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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하 2010년 여름 2

노짱, 문프

by 21세기 나의조국 2010. 8. 5.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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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하 2010년 여름 2
(서프라이즈 / 개곰 / 2010-08-05)

 


새벽 여섯 시. 서울역에서 밀양행 기차에 오른다.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새벽같이 나오느라고 모자란 잠을 차창을 두드리는 빗소리에 가끔씩 깨면서 보충한다. 두 시간 남짓 지나니까 벌써 밀양역이다.

 

십오 분쯤 기다렸다가 무궁화 열차를 타고 아홉 시가 조금 넘어 진영역에 도착한다. 시간 여유도 있고 기왕이면 버스를 타고 봉하로 들어가고 싶었지만 버스가 자주 없는 모양이다. 택시를 타니까 겨우 십 분 만에 봉하다.

 

 

아침이라 그런지 주말인데도 사람은 별로 많지 않지만 분위기는 어수선하다. 숙연하기를 바라는 나그네의 과잉 기대 탓이리라. 작은 마을인데도 방향 감각이 안 잡혀서 여기저기 길을 잘못 든다. 덕분에 마을 구석구석을 본다.

 

마을의 한 3분의 1은 사람이 안 사는 폐가 같다. 여기가 대통령을 낳았다는 마을인가? 이런 깡촌이 아직도 있단 말인가? 기가 막힌다. 노 대통령 재임 시에 봉하 마을 사람들은 고향을 방치한 대통령을 아마 원망했으리라.

 

귀향 뒤에도 하루에도 몇 번씩 나와서 방문객들에게 덕담을 들려주던 자리 밑에는 기념품 가게가 들어섰고 바로 옆에는 화장실이 있다. 대통령의 사저는 바로 그 위에 있다. 화장실을 꼭 그 자리에 지어야 한단 말인가. 서럽고 야속하다.

 

참배를 하고 봉화산을 오른다. 높지는 않지만 산세가 가팔라 금세 숨이 넘어간다. 목이 마르다. 중간에 정토원이 있으니 거기서 설마 생수 정도는 팔겠지. 생수를 파는 자판기는 당연히 있었고 쉼터라는 이름이 붙은 작은 기념품점으로 들어가니 냉방이 시원하고 냉차까지 공짜다.

 

꿀꺽꿀꺽 한 대여섯 잔을 그 자리에서 마셨다. 고마운 마음도 있고 기념품을 고른다. 이것저것 사다 보니 현금이 얼마 안 남았다. 빛깔이 고운 옥색 개량 한복을 사고 싶은데 고민이다. 신용카드 결제기는 없단다. 아래 봉하 마을에서도 신용카드 결제가 안 되느냐고 물어본다. 봉하 마을 기념품점에서 사야 할 물건들이 있는데 만약 봉하에서 카드 결제가 안 될 경우 현금으로 사야 하니까 정토원에서 물건 사는 것은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랬더니 주인은 일단 물건을 가져가고 나중에 계좌로 송금을 해달란다. 굳이 그럴 필요까지 있을까 싶었지만 그곳이 아니면 영영 살 수가 없을 거 같아서 염치불구하고 물건과 계좌번호가 적힌 명함을 받아들고 쉼터를 나선다.

 

저 사람은 뭘 믿고 나 같은 뜨내기한테 외상을 주는 걸까? 나를 믿는 것이 아니라 노 대통령을 따르는 사람의 마음을 믿는 것이겠지. 뜨내기손님들을 상대하는 관광지 같은 분위기가 풍기던 저 아래 봉하 마을에서 느꼈던 불편함이 정토원에서 말끔히 가신다. 그래서 정토원인가.

 

봉화산 꼭대기까지 올라갔다가 뒤편으로 에둘러서 다시 봉하로 내려온다. 봉하의 들판에는 정말 오리떼가 있다. 농사꾼은 보이지 않고 오리들뿐이다. 정말로 오리가 농사를 짓는다. 봉하의 들판에는 오리 말고도 다른 새가 있다. 새하얀 학들이 들판 곳곳에 점점이 흩어져 있다.

 

어렸을 때 창경원에서 홍학은 본 적이 있어도, 중학교 때인가 국어 교과서에서 학마을 사람들인가 하는 소설에서 글로만 보았을 뿐이지 학을 내 눈으로 본 적은 없다. 봉하는 산자수명한 전원이 아니다. 봉하 바로 옆에는 본산이라는 산업공단이 있다.

 

거기서 화포천으로 방류되는 폐수로 썩어나가던 봉하의 들판이 노무현 대통령 귀향 일 년 만에 학이 찾아오는 청정 들판으로 바뀌었다. 저녁에 서울로 올라오면서 차창 밖을 뚫어져라 살폈지만 학이 있는 들판은 단 한 곳도 없었다. 한 사람은 위대하다.

 

점심으로 메밀묵과 봉하 막걸리를 먹는다. 균이 살아 있는 봉하 막걸리는 영국에서 가끔씩 마시던 살균 막걸리와는 비교가 안 된다. 주인아주머니의 인상이 좋아서 들어간 집이었는데 주인아저씨는 별로 인상이 안 좋다. 부부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점심을 먹다가 무슨 곡절이 있는지는 몰라도 남자의 언성이 높아진다.

 

여자는 여자답게 처신해야 한다고 남자가 나무란다. 여자는 몇 마디 대거리를 할 듯하다가 만다. 식사를 마친 남자는 선풍기 바람을 맞으면서 내 옆에서 꾸벅꾸벅 졸고 여자는 설거지를 하고 손님에게 냉커피를 타준다. 나밖에 모르는 이런 봉하의 식당 주인을 노 대통령은 국민으로 떠받들었고 그런 사람까지 아우르고 달래고 부추기면서 봉하의 들녘을 학이 노니는 땅으로 만들었다.

 

막걸리를 한 통 비웠는데도 아직 두 시가 안 됐다. 진영에서 기차가 다섯 시에 출발하니까 시간이 많이 남는다. 날이 덥지만 진영까지 걸어가 보기로 한다. 나이가 드니까 걷고 싶을 때가 잦다. 봉하와 진영 사이에 있는 공단은 생각보다 규모가 컸다.

 

봉하는 농촌도 아니고 도시도 아닌 어중간한 곳에 자리 잡은 깡촌이었다. 한 시간쯤 걸어서 진영에 닿는다. 진영은 그저 읍내 정도려니 생각했는데 어엿한 도시였다. 삐죽삐죽 솟아오른 고층 아파트가 흉물스럽다는 느낌이 별로 들지 않을 정도로 버젓한 도시였다.

 

버스터미널과 기차역 사이의 진영 번화가를 왔다 갔다 걷는다. 철물점, 종묘상, 참기름집처럼 대도시에서 여간해서는 보기 힘든 정겨운 가게들도 있지만 치킨점, 의류점, 편의점 등 대부분은 대도시에서 볼 수 있는 가게다. 약국에서 파스를 산다.

 

할아버지 약사가 어디 다녀오느냐고 묻는다. 봉하 마을에 다녀오는 길입니다. 할아버지가 드링크를 내민다. 됐습니다. 마셔요. 괜찮은데요. 마시라니까. 노 대통령에 대한 연민의 마음이 이곳 사람들에게서 느껴진다.

 

그러고 보니 아침에 탔던 택시 기사도 처음에는 침묵을 지키더니 조금 시간이 지나니까 이쪽에서 먼저 말을 걸지 않았는데도, 우리는 불의를 보면 못 참는 사람들이라며 말투가 약간 격해졌었다. 진영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뜬금없이 든다. 덜 외로울 것 같다.

 

기차역으로 걸어가는데 저 앞에서 여학생 둘이 걷다가 갈라선다. 여학생 하나가 친구에게 언제 다시 좋은 날 같이 영화 또 보자고 말한다. 목소리에서 가난이 느껴진다. 단짝끼리 영화를 보고 오는 모양이다. 여학생이 올라가는 동네는 산동네다.

 

진영에도 산동네가 있을 줄은 몰랐다. 무지한 내 고정관념 속에서 진영은 다 산동네였다. 하지만 산동네 안에도 또 산동네가 있었다. 그리로 터벅터벅 걸어 올라가는 현실의 소녀가 있었다.

 

밤늦게 집으로 돌아와서 다시 막걸리를 마신다. 봉하 정토원 주인이 한번 읽어보라고 준 정토원 선진규 법사의 얇은 불교 강해서를 안주 삼아 읽는다. 여느 때 같았으면 그냥 넘어갔을 글귀들이 봉하를 다녀와서인지 하나같이 예사롭지 않다. 한 글자 한 글자가 가슴을 후빈다.

 

모든 사람에게 불성이 있음을 믿어야 한다는 것이 부처의 가장 중요한 가르침이었단다. 부처는 전도를 떠나려는 제자에게 만약 사람들이 너를 욕하면 어떻게 하겠느냐, 때리면 어떻게 하겠느냐, 심지어 죽이겠다고 나오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꼬치꼬치 물었단다.

 

그리고 제자의 입에서 설령 사람들 손에 죽더라도 나의 육신이 썩어서 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깨끗하게 만들 수만 있다면 죽음을 기꺼이 감내할 것이라는 답변을 듣고서야 전도를 떠나도 좋다고 허락했단다.

 

죽음을 감내하기는커녕, 나는 아내를 구박하던 봉하 식당의 주인 남자에게 불성이 있다는 믿음조차 가질 수가 없을 만큼 남에 대한 불신이 크건만, 노공은 그렇게 괄시당하고 무시당하면서도 끝까지 남을 탓하지 않았다. 밭을 탓하지 않았다.

 

그리고 농약과 폐수로 찌든 땅을 스스로 땀 흘려 학이 머무는 정토로 묵묵히 바꿔나갔다. 그렇지만 모든 인간에게 불성이 있다는 믿음을 나는 도저히 가질 수가 없다. 내게는 불성이 없다. 일신의 안위가 아니라 대의를 위해 평생을 바친 사람을 부엉이바위로 떠밀었던 자들을 용서할 만한 불성이 없다. 그런 불성은 갖고 싶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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