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립다! 노무현.
(서프라이즈 / 初雪 / 2010-04-03)
君子之道 譬如行遠必自邇 譬如登高必自卑 군자의 도는, 멀리 가려면 반드시 가까운 곳에서부터 시작하고, 높이 올라가려면 반드시 낮은 곳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
난세로다. 하염없는 난세로다.
그래도 계절은 변함없이 찾아오고 싹을 틔우며 기지개를 켠다.
대한의 자랑스러운 장병들이 일주일 동안 생사를 모르게 수심에 갇혀, 유치 찬란한 똠방 각하의 몸짓 아래 거대한 카르텔 되어 그 어느 정황도 알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같잖은 떡검 나리들의 눈에 빤히 보이는 표적수사가, 칠흑 같은 어둠의 시절 양심으로 살아오며 버텨온 전직 참여정부의 총리에게 징역 5년이라는 충격적인 구형을 내렸다.
이미 혀는 딱딱하게 굳어 있고, 중용은 죽어버렸다. 무엇으로 어떻게 설명할 수 없는 이 희대의 곡점, 말을 잃어버리게 하는 통곡, 그래 내 이런 꼬라지 나올 줄 알았다. 이제는 누구를 탓하려는 마음도 없다. 말귀가 들어 먹는 세상이 아니니 더 이상 뭘 어쩌랴?
야권이라고 지랄 자빠져 정치인생 철새 길 따라 설렁탕 한 그릇 막걸리 한 사발, 그래 민주당 니들 그딴식으로 꼴 같지 않게 노닐어 봐라. 뭐 김대중의 법통을 이어왔다고? 그래 놓고서 한평생, 그 사람 인생길의 적막을 휘갈긴 더러운 문화권력 조선일보 돌잔치나 축하해주려는 게 니들이 말하는 상식이며 법도인가?
인생은 하염없이 그리운 것.
봄 밤, 이유없이 깨어져 오는 풀 벌레 소리에 천만인의 사상과 천만인의 아우성 속으로 진지하게 환기되어올 수 있는…….
그래 맞다. 어쩌면 처연함을 알아가는 것이다.
내가 지금으로서 서 있는 종착, 한 공장의 부지 속 따사로운 볕이 내리는 곳에 땀내 묻은 내 작업화를 말리며, 이미 봄은 왔는데 덩그러니 떨어진 컨테이너 박스에 기름때 묻은 사내놈들 열댓 명 모여 이유 없도록 숨 막혔던 오늘 하루.
담배 냄새, 땀 냄새, 時代를 잃어 찌들어버린 인생 염증 속으로, 징그럽게 낡아 몇 년이 된 지도 도통 모르는 책. 이미 겉표지는 찢겼고, 침 자국 더덕더덕…….
몇 장이 간극으로 붙어 무엇을 어떻게 넘겨야 할지 모르던 자그마한 교양서.
어쩌다 한 구절 깊이 박히더라. 멀리 가려면 가까운 곳에서부터 시작하고, 높이 올라가려면 낮은 곳으로부터 시작하라던…….
누군가가 문득 떠오른다.
그렇게나 멀리 나아가고 싶어 자기가 태어나며 살았던 고향, 그 척박한 가까운 곳에 피 토하며 절규했었는지를……. 진정 누구보다 높이 올라갔던 그 사람이 책값을 벌기 위해 울산땅에 올라가 가난한 노동자의 설움을 겪으며 그저 치료비나 걱정해야 했었던 무지몽매한 노동자로부터 꿈을 키워 가야 했었는지를…….
한없이 낮았고 한없이 가까운 곳으로부터 자신을 산화하던, 어쩌면 그리하여 가장 멀리 날았고 또 가장 높이 올라갔던 한 사람. 그를 따라갔던 내 족적이 그저 내 의지였노라 말하기에는, 내 살아온 인생이 짧고 비루하여 고백이 너무 서투르다. 어떠한 이끌림이었는지 그의 천둥 같던 음성은 나에게 또렷이 들려왔었고, 또 그의 울분은 내 심장을 고동치게 하였다.
도저히 참지 못해 담배 한 개비 불을 붙여, 그 컨테이너에서 빠져나와 우울한 지금의 내 봄날을 말없이 기려본다. 아지랑이를 잘못 본 것일까? 차라리 내 눈이 어지러워 눈시울이 붉어졌더라면…….
그립다. 아! 미치도록 너무 그립다.
노 무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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