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지난 글,
를 통하여, 자본주의 역사에서 경제는 항상 자본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흘러왔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경제의 흐름이 인플레이션으로 진행되는 것이 자본에 불리하고 개인에게 유리한 상태에서는 인플레이션으로 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철저하게 디플레이션이 진행되어 잔뜩 부채를 짊어지고 투자에 나섰던 개인들을 모두 파산시켰습니다.
다음은 1867년부터 1960년까지 미국 자본주의 역사의 흐름를 보여주는 그래프입니다.
밀턴 프리드먼의 전설적인 저서, ‘미국 통화사 1867-1960 A Monetary History of the United States 1867-1960’에서 스캔한 것입니다. (참고로 이 책이 아직도 국내에 번역소개가 안되어 있다는 것은, 우리나라 금융계와 경제학계의 수준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글씨가 작아 보기가 편하지 않으실 텐데, 맨 아래쪽에 있는 그래프가 도매물가지수이니 집중적으로 봐주시기 바랍니다. 이를 통해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 추세를 읽을 수 있습니다.(그래프가 길어서 둘로 나누었습니다. 위 아래 그래프는 시기가 이어지는 것입니다)
우선 1867년부터 1879년까지 장기간 디플레이션이 진행되었다는 점이 눈에 띕니다. 프리드먼은 이 기간을 ‘그린백 시대’라고 명명합니다. 일전에 통화시스템에 관한 일련의 글을 쓰면서 그린백 시스템에 대해서 소개해드렸습니다. 통화시스템을 금본위제의 구속에서 벗어나 그린백 시스템으로 운용하자는 그린백 운동이 벌어졌던 시기가 바로 이 때입니다.
당시 개인들은 부채가 많았고 자본은 부채가 적었습니다.
개인들이 부채가 많아진 이유는 우선 1861년부터 1865년까지 벌어졌던 남북전쟁 때문입니다. 내전으로 인한 참상도 겪었지만, 당시는 미국 농부들에게는 황금기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당대 미국 농부들의 가장 주된 농작물은 면화인데, 전쟁이 벌어지면 군복 수요 등으로 해서 면화의 가격이 크게 오르게 됩니다. 또 전쟁은 인플레이션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국 이 기간 동안 면화가격은 폭등했고, 농부들은 너도나도 담보대출을 받아 농지의 추가구입에 나섰습니다.
당대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우선 당시 가장 큰 산업은 ‘공업’이 아니라 ‘농업’이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합니다. 즉 당시의 ‘농부’들은 바로 오늘날 산업국가의 ‘중산층’에 해당합니다. 당시는 중산층들이 담보대출로 잔뜩 부동산을 끌어안은 상태였습니다.
위 그래프에서 회색부분은 경기침체기를 나타내는데, 1873년부터 1879년까지 아주 긴 침체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로 1873년 공황입니다. 이 시기는 19세기를 통틀어 가장 심각한 공황이었고, 1930년대의 대공황과 거의 맞먹는 타격을 가져왔던 큰 공황입니다.
이 공황의 원인은 2차 철도버블 때문이었습니다. 즉 공황 직전에 철도버블이라고 하는 큰 버블이 존재했습니다. 이 버블 때문에 많은 눈먼 돈들이 투기에 가세했습니다. 그 결과 역시 개인들이 부채가 많았고, 버블에 편승한 주식 발행으로 자본을 조달한 기업들은 부채비율이 아주 낮은 상태였습니다.
당시 맹렬하게 전개되었던 그린백 운동은 자본에 비해 더 많은 부채를 짊어지고 있던 농부들과 소상공인들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었습니다. 금본위제의 제한을 벗어나 그린백 지폐를 더 많이 발행해달라, 인플레이션을 만들어서 우리의 부채부담을 낮추어달라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상태에서 인플레이션이 진행되면 개인들은 큰 이득을 보고 자본들은 타격을 입게 됩니다. 역사의 진행은 위 그래프가 보여주듯이 인플레이션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30년대 대공황에 버금가는 철저한 디플레이션이 진행되어 개인들을 파산시켰습니다.
그래프를 보면 그린백 시대 이후 3년 정도의 반등기를 거쳐 다시 1882년부터 1897년까지 기나긴 디플레이션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 기간 동안에는 그린백 운동의 뒤를 이어 ‘은화 자유주조 운동’이 벌어집니다. 역시 더 많은 통화를 발행해서 인플레이션을 만들어달라는 것입니다. 아직도 기업에 비해 빚이 많은 상태에 놓여 있던 농부들과 소상공인들을 기반으로 하는 것입니다.
기나 긴 디플레이션으로 결국 이들은 모두 파산하고 말았습니다. 매우 흥미롭게도 이들이 모두 파산하고 나니 이들이 그토록 원하던 인플레이션이 찾아옵니다. 1897년부터 1915년까지 꾸준하게 물가가 올라가기 시작합니다.
위 두번째 그래프를 보면, 1915년부터 급격한 인플레이션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1차 대전을 배경으로 하는 것입니다.
전시에 흔하게 발생하는 인플레이션에 더해 곡물과 면화의 가격이 치솟으면서 농부들은 다시 한번 너도나도 담보대출을 받아 농지의 구입에 나섭니다. 다시 한번 자본에 비해 개인들의 부채가 더 많아진 상황이 조성되었습니다.
그 결과가 어땠는지는 그래프가 보여줍니다. 결국 1920년에 들어서자 일대 붕괴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당시 미국에서는 일대 ‘농지 파동’이 벌어집니다. 농지의 가격이 대폭락하면서 담보대출을 받아 농지 구입에 나섰던 농부들은 모두 파산했습니다.
그 다음은 1929년말부터 1933년 초까지 회색빛을 드리우고 있는 대공황 기간입니다. 도매물가 지수로는 잘 안나타나는데, 그 직전까지 미국 주식시장은 장기간 상승추세를 지속했고 그 결과 미국 중산층들이 너도나도 빚을 내어 주식투자에 나섭니다. 다시 한번 자본에 비해 개인들의 부채가 더 많아진 상황이 조성되었습니다. 그 결과가 대공황입니다.
그래프가 보여주는 1867년부터 1960년까지 기간 동안 개인들이 자본에 비해 부채가 더 많았던 시기가 이상에서 설명드린 세 번입니다. 그 외에는 없습니다. 산업활동을 벌이는 자본에 비해 개인들이 부채가 더 많다는 것은 원래 비정상적인 것이지요.
세 번 모두 예외없이 디플레이션이 찾아왔습니다. 빚을 끌어안은 개인들과 소상공인들이 모두 파산했습니다. 이들이 모두 파산하고 나서 인플레이션이 찾아왔지요.
이를 두고 음모론이 나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 보면 시장의 원리이기도 합니다. 시장을 통해 절대 다수가 부자가 될 수는 없지요.
시장에서 부자가 되려면 다른 사람에게 ‘팔아서’ 부자가 되는 것입니다. 선도적으로 매입한 소수가 다수에게 파는 동안 가격이 오르는 것이지, 절대 다수가 매입한 상태가 되면 ‘팔 수 있는 대상’이 없습니다. 그럼 가격이 오를 수 없겠지요.
이 상태에서 가격이 오를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은 ‘하이퍼 인플레이션’입니다. 하이퍼 인플레가 오면 모든 가격이 다 오르겠지만, 역시 이를 통해 부자가 될 수는 없습니다. 인플레이션의 역설이 발생하는 것이지요. 결국 시장을 통해 절대 다수가 부자가 될 수는 없습니다.
다시한 번 말씀드리지만, 산업활동을 벌이는 자본에 비해 개인들이 부채가 더 많다는 것은 원래 비정상적인 상태입니다.
그래서 지난 100년의 기록을 보여주는 위 그래프에서 이와 같은 상태는 단 세번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럼 그래프를 벗어나는 1960년 이후의 상황은 어떨까요?
자본에 비해 개인들의 부채가 더 많아진 상황이 딱 한 번 조성되었습니다. 바로 ‘지금’입니다.
2010년의 한국인들은 역사를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2010년의 한국인들이 처한 상황은 매우 범상치 않은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중산층들은 너도나도 담보대출을 받아 아파트를 매입했습니다. 아파트는 계속 오를 수 밖에 없다는 ‘불패 신화’를 갖고 있습니다. ‘신화’는 위험한 것입니다.
2010년 한국인들이 처한 경제상황은 지난 150년간의 자본주의 역사에서 몇 번 없었던 특수상황이라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원래 경제가 늘상 그런 상태에 놓여있던 것이 전혀 아닙니다.
다음은 최근 5년간 미국의 본원통화 동향을 보여주는 차트입니다.
‘비정통적인 양적완화 정책’이라고 불리우는 통화정책의 동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본원통화 동향을 장기차트에서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1920년 이전부터 시작되는 장기차트를 보시면 또 다른 느낌이 있을 것입니다. 지금 세계인들이 처한 경제상황은 통상적인 ‘침체기’ 정도가 아닌 것입니다. 대공황을 포함한 1920년 이래 유례가 없는 상황에 처해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합니다.
다음은 M2 동향입니다.
다음은 M3 동향입니다.
보다 범위가 넓은 M3 동향이 더욱 뚜렷한 추세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최근 상황을 보여주는 그래프의 끝부분을 보면 M3의 절대량이 줄어들어 수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프가 보여주는 지난 50년간 유례가 없던 일입니다.
미국 FRB는 2006년 초 M3 동향 발표를 중단했습니다. M3 동향 집계가 비용만 발생시키고 별 의미가 없다며... 하지만 M3 구성요소들은 여전히 여기저기 모두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통합 집계하는 것이 그다지 어렵거나 비용이 많이 드는 일이 아니라서 당시 모두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미국의 사설기관들은 독자적으로 M3를 집계합니다. 그 구성요소들은 모두 공공기관들이 발표하는 것들이므로, 사설기관에서 단순 합산을 더한 것일 뿐 그 정확성을 의심할 여지는 전혀 없습니다.
위 M3 동향은 2006년까지 FRB가 발표한 수치에 www.shadowstats.com에서 집계한 그 이후의 수치를 더하여 제가 그린 것입니다. 참고로 M3보다 더욱 넓은 미국 신용시장 전체의 동향을 분석해보아도 동일한 추세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음은 도매물가 동향입니다.
프리드먼의 그래프가 보여주는 과거의 도매물가 동향과 비교해보면 ‘지금’이 얼마나 불안정한 상황인지 알 수 있습니다. 다음의 소매물가 동향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음은 소비자 신용 동향을 보여줍니다.
1940년대 이래의 소비자 신용 동향을 보면 현재의 신용 감소 추세가 유례가 없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아래의 기사를 보면 소비자 신용 동향의 감소추세가 더욱 강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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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들 부채 10개월 연속 감소 이데일리
미국 소비자들의 부채가 지난해 11월 큰 폭으로 줄어들면서 10개월 연속 감소세를 이어간 것으로 나타났다. 높은 실업률과 까다로워진 은행 대출 요건으로 인해 부채가 감소한 것으로 분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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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경제지표들이 보여주고 있는 명백한 사실은 ‘지금’이라고 하는 시기는 30년대 대공황이래 유례가 없는 시기라는 것입니다. 통상의 ‘침체기’ 정도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대중매체들이 경제위기가 다 극복된 듯이 바람을 잡고 있습니다만 그렇게 간단히 극복될 상황이 아닌 것입니다.
지금은 지난 150년간의 자본주의 역사에서 네 번째 맞이하는 위험한 시기입니다.
‘자본주의’라는 단어를 가볍게 여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과 같은 시기가 과거에 세 번 있었습니다. 그 세 번의 기간 동안 ‘자본주의’가 어떻게 움직여왔는지 저의 글들(이 글의 서두에 링크를 걸어드린 두 글과 이번 글)을 통해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미국이 공황으로 가는 것을 방치할 리가 없다, 는 통념을 자주 봅니다. 이 통념이 올바른 것인가, 이 통념은 어떤 객관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는가, 판단해보시기 바랍니다. 역사가 들려주는 교훈을 가볍게 여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요 며칠 새 환투기세력들의 준동으로 환율이 많이 하락했습니다. 풀뿌리 외환보유고를 쌓으신 분들도 걱정이 되실 듯 합니다.
외환시장 분석 글도 별도로 올릴 것입니다만, 지금처럼 급락하는 상황에서는 분석 글이 그다지 위안(?)이 되지 못할 듯 하다 싶었습니다. 그동안 환율이 올라갈 수 밖에 없다는 분석 내용은 여러 번 글로 올려왔기 때문입니다.
그동안의 분석을 뒤집어야 할 사항은 아무 것도 없다고 봅니다. 환투기 세력들의 준동일 뿐입니다. 그것도 매우 잔인한 의도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지금 외환시장 상황은 누구나가 알고 있듯이 short으로 쏠려 있는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환투기 세력들이 마음대로 끌어내릴 정도로 우리 외환시장은 ‘천수답’이요 저들에게는 ‘봉’입니다. 이렇게 끌어내리고 나면 마지막 남아있던 long마저 모두 털어내겠지요. 그리고 나서 끌어올린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그것이 걱정될 뿐입니다. 보다 구체적인 외환시장 분석은 다음 글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큰 폭으로 하락하는 환율에 스트레스가 생기시는 분들은 제가 보여드린 자본주의의 역사를 차분하게 되짚어 보시는 것이 더 나을 듯 싶습니다.
지금은 수익이 아니라 생존을 목표로 해야 하는 위험한 시기입니다. 인플레이션 문제와 환율 문제는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생존을 목표로 하는 분들은 다시 한 번 ‘보험의 원리’에 대해 생각해보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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