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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의 선물

노짱, 문프

by 21세기 나의조국 2010. 5. 18.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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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의 선물
(서프라이즈 / 개곰 / 2010-05-17)

 


1997년 대선을 한 달 앞두고 김대중 후보를 돕기 위해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하려던 노무현에게 참모들은, 이제 부산에서는 호남 앞잡이로 낙인 찍혀 정치적 생존 가능성이 없으니 서울의 당선 가능성이 높은 지역구를 내놓으라는 조건을 내걸라고 조언했지만, 노무현은 거부했다.

 

그렇지 않아도 호남당으로 낙인찍혔던 터라 노무현 같은 중량감 있는 영남 출신 정치인을 영입하기 위해서라면 국민회의는 서울의 지역구 국회의원이 아니라 서울 시장 후보 자리라도 두말하지 않고 내주마고 약속했겠지만, 노무현은 나라의 명운이 걸린 대선을 코앞에 두고 그런 개인적 요구를 한다는 것이 “망신스럽다”는 이유로 참모들의 간청을 뿌리쳤다.

 

김대중은 기적적으로 당선되었고 노무현도 이명박이 선거법 위반으로 국회의원 자격을 박탈당하면서 1998년 7월에 열린 보궐선거에서 여유 있게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그러나 겨우 6개월이 지난 이듬해 2월 노무현은 다음 총선에서는 서울이 아니라 부산에서 출마한다고 밝혔다.

 

정권을 빼앗긴 이회창이 경상도를 돌면서 대규모 집회를 열면서 김대중 대통령을 비난하면서 지역 대결 구도를 증폭시키던 상황이었다. “호남이 다 해먹는다”면서 “영남의 공장을 뜯어 전라도로 옮기고 중장비도 다 호남으로 갔다”는 말을 조직적으로 퍼뜨리는 세력 때문에 영남 여론은 최악이었다.

 

노무현은 호남 정권이라는 비아냥을 듣던 국민의 정부를 전국 정당으로 뒷받침해야 한다는 절박감에서 안락한 서울 지역구를 버리고 황량한 부산 지역구로 참모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내려갔다. 그리고 떨어졌다. 언론에서는 노무현이 호남과의 세력 다툼에서 밀려서 부산으로 내려갔다고 갈겨댔지만, 노무현이 부산으로 내려가겠다고 하자 호남 출신의 당 지도부까지 깜짝 놀랐다. 노무현의 부산 출마는 스스로 내린 결정이었다.

 

노무현의 전쟁 - 2000년 2월 부산 북·강서 국회의원 선거 공터연설

 

노무현의 결정을 좌우한 것은 사익이 아니라 공익이었다. 개인의 출세욕이 아니라 역사에 대한 사명감이었다. 노무현은 입신양명을 위해서가 아니라 정의가 번번이 불의에 짓밟힌 오욕의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서 정치에 뛰어든 사람이었기에 역사적 사명이나 올바름보다는 안정된 정치적 입지를 중심에 놓고 생각한 참모들의 건의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보통 정치인은 참모에게 자신에 대한 절대적 충성을 요구했지만, 노무현은 달랐다. 노무현도 참모에게 충성을 요구하긴 했지만, 노무현이 요구한 충성의 대상은 노무현이라는 주군이 아니라 역사라는 가치였다. 노무현에게 참모는 역사의 숙제를 회피하지 않고, 남과 후손에게 떠넘기지 않고 자신과 손잡고 묵묵히 처리해나가는 동지였다.

 

정치인의 참모는 자기가 섬기는 주군보다 자기가 똑똑하다고 판단력도 뛰어나다고 대체로 생각한다. 이렇게 저렇게 해야 한다고 훈수를 두는 것을 자신의 직분으로 생각한다. 반칙을 해서라도 주군을 안정된 정치적 반석 위에 올려놓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노무현이 참모에게 기대한 것은 모사꾼이 아니었기에 그런 참모는 노무현 옆에 붙어 있을 수가 없었다.

 

한국 정치에서 대부분의 정치인을 망쳐놓은 것은 그런 참모였다. 멀쩡했던 사람이 정치에 발을 놓으면 자기 분수를 모르고 과욕을 부리다가 거의 예외 없이 망가진 것도 일차적으로는 본인에게 자신에게 역사가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역사 감각이 없어서였겠지만, 그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참모의 허황된 부추김을 받고 허파에 바람이 들어갔기 때문이었다.

 

물론 주군이 망가지면 참모는 더 나은 보수와 좋은 자리를 찾아 훌쩍 떠나서는 또 다른 주군을 망가뜨리거나 이번에는 본인이 주군이 되었다가 자기를 닮은 참모의 부추김에 잔뜩 허파에 바람을 넣었다가 터지는 희비극을 되밟았다.

 

노무현의 참모는 달랐다. 역사에 대한 충성심을 한시도 잊지 않았던 노무현은 중요한 판단을 내릴 때 참모에게 휘둘리지 않고 언제나 중심을 잘 잡았다. 그러면서 주군에게 충성하는 참모가 아니라 역사에 충성하는 참모를 키워나갔다. 역사에 충성하는 참모는 때가 되면 본인 스스로 역사에 충성하는 지도자가 되게 마련이었다. 다른 정치인은 참모의 영혼을 빨아먹었지만, 노무현은 참모의 영혼을 바꾸어놓았다.

 

노무현의 참모였던 이병완이 6월 2일에 열리는 지방 총선에서 광주시의회 의원으로 출마한다. 일국의 대통령 비서실장이었던 사람이 풀뿌리 민주주의의 가장 밑바닥인 기초의원 후보로 나온 것이다. 물론 노무현이 아직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설 엄두조차 내지 못하던 시절이었던 2001년 노무현의 참모가 되어 국민경선안을 관철시킨 이병완 개인의 남다른 점이 이런 남다른 결정을 내리는 데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하지만, 노무현의 참모를 제외하고 한국과 외국을 통틀어서 전직 대통령 비서실장이 가장 끗발이 적은 기초의원 후보로 나선 예가 과연 있을까? 이병완의 기초의원 후보 출마는 노무현의 참모를 지내면서 노무현에게 영혼이 물들어 역사에 충성하는 참모, 아니, 역사에 충성하는 지도자로 거듭나지 않은 사람이 아니고서는 내릴 수 없는 결심이었다.

 

노무현은 참모의 영혼만 바꾸어놓지 않았다. 노무현은 참모에게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값진 국정 수행 경험을 안겨주었다. 이병완은 비서실장으로 대통령을 보필하면서 한 나라의 국정을 총괄하는 경험을 가진 사람이다. 대통령이 파병부터 무역 협상, 남북 문제, 고용 문제, 복지 문제에 걸쳐 어떻게 고민하고 어떻게 결정을 내렸는지를 지켜본 사람이다.

 

비록 대학은 안 나왔지만, 자력으로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정도의 집중력과 분석력을 가진 한국 최고의 지식인 대통령이 오직 역사에 충성하는 마음으로 사익을 누르고 공익을 섬기면서 어떻게 하나의 문제를 깊고 넓게 문제를 뿌리까지 들여다보면서 풀어나가는지를 몸으로 익힌 사람이다. 지금 대통령을 해도 얼마든지 해낼 만한 식견과 판단력을 갖춘 사람이다. 그런 사람을 기초의원 후보로 낸 당이 국민참여당이다.

 

이병완만이 아니다. 노무현은 유시민, 천호선, 안희정, 김창호, 이백만 등 노무현과 동지가 되어 역사에 충성하면서 공익만을 생각하면서 국정을 운영해본 지도자를 수없이 키워놓고 갔다. 이들이 노무현이 우리에게 남겨준 가장 값진 선물이다. 지도자가 된 이병완, 유시민, 천호선, 안희정, 김창호, 이백만은 이번에는 자신의 참모를 역사에 충성하는 지도자로 바꾸어놓을 것이다. 그렇게 한 걸음 두 걸음 내딛으면서, 노무현의 영혼은 썩은 한국을 기어이 바꾸어놓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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