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소프트뱅크 3. 왜 내수를 키우는 것이 어려운가?
ㅇ 소프트뱅크
(이 점에 대해 얘기하고 싶기도 한데, 글의 흐름에서 벗어날 수 있으므로 다음 기회에…)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미국으로 건너간
그런데
이에 대해 자기 선에서는 어떻게 대답할 수가 없어서 당황해하는 시험관에게 어떻게 되었을까요?
최종적으로
ㅇ 어느 한국인 장애인 유학생의 일화
이 일화는 아주 예전에 신문에서 읽었던 것으로, 일화의 주인공은 꽤 유명한 분으로 기억되는데 이름은 기억나지 않습니다. (혹시 글을 읽고 이 분의 이름을 아시는 분은 댓글 달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분은 신체장애로 휠체어를 타고 다녀야 했는데(제 기억이 잘못되어 혹시 장님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미국 대학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당시 그 미국 대학은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 학생을 맞은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그 대학 건물에는 휠체어의 이동을 위한 고려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 미국 대학은 동양의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건너온 장애인 유학생 한 사람을 위해 대학 건물 모두를 뜯어 고쳤다고 합니다.
대학 측의 설명은 이랬습니다.
우리 학교의 모든 학생은 똑 같은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 휠체어를 탄 학생이 똑 같은 교육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은 부당하므로 대학 건물을 모두 고친다는 것입니다.
신문기사를 읽을 당시에, 그와 같은 조치를 취하는 이유가 장애인에 대한 시혜(施惠)가 아니라, 모든 학생은 똑 같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권리’라고 생각한다는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ㅇ 저의 외삼촌의 경우
예전에 부동산에 관한 글을 쓰면서 저의 외삼촌 얘기를 잠깐 소개했던 적이 있습니다. 다음과 같은 대목이었습니다.
06년 말에 저희 외삼촌이 미국에서 집을 사셨습니다. 미국에서 주택가격이 꺾이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입니다.
‘꿈에 그리던 집을 샀다’고 어찌나 좋아하시던지 저희 어머니께 집의 사진을 보내오셨습니다.
600평의 대지에 푸른 잔디밭이 펼쳐져 있고, 그림 같은 3층짜리 저택입니다. 투자 측면에서 보면 지금 많이 떨어졌으니 손해입니다만, 그 때 잘 사셨습니다. 외삼촌께서 지금 많이 아프십니다. 건강할 때 꿈에 그리던 집을 갖게 된 기쁨을 맛보셨으니 잘 되었다 싶습니다.
그 집은 주도(州都)에 있는 집인데, 가격은 4억 6천 정도됩니다. 중요한 점은 이 집을 소유하는 데 따르는 보유세가 700만원 정도 됩니다. 실효세율 1.52%입니다.
미국의 부자들은 비싼 집을 소유하고 있어서 부자가 아니라, 그 막대한 보유세를 매년 낼 능력이 있기 때문에 부자입니다. 그들은 그 정도의 보유세를 내는 것을 불평하지 않습니다. 재산을 소유하는 데 따른 당연한 세금으로 여깁니다.
저의 외삼촌은 작년에 암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결국 집값이 떨어져서 ‘투자’로 본다면 손해지만, 돌아가시기 전에 꿈에 그리던 집에 사는 즐거움을 누리셨으니 잘 된 것입니다. 결국 집은 사람 사는 곳이지 투자대상이 아니니까요.
그런데 저의 외삼촌은 한국에서 사회생활을 하다가 뒤늦게 미국으로 갔습니다. 한국을 떠난 이유는, 한국이라는 나라에 살기 싫다고 떠난 것입니다. 외삼촌은 원리원칙을 지키고자 하는 분이셨는데, 다니시던 곳의 주력 파벌에게 대들다가 쫓겨났고 그 뒤로 이런 나라에 살기 싫다고 떠나셨습니다.
미국에 도착해서 외삼촌이 어머니께 전해온 소식은 ‘천국에 온 것 같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곳에서는 자기 실력만큼 있는 그대로 인정받을 수 있다, 자기 실력만 있으면 되지 다른 것 일체 고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너무 행복하다고 했습니다.
ㅇ 버지니아 공대 총기 사건
되돌아보니 2007년의 일입니다. 벌써 시간이 꽤 흘렀군요. 당시 버지니아 공대에서 미국 역사상 최악의 총기난사 사건이 일어나 32명이나 사망했습니다. 그리고 범인은 한국계 미국인
이 사건에 대해서는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는 얘기도 있는 모양입니다만, 여기서는 차치하고,
당시 우리나라 언론에서는 이 사건 때문에 미국에서 우리나라에 대한 이미지가 크게 나빠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기사들이 많이 실렸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그 뒤 미국의 여론 동향에서는 그런 점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미국의 언론들은 한국의 그러한 우려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보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에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추모식이 열렸는데, 저는 이를 보도하는 TV방송을 보다가 충격을 받은 일이 있습니다.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추모객들이 희생자들의 이름이 새겨진 추모석 앞에 애도의 꽃다발을 수북이 쌓아 두었는데, 그 곁에는 범인으로 지목된
그리고 어느 미국인 대학생의 인터뷰 장면이 방송되었는데 그는
“미안하구나, 네가 도움이 필요한 상태였다는 것을 우리들 중 아무도 알지 못했구나...” 라며 눈물을 글썽거렸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듣고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느꼈습니다.
대학생이면 아직 나이가 그리 많이 든 것은 아닙니다. 인격이 원숙한 경지에 도달했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 미국인 대학생은 저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포용성과 인격의 경지를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에 저로서는 상당히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상으로 생각나는 여러 가지 일화들을 소개하는 것은, 지난 글,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에서 나타나는 미국의 모습이, 과장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느껴볼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오바마의 아버지는 오바마에게 버락(Barack)이라는 아프리카식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미국 땅에서는 아프리카식 이름을 가지고 있어도 성공에 전혀 걸림돌이 되지 않으리라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오바마의 부모님은 비록 가난했지만 오바마가 공부만 열심히 하면 최고의 학교에 진학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습니다. 미국에서는 부자가 아니어도 자기 능력을 맘껏 발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연설에서 소개한 아래와 같은 독립선언서 구절은 지금도 지켜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는 다음 사항들을 자명한 진리라고 본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 모든 인간은 창조주에 의해 몇 가지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받았는데, 생명과 자유, 행복 추구권이 그에 속한다.”
오바마 대통령이 아래와 같이 말할 때, “어느 아랍계 미국인 가족이 변호사의 도움이나 적법한 절차를 거침이 없이 체포 당한다면, 그 사건은 제 인권을 위협하는 것입니다.” 그 말은 과장이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미 국새에 새겨진 표현, E pluribus unum(여럿으로 이루어진 하나), 은 과장이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흑인의 미국, 백인의 미국, 라틴계의 미국, 아시아계의 미국은 따로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하나로 통합된 미국만이 존재할 뿐이라는 오바마의 말은 사실로 보입니다.
참 아이러니한 것은, 이상과 같이 오바마가 연설에서 언급한 내용들은 모두, 당연하게 그러해야 하는 내용입니다.
아시아에, 대한민국에 사는 한국인들도 최소한 교과서에서는 그리 배웁니다. 그런데 그 당연한 내용이 아시아에서는, 대한민국에서는 지켜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당연한 것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한국인들은 그냥 무덤덤하게 받아들일 뿐입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에서는 공장 노동자의 아들도 주어진 숙명처럼 보이는 것에 감히 대들어보고자 하는 희망을 가질 수 있다고 얘기합니다.
‘버락’이라는 우스꽝스러운 이름을 가진 어느 말라깽이 흑인 꼬마가 미국이 자신의 나라이기도 하다고 믿었고,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미국인들은 어려움에 직면해서도 희망을 가질 수 있고, 그 희망이 담대한 것(audacity)이라고 말합니다. 그것이 미국의 가장 굳건한 토대라고 말합니다.
2010년 대한민국의 꼬마들, 젊은이들이 갖는 희망은 담대한 것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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