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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의 편지, 노무현은 잃은, 언제까지 비관? 노사모가 노무현을>>

◆경제지혜·미래학

by 21세기 나의조국 2009. 4. 14.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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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무현 대통령의 편지 (2003년 어버이날) > 

 

 

존경하는 국민여러분!  
 
오늘은 어버이날입니다.  
저에게는 큰 절을 두 번 하는 날입니다.  

한 번은 저를 낳고 길러 주신 저의 부모님께 감사 드리는 절입니다.  
또 한 번은 저를 대통령으로 낳고 길러 주시는 국민여러분께
감사 드리는 절입니다.  
 
저는 경남 김해 산골에서 태어났습니다.
판자 석자를 쓰시는 아버지와
성산이씨셨던 어머니의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세속적으로 보면 저도 크게 성공한 사람이지만
돌이켜 보면 부모님이 많은 것을 주셨기 때문에
오늘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가난을 물려주셨지만 남을 돕는 따뜻한 마음도
함께 물려주신 아버지셨습니다.
매사에 호랑이 같았던 분이지만 바른 길을 가야한다는 신념도
함께 가르쳐 주신 어머니셨습니다.  

 

'내가 아프면 나보다 더 아픈 사람,  
 내가 슬프면 나보다 더 슬픈 사람,  
 내가 기쁘면 나보다 더 기쁜 사람.'  
오늘 그 두 분에게 하얀 카네이션을 바칩니다.  
 
국민여러분!  
 
대통령의 어버이는 국민입니다.
국회의원의 어버이도 국민입니다.  
한 인간을 대통령으로 국회의원으로 만든 사람은
바로 국민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정치개혁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여러분 마음 먹기에 달린 일입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명시된
대한민국 헌법 제 1조는 이 나라의 정치인이라면
누구나 군말없이 따라야 하는 지상명령입니다.  

 

여러분의 관심 하나에 이 나라 정치인이 바뀌고  
여러분의 결심 하나에 이 나라의 정치는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그 관심과 결심 또한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어버이의 마음을 가지시면 됩니다.  
어버이는 자식을 낳아 놓고 '나 몰라라'하지 않습니다.  
잘 하면 칭찬과 격려를 해주고 잘못하면 회초리를 듭니다.  
 
농부의 마음을 가지시면 됩니다.  
농부는 김매기 때가 되면 밭에서 잡초를 뽑아 냅니다.  
농부의 뜻에 따르지 않으면 선량한 곡식에 피해를 주기 때문입니다.  
 
나라와 국민을 위해 일하라는 국민의 뜻은 무시하고  
사리사욕과 잘못된 집단이기주의에 빠지는 일부 정치인.  

개혁하라는 국민 대다수의 뜻은 무시하고  

개혁의 발목을 잡고 나라의 앞날을 막으려 하는 일부 정치인.  

나라야 찢어지든 말든 지역감정으로 득을 보려는 일부 정치인.  
전쟁이야 나든 말든 안보를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일부 정치인.  
 
이렇게 국민을 바보로 알고 어린애로 아는 일부 정치인들에게  
국민여러분과 제가 할 일이 있습니다.  

 

제가 할 일은 어떤 저항과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대통령의 의무인 대한민국 헌법 제 1조를 지키는 것입니다.  
살아 움직이는 헌법이 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하실 일은 어버이의 마음을 가지시고  
농부의 마음을 가지시는 것입니다.  
 
국민여러분!  
 
저에게도 어버이의 회초리를 드십시오.  
국민여러분의 회초리는 언제든지 기꺼이 맞겠습니다.  
아무리 힘없는 국민이 드는 회초리라도  
그것이 국익의 회초리라면 기쁜 마음으로 맞고
온 힘을 다해 잘못을 고치겠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힘있는 국민이 드는 회초리라도  
개인이나 집단의 사적인 이익을 위해 드는 회초리라면  
매를 든 그 또한 국민이기에 맞지 않을 방법은 없지만  
결코 굴복하지는 않겠습니다.  

 

'너 내 편이 안되면 맞는다'라는 뜻의 회초리라면  
아무리 아파도 굴복하지 않겠습니다.  
국민여러분의 큰 뜻을 위배하라는 회초리라면  
결코 굴복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굴복하면 저에게 기대를 걸었던 많은 국민들은  
기댈 데를 잃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굴복하면 저에게 희망을 걸었던 많은 국민들은  
희망을 잃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국민여러분!  
 
그런데 하나 경계해 주실 것이 있습니다.  
바로 집단이기주의입니다.  

저는 대통령이 되기 전,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인권변호사로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힘있는 국민의 목소리보다  
힘없는 국민의 목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체질입니다.  

 

그러나 대통령으로서 국정을 할 때는 그 누구에게  
혹은 어느 한 쪽으로 기울 수 없습니다.  
중심을 잡고 오직 국익에 의해 판단할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대통령이 중심을 잃는 순간,  
이 나라는 집단과 집단의 힘겨루기 양상으로 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정치와 통치는 다릅니다. 비판자와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다른 것입니다.  
저는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국익이라는 중심을 잡고 흔들림없이 가겠습니다.    

국민 여러분!  
 
저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꼭 이루고 싶은 희망이 있습니다.  

그 하나는 이익집단은 있지만 집단이기주의가 없는 대한민국입니다.  

각자의 이익을 추구하지만 국가와 민족 앞에서는 한 발 물러서는 대한민국. 
좀 더 가지고 덜 가진 것의 차이는 있지만 서로 돕는 대한민국.  
동(東)에 살고 서(西)에 사는 차이는 있지만 서로 사랑하는 대한민국.  
바로 화합으로 도약하는 대한민국입니다.  
 
다른 하나는 세대 차이는 있지만 세대 갈등은 없는 대한민국입니다.  
자식은 부모세대가 민주주의를 유보하며 외쳤던 '잘 살아 보세'를
존중하고 부모는 내 아이가 주장하는 '개혁과 사회정의'를 시대의
메시지로 받아들이는 대한민국.  

 

자식은 부모에게서 경험을 배우고 부모는 자식에게서  
새로운 시대의 흐름을 배우는 대한민국.  
자식은 밝게 자라게 해 준 부모에게 감사하고  
부모는 자식의 밝은 생각에서 새로운 것을 배우는 대한민국.  
바로 사랑으로 행복한 대한민국입니다.  
 
국민 여러분!  
 
이 세상을 떠날 때 가장 후회스러운 것은  
높은 자리, 많은 돈을 갖지 못한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부모님을 한 번 더 찾아 뵙지 못한 것,  
사랑하는 아이를 한 번 더 안아 주지 못한 것,  
사랑하는 가족에게 더 잘해주지 못한 것이 가장 후회스럽답니다.  

 

저도 IMF 후 국가의 위기를 극복하는데 도움이 되고자
전국의 노동자들을 설득하러 다니느라고 어머님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던 일이 아직도 가슴에 남아있습니다.  
 
저의 이 편지가 부모님의 은혜를 한 번 더 생각하는 계기,  
대한민국이라는 가족공동체를 한 번 더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효도 많이 하십시오.  
 
우리 모두의 가슴에  
마음으로 빨간 카네이션을 바치며...  


2003년 5월 8일,  
대통령 노무현 


 

 

 

노무현은 잃은 것 없다 >

 

5년 전이던가. 노무현 대통령도 탄핵이라는 초반 고비를 어렵게 넘겼다. 이명박도 비슷하게 간다. 촛불이라는 초반위기를 넘긴데다가 최근 주가가 회복되는 것을 보니 이대로 어영부영 임기는 채울 모양이다.

 

그러나 한숨 돌린 것에 불과. 노무현 대통령도 부시와 김정일의 발목잡기에 시달려 임기 후반이 편하지 않았다. 이명박 역시 오바마와 틀어지고 김정일과 틀어지고 중국, 러시아, 일본도 비협조다.

 

수구들이 겉으로는 ‘좌빨’ 이러지만, 본질로 보면 ‘한미관계가 금가면 어떻게 하나’ 하는 ‘존재불안’이 밑바닥에 깔려있다. 우리가 체제를 전복하고 공산혁명을 해보겠다는 ‘빨갱이’가 아니라는 사실은 그들도 안다.

 

상관없는 거다. ‘부시와 틀어지면 어쩌지?’ 하는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 거 같은 막연한 불안감’.. 현대식 교육을 못 받은 기성세대들에겐 먹힌다. 좌빨이라는 구호를 내걸어 그 불안심리를 자극하는 거다.

 

그러나 이제 오바마 시대. 미국은 못해도 기본 8년은 가는 나라. 노무현-부시 정상회담은 2003년 5월 19일. 이명박이 런던에서 오바마 얼굴 한번 봤다지만 그냥 얼굴 한번 본 거뿐이다. 뒷얘기는 없다.

 

김대중 대통령의 당선에는 김영삼과 클린턴의 불협화음이 기여한 거 확실하다. 이명박도 그렇게 된다. 왜 정상회담 소식 없지? 삐걱삐걱 소리가 나면 좌빨 운운하는 수구떼들 침묵한다. 새옹지마와 같다.

 

부산 경남을 온통 뒤집어엎어 놓았으니 내년 지자체 선거가 재미있게 되었다. 노무현 대통령도 지자체 져서 힘들었는데 이명박도 비슷하다. 내 말은 내부적으로 어떤 ‘힘의 균형을 만드는 축’이 있다는 거다.

 

우리가 곧장 치고 나가려 해도 안에서 틀고 밖에서 틀면 어쩔 수 없다. 이명박 역시 마찬가지. 일희일비할 일은 아니다. 단지 노무현 이름에 기대어 무임승차 하려던 사람이 낙담하여 침 뱉고 떠날 뿐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단지 말빨 하나로 재미를 봤다고 믿는 사람은 쾌재를 부른다. 오마이뉴스에 드글드글 하다. 그들 입으로만 사는 자들은 개혁을 표방하고 있을 뿐 본래 우리와는 근본이 다른 족속이다.

 

본질에서 자체 동력이 있느냐다. 진짜는 자체 엔진을 가지고 그 엔진에 점화시켜 줄 역할로 해결사 노무현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다. 단지 노무현이 발동을 걸어주면 족하다. 더 이상 바라는 게 없다.

 

그러나 노무현 주변에 기웃거리면서 한 자리 해보려고 봉하마을 쪽으로 기웃거린 자들, 궁물족들, 또는 노무현을 자신의 경쟁자라고 여기는 서푼짜리 진보 논객들은 잃은 것이 매우 크다.

 

노무현이 한 마디 화두라도 던져주면 벌떼처럼 달려들어 뜯어먹는 자들. 손석춘, 손호철, 진중권류들은 시원섭섭할 거다. 이 자들은 자기 아이디어가 없기 때문에 노무현이 한 마디 내려주시길 기다린다.

 

한마디 던져주지 않으면 갈궈서라도 얻어낸다. 노무현이 너무 뛰어난 논객이라 자기네의 말솜씨가 빛나지 않는다면서 공연히 화내고 툴툴거린다. 그런데 이제 논객 노무현의 입지가 사라졌다.

 

호랑이 없는 굴에 여우세상 왔다고 희희낙락이지만 빈곤한 아이디어는 어찌 조달할지 대책 없다.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 떠나면서 논객 숫자가 실제로 감소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그 바닥 보급부대 역할 해준거다.

 

우선 강준만 책 안 팔린다. 노무현이 있기에 강준만도 있었던 거. 노무현이라는 바다에 강준만이라는 배가 떠 있었던 거. 당장은 노무현 논객 없어져서 통쾌하겠지만, 그들 시대도 끝났다는 사실 곧 알게 된다.

 

노무현의 입만 무서워하고 행동은 보지 못하는 자들. 노무현 이전에 먼저 와서 노무현의 출현을 기다리고 있었던 진짜배기들의 동선을 보지 못하는 자들. 그들은 아주 잠시 동안 행복할 것이다.

 

노무현은 입으로 살아온 사람 아니다. 우리가 노무현을 필요에 의해 스카우트 한 것, 우리가 필요에 의해 그를 권좌 위로 밀어올렸던 것. 우리는 계속 간다. 우리에겐 노무현이 발동을 걸어놓은 자체 엔진이 있다.

 

우리는 독립세력이다. 우리는 현장에 있다. 정치라는 말의 게임이 벌어지는 무대 아래쪽에 있어서 그들에게는 우리의 존재가 보이지 않는다. 새옹지마와 같다. 당장은 한켠이 허전하겠지만 역사의 균형추는 여전히 작동한다.

 

우리는 젊다. 그래서 체계가 없다. 그 내부의 질서는 지금 만들어지고 있다. 노무현을 지지했던 촛불의 10대와, 아고라와 딴지일보 독자였던 20대, 그리고 386세력이라 할 30대와 40대 사이에 체계가 만들어진다.

 

이질적인 20대, 30대, 40대 사이에 체계가 서고, 철학을 갖춘 지휘부가 뜨고, 외곽세력으로 양날개가 붙고, PK쪽에 보급부대가 편성되면 노무현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다시 돌아온다.

 

아직은 너무 젊어서 내부서열이 정해지지 않았고, 궁물과 진짜배기 사이에 옥석 구분이 안되었고, 제대로 된 평가가 없어서 우리의 역량을 십분 발휘하지 못했을 뿐, 세력화에 실패했을 뿐이다.

 

WBC 결승에는 우리가 졌지만 만족한다. 우리 팀은 가진 역량을 다 보여주었다. 그 이상은 우리의 역량이 모자라서 어쩔 수 없는 것. 지난 5년 우리는 충분히 만족했고 원하는 것을 얻었다. 할만큼 했다.

 

지금은 일본 팀이 승리자의 축배를 들고 있지만 아마 뒷골이 서늘할 거다. 역사의 균형추는 여전히 작동하고 있으니까. 새옹은 웃지 않았다. 울지도 않았다. 다만 때를 기다리고 준비할 뿐.


(구조론닷컴 / 김동렬 / 2009-04-10)
※ 출처 - http://gujoron.com/xe/22820

 

 

 < 언제까지 비관할 것인가? > 

 

‘용기 있게 과학의 길로 나서라’, 최후의 승리자는 우리가 된다


좌파의 도박은 실패다. 경제성장과 침체 중에서 예견해 보라고 하면 좌파는 본능적으로 후자를 선택한다. 이유가 있다. 전자는 경제를 알아야 할 수 있는 말이고, 후자는 경제를 몰라도 할 수 있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현장과 거리가 먼 강단에 둥지를 틀고 있으므로, 어차피 경제를 모르므로, 비판만 하는 것이 자기네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역할을 좁은 범위로 한정시켜 놓고 있는 거다.

 

운신의 폭을 좁혀놓고 지는 게임을 벌이려 한다. 예견은 빗나가고, 주도권은 놓치고, 카리스마는 잃고, 세력은 위축되고, 선거에는 참패해도, 강고한 노선을 걷기만 하면 개인의 명성은 올라가기 때문이다.

 

그들은 개인의 명성을 위해 동지를 죽인다. 비겁하다. 지적 용기가 필요하다. 불편한 진실을 말해야 한다. 욕먹을 각오하고 과학에 입각하여 말해야 한다. 과학은 진보나 보수의 편이 아니다.

 

과학은 때로 불리한 진실을 보고한다. 다 감수하고 진도 나가야 한다. 도박하지 말자는 거다. 문제는 이게 50대 50의 확률이 아니라는 데 있다. 경제성장의 확률이 높고 침체의 확률은 낮다.

 

더구나 한국처럼 좋은 인적자원을 가진 나라는, 비판도 중요하지만 ‘악역’을 독점해서는 안 된다. 영리한 여우가 굴을 파더라도 여러 곳에 출구를 두듯이 한쪽에 올인하지 말고 이쪽저쪽에 전단을 열어야 한다.

 

미국경제가 엎어지자 ‘신자유주의는 끝났다’며 환호하는 꼴을 보라! “거 봐! 내 말이 맞았지. 내가 뭐랬어? 나는 무려 30년 전부터 신자유주의를 비판해 왔다구!” 이런 주장은 허무할 뿐이다.

 

30년 동안 계속 틀리다가 30년 만에 한 번 맞혔다는 거 아닌가. 좌파들은 레이건 시절부터 신자유주의를 비판해 왔지만 그들의 예견이 30년간 계속 빗나가니 아무도 그들의 주장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왜 재앙이 닥쳤을까? 시장이 그들의 경고를 묵살했기 때문이다. 왜 시장은 그들의 목소리를 외면했을까? 그들이 30년 동안 틀리는 예측을 계속 내놓았기 때문이다. 냉전 이후 제대로 된 예측은 하나도 없었다.

 

구소련의 몰락과 동유럽의 민주화를 예측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이후로도 들어맞은 예측이 없었다. 틀린 예측을 계속 내놓아서 시장이 오류를 범하도록 방조한 그들에게도 경제위기의 책임이 있다.

 

무릇 지식인 집단은 사회의 눈과 귀가 되어야 한다. 눈과 귀가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두뇌가 분별하지 못하니 몸이 두뇌를 믿지 않고, 눈과 귀의 경고를 믿지 않고 제멋대로 폭주한 결과 재앙에 직면하게 된 거다.

 

이명박경제가 추락하면서 아고라를 중심으로 개혁세력이 비관론을 펼쳐 재미를 봤지만, 한번 성공한 건수에 집착한다면 위험하다. 우연히 당첨된 로또에 대한 미련은 버려야 한다. 두 번 당첨의 기적은 없다.

 

반전은 반드시 일어난다. 경제는 생물이니까. 역사는 기본적으로 진보하도록 세팅되어 있다. 진보와 보수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라면 진보 편에 서는 것이 맞다. 마찬가지로 경제는 기본적으로 성장하게 세팅되어 있다.

 

성장 쪽에 서는 것이 맞다. 경제가 성장궤도에 오르면 앞에 그 성장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있을 때, 오히려 더 크게 성장하는 패턴이 있다. 장애물이 위험한 폭주를 막아주는 숨 고르기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IMF가 한국경제의 체질을 강화시켰듯이, 경제위기가 큰 기회가 될 수 있다. 문제는.. 경제는 일정부분 정치와 상관없이 가는 경향이 있으며, 이명박이 경제를 망치면 오히려 경제가 더 잘될 수 있다는 역설이다.

 

늘 하는 이야기지만.. 경제는 생물이고 시장은 역설적으로 작동한다. 정치 측의 의도와는 항상 반대로 되는 경향이 있다. 경제를 살리려 하면 죽고, 죽이려 하면 오히려 살아나는 경향이 있다.

 

이명박을 궁지로 몰려고 하다가, 오히려 이명박을 도와주는 결과로 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조심해야 한다. 이명박 때문에 한국경제가 망한다는 비관론에 올인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경제분석은 단편적인 사실을 근거로 해서 안 되고, 긴 호흡의 패턴을 분석해야 한다. 길게 보면 조중동이 싫어하는 반시장적(?) 정책이 오히려 경제를 살린다. 국가도 경제의 한 주체라는 사실을 조중동은 모른다.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만 시장 참여자고 국가는 시장의 주체가 아니라는 발상은 어린아이의 순진한 생각이다. 분명히 말하면 국가도 시장참여자이며 그 역할은 막중하다. 시장에서 깽판 치는 자는 국가가 제지해야 한다.

 

진보는 항상 국가의 역할을 강조해왔다. 작은 정부가 아닌 큰 정부를 주장해왔다. 강만수의 잘못된 개입이 잘못된 거지 국가의 개입 자체가 무조건 잘못된 것은 아니다. 적절히 개입해야 한다.

 

박정희는 20년간 계속 경제를 망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성장으로 나타났다. 박정희가 경제 망치는 것이 뻔히 눈에 보인다고 해서 한국경제가 반드시 망한다고 예견하면 안 된다.

 

70년대에 김대중이 집권했다면 지금 두 배로 성장했을 것이다. 박정희임에도 불구하고 성장한 것이다. 이 경우 바른 판단은 ‘성장했는가 침체했는가’를 기준으로 해서는 안 된다. 원래 성장하도록 세팅되어 있기 때문이다.

 

박정희시대 성장을 남미나 필리핀과 비교해서 안 되고, 북한과 비교해서 안 되듯이 박정희경제를 논하려면 일본, 대만, 홍콩과 비교해야 한다. 박정희 때 한국은 대만보다 못했고 노무현 때 한국은 대만을 앞질렀다.

 

그러므로 박정희는 잘못했고 노무현은 잘했다. 왜 이 점이 중요한가 하면 우리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를 단위로 판단하지만 실제로 시장은 동아시아 혹은 글로벌경제라는 큰 틀에서 움직이기 때문이다.

 

박정희가 잘못해도 대한민국은 잘되도록 세팅되어 있는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명박이 삽질해도 경제는 언젠가 살아나게 되어 있다. 세팅된 구조로 보아야 한다. 지정학적 구조가 중요하다.

 

우리나라가 유럽 한 귀퉁이에 붙어 있다면 지금 국민소득이 6만 불을 넘었을 것이다. 남미에 붙어 있다면 브라질, 아르헨티나와 비슷하게 경쟁하고 있을 것이다. 아프리카에 있다면 볼 것도 없다.

 

경제는 주변환경과 같이 가도록 세팅되어 있었으므로 70년대 한국경제는 무조건 성장하게 되어 있었다. 경제라는 생물이 미국, 일본을 거쳐 한국에 상륙해서 그 영역을 슬금슬금 확장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지금 일본경제는 멈추게 되어 있다. 엔고는 금본위제로 되돌아간 효과를 낸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원리에 따라 양화가 된 엔화는 시장에서 퇴장하는 효과가 있다. 반드시 그렇게 되어 있다.

 

모두들 좋은 엔을 금고에 감추고 나쁜 원을 타인에게 주려고 하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되겠는가? 이유가 있다. 도시의 성장공식에 비유할 수 있다. 성장을 시작하면 처음에는 대도시에 자본이 집중된다.

 

박정희가 그린벨트를 두어 위성도시를 키운 것은 인위적으로 그렇게 한 것이고 가만두면 서울만 계속 성장한다. 인재도 서울로 몰리고 돈도 서울로 몰린다. 모든 것이 서울 중심으로 돌아가고 지방은 피폐해진다.

 

그러나 한계가 있다. 어느 시점에서 갑자기 서울은 슬럼화되고 지방에 부도심이 성장한다. 지구 전체로 봤을 때, 혹은 동아시아 전체를 하나의 경제단위로 봤을 때 일본은 동아시아의 서울 역할을 한 것이다.

 

아시아의 서울이라 할 일본에 돈과 인재가 몰렸다가 어떤 한계를 넘어서 이제는 슬럼화되는 단계에 진입했다. 이때 도시의 주변부가 서서히 팽창하는 것이 아니라 상당히 떨어진 거리에 부도심이 팽창한다.

 

중심에서 주변으로 서서히 커져 나가는 것이 아니라 교통이 좋고 멀리 떨어진 외곽지역에 새로운 여러 개의 도심이 생겨난다. 이는 하나를 바꾸면 전부 바꾸어야 하는 구조의 양식화 원리에 따른 필연법칙이다.

 

동아시아는 이 단계에 도달했다. 일본경제는 필연적으로 정체된다. 미국경제도 마찬가지다. 세계경제가 낮은 레벨에 머물러 있는데 미국 혼자 독주하려고 하니 무리를 저지르게 되고 결국 거품이 터지는 것이다.

 

경제는 반드시 함께 가야 한다. 그러나 리듬이 있다. 함께 간다고 해서 모두가 균일하게 함께 가지는 않는다. 거점식으로 가는 것이다. 생물이기 때문이다. 큰 나무가 씨앗을 퍼뜨릴 때 그러하다.

 

큰 나무가 무제한으로 자라나지 않는다. 고목이 되면 썩는다. 이때 나무는 주변으로 점점 세력을 키우는 게 아니라 먼 거리에 씨앗을 날려보내 자라게 한다. 큰 나무 그늘에서는 어린나무가 자랄 수 없기 때문이다.

 

경제원리의 이런 측면을 잘 살펴보면 좌파의 이념과 합치하는 점이 크다. 물론 배치되는 점도 있다. 세계경제는 궁극적으로 함께 가야 한다. 유럽이 대략 함께 가듯이. 일방의 독주는 한계에 부닥친다.

 

이웃이 가난한데 혼자 잘살기는 잠시 가능할 뿐이다. 물론 잠시는 가능하다. 잠시는 경제원리가 좌파의 기대를 배반한다. 경제는 거점성장을 하므로 특정한 거점만 부유해지고 주변은 피폐해진다.

 

그러나 계속 거점만 잘살려고 하면 총체적으로 붕괴한다. 강남만 잘살겠다고 하면 대한민국은 질식한다. 어느 단계를 지나면 주변부로 확산되어 외곽에 새로운 거점이 만들어진다. 그러면서 전체적으로 상승한다.

 

그러다가 다시 거점에 집중되는 순환패턴을 가진다. 60년대에 서울만 성장했다가 70년대에 지방으로 확산되었다가, 2000년대에 IT경제가 대두되면서 다시 서울에 집중되는 현상이 생겼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다시 지방으로 확산되는 순환패턴을 가진다. 이런 순환구조는 국가 간에도 나타난다. 일본, 미국이 잘 나가다가 멈추는 이유도 같다. 게가 허물을 벗듯이 한 단계 도약하려면 멈추어야 한다.

 

인터넷기업이 처음에는 인재가 많은 서울에서 창업하지만, 어느 정도 성장하면 환경이 좋은 외곽으로 빠져나간다. 이 단계에는 이미 성장해 있으므로 본사가 외곽에 있어도 인재가 그쪽으로 찾아오기 때문이다.

 

노조가 파업하면 장기적으로 경쟁력이 향상된다. 환경을 강조하고 규제와 감시를 까다롭게 하면 오히려 기업체질이 강화된다. 물론 항상 그런 것이 아니다. 경제원리에 그런 측면도 있다는 거다.

 

무조건 파업하고 감시할 것이 아니라, 맹아기에는 씨앗이 뿌리를 잘 내리도록 지원하는 게 맞고, 어느 정도 자라면 솎아주기와 가지치기를 하듯이 규제와 감시를 하는 것이 맞다. 여기에도 규칙이 있다.

 

무조건 비료만 팍팍 주면 웃자라게 되고, 작은 바람에도 대가 부러져 죽는다. 조중동의 ‘재벌에게 비료 주기’가 경제를 죽인다. 이런 점을 종합해보면 경제원리가 좌파의 주장에 합치되는 측면이 상당하다.

 

그러므로 경제성장은 우파, 비판과 감시는 좌파식으로 도식화되면 좌파에 불리하다. 지혜 있는 여우가 두 개의 출입구를 만들듯이 성장 측면과 감시 측면에 동시에 대응하는 것이 맞다.

 

진리 앞에서 겸허하지 않으면 안 된다. 과학으로 보면 좌파에 불리한 측면과 유리한 측면이 공존한다. 자기편에 유리한 쪽만 보고 그쪽에 올인하며 진실을 왜곡하려 들다가는 낭패를 본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가? 경제는 생물이므로 움츠리면 더 멀리 뛴다. 장애물을 만나면 움츠렸다가 높게 도약한다. 경제위기는 한국경제를 움츠리게 했다. 그러므로 얼마 후에 더 높이 도약하게 된다.

 

좌파의 묻지마 비판은 재도약의 공을 이명박에게 몰아주는 결과로 된다. 이명박의 정책을 하나하나 뜯어보면 온통 경제죽이기 일색인데도 글로벌경제가 살아나는 바람에 이명박이 경제 살린 것처럼 보여진다면?

 

경제는 적절히 쉬어가야 하고 호흡조절을 해야 한다. 과속해도 되는 것은 시장화가 되어 있지 않은 중국뿐이다. 경제가 시장화 단계를 지나면 조중동이 반대하는 반시장적 정책이 오히려 거시경제를 살린다.

 

실정이 이러하니 경제 죽인 박정희와, 죽이고 있는 이명박은 칭찬을 듣고 경제 살린 김대중과 노무현은 욕먹는 잘못된 평가가 나온다. 문제는 그 잘못된 평가에 좌파의 기여도 크다는 점이다.

 

경제가 망하는 이유는 더 큰 원인이 있다. 정치 불안, 교육 실패, 인프라 부재, 외교 고립 등이다. 외교가 가장 중요하다. 동유럽, 러시아, 중국과 수교하지 않았다면 지금 어떻게 되었겠는가?

 

마찬가지로 북한과 잘 되면 훨씬 나아진다. 그 외에는 한번 성장궤도에 올랐을 경우 경제정책을 잘못하면 잘못해서 오히려 더 잘되고, 잘하면 잘해서 더 경제를 망치는 역설이 일어난다.

 

예컨대 경제가 잘 되어 그 잘 되는 쪽에서 인재를 싹쓸이하면? 재앙이다. 빌 게이츠가 싹쓸이한 세계의 천재들이 MS에서 지금 뭐하고 있을까? 공기업이 싹쓸이한 한국의 인재들 지금 거기서 뭣하고 있을까?

 

경제는 좋은 것이 오히려 좋지 않은 것이며 좋지 않은 것이 오히려 좋은 것일 때가 너무 많다. 그러므로 위정자가 경제 잘못해서 나라가 결딴난다는 식의 비판은 매우 위험하다. 새옹지마와 같다.

 

잘못했는데도 어부지리로 이득을 보는 일은 흔하다. 종합적 안목을 가지고 보아야 한다. 긴 호흡으로 패턴분석을 하면 올바른 예측을 할 수 있다. 올바른 예측을 해서 우리가 시장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

 

지금처럼 도박을 계속하면 결국 잃는다. 우파가 무조건 성장에 건다고 해서 좌파는 보지도 않고 무조건 침체에 걸면 낭패다. 구조적 접근을 해야 한다. 예컨대 노조가 성장에 도움을 준다고 말했지만 항상은 아니다.

 

필자가 하고자 하는 말은 조중동이 필요 이상으로 노조를 공격하는 배경이 무엇인가이다. ‘노조를 통제할 수 없다는 좌절감’에 원인이 있다. 바로 그것을 지적하자는 거다. 왜 그들은 좌절감에 빠졌을까?

 

왜 그들은 자기네의 능력으로는 노조를 설득하지 못한다고 생각할까? 왜 그들은 자신을 노조도 설득하지 못하는 바보 멍청이로 여길까? 이유가 있다. 하나는 노조와 적대관계를 맺는 전략을 채택했기 때문이다.

 

둘은 자신이 부도덕한 집단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부도덕한 집단은 원래 약점이 많다. 약점이 많으므로 대화하면 약점을 찔린다. 회사가 노조와 대화하면 노조가 회사 측의 비리를 물고 늘어진다.

 

그러므로 대화가 아니라 물리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현대자동차노조만 해도 그렇다. 몽구는 뭔가 약점 잡힌 사람처럼 행동한다. 그러니 약점이 많은 조중동은 노조와 적대관계를 맺는 것이 편하다.

 

자신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할 자신이 없을 때는 덩치를 키워서 세력을 동원해야 한다. 세력을 만들기 위해 누군가를 타겟으로 찍어서 괴롭히는 이지메 술책을 써야 한다. 비열한 마녀사냥을 벌이는 것이다.

 

자기와 생각이 다르기만 하면 ‘좌빨이네’ 하는 수법을 쓴다. 이지메 전술을 계속 써먹기 위해서는 적대관계를 유지하며 ‘적이 나타났다’고 소리를 질러 공포를 조장하고 그 빌미로 세력을 만들어야 한다.

 

이런 구조는 좌파진영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좌파들은 원래 지식인집단으로서 사회의 눈과 귀가 되고 두뇌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계속 틀린 예측을 내놓아서 시장의 신뢰를 잃었다.

 

신뢰를 잃었으니 대화로 이기지 못한다. 대화에 밀릴 때는 세력을 동원해야 한다. 세력화를 위해 반대편과 적대관계를 만들어야 한다. 수구떼가 노조를 적대하듯이 경제 그 자체를 적대하는 술책을 쓴다.

 

‘경제는 나쁜 것이여. 돈은 더러운 것이여. 전원생활은 좋은 것이여.’

무엇인가? 좌파들도 좌절감에 빠져 있다. 말로 이길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돈을 딸 자신감을 잃은 도박꾼처럼 운에 맡기고 아무 데나 올인한다. ‘경제 망한다’에 올인한 결과 성장의 과실을 이명박이 독식할 판이다.

 

과학은 진보도 보수도 아니다. 그러나 진보가 먼저다. 과학은 새로운 지식을 내놓는다. 새로운 지식은 신대륙과 같다. 누가 신대륙에 먼저 가는가? 과학자가 먼저 가고, 탐험가가 먼저 가고, 자유주의자가 먼저 간다.

 

먼저 간 진보가 신대륙을 개척하여 사람이 살 수 있을 만큼 기초를 닦아놓으면 뒤늦게 무법자가 오고, 조중동이 오고 수구꼴통이 와서 인디언을 학살하고 깽판을 친다. 항상 그런 식이다.

 

과학은 중립이지만 역사는 진보의 편이다. 왜? 역사는 먼저 가서 터를 닦은 사람의 업적을 기록할 뿐 뒤에 와서 깽판을 친 무법자의 행동은 기록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자신감과 용기를 가져야 한다.

 

과학은 우리 편에 불리한 진실도 보고하지만 결국 우리 편이다. 조중동의 발호는 잠시다. 미국과 일본의 독주도 잠시다. 시장이 통합된 EU가 균등해졌듯이 글로벌경제는 거점성장을 거쳐 균등해지는 방향으로 간다.

 

백 년 후를 생각해보라. 지금 EU에 적용되고 있는 모델이 세계 전체에 적용되고 있을 것이다. 지금은 낙후한 중국 때문에 미국, 일본이 앞에서 끄는 기관차 노릇을 했지만 백 년 후에는 전차처럼 기관차가 존재하지 않게 된다.

 

필연적으로 그렇게 되도록 세팅되어 있다. 최후의 승리자는 우리가 된다. 왜? 우리가 저들보다 더 머리가 좋으니까. 저들보다 더 눈과 귀가 밝고 두뇌의 분별이 명석하니까. 최후의 승리는 돈이 아닌 문화에 돌아가니까.


(구조론닷컴 / 김동렬 / 2009-03-26)
※ 출처 - http://gujoron.com/xe/20393

 

 

< 노사모가 노무현을 버리지 않는 이유 >

                   
성경에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는 구절이 나온다. 사도바울이 감옥에 갇혀 있을 때 그의 제자들이 문안을 왔고, 걱정하는 제자들을 향해 사도 바울이 했던 말이다.

 

이 말을 쉽게 설명하자면 이런 내용이다. "너희가 걱정하는 게 뭔지 잘 안다. 그러나 걱정마라. 비록 내가 감옥에 갇힌 몸이지만, 나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명령하신 그 분의 사명은 중단되지 않는다" 는 뜻이다.

 

노사모를 비롯한 노무현 지지자들이 있다. 그들은 검찰에 불려가는 노무현을 바라보며 '응원'했다. 오전 8시에 버스에 올라 출발할 때 노란 풍선을 들고 있던 지지자들은 외쳤다. "잘 다녀 오십시요"

 

아마 잘 다녀오지는 못할 형국이다. 검찰은 이미 예상문제 외에도 1백여개의 '히든카드'를 준비했다고 한다. 거기에다 '묵비권'을 행사할까봐, 박연차를 대기시킨다. 이처럼 차, 포, 마까지 공격수단을 총 동원하는 검찰 앞에서 노무현은 한없이 작아 보인다.

 

'구속', '불구속' 사이에서 망설이는 검찰..  결국 노무현을 소환한 검찰의 입장에서는 전직 대통령을 소환하는 부담을 떠 안을만큼 철저히 준비했을 터. 문제는, 어느정도 수준의 기소를 할 것인지 여부다. 일부에서는 불구속으로 잠정 결론 지어놓고 있다는 소문도 나돈다.

 

만일 그게 사실이라면 그만큼 '효과'는 나타났다는 뜻이 된다. 일단 참여정부의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혔고, 온갖 가족사까지 천하게 까발렸다. 하지만 '구속'으로 강경입장을 고수하고 영장을 청구한다면 정치권에서 반발을 감수하지 않을 수 없다.

 

한나라당이라고 여기서 편안할 입장이 아니다. 소위 "노무현이 구속이면 이명박은 사형이다"는 식의 여론이 팽배한 가운데 자칫 검찰의 강수가 가져올 정치권의 파장은 무시 못 하기 때문이고, 현실적으로도 추부길과 천신일을 둘러싼 현 정부의 '스캔들'도 흘러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적당한 수준에서 마무리하려는 정치권과 이 참에 검찰의 '칼 맛'을 보여주려는 긴장감이 맴돈다.

 

노무현 영향력, '구속'으로도 죽지 않을 것. 그러나 정작 노무현이 구속을 당한다 해도 그의 곁을 떠날 지지자는 많지 않다. 오히려 '게시판' 효과가 나타나면서, "역대 대통령 중에 이런 진솔한 사람이 어디 있었나" 라는 반응들이 많다.

 

청와대나 한나라당, 심지어 민주당조차 예상하지 못한 이런 '노무현 효과'는 사태가 터진 이후에 생겨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노사모를 만들게 된 계기가 됐던 바로 그  '인간 노무현'이 만든 효과다.

 

그는 정치에 뛰어든 '비 정치인'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환호했고 이회창은 비웃었다. 한마디로 조직이라고는 '고교동창'들이 전부였다. 그런데 그의 대선출마가 신선했다. 마치 지금의 오바마를 바라보는 미국민의 그것처럼..

 

그래서 시민들은 '노사모'를 만들었다. 노사모도 두 종류였다.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과, 기존의 정치에 환멸을 느꼈던 사람. 지금 노무현을 떠나는 사람은 '기존 정치에 환멸을 느꼈던 사람' 에 가까운 부류들이 대부분일게다. 그들은 "에잇 여기는 깨끗한 줄 알았는데, 속았다" 며 떠났다

 

문제는 '노무현을 사랑했던 사람'들이다. 이들은 노무현의 구속, 비리, 의혹과 관련없이 그의 곁을 지키려 한다. 물론 여론을 의식하기도 한다. "조사가 다 끝 나봐야 알 수 있겠지요" 라며 연막을 친다. 아니다. 그들은 이미 조사를 다 끝냈다. 그들에게 노무현은 영원한 '무죄'다.

 

왜냐하면, 그들은 정치인 노무현을 지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앞서 인용한 성경의 구절처럼, 제자들은 스승인 바울이 감옥에 갇혀서 걱정일 뿐, 그 스승을 떠날 마음은 없다. 떠나려 했다면 아예 감옥에 찾아 올 리도 없었으니까..

 

노무현의 아우라가 바로 이것이다. '명박사랑'을 비롯한 이명박 펜클럽들이 있다. 그들은 이명박을 사랑할까. 아니면 '경제를 살려주실' 구세주로 기대할까. 노사모들 처럼 '인간 이명박'을 사랑할까.. 궁금하다.

 

참 대책이 없는 집단이 바로 '노사모'다. 그저 좋단다. 사람 좋은데 이유가 있느냐며 마냥 '노무현'이 좋단다. 그래서 스스로 '노빠'라며 자랑하고 다닌다. 바보 노무현 곁을 지키는 바보 노사모들이다.

 

이것이 바로 노무현의 힘이다. 법적 평가 이후의 노무현, 지지자들을 더욱 결집시킬 듯 노무현이라면 치를 떠는 조갑제는 노무현을 사형시키란다. "법률적으로 구성하면 노무현의 행동은 헌법파괴이고 국헌문란이고 여적죄(與敵罪)에 해당할 것이다. 형법상의 여적죄는 적국과 합세, 조국을 적으로 삼아 공격한 죄인인데, 형량은 사형 뿐이다"(4월15일 홈페이지) 라고..

 

칼날을 들이대는 조갑제를 비롯한 보수인사들과 정부와 여당, 그리고 반노 정서를 가진 사람들은 노무현을 매장시키고 싶을 만큼 밉다. 특히 재보궐 선거에서 참패를 한 한나라당은 노무현이라도 죽어줘야 구겨진 체면에 조금이라도 위로가 될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봐도, 이들의 '노무현 때리기' 는 노사모와 지지자들에게는 그야말로 '동기부여'를 심어주기에 딱이다.

 

차라리 정말로 노무현을 죽이고 싶다면, 노무현보다 더 '빡쎈' 강도로 이명박이 참회의 눈물을 흘리면 된다. "대통령이 되고 싶어서 BBK 거짓말 했고, 내 마누라와 자식들, 그리고 친인척들은 비리의 온상입니다. 따라서 저는 대통령 자격이 없는 인간입니다." 라며.. 그러면 이명박은 살고, 노무현은 죽는다. 그는 살아있는 권력이기 때문이다.

 

청와대를 둘러싼 각종 루머들과 현 정부와 관련된 의혹들을 숨기고, 검찰과 판검사들에게 압력을 넣는 냄새를 풍기면서도 권력이 영원할 것 같이 착각을 하고 있는 이상, 결코 '바보 노무현'을 죽일 수는 없다.

 

앞서 인용한 성경구절을 좀 더 부연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바울이 지금 감옥에 갇혔다고 해서 복음이 중단되는 게 아니다. 왜냐하면 '복음'이란 것이 인간의 형편에 따라 중단되는게 아니기 때문이다. 나무로 만든 집에서 나무를 없애면 집이 무너지지만, 쇠로 된 집에서 나무재료를 다 없애도 집은 무너지지 않는것과 같은 이치다.

 

그래서 노무현에게서 '정치적인 생명'을 빼앗아도 노사모는 그를 버리지 않는다. 노사모는 '정치인 노무현'을 기대했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인간 노무현'을 사랑했다. 

 
 <진민용 기자의 블로그에서 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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