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讀書(독서) 그리고 사랑
< 2010.11.28 호호당의 김태규님 >
연이어 날아오르는 찬 기러기 등 돌려서 떠나기 바쁘고
갈대꽃 핀 강 양쪽 언덕에는 하루아침에 서리가 내렸노라
飛飛寒雁背人忙(비비한안배인망)
蘆花兩岸一朝霜(노화양안일조상)
중국 원나라 때의 화가가 남긴 蘆花寒雁圖(노화한안도), ‘갈대꽃과 찬 기러기’라는 그림에 적혀있는 畵題(화제)의 일부, 全文(전문)을 기억하지 못한다.
겨울이 되니 시린 기러기는 분분히 남쪽으로 이동한다. 그 모습에 화가는 섭함을 누를 수 없어 기러기가 사람으로부터 등을 돌리기 바쁘다, 배인망(背人忙)이라 표현하고 있다.
이어 ‘갈대꽃 만발한 강 양쪽 언덕에는 하루아침에 차가운 서리가 내렸네’라고 마무리하고 있다.
갈대와 억새, 잘 구분하지 못한다. 물가에 피어난 것이 蘆花(노화), 즉 갈대이고 억새는 야산 언덕에 피어난다는 정도로만 알고 있다. 모두 늦가을과 초겨울의 대표적인 情趣(정취), 굳이 구분할 이유도 없다 본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이런저런 책을 보는 것이 더 즐겁다.
어려서는 호기심이 많은 까닭으로 책보기를 즐겼지만 그때는 그저 재미를 위함이었다. 청년이 되어서도 여전히 책보기를 즐겼지만, 그때는 유식해지고자 하는 욕심이 앞서 천천히 음미하고 새길 틈도 없었다. 그저 多讀(다독)이었다. 단지 책값이 부담스러웠다.
그러다가 40 이 넘자 세상 책이란 책은 대충 다 읽은 것도 같고 또 별다른 책도 없어 그저 이놈이 저놈 같다 싶어 약간 주춤했었다. 그보다는 어서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앞섰다. (하지만 돈을 벌지는 못했다.)
50 이 갓 넘을 무렵 老眼(노안)이 왔고, 책방에 가도 예전에 나왔던 책이 다시 소개되고 있을 뿐이라는 생각에 우울해졌고 대충 다 살았구나 하는 느낌이었다. 이제 무엇을 하며 놀지? 하는 걱정이 앞섰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우울했던 2005 년이 지난 직후부터 다시 사랑이 찾아왔다.
예전에 읽었던 책이건만 전혀 새로운 글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런 글이 있었나? 이런 문장이 있었다니! 하면서 새롭게 읽기 시작했다.
동서양의 많은 古典(고전)들이 각자 노는 것이 아니라 계통이 서고 줄기가 잡히고 가지가 보였다. 갑자기 내가 進化(진화)되었나, 머리가 좋아진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나는 다시 사랑에 빠졌다.
뜨거운 愛慾(애욕)은 아니었지만, 겨울날 이불 덮인 아랫목에 손을 넣은 것 같은 懇切(간절)함이 있었다.
그러면서 이건 또 무슨 방식의 사랑인가? 하고 물었다.
책을 얘기하면서 사랑이라 하니 다소 이상하신가?
하지만 분명 이 감정은 사랑인 것이 분명하다.
지나간 날의 내 사랑은 어떤 것이었던가?
10 대의 사랑? 등하교 길에서 스쳐가던 그녀의 하얀 목덜미였다.
20 대의 사랑이란 손목을 잡으면 상대의 얼굴을 차마 보지 못하던 부끄러움이었다.
30 대의 사랑이란 그녀의 몸과 마음 속 바다를 항해하던 거친 정열이었다. 풍랑이자 격정이었고, 질투였으며 所有(소유)를 위한 험한 애욕이었다.
40 대의 사랑이란 오로지 거침없는 욕정의 발산이었으니 사랑에 대해 회의하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욕정은 40 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消盡(소진)되어 버렸다.
50 대 초반, 앞서 얘기했듯이 책에 대한 정열도 식었고 사랑에 대한 기대도 없었다. 나는 그만 한줌의 재로 변해있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일도 다 있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재미, 욕망의 세계가 아닌 전혀 다른 세계에서 또 다른 재미를 발견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책을 다시 보게 되었고 다시 읽게 되었다. 많이 읽는 것은 아니지만, 천천히 새길 수 있게 되었다.
그러고 나니 秉燭之明(병촉지명)의 고사가 떠오른다.
춘추전국 시대 이름난 樂師(악사) ‘사광’은 나이 일흔이 넘은 주군이 ‘내가 이 나이에 배운다는 것이 가한 일이겠는가’ 하고 물어오자 다음과 같이 답했다고 한다.
젊어서 학문을 좋아함은 떠오르는 햇빛과 같고
장년에 학문을 좋아함은 한낮의 햇빛과 같으며
늙어서 학문을 좋아함은 저녁에 촛불을 밝히는 것과 같으니
촛불을 밝히면 밝은데 어둠 속을 다닐 까닭이 있겠습니까?
少而好學 如日出之陽(소이호학 여일출지양)
壯而好學 如日中之光(장이호학 여일중지광)
老而好學 如秉燭之明(노이호학 여병촉지명)
秉燭之明 孰與昧行乎(병촉지명 숙여매행호)
설원(說苑)이란 책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설원이란 명칭은 말 說(설)에 동산 苑(원)이니 ‘말로 이루어진 꽃동산’이란 뜻이다. 그러니 그 동산에 있는 말들은 당연히 아름다운 말들임이 분명할 것이다.
중국 前漢(전한) 말의 劉向(유향)이란 학자가 제자백가의 여러 주장 중에서 아름다운 것들을 골라서 엮은 책이다. 읽어보면 과연 그렇다.
사실 잘 몰라서 그렇지, 나이가 들수록 배우고 공부하는 것은 훨씬 즐겁다.
생각에 젊어서 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나중에 나이 들어 진지하게 공부하기 위해서 일단 제목만 익혀두는 정도가 아닐까 한다. 어떤 항목이 있는지 일종의 가이드 정도로서만 말이다.
그리고 나이가 들면 젊었을 때 귀에 들었던 것들을 되살려서 비로소 내게 맞는 공부나 학문을 살피다가 인연이 닿는 것을 정해 시간을 두고 천천히 익히고 새겨가며 진정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나 好好堂(호호당)은 글의 머리에서처럼 ‘찬 기러기가 등을 돌려 남쪽 나라로 떠나기에 바쁜 시절’을 맞이한 셈이고 ‘강 양쪽 언덕의 갈대꽃 서리 맞은 것’과 같은 때라 하겠다.
다소 섭섭한 마음 없는바 아니지만, 이제야말로 눈을 바깥의 풍경에서 내 안으로 돌려서 옛사람들의 남긴 말과 글들로 造景(조경)된 苑林(원림)을 거닐면서 이런 글의 꽃과 저런 말의 꽃들을 하나하나 시간을 두고 감상하면서 즐길 때가 온 것이라 하겠다.
은근한 사랑을 즐길 때가 온 것이다. 아니 사랑 중에 은근한 사랑이 있는 줄은 내 미처 몰랐다.
그러니 살아간다는 것은 마치 이 모퉁이를 돌아서면 다른 경계를 만나 놀라고 다시 저 모퉁이를 돌아들면 기대하지 않았던 경치에 더욱 즐거운 것과도 같다는 느낌이다.
삶과 독서, 사랑은 漸入佳境(점입가경)이라 하겠다.
겨울 추위가 매섭게 신고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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