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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 송이 장미 중 한 송이

노짱, 문프

by 21세기 나의조국 2010. 9. 5.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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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 송이 장미 중 한 송이
(서프라이즈 / 강남 아줌마 / 2010-09-03)

 


길을 나서는 새벽부터 찌는 듯한 날씨였고,
비행기 안에서 마지막으로 본 뉴스는 어느 장관 후보의 쪽방촌 투기라는
구역질 나는 기사와 4대강에 관한 피디수첩의 불방에 관한 인터뷰였다.
그리고 언제나 지구 건너편으로 건너가면 그렇듯,
몇 시간 전 떠나온 곳이 아득해지고,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잊게 된다.

 

옷차림부터 자유로운 이방인들의 모습에서 영혼조차 자유로움을 느끼면서,
그동안 크고 작게 마음을 괴롭혔던 일들이 사소하게 여겨지고
휴가를 즐기는 꼬부랑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보며,
노후에 연금받아 저 정도는 즐길 수 있어야지….
사람답게 사는 것에 대해 잠시 생각을 한다.

 

혼자 집을 지키는 딸아이와 강아지의 안부를 묻기 위한 매일 한 번의
문자 말고는 한국에 대해선 까맣게 잊었다.
유럽 어디에나 있는 아름다운 성들과 성당, 박물관,
독특한 양식의 가우디 건축물….
해외여행에는 무언가 축제적인 것이 있어야 한다고 하루키가 말했듯이,
우리의 ‘여생 중 가장 젊은 날의 여행’이 아닌가…. 즐기자….
먹고, 마시고, 구경하고… 그리고 마지막 날이었다.

 

아직도 국왕의 공식적인 행사 시 이용한다는 마드리드 왕궁의
상상하기 힘들 정도의 호화로움에 감탄만이 아닌,
어느 나라나 지배자는 찬란한 금잔에 백성의 피를 담아 마시는구나….
당연한 생각을 한순간,
가이드의 지나가는 말이 가슴을 쿵 내려앉게 했다.

 

‘아직까지 이 궁전을 찾은 대한민국 대통령은 고 노무현 대통령뿐입니다.’
어쩌자고 여기에서 또 이 이름을 듣는단 말인가….

 

임종을 지키지 못한 아버지를 드러나게 추억하는 일은 없었다.
돌아가셨다는 소식에도 ‘동물처럼 울고불고하는 품격 낮은’ 짓은 하지 않았다.
기쁜 감정과는 다르게 슬프거나 화나는 감정을 드러내는 것엔
왠지 촌스러운 감정 과잉처럼 보일 것 같은 부끄러움과
아예 그런 기억이 떠오르는 것조차 미리 차단해버리는 방어기제는 오래된 것이었다.
그래서 가까이 사는 사람에게조차 둔하고 냉정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무의식에 쌓인 슬픔은 반복되는 꿈으로
어둠 속에 눈을 뜨게 된다.

 

일 년이 지나도록, 추모전시회를 다녀온 일 빼놓고는
노 대통령을 추억하는 일은 없었다.
탄핵 때 촛불을 든 일, 뇌물 수사 때 검찰청사 앞을 지킨 일,
영결식 날 시청광장 한구석에서 숨죽여 운 일,
늦게야 봉하 마을에 간 일…
따지고 보면 노 대통령 개인을 좋아해서라기보다는 단지 불의에 항거하고,
거짓과 함정, 부정한 방법에 희생된 전직 대통령에게
이전에 아무런 힘도 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에서였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에 관해 이야기를 할 때 애써 화제에서 빠지고,
누군가와 비교하는 일도 하지 않으려 하면서,
그를 추억하거나, 그리워하는 일은 하지 않았다.
그리워하는 사람에 대한 모든 것을 모으고, 사진을 걸어놓고,
행사에 쫓아다니고 그에 관해 이야기하고….
어쩌면 그게 가장 슬픔을 잘 이겨내고 그를 사랑하는 방법일 텐데,
나에게는… 서투르고, 스스로에게 쑥스러운 일이라,
머릿속, 아니면 가슴속에 방 하나 만들어놓고, 기억을 봉인하는 방법을 취해왔다.

 

그러니, 한국에서 자나깨나 듣고 보는 노무현이라는 이름에 대해
철저하게 방어하다 갑자기 허를 찔린 셈이다.

 

가이드 말의 뉘앙스도 단순히 사실 관계를 말한 것처럼 들리지 않은 것은
이전에, 올가을쯤 스페인 국왕과 총리가 한국을 방문할 것이며, 이유는
스페인이 경제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라는 간단한 설명에 함축된 의미를 읽었기 때문이다.

 

이십 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드러낸 몇 년 전부터
어지러운 꿈에서 벗어났다.
당신은 아직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야 하는 것이 억울하셨겠지만,
막내까지 결혼해서 잘살고, 남은 식구들에게 빚이나 한을 남기지 않았으니,
그럭저럭 눈 못 감을 일은 없으리라… 생각하고 ‘싶다’.
아직까진 복이 많아 가까운 죽음을 아버지 외엔 겪은 일이 없어,
노 대통령의 서거는 내 인생에 있어서 대단히 큰 상실감과 충격을 준 사건이다.
그래서 더욱 그 슬픔을 방어하려 했고,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감히, 차마… 그의 생전을 돌이켜 떠올릴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제 이국의 땅에서 ‘고’ 노무현 대통령이라는 단어에
마치 아무 생각 없이 밤길을 걷다가 오래전 첫사랑과 골목길에서 마주친 것처럼
가슴이 철렁하고 머리가 멍한 상태가 되었다.

 

귀족의 상징이었던 검정색 옷을 입은 정치인과
정치인과 약간의 거리를 두었지만 옆에 바투 서 있는 종교인이
신음하는 민중의 반대편에 서 있는, 당시 시대상을 고발한 고야의 그림
‘엘 그란 까브론’
(까브론은 염소라는 뜻으로 우리나라의 개00, 쥐00보다 더한 욕으로 쓰인다는데
앞의 그란은 영어의 grand이니 ‘위대한 염소’라는 역설적인 제목이다)을
오전에 보고, 어찌 현재의 대한민국과 하나도 다름이 없는가….
생각을 하면서도 아무렇지 않았는데,
그의 눈길이 스쳐갔을 풍경 하나하나가 출렁이는 슬픔으로 사무쳤다.

 

어느새 서늘해진 서울로 돌아와서, 김태호 등의 사퇴와 피디수첩이 방영된 것을 알았다.
전직 대통령은 사실 아닌 음모로 목숨을 버렸는데,
박연차와 연관된 그가 어찌 구속 아닌, 자진 사퇴로 끝날 수 있는지,
분노로 가슴이 뜨거워진다.

 

우리가 악하다고, 나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불합리하고 설득불가인 꽉 막힌 사람, 자기만의 도덕관, 가치관, 사는 법으로
주변에 피해를 주는 부류이다.
미움과 함께 드는 생각은 그런 사람들에겐 동정과 치료가 필요해…. 이다.
하지만, 진정한 악한에겐 저항과 보복과 정의의 심판이 필요하다.
쪽방촌 투기라니, 자신이 수장으로 있는 기관에 특채한 딸이라니…
이건 불합리한 게 아니라, 선과 악 중 가장 끝에 선 악이고,
흑과 백중 가장 까만색이다.
드라마든, 영화이든 바야흐로 보복, 복수의 시대이긴 하지만,
이들에게야말로 정의의 이름으로 보복을 해야 할 때이다.
앙갚음이란 뜻의 보복이란 단어가 거슬린다면 심판쯤으로 하자.

 

무릇 그리움이란 순수하게 ‘보고 싶어 애타는 마음’이 되어야 하는데,
결국 분노의 감정으로 끝나고 만다.
그래서 민란을 꿈꾸게 되고
‘백만 송이 장미 중 한송이’가 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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