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엇이 노무현,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나 >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 없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 밖에 없다.
건강이 좋지 않아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화장해라.
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오래된 생각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런 글을 남기고 죽음을 선택했다. 청천벽력과 같은 그의 죽음 앞에서 우리 모두 할 말을 잊는다. 그저 비통, 심란할 뿐. 아찔하고 아득하여 도무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그는 자기가 태어난 고향의 바위에서 뛰어내려 저 세상으로 갔다. 그는 머리에 낭자히 피를 흘리며 심폐소생술을 받다가 더 이상 어떤 말도 하지 못한 채 한 많은 이승을 떠났다. 그는 1946년 생으로 63세의 장년이자, 퇴임한 지 1년여밖에 안 되는 대한민국 전직 대통령이다. 무엇보다 그에게는 부인과 아들딸이 있다. 왜 그는 모진 죽음을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되었을까?
검찰과 언론의 노무현 죽이기
청와대는 이 소식을 접하고 "참으로 믿기 어렵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애석하고 비통한 일이다. 유가족에게 애도를 표한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를 최대한 하여 모시도록 하겠다"며 이명박 대통령의 말을 빌어 논평을 냈다.
다른 정당들도 청와대와 비슷한, 지극히 상식적인 내용의 논평들을 냈다. 그런데 그들의 논평 어디에도 노무현의 죽음에 관한 정직한 실체는 없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노무현이 왜 죽었는지를 말할 필요가 있다.
"피도 눈물도 없이 몰아붙이더니 노무현이 끝내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노사모도 아니요, 나 자신이 진보인지 보수인지도 모르는 내가 그의 죽음을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그가 추구했던 길이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일국의 대통령을 지낸 사람에게 검찰은 매일 (언론에) 브리핑하며 먼지를 털었습니다.보수언론은 소설을 썼습니다."(<한겨레> 토론방, chris99)
이 누리꾼의 주장에 동의하는 사람은 적지 않을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는 검찰과 언론이 직결되어 있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대검찰청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며 비상회의에 들어갔다고 한다. 그간 두 달여 동안 한국의 언론들은 노무현을 난도질하기에 쉴 틈이 없었다.
전직 대통령이라고 할지라도 법적으로 문제가 있을 경우 수사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검찰과 언론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다.
전직 대통령을 그렇게까지 무자비하다 할 정도로 까발리고 비아냥거리면서 한 인간을 희대의 파렴치범 수준으로 추락시켜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CNN 등의 외신은 노 전 대통령이 "이번 수사에 정치적 동기가 있다"는 항변을 해왔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비판에 앞장선 사람들
우리가 알고 있듯이 노 전 대통령은 취임 초기 젊은 검사들과 토론을 벌였다. 그때 노 전 대통령이 검사들에게 했던 유명한 말 "이쯤 되면 막나가자는 거죠?"를 기억하고 있다. 이번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에는 그때 토론 자리에 있던 검사가 참여하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은 이번 수사를 받으며 정말 검사들이 '막나가고 있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또한 기성 정치권과 보수 언론은 노 전 대통령 재임 시에도 그에게 별의별 비난과 공격을 퍼부었다. 그를 '개구리'에 빗대기도 했고 '나쁜 대통령'이라고 외마디를 지른 정치인도 있었다. 심지어는 학력 때문에 그를 부당하게 멸시한 정치인도 있었다.
급기야 그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선거법 위반'이라는 터무니없는 이유를 만들어 탄핵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들은 오히려 탄핵 역풍을 맞았다.
그들은 노 전 대통령이 퇴임한 이후에도 부단히 그를 비난하고 공격하는 집요함을 보였다. 이명박 대통령은, 말로는 전직 대통령을 예우하겠다고 해 놓고 국가기록물 건으로 그를 고발했다. 그러다가 노 전 대통령이 박연차 회장과 연루되어 검찰 수사를 받게 되자 한나라당과 보수 언론들은 때를 만났다는 듯이 그를 비판했다.
홍준표 전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노무현은 전두환보다 더 나쁘다"고 말했다. 아무리 노 전 대통령이 못마땅하다고 해도 어찌 사람을 다수 죽이고 수천억 원을 해먹은 전두환보다 나쁘다는 평가를 내릴 수가 있단 말인가?
<중앙일보>의 한 칼럼니스트는 "박연차의 돈은 똥인데, 똥을 먹은 노무현"이라는 제하의 글을 쓰기도 했다. <조선일보>의 논설고문은 "노씨, 까불다가 당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이 검찰 소환을 받고 버스를 타고 서울에 올라온 일을 '정치적 퍼포먼스'였다고 규정지었다.
소환 직후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는 더 이상 없다"고 했던 검찰은 다시 권양숙 여사와 딸 정연씨 등을 부르며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검찰은 권양숙 여사가 박연차 회장에게 선물로 받은 명품시계를 논두렁에 버렸다는 이야기를 언론에 흘렸다. 또한 검찰은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에 대한 수사를 강화하면서 노무현에 대한 표적수사라는 비난을 피해 나갔다.
<조선일보>는 노 전 대통령의 딸 정연씨의 미국 주택을 호화주택이라고 단정하면서 다시 노무현 공격을 시도했다. 노 전 대통령의 죽음 소식이 전해진 23일 오전에도 <조선일보> 인터넷판은 아래 기사들을 내놓고 있었다.
- 노정연씨 미국 호화 아파트 파고들수록 수상
- 노정연씨 계약한 미국 호화아파트 가봤더니...
- 법조계도 수군, 허드슨클럽 미스터리 증폭
<연합뉴스>는 노 전 대통령이 대형비리가 드러날 것 같으니까 죽음을 택했을 수도 있다는 식의 기사를 내놓고 있다. 대한한국 기득권층의 노무현에 대한 '과장된' 멸시와 증오의 실체가 과연 무엇인지 궁금할 따름이다.
죽음을 택한 전직 대통령
"불쌍해서 어떡하나. 그다지 큰돈을 받은 것도 아닌데, 검찰이 압박하니 죽음을 선택할 수도 있었을 것"(주부 김모씨(60세))
노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국민 소감은 대체로 이와 비슷할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기득권층은 여전히 노무현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이 이 대통령과 다른 것은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면서도 기득권층에 저항하면서 성취했다는 점에 있다.
노무현은 죽었다. 그의 죽음에는 그에게 '막나간다'는 말을 들었던 사람들, 그리고 그를 탄핵했던 사람들이 연루되어 있다. 그러니 이제 제발 그 근거 없이 지녔던 멸시와 증오의 감정 따위일랑 모두 살라 없애고 그의 명복을 비는 일에 진정으로 동참해주기 바란다.
2009.05.24 김갑수 (kim gabsoo) 오마이뉴스
< 노무현은 무엇을 원했나? >
인간은 무엇을 원하나? 누구나 출세를 원하고 성공을 원한다. 돈도 좋고 이성도 좋다. 그러나 이는 평범한 사람들의 막연한 생각이고 기준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다르다. 철학이 있는 사람은 다르다.
조선시대라면 ‘군자’라는 이상이 있었다. 서구에 ‘지성인’ 개념이 있었듯이. 인간 노무현은 무엇을 원했을까? 당신은 ‘완전한 인간’을 추구했다. 왜? 밑바닥 체험을 가진 사람이 위를 쳐다보면 그렇게 된다.
인간 예수나 백범 김구처럼 말이다. 지식인들은 쉽게 밑바닥 사람들과 소통하지 못한다. 대부분의 지식인들은 그 점에 대해 낙담한다. 대중들은 쉽게 흥분하고 광기에 사로잡혀서 대화가 안 된다고 여긴다.
그들은 혀를 끌끌 차며 대중을 경멸한다. 난폭한 군중이 언제 폭도로 돌변할지 모른다며 경계한다. 대중을 교육시켜 지식인 만들어야 한다고 여긴다. 그러나 그 세계를 직접 겪어본 사람은 다르다.
예수는 다르고 백범은 다르다. 그들은 어떤 경우에도 밑바닥 사람들을 ‘통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삶이 달라진다. 그래서 목표가 높아진다. 더 큰 가치를 추구하게 된다.
지식인사회는 계급사회다. 내부에 위계질서가 있고, 체계가 있고, 비판이 있어서 상황이 ‘통제’ 된다. 체면도 있고, 위신도 있고, 꾸짖음도 있고, 반성도 있다. 어떤 상황에서 누구 말을 따라야 하는지 안다.
시장바닥의 군중들은 그런거 없다. 그들은 무질서하다. 그러나 겪어본 사람들은 안다. 진짜배기는 안다. 무질서해 보이는 군중도 감동으로, 눈물로, 사랑으로 감싸면 소통이 되고 상황이 정리된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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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노무현을 죽였는가? 인간은 최종적으로 죽이는 것은 외로움이다. 노무현은 외로워서 죽었다. 1차로는 정권이 친구를 죄다 가둬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짜는 따로 있다. 진리 앞에서의 외로움이 진짜 외로움이다.
내가 공부하고, 내가 깨우쳐서, 내가 지식으로 도달한 그 가치의 허망함 말이다. 최후의 친구는 진리다. 신의 완전성이다. 역사의 진보다. 평생을 감옥에 갇혀 있어도 그 세 친구만 있으면 외롭지 않다.
노무현을 슬프게 한 것은 이 나라에 진짜 지식인이 단 한 명도 없더라는 사실이다. 낮은 자는 죽지 않는다. 아이들은 죽지 않는다. 자신을 돌봐줘야 하는 어른 책임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노무현 위에 노무현을 가르칠, 노무현을 감동시킬, 노무현이 존경할, 노무현과 허심탄회하게 소통할, 노무현과 진리를 나눠가질 한 명의 지식인이 이 나라에 있었다면 노무현은 그렇게 죽지 않았다.
최장집들, 손석춘들, 황석영들이 노무현을 죽였다. 당신께서는 이 나라에서 진짜 지성인 한 명을 만나지 못해서 쓸쓸했을 것이다. 진짜 지성인이 노무현을 만나고 친구가 되어주었다면 죽지 않았다.
‘노무현을 버리라’고 사설 썼던 한겨레, 당신 가신 날 ‘노사모, 패닉’ 이따위 제목 걸었던 오마이뉴스들이 노무현을 죽였다. 적의 칼은 몸으로 받아낼 수 있으나 동지의 칼은 차마 받아낼 수 없었다.
그래서 조기숙 교수가 ‘사랑합니다’ 하고 거기서 외쳤던 것이다. 제발 죽지 말아달라고. 노무현이 존경했던 ‘먹물진보’는 차갑게 노무현을 버렸지만, 노무현이 사랑했던 인간은 아직 옆에 있다고.
인간 노무현은 후회없이, 미련없이, 아쉬움없이 잘 살았다. 판사도 했고, 의원도 했고, 대통령도 했다. 그러나 거기서 더 나아갈 더 위의 가치는 발견하지 못했다. 진보지식인 그룹에서 찾았으나 찾지 못했다.
인간 노무현이 탐낼 만한 사람이, 탐낼 만한 그 무엇이 대한민국 안에 없었다. 목표가 사라졌다. 허탈함에 빠져버렸다. 상심했다. 최종적으로 인간을 구원하는 것은 진리다. 그 진리의 살아있는 호흡이다.
낡은 진보의 진리가 그 매력으로 노무현을 구하지 못하므로, 거꾸로 인간 노무현이 당신의 몸을 던져 세상을 구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후 참으로 많은 일들이 노무현의 이름으로 일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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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예수의 삶 역시 비슷하다. 예루살렘에 입성했을 때 기대하는 것이 있었다. 그 성전에서 무서운 진짜 지식인 한 사람 만나기를 기대했다. "이놈 예수야. 네가 뭘 안다고 까부냐? 나에게서 진리를 배워라."하고 가르침 주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그 성전에 아무도 없었다. 인간이라곤 없었다. 그곳에 또아리를 틀고 있던 율법사들은 예수의 명성을 시기하고 죽이려 들 뿐이었다. 누구도 예수와 함께 진리를 토론하려들지 않았다. 예수는 그 지점에서 절망했다.
그를 구원해줄 더 높은 곳의 빛이 없다면, 스스로 몸을 던져 세상의 빛이 되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그렇게 예수는 가고 백범은 가고 장준하는 가고 노무현은 갔다. 가서 별이 되어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다.
http://gujoron.com 김동렬 슨상 글 중에서
< "노무현은 '자살'하지 않았다" >
우리 사회에서도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 과정의 여러 고비에서 자살을 통한 극렬한 표현이 있었다. 그런데 유럽사의 투쟁과 혁명 속에서는 자살의 사례가 거의 없었다. 북아일란드에서 1981년 보비 샌즈가 이끈 단식 투쟁으로 열 명의 투쟁가들이 목숨을 끊어 유럽을 뒤흔든 일이 있었던 정도다. 그러나 단식은 절명의 확실성이 덜하다는 점에서 분신이나 투신보다 온건한 방법이다. 그 사태로 영국 정부가 국내외의 지탄을 받은 것은 투쟁가들의 목숨을 건질 방법이 있는데도 취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세계적으로 해마다 백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자살로 목숨을 끊는다. 그 대부분은 위키피디아에 나열된 이런 이유들에 인한 것이다. "자살의 이유에는 우울증, 수치심, 죄책감, 절망감, 신체적 고통, 정서적 압박, 걱정, 돈 문제 등 바람직하지 못한 상황들을 포함하여 여러 가지가 있다." 텔레비전의 해설에도 노 대통령의 투신 이유로 검찰 수사를 둘러싼 이런 요인들을 엮어보려는 사람들이 보인다. 뭐 눈엔 뭐만 보이는가 싶다.
자살을 처음 체계적으로 탐구한 에밀 뒤르켕은 <자살론>(1897)에서 자살을 (1) 과도한 개인주의가 사회와의 유대감을 약화시킨 결과로 나타나는 '이기적 자살', (2) 사회에 대한 과도한 책임감에서 비롯되는 '이타적 자살', (3) 사회의 기준과 가치관 혼란에 기인하는 '아노믹 자살', 세 범주로 분류했다. 노 전 대통령 경우는 (2)와 (3)의 사이에서 생각할 문제로 보인다.
노무현은 지지자들에게나 반대자들에게나 '투사'로 인정받아 온 사람이다. 그의 뛰어난 투쟁력은 어디에서 온 것인가? 다른 점을 짚을 사람도 있을지 모르지만 나는 그의 '유머 감각'을 힘의 원천으로 생각해 왔다. 보통사람들이 견디기 힘든 좌절을 거듭거듭 겪으면서도 무너지지 않는 강인함, 그리고 승부의 고비에서 본질을 파고드는 담대함은 자기 자신을 관조하는 초연함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봐 왔다.
그런 투사, 그런 유머리스트가 검찰이 들볶아댄다고 해서, 아끼는 사람들이 고생한다고 해서 맥을 놓아버린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가 퇴임할 때까지 그의 '지지자' 노릇을 한 일이 없다. 그러나 이번 검찰 수사의 방법이 억지스러운 것은 혐의 내용이 부실하기 때문이라고 봤고, 그래서 그의 지도력이 역경으로 보이는 상황을 통해 증폭될 것을 예상했다. 투사로서 그의 면모가 되살아날 기회가 무능한 정권에 의해 주어지는 것으로 보았다.
그런데 그가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뉴스를 듣고부터 열다섯 시간 동안 생각에 잠겨서도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일이다. 삶과 죽음을 하나로 본다는 유서의 말씀, 투철한 유머리스트에게 기대할 만한 말씀이긴 하지만…. 다른 사람은 몰라도 권 여사한테 그럴 수 있나?
대통령 되기 이전의 그의 행적에서 많은 사람들이 많은 것을 배운 반면 대통령으로서 노무현에게서는 사람들의 배우려는 자세가 줄어들었다. 내가 보기엔 같은 사람이 같은 태도로 일한 것인데 왜 그런 차이가 생겼을까? 대통령 되기까지는 '승리의 길'이라 해서 사람들이 우러러보고, 대통령 된 뒤에는 '권력자'라 해서 질시의 대상이 된 것일까?
재임 중 어느 고비에서 자신이 계몽주의자가 되어 버리는 것 같다고 반성의 마음을 토로했다는 노 대통령. 그렇다 그는 국민을 다스리기보다 가르치려 한 사람이다.
대통령 자리에서 국정을 이끌어본 그가 하나의 세력을 일으키는 투쟁의 길에 흥이 나겠는가? 차라리 탁 놓아버림으로써 대통령으로서도 펼치지 못했던 하나의 큰 가르침을 던진 것 아닐까? 승리에만 집착하는 이 사회, 전술-전략에만 몰두하는 이 사회에 철학적 반성을 일깨운 의미를 두고두고 파고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것을 '자살'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는 '자기 희생'의 의미를 더 많이 보고 싶다.
- 김기협 역사학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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