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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울어진 운동장, 노무현의 죽음 그리고 민란

노짱, 문프

by 21세기 나의조국 2010. 9. 10.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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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울어진 운동장, 노무현의 죽음 그리고 민란
(서프라이즈 / 워낭소리 / 2010-09-09)

 


노무현 대통령이 부엉이 바위에서 꽃처럼 지던 날, 난 떨어진 꽃잎들을 하나하나 주어 맞춰 나갔다. 그리곤 가슴 한복판에 핏빛 글자 하나를 굵게 아로새겼다.

 

‘응징!’

 

사람들은 말한다. 김대중 대통령이 노무현의 죽음에 충격받아 돌아가셨다고. 하지만 실은 그 반대다. 노무현은, 박정희가 쪼갰고 두 김씨가 분열함으로써 골이 더욱 깊어진 형극의 땅을 다시 복원하려다 희생당한 것이니, 정직하게 말하면 김대중 대통령이야말로 노무현 죽음의 원인이다. 따라서 노무현의 죽음은 정치적 순교다. 입은 비뚤어져도 말은 바로 하자.

 

응징, 하지만 현실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무엇보다 힘의 열세를 실감한다. 열정은 충일하나 수단이 변변찮다. ‘尙有十二(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배가 남아 있음)’이라고 외쳐보지만, 이내 내가 비범한 이순신 장군이 아님을 깨닫기를 수십 차례.

 

“바보야, 문제는 콘텐츠야!”
“콘텐츠 없으면 이길 수 없어!”

 

자칭 진보주의자들의 위 진단에 난 동의하지 않는다. 콘텐츠를 관철하기 이전에 무엇을 갖춰야 하는지에 대한 성찰이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콘텐츠를 가졌어도 이를 관철하기 위한 힘과 수단을 갖지 못하면 그것은 무지개에 불과하다. 노무현도 뒤늦게야 이 사실을 실감한 모양이다. <노무현 자서전, 운명이다>의 204-205쪽을 보자.

 

“대한민국 정치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하는 축구 경기와 비슷하다. 보수 세력은 위쪽에, 진보 세력은 아래쪽에서 뛴다. 진보 세력은 죽을 힘을 다해도 골을 넣기 힘들다. 보수 세력은 뻥 축구를 해도 쉽게 골을 넣는다. 나는 20년 정치 인생에서 이런 현실을 뼈저리게 체험했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지 않으면 앞으로 진보 세력이 승리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

 

거의 한 면을 가득 채운 이 내용은 다음과 같이 갈무리된다.

 

“보수와 진보의 격차는 <조선일보>와 <오마이뉴스>의 자산 규모 차이만큼이나 크다. 진보적인 대통령이라도 보수의 네트워크에 포위되어 고립당하면 힘을 쓰기 어렵다. 변명이 아니다. 김대중 대통령과 나는 그런 조건에서 대통령이 되었고 대통령직을 수행했다. 진보정당의 지지율이 낮은 것도 같은 원인 때문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는 데는 앞으로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이게 정확한 진단이다. 일의 시작은 심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는 데서부터이며, 콘텐츠는 그다음이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기울어진 운동장에 그대로 나서면서도 팀워크조차 맞추지 않는다는 사실! 국민들은 이 같은 민주개혁 세력의 철딱서니 없음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이대로 가다간 다 죽는다.”는 말은 여당에서도 한다. 그러나 여당의 말은 진보진영에 비하면 엄살이며 믿어서는 안 된다. 그들은 노 대통령의 말마따나 뻥 축구를 해도 이기게 되어 있다. 이 엄연한 사실을 직시하자.

 

‘유쾌한 100만 민란 프로젝트’는 현격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는 일이다. 그래야만 최소한 저들과 힘의 균형을 맞출 수 있지 않겠나. 지금까지 국민들은 야당들에 많은 기회를 주었다. 통합이든 연합이든 연대든 해 보라고 말이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도 해내지 못했고, 아까운 시간만 흘러간다. 도대체 어찌하겠다는 것인지.

 

‘민란은 실패할 것’이라고 초를 치는 자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이것 말고는 길이 없으니 어쩌겠는가. 그 절박함, 이것이야말로 길이요 희망이라고 본다.

 

노무현이란 꽃을 꺾은 자들을 응징하는 길이라면 참여당 당원도 될 수 있고 민란의 참여자도 될 수 있다. 내게 참여당원이나 민란 참여는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저들을 갈아 마시지 못하는 한, 내 편히 눈을 감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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