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야구 불문율 ' >
야구는 기록과 규칙의 경기이다. 10가지 규칙만 알면 끝나는 축구와는 다르게 야구 박사라는 심판들조차도 야구 규정집(rule book)을 뒷주머니에 꽂고 다니며 감독들이 항의 할때마다 같이 들여다 볼 정도로 매우 복잡한 스포츠이다.
그뿐인가, 규정집에 없는 불문율 또한 엄청나게 많은게 야구이다. 시즌에 필요한 불문율은 무엇인가 살펴보자.
▶ 9회 마지막 기회가 오면 홈에선 역전을, 원정에서는 동점을 노려라
2008 플레이오프 5차전에서 삼성은 6-4로 뒤진 9회말 무사1,2루의 천금같은 기회를 얻었다. 팬들은 당연히 동점을 노리고 박진만이 희생번트를 해서 주자를 2,3루에 보낼 것으로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건 야구를 잘 모르는 일반팬들의 생각이고, 야구를 아는 선동열감독이 홈에서 동점을 노릴 리가 없었다. 당연히 역전을 노리고 강공을 선택한 건 잘한 일이다. 왜냐하며 거기는 삼성의 홈인 대구구장이기 때문이다.
결과는 안타가 안나와서 삼성이 지긴 했지만 선동열감독은 야구의 불문율을 잘 지킨 셈이다.
▶ 보복시에는 타팀의 간판타자의 엉덩이를 맞추어라
배영수가 지난 wbc에서 이치로의 엉덩이를 맞춰 큰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배영수는 야구의 불문율을 정확히 지켰다.
간판타자의 엉덩이를 맞추었으니 말이다. 아무리 보복을 한다고 해도 상대방의 머리쪽으로 빈볼을 던져서는 안된다. 보복은 하되 반드시 속도를 줄인 직구를 상대방의 엉덩이이나 허벅지에 맞추어야 한다.
그건 야구의 불문율이다. 아무리 화가 난다고 해도 동업자의 머리를 향해 공을 던져는 안된다. 이치로가 배영수의 공에 맞고도 아무런 항의를 하지 않았던 건 너무나 당연했다. 배영수가 불문율을 지켰기 때문이다.
▶ 비슷하면 무조건 홈팀에 유리하게 판정하라
이거 너무나 당연하다. 그래야 홈 관중이 더 많이 야구장을 찾을 것이다. 지난 시즌 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오심이라도 홈에 유리하게 판정하게 하게 된다면 그건 '진정한 오심'은 아니다. 어차피 공평하게 모든 홈에서 각 팀들이 골고루 혜택을 받을테니까.
▶ 주자가 협살에 걸리면 반드시 앞루에서 죽어라
죽더라도 앞쪽 루에서 죽어야 한다. 1루주자가 협살에 걸리면 주자는 1루 돌아가지 말고 2루로 향해서 가야한다. 상대방의 에러를 유발할 수도 있기 때문에 살 확율이 더 높다.
이건 이미 통계로도 증명된 사실이다. 죽더라고 2루에서 죽으면 감독은 절대 야단치지 않는다. 야구의 불문율을 지켰기 때문에.
▶ 내야에 공이 뜨면 투수는 내야수에게 양보해라
시카고 컵스의 케리우드는 이 불문율을 안 지키고 자신이 공을 잡겠다고 덤비다 애꿎은 최희섭만 희생시켰다. 케리우드의 팔꿈치에 맞아서 최희섭은 뇌진탕증세를 일으켰고 결국 메이저리그생활은 하향길로 접어들었다.
▶ 큰 경기에서는 관중석에 공을 주지 마라
포스트시즌같은 큰 경기에서는 외야수가 플라이볼로 3아웃을 잡고 공을 관중석에 던지는 행동은 절대로 해서는 안된다.
생각해보라. 외야수가 1사 만루에서 깊숙한 플라이볼을 잡고 3아웃으로 착각해서 공을 관중석으로 던지는 일이 벌어졌다면 상상만해도 끔찍하지 않겠는가. 외야수가 아웃카운트를 착각하는 일은 언제나 있을수 있는 일이다.
▶ 외야로 뜬공이 오면 가능하면 중견수에게 모든 것을 맡겨라
좌익수와 우익수는 일단 공중볼은 중견수에게 맡긴다는 생각으로 임해라. 야구에서 중견수의 수비범위가 가장 넓고 발이 가장 빠는 선수가 중견수를 맡는것은 우연이 아니다.
잘못하면 몇 년전 메이저리그에서 카메론 선수가 겪었던 것처럼 '외야에서의 대충돌'사고가 날수가 있다
▶ 볼넷이나 에러로 역전주자를 내보내지 말라
통계상 볼넷으로 나간 역전주자는 반드시 홈에 들어온다. 차라리 안타틀 맞는게 낫다. 역전 주자를 내보내더라도 정면 승부를 하라는 말은 야구 불문율 중에도 아주 오래된 고전적인 얘기이다.
그 외에도 ' 3루에서 3아웃을 당하지 마라''
큰 점수차가 나면 도루는 하지 마라'
'1아웃에서는 주자 뒤에 공을 보내라' 등등
야구에서는 수도 없이 많은 불문율이 있다.
이 불문율은 시즌 중에도 지켜져야 하는 것이지만, 포스트시즌 같은 큰 경기에서는 반드시 숙지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포스트시즌에서 양팀이 큰 싸움이 벌어지고 '벤치 비우기' 가 너무나 자주 발생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아참, 양팀이 큰 싸움이 벌어져서 모두 '벤치 비우기'를 할 때 싸우는게 무서워서 벤치에 혼자 남아있는 선수는 '반드시 벌금을 부과하거나 트레이드를 하라'
이것도 야구 불문율 중에 하나일지도 모르겠다. 야구는 '팀워크'가 가장 중요한 단체 경기이니 말이다.
< 김연아 등 프로들의 자기암시 >
프로야구 기아-SK전이 열린 8일 광주구장. 경기 직전, SK와이번스 김성근감독은 독특한 의식을 치렀다. 그는 애국가가 울려퍼질 때 '나는 게임 자체다', '이제 승리다'라고 되뇌였다. 그는 이 말을 암송하면서 짧은 순간에 몰입했다. 그는 게임 때마다 이 과정을 통해 승리가 확정되는 순간을 마음으로 그리곤 한다. 김 감독은 팀을 최근 2년 연속 정상으로 이끈 원동력 중의 하나를 자기암시로 본다.
'피겨 여왕' 김연아는 경기 세 시간전 메이크업 때 '나는 실수하지 않고 침착하게 잘한다'고 스스로 마법을 건다. '아시아 홈런왕' 이승엽은 지난 96년 프로 데뷔 때부터 모자챙에 '진정한 노력은 배반하지 않는다' 는 검은 글씨를 써놨다. 그는 이 문구를 보면서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암시를 했다.
프리미어리거 박지성(맨유)이 자기암시로 자신감을 높인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 그는 경기장에 나설 때 최고라는 느낌이 들 때까지 '이 경기장에선 내가 최고다' 라고 마음으로 외친다. 이들 외에도 많은 선수들이 좌우명, 마인드콘트롤, 집중력 훈련, 메모법 등 이름은 다르지만 모두 자기암시를 한다.
자기암시 효과는 객관적인 수치화가 어렵다. 그러나 경험적으로 효과가 인정되고 있다. 역도선수 장미란은 2008년 북경 올림픽 직전의 훈련에서 비공인 세계신기록에 도전했다. 그러나 용상에서 실패했다. 이 때 심리학자가 바벨을 들지 못하면 총알이 발사된다는 마음을 가지라고 했다. 그녀는 "들지 못하면 나에게 총알이 발사된다" 고 암송했고, 바벨을 번쩍 들었다.
예전의 국가대표 선수들은 게임 일주일 전, 또는 한 달전부터 집중적으로 암시문구를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이 경우 마음으로는 받아들이지만 몸으로는 체화되기에는 부족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이야기다. 김병현 박사는 "1년 이상 훈련을 해야 몸과 마음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고 말했다.
[2009-04-10] 리더십
< LG 최동수가 '절망의 시대'에 던진 메시지 >
타율 3할1푼6리 2홈런 8타점. 매우 준수한 성적이지만 특급이라고 부르기엔 어딘가 조금 부족해 보인다.
그러나 이 성적의 주인공이 '최동수'임을 알게된다면 생각이 달라진다. 불과 보름 전만해도 경기에 나서는 것 조차 장담할 수 없는 선수였기 때문이다.
최동수는 시범경기는 물론 스프링캠프 연습 경기서도 좀처럼 선발 출장 기회를 잡지 못했다. 재계약한 페타지니와 군에서 돌아온 박병호 등에게 밀려난 탓이었다. 기회마저 제대로 주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최동수는 그렇게 또 스스로를 이겨냈다. 4번부터 7번까지 팀 사정에 따라 타순의 이곳 저곳을 옮겨다니고는 있지만 매일 LG 라인업엔 그의 이름이 아로새겨진다.
누군가에겐 평범한 일일런지 몰라도 그에겐 특별한 행복이다. 최동수는 희망을 찾기 힘든 '절망의 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희망을 잃지 않는 법'을 전해주고 있는 것이다.
▲ '끝'이라는 생각은 하지 마라
역경이나 고난 등의 단어는 최동수와 친숙하다. 8년이 넘는 2군 생활. 1군에 올라온 뒤에도 맘 편이 뛰어본 기억은 8년 중 2,3년에 불과하다. 그는 늘 뒷전으로 밀려날 위기에 놓여 있었다.
올시즌 처지는 더욱 답답했다. 한국 나이로 이제 서른 아홉. 야구 선수로 환갑, 진갑을 모두 넘긴 상황. 그에겐 더 이상 꿈을 꿀 여유가 남아있지 않을 듯 느껴졌다.
특히 지난 2007년 생애 첫 3할 타율(.306)을 기록하며 최고의 시간을 보냈던 그다. 자신의 인생 정점을 맛본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에서 또 한번 추락을 경험한다는 것은 더욱 아픈 일이었을 터.
그러나 최동수는 마지막이란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끝을 생각하지 않았기에 또 도전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최동수는 " 지금까지 힘든 시간이 너무 많았지만 한번도 끝날거란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 난 아직 뛸 힘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남들이 뭐라고 하건 내 할일을 하며 기다리면 된다고 믿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되곤 했다. 아마 한번이라도 '이제 끝났구나'라고 포기한 적이 있었다면 지금까지 오지도 못했을 것 " 이라고 말했다.
▲ 부러우면 지는거다
최동수는 " 특급 용병이나 거물 신인이 들어오면 난 늘 뒷전이었다. 모두들 당연히 내가 밀릴거라 생각했다. 그럴 때 가장 괴로운 것이 바로 외로움이다. 아무도 내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게 될 때의 아픔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 고 말했다.
옛 경력이 화려하다고 해서, 또는 오직 젊고 힘 좋다는 이유만으로 늘 자신의 앞에 서는 선수들을 바라봐야만 하는 것은 힘겨운 일이다.
그리고 주변의 냉대. 감독이나 코치는 물론 동료들의 시선도 차갑게 식는다. 무시하진 않더라도 주변인이 된 그에게 진심으로 손을 내미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또 최동수는 빼어난 재능을 갖고 있는 선수가 아니다. 때문에 야구 선수로서는 늘 다른 선수들보다 한걸음 뒤에 출발선이 그어질 수 밖에 없다.
0.1초 내의 반응으로 성공과 실패가 갈라지는 야구는 운동 능력의 차이에 따라 성과가 크게 차이날 수 있는 스포츠다.
최동수는 " 솔직히 나라고 왜 재능 있는 선수들이 부럽지 않았겠는가. 천재형 선수들은 남들의 반만 해도 남들 이상 해낼 수 있다. 하지만 내게 없는 걸 욕심내봐야 나만 더 힘들지 않은가. 그 시간에 내가 살 방법을 먼저 찾는게 훨씬 낫다 " 고 털어놓았다.
▲ 내게 맞는 목표를 세워라
뻔한 답이 나올 줄 알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물었다. " 최동수가 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었나요. "
그는 예상대로 모범 답안을 내밀었다. 그러나 조금도 우습게 들리지 않았다. 진심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 내가 살 방법이 뭐가 있겠어요. 죽어라고 치고 또 치는거지. "
그는 LG에서 가장 먼저 출근해 가장 늦게 퇴근하는 선수다. 이젠 워낙 버릇이 된 탓에 남들 나오는 시간에 나오면 병이 생길 지경이다. 교통 체증 탓에 평소보다 한시간 늦게(그래도 남들보다는 빠르게) 도착하게 되자 소화도 안되더라는 그다.
최동수는 2009시즌을 앞두고 훈련량을 더 늘렸다. 스프링캠프에서 돌아온 뒤 지금까지 단 하루도 쉬는 날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잃었던 타격감이 돌아오는 걸 느꼈다.
" 나도 인간인데 왜 화가 안 났겠나. 당연히 그럴거라 생각했지만 개막전 라인업에 내 이름이 빠져 있는 걸 봤을 땐 울컥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 많이 땀을 흘렸다. 치고 또 치다보면 생각이 단순해지고 울분도 가라앉았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내 가장 좋았을 때의 감이 돌아왔다. "
그는 말을 좀 더 이어갔다. " 혼자 끊임없이 땀을 흘리다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내가 작년(2008년)에 3할을 못쳤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이젠 대타로나 나가게 되겠지만 그럼 목표를 다시 세우자'라고. 그래서 그때부터는 " 대타로 3할치자 " 가 내 목표가 됐다. 그러기 위해 더 많이 훈련했고 경기에도 더 집중했다. 그리고 내게 다시 기회가 왔다. "
[이데일리 SPN 정철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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