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미국 싱어송라이터 키드 록(52)이 강가에 모습을 드러낸다. 록은 트럼프의 대선 캐치 프레이즈였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는 문구의 이니셜(MAGA)이 새겨진 모자를 쓰고 있다. 그는 탁자 위에 ‘버드라이트’ 맥주 캔을 쌓아놓고 반자동 소총을 수십 발 발사해 전부 박살내버린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는 미국의 싱어송라이터가 버드라이트 맥주캔을 쌓아놓고 반자동 소총으로 수 십발을 발사해 전부 박살내 버렸다.
이유는 버드라이트가 멀바니라는 트랜스젠더에게 특별 제작한 맥주캔을 보내면서다.
이러한 행동은 자본주의에서 수동적일 수밖에 없는 소비자가 자본가에게 대항하는 불매운동이다.
소비자의 보이콧은 소비자 운동이다.
자본주의에서 자본가는 주인, 노동자는 노예이다.
자유가 있는 자 주인이고 자유가 없는 자 노예이다.
자기 스스로 자신을 고용한 자 주인이고 남에게 고용을 맡긴 자 노예이다.
자신을 스스로 고용하는 것은 물론 남까지 고용하면 자본가라 한다.
반대로 남에게 고용되면 임금 노동자다.
따라서 임금노동자는 고용의 측면에서 노예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노동자가 노예가 아닌 주인이 되는 때가 있다.
그 때는 바로 노동자가 아닌 소비자가 되는 때이다.
자본주의에서 자본가는 자본 증식을 해야 한다.
그래야 자본주의에서 영원히 자본가로 남을 수 있다.
자본증식을 위해서는 반드시 물건을 만들어 팔아 이익을 남겨야 한다.
그래야 그 돈으로 다시 물건을 만들 수 있다.
만약 물건을 팔 수 없다면 영원한 자본증식은 커녕 파산이다.
자본가가 이익을 남기는 행위를 잉여가치의 실현이라 한다.
잉여가치가 실현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자본가가 만든 생산물이 소비자에게 팔리느냐 아니냐에 달려있다.
즉 노동자가 자신이 만든 물건을 되사는 것이 자본가에 있어 가장 중요한 때라는 것이다.
생산과정에서는 자본가와 노동자가 주인과 노예의 관계라 했다.
그러나 반대로 소비 과정에서는 소비자와 자본가는 반대의 상황이 된다.
즉 소비자가 주인, 자본가가 노예다.
선택권이 있는 자 주인이되고 선택 받는 자 노예가 된다.
그러니 소비자는 소비를 할 때 비로소 자유를 느낀다.
왜냐하면 소비자는 자신의 의지로 화폐와 물건을 교환하며 소비하기 때문이다.
소비자의 의지가 바로 자유다.
소비자의 소비 의지는 주로 취향에 의존한다.
그래서 애초부터 소비자 운동이 될 수 없다.
상품 소비는 자신이 좋으면 사고 싫으면 안 사는 것이다.
소비자의 취향은 제각기 다르다.
만약 상품 소비의 자유마저 소비자 운동이라는 이름으로 빼앗기면 소비자는 어디에서 자유를 찾는가?
그래서 자본주의에서 소비자 운동이 자발적으로 일어나기는 힘들다.
반대로 뭉치기 쉬운 이익집단은 자신들의 의지를 관철시키기 쉽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는 되는 의약품 배달이 한국에서는 안 된다.
일본, 미국에서는 되는 비대면 진료가 한국에서는 안 된다.
그래서 소비자 운동은 주로 중국과 같은 공산주의 국가에서 관제데모 형식으로 벌어진다.
사드 배치로 중국이 한국에 경고를 할 때 중국 정부가 나설 수 없으니 중국 인민을 동원해 한국제품 불매운동을 했다.
중국 인민은 한국의 현대차를 불태우고 롯데마트를 못가게 막아섰다.
소비자 운동이 주로 관제데모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소비자는 하나로 뭉치기 힘들기 때문이다.
중국정부의 의지로 돈으로 인민을 사서 소비자 운동으로 포장해 한국 제품을 보이콧 한 것이다.
소비자 운동은 근본적으로 정치적 성향의 불매운동이다.
H&M은 중국 신장위구르 강제노역 입장을 밝혔다가 중국으로부터 불매운동을 당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러시아에서 철수하지 않은 코카콜라, 맥도날드도 불매운동 대상이 되어서 결국 러시아 사업을 접었다.
이런 소비자운동이 요즘와서 더 심해지고 잦아지고 있다.
이유는 SNS나 유튜브 등과 같은 스마트폰의 앱 때문이다.
우리가 SNS나 유튜브를 보다보면 인공지능이 우리의 취향을 더 극단적으로 만든다.
성향이 같은 컨텐츠를 지속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넷플릭스를 보다보면 내가 좋아하는 장르를 추천해 주기 때문에 좋아하는 장르에 더 심취하게 된다.
그래서 취향은 한 쪽으로 치우치게 된다.
한 쪽으로 치우치면 칠수록 더 감정적이 된다.
감정적인 사람일수록 더 적극적으로 행동한다.
그래서 SNS를 통해 헤시태그 운동이 벌어지면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선다.
만약 행동에 나서지 않으면 생각없는 사람으로 페친들에게 찍힐 수 있다.
그렇다면 나는 SNS에 의해 조종 당한 것인가?
아니면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어 행동하는 주체가 된 것인가?
결론 : 자본주의에서 소비자는 소비를 할 때 자유를 느낀다.
상품 선택의 자유의지는 자신의 취향이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취향은 과연 진짜 내 취향인가?
아니면 AI가 만들어낸 취향인가?
아니면 광고가 만들어진 취향일뿐인가?
아니면 내 취향이란 원래 없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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