 고치고 정리해가면 되는 일이 아니겠는가! 이제 우리 정치가 가진 낡은 틀과 문제점이 무엇인지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앞으로의 세월 속에서 무엇을 성찰하고 수정해 나가야 할 것인지를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몇 가지가 있다.
첫째, 지역갈등은 물론 지역이기주의가 더욱 심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 이념 갈등의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셋째, 지방자치제도가 정치적 부패를 더욱 일반화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각각 제 나름의 생성 배경을 가지고 있는 이 세 가지 문제들은 오늘에 이르러 우리 정치의 생산성을 크게 저하시키고 있다. 그리고 이런 문제점들은 특히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非(비)타협과 非(비)관용의 황폐한 정신자세를 만연시켜 어떤 면에서는 겪지 않아도 될 악순환의 고리를 재생산해내고 있다.
그러나 이 문제들은 앞으로 2011 년부터 2020 년에 이르는 10 년간 藏氣(장기)의 기간을 통해 우리 전체가 더 이상 감내할 수 없고 미래로 더 이상 짊어지고 또는 안고 갈 수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라 본다. 아울러 그럴 수 있는 새로운 계기도 등장하게 될 것으로 본다.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이 문제들이 해소되고 정리될 것인지에 대해 나는 많은 시나리오를 가상해보고 있고 또 궁극적으로 해소된다는 점에 대해 추호의 의문도 없지만, 이 자리에서 그것을 언급하는 것은 글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라 보기에 다른 기회를 빌려 보다 명확하게 얘기하고자 한다.
다만 藏氣(장기)의 때는 문자 그대로 기운이 감춰지는 때를 의미하기에 모든 것이 시들고 위축되는 기간인지라, 정치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 자체도 상당 부분 시들해질 것이라는 점만 이 자리에서 강조해둔다.
‘정치 과잉’의 시대가 저물 것이라는 얘기이다. 정치에서 특히 민주정치에서 ‘말’은 칼이고 총알이며 무기이다. 오늘날 정치 과잉의 시대가 되다보니 그 말들이 너무나 험해지고 살벌해졌다. 그러나 무기라고 해서 예리하고 파괴력이 크다고만 해서 좋은 것은 아닌 것이다.
무기가 가진 본연의 기능은 스스로를 보호하고 상대도 어느 정도는 보호해야 하는 것이다.
인류가 핵폭탄을 만들어놓고도 실전 사용을 자제하는 것 역시 그런 까닭이 있는 것이다.
앞으로 10 년의 기간 동안 많은 우리 정치 상의 문제점들이 더욱 기승을 부리면서 그 逆機能(역기능)들을 더욱 험하게 보여주겠지만 그것은 사실 큰 국면에서 그 문제점들이 이제 소멸될 때가 되었음을 사람들에게 인식시키는 반전의 계기가 될 것으로 본다.
사물은 끝에 이르면 돌아오는 법이다. 이로서 정치에 대한 얘기는 마무리하고 다음 글부터는 우리 경제에 대해 얘기하고자 한다.
(대문 사진에서 낙산 해수욕장 파도치는 물가로 나가 서 있는 사람들은 모두 함께 여행을 갔던 사람들이다. 뒷모습이고 멀리 있지만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누군가 알 수 있다. 해뜨기 직전의 바다는 설레임으로 가득하다. 그리고 색의 향연으로 화려하기 그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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