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착하는 ‘두 개의 서양’과 반복되는 일본의 ‘탈아입구脫亞入歐’
(WWW.SURPRISE.OR.KR / 김종익 / 2023-02-21)
니시타니 오사무西谷修
1950년생, 도쿄외국어 대학 명예 교수. 프랑스 사상, 비교 문명학 전공.
『죽지 않는 Wonderland』, 『전쟁론』, 『세계사의 임계』, 『우리는 어떤 세계를 살고 있나』, 『미국 – 괴이한 제도 공간』, 『테러와의 전쟁』 등의 전서가 있다.
■ 국제 정세와 ‘사고의 operating system’
북한이 외부의 시선 따위는 전혀 개의치 않고 개발하는 ‘핵 공격 능력’을 과시하며 미사일 발사를 반복한다. 우크라이나 침공 실패로 궁지에 몰린 러시아가 핵무기 사용으로 나갈 위험이 있다…. 러시아의 궁지를 보고 있는 중국은 ‘타이완 무력 병합’을 단념할까…. 세계는 불온한 국면에 접어들었다.
이런 긴장 상태 속에서, ‘민주주의 국가들’은 ‘전제주의 국가들’의 위협에 대비해, 한층 ‘억지력’의 정비에 힘을 쏟지 않을 수 없다. 전제주의 국가의 폭거에 굴해서는 안 된다. 세계의 ‘법과 질서’를 지키기 위해, 그것이 국제 정의임을 보이기 위해 일치해 싸워야 한다, 적의 폭력은 무법하고 잔학하다. 국민을 지키기 위한 희생은 마다해서는 안 된다. 설령 그것으로 핵전쟁이 일어난다 하더라도(먼저 손을 대는 것은 저쪽이니까) ….
전 세계를 불타오르게 한 제2차 세계대전이 핵무기로 종결되고 80년이 경과했다. 점차 왜 세계 전쟁이 일어났는지 점점 잊히는 것일까, 그것도 완전하게. 아니면 핵에 의한 ‘전쟁 불가능’이, 진보의 나선을 한 바퀴 돌아 ‘극복된’ 것일까, 복어 독을 즐기듯이 핵전쟁의 도화선을 가지고 장난질을 하면서, 전쟁을 하는 (국가는 전쟁을 하고, 인간은 싸우고, 동원된다) 것이 당연해진 듯하다.
지금 ‘전쟁을 향해 가는 쏠림’을 만들어 내는 존재는 미국이다. 핵무기를 최초로 개발하고, 실제로 사용한 유일한 나라로, 그 일을 한 번도 반성한 적이 없고, 자국의 핵무기 최대 보유를 위험한 타국의 ‘비핵화’를 위한 ‘억지력’으로서 계속 정당화하는 유일한 초강대국이다. ‘억지’란 말할 것도 없이 ‘공포terror에 의한 공갈’이다(졸저 『테러와의 전쟁』 참조). 바로 그런 대국이 ‘발칙한 나라’가 사용할 위험이 있다고 세계에 경고한다. 그러면서 이 나라는 항쟁(전쟁)을 시작하라고 선동할망정, 일어난 전쟁을 결코 멈추게 하려고 하지 않는다(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한반도에서도 타이완 해협에서도). 그것이 전쟁이 일어날 때마다 군수 산업으로 압도적 이익을 올리는 나라이기도 하다는 사실은, 여기서는 언급하지 않겠지만.
2022년은 ‘중일 국교 정상화 50주년’이 되는 해다. 1972년의 중일 공동 성명은, 냉전 상황에서 두절되었던 양국 국교를 회복한 일 이상으로 획기적이었다. 왜냐하면, 근대에 서양형 국가 간의 질서가 아시아에도 확산되고, 중국이 잠식되는 동안에 일본이 플레이어로 거기에 참여한 이후, 일본과 중국(청 → 중화민국 → 중화인민공화국)의 관계가 두 나라 상호 간에 열린, 사실은 최초의 기회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양국은 처음으로 대등한 국가로서 상호 승인하고, 그때까지의 착종된 관계를 ‘청산’하고 (일본이 과거 중국 침략을 반성․사죄하고, 중국은 피해 청구권을 포기했다), 이후 관계 구축과 다방면에 걸친 교류를 기약했다.
그 후, 민간 교류는 서서히 확대되어, 양국의 경제 관계는 떼려야 뗄 수 없게 될 만큼 심화되었다. 한편으로 일본은 냉전 후에도(동서 대립은 끝났는데도), 미일 안보 체제하에서 미국에 동조할 뿐만 아니라 ‘일체화’를 진행하며, 국제 관계 속에서는 중국의 발전을 견제하는 쪽에 서 왔다. 특히 2000년대 이후,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 부담으로 기울기 시작하자, 글로벌 경제하에서 성장한 중국은 미국에게는 ‘최대의 경쟁 상대’가 되어(잘 알려져 있듯이 2010년에는 GDP에서 일본을 제치고, 2030년 전에는 미국을 넘어 세계 최고가 된다고 예측되고 있다), 그 ‘위협’이 세계에 강조되게 된다. 이르되 “인권 탄압” “독재” “무역 부정” “영토적 야심” 따위로. 중국은 ‘서양적 가치를 공유하지 않는’ 발칙한 어울리지 않는 존재로, 군사적으로도 최대 위협으로 여기고 있다.
그런 흐름 속에서, 전 도쿄도 지사가 불을 지른 ‘센카쿠 영유 문제’를 둘러싸고 중일 관계는 악화일로이고, 그 결과 아시아의 ‘미래’를 여는 것이 분명했던 국교 정상화 이후 50년은, 거의 무로 돌아간 듯하다. 그 기념 대신에, 근년의 일본에서 ‘역사 수정주의’의 승리를 꾀하는 듯한 전 수상의 ‘국장國葬’이 국민 대다수의 반대를 무시하고 강행되었다(정부는 되돌릴 수 없다).
때마침 올해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고, 그 침공 상황을 동아시아에 그대로 옮겨서 대입해 ‘전제專制 국가의 위협’이 선전되고, 미국의 유력 정치인이 일부러 도발하러 와서 ‘타이완 위기’를 달구고 있다. 일본 정부(만이 아니라 일반적 ‘분위기’도)는 이런 상황에 그저 미국 주장에 추종할 뿐만 아니라, 이런 계기에 NATO와의 연대까지 내놓았다. ‘탈아입구’의 재탕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중일 공동 성명으로 되돌아가라고 한다면, 언론 논평도 ‘친중국’이라고 비판하는 것이 대체적인 분위기가 되었다. 중국은 시진핑이 (러시아 푸틴과 마찬가지로) 임기를 철폐한 독재 국가가 아니냐고. 이런 ‘분위기’(좀 더 요즘 식으로 말하면 ‘사고의 operating system’)는 어디에서 왔을까.
■ ‘西側’이란 뭘까?
일본(정부)은 최근 20여 년간, 특히 ‘테러와의 전쟁’에 참가할 무렵부터 “서측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과 연대하고…”라고, 자신의 외교 자세를 강조해 왔다. 이것은 뭔 말일까?
일본에서 ‘서측’이라고 하면 동서 냉전기의 ‘서측’이라는 게 된다. 말하자면 냉전에 승리한 측으로, 세상에서 말하는 ‘자유․민주주의’와 ‘인권 보호’를 내걸어 왔다(자본주의란, 자유주의 경제 형태이다). 그 ‘서측’은 벽 저쪽의 强權과 專制의 ‘동측東側’(사회주의권)을 해체하고, 그 요소들(인간․물건․조직)을 자유 시장에 풀어 주었다고 간주한다. 이것이 1992년 이후의 글로벌화라고 불리는 시대를 열었다.
그 ‘서측’이란, 미국식 영어로는 ‘west’라고 불리는 것이 보통이지만, 본래는 라틴어 유래의 ‘서양occident’으로, 유럽에서는 명백하게 이해하고 있다. 냉전기 동서 구분은, 제2차 세계대전 말기 얄타 회담에서 결정된 유럽․미국과 소련의 영향권 분할로 인한 것이지만, 이 자유주의권과 사회주의권 분할은, 사실은 오래 전부터 유럽의 경계선과 거의 겹치고 있었다. 이것을 종교적으로 보면, 기독교 세계를 동서로 가른 로마 가톨릭과 동방정교의 경계이며, 나아가 그 기원이 된 것은 로마 제국의 ‘동서 분열’이다. 지중해 세계 전역을 영유한 로마 제국이 4세기 말에 동서로 분열하고, 그 서반부가 ‘서방occident 제국’, 동반부가 ‘동방orient 제국’으로 불린 것이 최초의 구분이다. ‘서방occident’은 거기에서 발상했다.
다만, 서방 제국은 게르만인 침공을 받아 1세기도 버티지 못 하고 멸망한다(476년). 그리고 콘스탄티노플을 수도로 하는 동방 제국이, 그 후 천 년에 걸쳐 정교를 통치에 편입한 로마 제국으로 존속해 간다. 한편, ‘서방occident’은 지도상에서는 일단 소멸하지만, 로마 교회는 게르만 왕들에게 지배의 정통성을 부여하는 공통의 권위로서 존속하며, 이윽고 동방 교회로부터 독립을 주장한다. 바로 그 로마 교회가 ‘세계 구제’의 본산으로 지위를 확립하는 것은 11~12세기이다. 동방에서 로마법(유스티니아누스법전)이 도입되어, 여기에 맞춰 성속聖俗 양쪽에 걸친 로마법과 카논법Canon law이 정비되고, 그 제도를 구축하는 가운데 로마 주교는, 신앙 세계에서 예전의 로마 황제에 비견되는 지위를 차지하는 체제가 만들어졌다(미국의 법학자 해롤드 J 버만Harold Joseph Berman은 이 결정적 사건을 ‘교황 혁명’으로 부른다). 이때 로마 교회는 ‘세계를 밑바탕에서 바꾸는’ 것을 사명으로 내걸었다. 바로 ‘죄에 빠진 전 세계를 구제하는’ 것, 세계 포교이며, 교황이 그 진두에 선다는 것이다.
이 사명은, 바야흐로 종교 개혁을 거쳐 교회의 권위가 ‘中性化’(Carl Schmitt)되는 세속 권력(국가들)의 시대에는, ‘문명화 사명’으로 갈아입게 된다. ‘기독교 교권敎圈’으로도 불린 이 ‘세계 구제’의 주체가, 이렇게 해서 재창설된 ‘서방occident’인 것이다. 이 ‘서방occident’은 이윽고 자신을 ‘세계사의 주체’ 바로 세계의 일원화를 담당하는 주체로 자인한다(헤겔 철학이 표현). 이 역사적 운동은 ‘西’에서 시작되고, ‘동방orient’은, ‘서방occident’에서 본 대상 영역에 지나지 않는다. 그 때문에, 당초는 동로마였지만, 이윽고 ‘동방’이 되고, ‘서측’의 시야 확대에 따라 터키, 이집트, 인도, 또는 러시아 및 우랄산맥 동쪽이라는 식으로 필요에 따라 바뀌어 간다. 그렇지만 그 시야를 발하는 곳은 어디까지나 ‘서측’인 것이다(동로마제국이 오스만튀르크에 멸망하게 되자, 정교는 그 거점을 유럽 밖인 러시아로 옮겨간다).
■ 서양에 의한 세계화와 성취
일본어에서는 이것을 ‘서양’으로 옮기고 있다. ‘西歐’로 번역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게 하면 ‘서유럽’을 가리키는 게 되어 미국이 제외된다. 나중에 보듯이(모두가 아는 것처럼) 미국도 ‘서양’이다. 그래서 ‘occident’에 서구라는 번역은 적절하지 않다. 또 ‘화환양재和魂洋才’라는 정형적 표현도 있는데, 이 경우 ‘洋’이란 서양의 ‘양’이다. 일본은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洋’을 맞대고 있지만, 이미 기술했듯이, ‘occident’는 ‘서방’이기도 하고 ‘서측’이기도 하다.
그런 occident는, 르네상스(재생!)를 거쳐 ‘동방’에 등을 돌리고, ‘지리상의 발견’ 이후, 그때까지의 중심․매개였던 ‘지중해’를, 포르투갈을 축으로 크게 반전시켜, 대서양을 통해 세계적 진출을 시작한다. 그리고 내부에서는 종교 개혁을 거쳐, ‘세속화’(정교 분리)하고, 신의 창조에 의한 은총 세계에서 인간의 합리적 또는 공리적 지성에 의한 생산 세계로 탈피해, 산업혁명과 시민혁명을 거쳐 자유와 민주주의( 및 자본제 생산) 국민 국가 체제를 만들어 낸다. 그런 국제적 틀이 되었던 것이 웨스트팔리아 체제였다. 이 체제에 의해 유럽은 주권 국가 간의 질서가 형성되고, 상호 승인 관계로 역내의 전쟁을 억지하면서 그 ‘문명’을 세계로 확대해 가게 되었다.
서양 국가들은 이 틀로 각자 해외로 진출해, 영토를 획득하고 식민지 지배를 확장해 간다. 이 프로세스를 서양 국가들에 의한 세계 정복과 통합이라고 해 두자. 다른 지역을 문명적으로 지체된 지역으로 여겨 지배하고, 거기에 서양적 제도와 가치를 이식하고 침투시켜 통합해 가는 것이다. 거기에서 근대 인종주의가 생긴다. 피지배자는 다양하지만, 지배자는 늘 ‘서양인’(백인으로 기독교인)이기 때문이다(다만, 일본만이 예외가 되었다. 왜냐하면, 일본은 서양이 아니면서 유일하게 ‘서양화’하여, 식민지 제국이 된 나라이니까).
하지만 땅덩어리는 한정되어 있어 바야흐로 서양의 세계화는 포화 상태에 이른다. 아프리카 분할 협의도 이루어지지만, 식민지 획득 경쟁은 내부로 반전해 유럽에 ‘큰 전쟁’이 일어난다. 당시 유럽이 세계의 중심 영역이었기 때문에, 이것은 나중에 제1차 세계대전으로 불린다. ‘서양의 몰락’이 이야기되고, 웨스트팔리아 체제의 ‘무차별 전쟁관’(전쟁은 주권 국가의 권리, 선악은 아니다, 법칙에 따르면 타당하다)에 의문이 생기고, 전쟁은 죄악시되고, 조정 기관으로서의 국제연맹이 만들어지고, 켈로그브리앙 부전不戰 조약Kellogg-Briand Pact(1928년 Paris에서 미국·프랑스·영국·독일·일본·이탈리아 등의 여러 나라 사이에 체결된 전쟁 포기 협정 ; 초대 프랑스 외상 A. Briand이 F. B. Kellogg에게 호소한 것으로 자위 목적의 전쟁은 예외로 하였음 – 역주) 시도와 군축 회의가 개최된다.
그러나 전쟁 회피 시도에도 불구하고, 세계는 다시 전면 전쟁의 도가니에 빠진다. 제2차 세계대전이다. 이 전쟁은 문자 그대로 ‘세계의 붕괴’를 초래하고(철학자들은 ‘문명’의 정점에서의 파탄이라고 한다), 사실상의 ‘최후 무기’인 핵무기 개발․사용으로 끝났다. 그 때문에, ‘서양’은 제1차 대전 이상으로 심각하게 존재 방식을 바꿔야 했다(세계 전쟁은 언제나 서양에서 일어난다).
아니면 ‘변질’을 수용해야 했다. 하나는 국내 분단이 대외 전쟁에 대한 압력이 되는 것을 회피하기 위해, ‘사회적 공정’을 도입할 것. 특히 노동권 보장을 통해 사회의 공정과 안정을 지향한다(ILO). 그리고 또 하나는, 만인의 생존을 보장하기 마련인 ‘인권’(개인의 존엄)을 서양이 아닌 지역에도 확대할 것, 말하자면 ‘보편적 인권’의 승인이다. 그리고 그것과 병행해, 여러 국가의 대등․평등 관계와 그 상호성 확보가 ‘이념’으로 요구되게 된다. 달리 말하면, 서양적 가치와 사회 원리는, 서양 고유의 특권이 아니라, 널리 보편적으로 세계의 것이 되고, ‘서양’은 자신이 편성한 세계 안에서 그 일부로 풀려 사라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보편적 인권’이며, 여러 국가의 ‘자립․공존’이다.
그것이 서양에 의한 세계의 전체화(‘하나의 세계’)와 그 도달점으로서의 ‘세계 전쟁’ 파탄이 초래한 귀결이었다고 할 수 있다(서양의 자기 해소에 의한 다양 세계의 긍정).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는 되지 않았다. 서양 자신 안에 거기에 저항하는 힘이 작동하고 있었던 것과, 무엇보다 ‘또 하나의 서양’이 있었기 때문이다.
■ ‘새로운 서양’과 그 적
‘동’으로부터의 압력으로 ‘서’로 대서양을 넘어 세계 개척(포교)에 나선 유럽은, 먼저 신대륙을 ‘발견’하고 영유했다. 초기에는 아메리카 대륙의 중남부로, 대부분은 스페인 제국 통치하에 들어간다(16세기 전반). 그러나 약 100년 뒤에, 남은 북아메리카는 ‘처녀지’로 간주되어, 영국 식민 회사가 개척․경영하는 ‘신세계’가 되어 간다. 간단하게 말하면, 선주민은 모두 무권리자로 간주되어, ‘주인 없는 땅’에 불가침의 사적 소유권을 설정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하는 ‘가진 자의 자유’(존 로크)의 영역이 조성되었다. 그 ‘자유’는, 권리 주체가 될 수 있는 기독교 유럽 출신의 이주자만이 누릴 수 있다. 이윽고 이 ‘이민의 땅’은, 영국 국왕의 영유권을 끊어내고, 문자 그대로 ‘자유의 나라 미국’으로 독립한다. 그리고 머지않아 ‘전쟁 질서’인 웨스트팔리아 체제의 ‘낡은 유럽(구세계)’의 멍에를 벗어버리고, 이른바 먼로 선언으로 ‘아메리카 대륙’이 ‘새로운 유럽(신세계)’임을 표명하게 된다.
먼로 선언 1823년 12월 미국의 제5대 대통령 제임스 먼로가 의회에 제출한 연두 교서에서 밝힌 외교 방침. 러시아의 태평양 진출과 독립 직후의 라틴아메리카 여러 나라에 대한 유럽으로부터의 간섭에 대처하기 위해, 영국이 공동 선언을 제의한 데 대해 미국이 독자적으로 선언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 국무장관 J.Q.애덤스의 의견이 받아들여져 발표되었다. 먼로 선언의 근원은 대통령 G.워싱턴 이래의 고립주의에 의한 것이지만 그것을 더욱 명확하게 하여, ① 미국의 유럽에 대한 불간섭 원칙, ② 유럽의 미국 대륙에 대한 불간섭 원칙, ③ 유럽 제국에 의한 식민지 건설 배격의 원칙 등 3개 원칙을 분명히 했다. 먼로 선언은 미국 외교 정책의 일방적 표현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국제법과 같은 강제력을 가지는 것은 아니지만 실제적인 효과는 충분히 있었고, 또 각종 사건에 의해 국제적으로도 사실상 이를 승인하는 결과가 되었다. 예컨대, 베네수엘라 국경 분쟁에서 국무장관 오르니가 먼로 선언에 기초를 둔 강경한 의견을 제시한 데 대해 영국이 그것을 인정한 점 등이다.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이러한 외교 방침을 더욱 확산시켜, 미국이 아메리카 대륙에서 국제 경찰력을 행사할 것을 주장하고, 카리브해 지역으로의 진출을 정당화하였으며, 미국 이외의 나라가 영토적으로 발전하는 것을 배척했다. - 역주 |
이렇게 하여, 유럽의 세계 전개 단서에서, 거기에서 스핀 아웃한 미국은, 1776년에 동부 13개주의 연방 국가(아메리카합주국合州國)가 되고, 반세기 남짓 뒤에는 북미 대륙을 횡단해 태평양에 도달한다. 산업적 근대를 미개척지로 가지고 들어간 이 나라는 얼마 지나지 않아 세계 제일의 공업국이 되어, 팽창 충동에 시달린 나머지 해외 진출을 시작한다. 그 진출 방식에 이 ‘신세계’의 성격이 여실히 드러난다.
주인 없는 땅에 소유권을 설정해 자유 처분을 가능하게 하고, 대지는 부동산으로, 부수하는 자연은 자원․자재로 상품화(야만적인 인종도), 그리고 통치도 경제 동기화한 나라다. 욕망이 사회의 구동력이고, 벌이는 재주, 정치적 결정은 투표로 수치화, 돈으로 모든 것을 살 수 있는, 그 자체가 자유로운 민주주의라는 경제 ‘본위’ 시스템이다.
이 나라는 정복이 아니라 ‘해방’을 위해 전쟁을 한다. 먼저 낡은 제국 지배로부터 각 지역을 ‘해방’한다고 하며 스페인과 전쟁을 벌이기 시작했다(쿠바의 Maine호 사건으로 미국․스페인 전쟁). 제국 지배에서 해방하고, 거기에 금권 자유 시장을 들여오면 ‘친미’ 자산가들의 통치 체제가 가능하여, 자신의 손을 더럽히지 않고도, 거기는 빈부 차를 바탕으로 한 부유층이 지배하게 되어, 미국으로 자원과 인재가 흘러들어 가는 ‘자유로운’ 나라가 된다(나오미 클라인은 『Shock Doctrine』에서 미국의 ‘쇼크(참사) 요법’에 의한 세계의 신자유주의화를 그려냈는데, 이 Shock Doctrine은 이른바 ‘포스트 사회주의’의 미국 주도의 새로운 경제 전략이라기보다, 사실은 ‘미국’ 창설 이래 하는 짓이며, 신자유주의의 ‘신’이란 다른 것이 아닌 ‘신세계’의 ‘신’인 것이다). 그 ‘자유화’가 이루어지기까지는 ‘안정화’를 위해 미군이 주둔하게 된다.
Maine호 사건 1898년, 미국․스페인 전쟁의 단서가 된 쿠바에서 미국 군함 폭침 사건. 1891년 2월, 당시 스페인령이었던 쿠바의 하바나 외항에 정박하고 있던 미국 군함 Maine호가 갑자기 폭침해 250명의 승조원이 사망했다. 폭침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미국 국내의 여론은 스페인의 모략이라는 견해가 강했지만, 미국의 모략적 격침이라고도 일컬어졌다. - 역주 |
아메리카합주국은, 제1차․제2차 세계대전을 거쳐 ‘낡은 서양’의 헤게모니를 계승하는 ‘새로운 서양’이 된다. 파탄이 나고 좌절한 것은 유럽이고, 미국은 ‘노화’가 초래하는 혼란에서 ‘서양’과 세계를 구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전쟁에 싫증낼 이유는 없다.
게다가 이미 그때 ‘신세계’의 불구대천의 적이 대두하고 있었다. 파시즘과는 함께 싸웠지만, ‘소유에 기초한 자유’를 부정하는 체제, 소련 사회주의권이 ‘혁명의 수출’을 표방하며 ‘자유의 나라’에 대치하게 되었다. 그것도 핵무기를 품은 대립이다. 이 대립은 ‘냉전’으로 세계에 확대되었는데, 이 일로 ‘서측’에 새로운 이데올로기적 의미를 부여하게 되었다. ‘자유 대 통제’. 하지만 대립의 축은 여전히 유럽 일색이다(유럽은 웨스트팔리아권으로 주권 국가 체제를 취하고 있었지만, 동방 러시아는 우랄산맥 서쪽에 축을 두고 있지만, 저쪽에 획정되지 않은 광대한 지역을 품은 광역 국가로 타민족, 그런 의미에서 유럽과 어울리지 않는 ‘異物’이다). 그래서 NATO가 결성되었다. NATO라는 것은 뭔가? 이것은 미국과 유럽이 핵 억제론 아래 한 몸이 되어, 소련의 핵전력에 대치하는 ‘서측’ 군사 동맹이다. 이 군사 동맹이 ‘낡은 유럽’을, 북대서양을 끼고 미국에 붙들어 매어지게 만드는 꺾쇠가 된다.
냉전은 ‘서측 승리’로 끝났다. 소련은 경제사회적으로 정체되고, 핵 대치도 과도한 부담이 되어, 40년 후에 개혁을 내걸었던 고르바초프 정권하에, 스스로 해제하게 되었다. ‘서측’은 이것을 ‘자유민주주의’ 승리라고 하며, 옛 소련에게도 ‘Shock Doctrine’을 적용했다. 이른바 자유 경제 도입, 그리고 시장 일원화라고 일컫는 것이다. 그로 인해 동구․러시아 사회는 대혼란에 빠졌다(각국의 상세한 상황과 또 그 시기, 같은 공산당 통치지만 ‘동’이라고도 ‘서’라고도 할 수 없는 중국이 어떻게 되고 있었던가에 대해서 여기서 언급하지 않는다).
세계에서는 ‘서측의 원리들’이 홍수처럼 ‘낡은’ 사회들을 침식했다. 그 결과, ‘서측’은 ‘동’과 ‘남’을 무력화하고 전 세계(보편)로 침투해 거기에 녹아들지 않았던가? 그렇게는 되지 않았다. ‘서측’은 변함없이 세계의 중추 ‘서측’으로 계속 남았다. ‘문명’의 주도권을 주장하며, 혹은 잔존하는 새로운 ‘異物’의 출현에 대비해? 다만 그 역할을 담당하는 것은 ‘새로운 서양’인 미국이다. ‘테러와의 전쟁’ 체제를 세계에 편 것은 미국이고, 그것이 좌절되고 나서는, ‘테러 지원 국가’의 변형variation으로 ‘전제주의 국가’를 애매하게 지명하여, ‘서양 vs 비서양 異物’이라는 도식을 변주시키고 있다. 그때 NATO는 ‘낡은 유럽’이 이런 대립 도식에서 헤매지 않도록 꽉 붙들어 매는 꺾쇠가 되고 있다(프랑스와 독일이 냉전 후에 러시아와의 관계를 독자적으로 다시 맺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 중국이라는 삼킬 수 없는 異物
결론을 서두르자. ‘西’란 본래 하나의 方位에 불과하다. 그러니까 상대적인 위치 지시이다. 적어도 이것은 ‘東’이 없이는 의미를 이루지 못 한다. 그러나 ‘occident’는 세계 종교(로마 가톨릭)를 축으로 하여 자기 정립을 하고, ‘西’와 나머지 세계를 통합해 가는 이른바 문명적 운동체가 된다. 이것이 전 세계를 ‘西’化하여, 어느 사이에 동도 서도 북도 남도 없어진다면, 어디서든 그 ‘공덕’을 수용할 것이다. 그때에는, 가는 곳마다 각각의 동서남북이 있고, 그것이 상호적 위치 관계로서 교체할 수 있는 세계가 생길지도 모른다. 각 지역의 고유성은 무한한 상관 속에 상호 활용될지 모른다(꿈같은 얘기일까).
세계의 서양화․근대화는, 기본적으로는 토속 공통성․제도 체계를 해체하고, 개체의 자유 경쟁으로 이루어진다고 여겨지는 근대 사회로 재편되는 방향으로 진행된다. 특히 ‘새로운 서양’은, ‘있었던 것을 없었던 것으로 하고’(근본적으로 역사 말살 또는 수정주의다), 모든 것을 ‘신세계’로 고쳐 쓰고 고쳐 만든다. 그렇지 않으면, 선주민 세계를 문자 그대로 말살하고 미개발지로 삼아, 그 위에 ‘불가침한 사적 소유권’으로 유지되는 ‘자유’의 영역을 만든 ‘원죄’(미국의 원죄를 이야기하자면, 그것은 노예제 역사가 아니라 바로 이것이다)에서 해방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적인 것’은 ‘세계를 고쳐 만드는’ 충동을 갖는다. 이 때문에 세계의 ‘맹주’가 되었을 때에는, 그 영향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항상 ‘외부’를 만들어내어, 그것을 해체․해방하려고 한다.
사회주의권은, 전후 ‘서측’의 불구대천의 적이었다. 그리고 그 사회주의권이 해체되기 전후로 ‘서측’의 새로운 異物은 이미 지명되어 있었다. 서양화=세계화의 압력 속에서 부흥해 온 ‘아랍․이슬람’ 세계다. 미국을 축으로 하는 ‘서양’은 아랍․이슬람을 상대로 ‘테러와의 전쟁’ 체제를 글로벌 규모에서 편다. 그것은 ‘적’을 ‘테러리스트’로 지명하고 그 섬멸을 목표로 하는 탈국가화한 ‘전쟁’을, 사실상 힘으로 국제 규범화했다.
웨스트팔리아 원리(국제법 질서)를 억지로 무효화한 이 ‘전쟁’은, ‘적’을 교섭 상대로 인정하지 않고, 희생자를 모두 사후에 ‘테러리스트’로 간주하기 때문에, 수행하면 할수록 ‘테러리스트’를 낳는다고 하는, 그 자체가 ‘괴이한 형태’의 전쟁이 되었다. 그 때문에 ‘전쟁터’는 세계로 퍼지고(서양 여러 도시 내부로도), 확산되어 수습되지 않고, 마침내 미국은 최초 ‘제압 지역’ 아프가니스탄의 괴뢰 정권을 버리고 철수하게 되었다(9․11 다음해, 당시 나가사키 시장 이토 이쵸伊藤一長는 원폭 위령제 때, no more Nagasaki라고 말하는 것은, ground zero(뉴욕에서 2001년 9월 11일에 파괴된 세계 무역 센터가 있던 곳 – 역주)를 두 번 다시 일으키지 않기 위해 세계에 그것을 퍼뜨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비참을 마지막으로 해 달라는 간절한 기도라고, 일본 정부의 자세를 비판했지만, 그 보복 전쟁에 대한 이의로, 우익의 흉탄에 쓰러졌다).
그 일이 2021년, 그리고 그 기억을 허둥지둥 지운 듯이, 미국은 냉전의 재탕처럼 ‘민주주의 국가 vs 전제주의 국가(불량배․테러 국가)’의 대립을 연출하는 바이든 독트린을 내놓았다. 트럼프 시대부터 노골화되었듯이, 미국에게 최종의 ‘적’은 ‘서측’에 먹히지 않는 중국이다. 미국은 건국 이래 겨우 250년이 된 ‘신세계’지만, 중국은 4,000년의 ‘문명 역사’를 가진 기분 나쁜 ‘낡은 동방’인 것이다.
간략하게 말하면, 미국은, 미국은 전능하다는 전능성의 파탄에 직면해, 내부 분열도 일어나서 불안정해지고 있다. 거기에 서양 국가들에게 150년 동안의 짓밟힘을 견디고, 말하자면 ‘세계사의 무대’에 복귀한 중국은, 미국의 독선(다른 것을 부인하는 것밖에 모르는 몰이해) 때문에 위협으로 여겨질 것이다. 2021년 바이든 정권 성립 직후, 중국 대표단을 알래스카로 불러 들여 고압적으로 중국의 ‘야심’을 질타한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의 지나치게 오만한 자세는, 도리어 미국의 위기감을 노정시키고 있었다. 미국도 50년 전에 타이완 국민당 정부를 내치고 중국과의 ‘국교 정상화’를 단행했다. 그런데도 그런 일이 없었던 듯이, ‘인권 문제’와 ‘현상 질서 유지’를 내걸고 미국은 타이완을 발판으로 중국을 도발해, ‘전쟁’으로 끌어내려고 하고 있다. 그리고 일본은 거기에 자진해 말려들려 하고 있다(타이완 autonomy는 다른 방법으로 확보되어야 한다).
■ 일본의 ‘脫亞入歐’ 재탕
그래서 일본은 어떻게 되고 있을까? 일본은 메이지 이후, 서양 국가들이 설정한 국제 질서(주권국가 체제)에, 불가피하게 그러나 플레이어로 참여했다. 자유민권운동도 있고 아시아 국가들의 자립 지원에 나선 열사烈士도 있었지만, 그러나 결국은 ‘탈아입구’ 노선, 말하자면 아시아에 등을 돌리고 발판으로 삼아, 서양적 제국 질서를 만드는 방향으로 내달렸다. 유럽에서는 제1차 대전의 재앙으로 서양적 제국 질서라는 상황이 변질되기 시작했지만, 청일․러일 전쟁을 거쳐 시베리아로 출병한 일본은, 안으로 유럽을 파괴하는 제1차 대전의 의미를 오인하고, 기회라고 여길 뿐 후발 열강 노선으로 내달아, 그 끝에서 무조건 항복이라는 국가 붕괴의 쓰라림을 만났다.
그러나 국가(국체) 붕괴는, 民에게는 ‘1억 옥쇄’라는 압력에서 해방이기도 했다. 물론 거기에 내외의 다양한 의도와 역학이 작동했지만, 합치된 그런 힘으로라도, 일본은 ‘망국’을 보았기 때문에, 세계전쟁이 다시 일어나는 것을 막는 이후의 공존공영세계의 핵심으로, 부전不戰․인권․민주 국가로 세계 안에 다시 자리를 잡게 되었던 것이다. 전후 일본국 헌법에는 그 이념이 각인되어, 일본의 ‘기적적’ 부흥의 발판이 되었다.
그러나 냉전 상황에서, 옛 지배층과 제도가 ‘민영화’ 아래 미국의 보호를 받아 온존되었다. 일본을 ‘반공’의 방파제(열도는 ‘침몰하지 않는 항공모함’이라고 한 수상도 있었다)로 삼기 위해서였다. 바야흐로 냉전이 끝나자, 친미 반공 노선은 그 의의를 잃고 세계는 ‘글로벌화’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미일 안보 조약의 구속 아래, 미국은 경제적으로 성장한 일본의 자립을 허용하지 않고 사회 구조 변혁을 요청, 당시의 일본 지도층도 세계사적인 지침을 가질 수 없어, 걸프 전쟁 후의 새로운 혼란 속에, 그저 대미 종속을 깊게 해 가게 된다,
그리고 북한 문제를 계기로, 옛 지배층과의 연속성을 체현하는 세력이 숨어 지내기 70년, 마침내 정권을 ‘탈환하는’ 데 이르러, ‘전후 체제에서 탈각’이라는 이름하에 그것을 일소하는 ‘역사 수정’을 완성했다. 그들은 중국(아시아)에 대한 일본의 ‘戰前 죄과’를 부인하고 싶기에, 중국을 적대시하는 미국과 이해를 같이한다. 또한 일본은 이미 2010년 무렵에 GDP에서 중국에 뒤쳐졌고, 사실은 ‘아시아 맹주’의 지위도 상실했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 배제․중국 포위(자유롭고 열린 인도 태평양)를 획책하면서,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아시아의 유일한 G7’을 과시하면서, NATO에도 자진해 가맹하려고 한다(그러나 NATO란 ‘서양(미국과 유럽)’만을 위한 ‘북대서양’ 조약 기구다). 이것이 현대의 도착적인 ‘탈아입구’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 이리하여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의 ‘패전’과 ‘냉전’의 종결이라는 두 번의 결정적인 ‘자립’ 기회를 놓치면서, 지금 ‘새로운 서양’의 공격적 자괴自壞의 흐름 속에 몰입하려 하고 있다.
이상이 현대 세계를 움직이는 커다란 소용돌이 양상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서양의 외부는, 이러한 서양이 내린 규정 아래 ‘자기’를 온전하게 지탱해야 한다. 그것마저 할 수 없게 되어 있는 것이, 자기를 가질 방도가 없었던 아프리카 지역이지만, 서양화의 독선이라는 불도저가 작동하면 異世界는 어디든 최종적으로는 ‘아프리카화’되어 갈 것이다.
‘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는 뭐냐고 추궁에 시달린다. 또한 ‘異物’과 배제되는 국가들에 대한 비판은? 라고 하지만, ‘서측’이 ‘서측’인 것을 멈출 때, 달리 말하면 민주주의와 인권을 자기 전매특허로 내세우고 ‘자유’와 마찬가지로 그것을 타자에게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빼앗겨 온 사람들과 국가들이 자신들의 것으로 ‘서측’(서양 백인)에 요구하는 것을 인정할 때, 그것은 비로소 보편적인 것이 된다.
이른바 ‘인권 외교’라는 것은, 베트남 전쟁 철수 후에 미국의 카터 정권이 내세운 것이다. 그러니까, 군사로 실패하자 ‘적’의 內情을, 말하자면 도덕적으로 지탄하고, ‘경제 제재’를 부과해 그 나라 국민을 괴롭히며 ‘체제 전환’을 유혹한다, 그것이 ‘가진 나라’의 ‘자유로운’ 처리 방식이 되고 있다(이란, 중남미, 중국 등등에 대한). 그러나 ‘경제 제재’(생정치적Bio politics으로는 틀림없는 전쟁이다)는 ‘가진 측’만이 할 수 있다. 경제가 ‘적’에게 의존되어 있다면 자신의 목을 조이는 게 된다. 그래서 ‘서측’은 국제 사회에서 ‘적’의 ‘악’을 강조하고, “우리에게 붙을래, 적에게 붙을래”라고 판단을 압박하며, 자기 진영을 최대화하려 한다. 하지만 그것이 글로벌화한 세계를 분단하는 ‘서측’의 독선인 것을 비서양 국가들은 몸으로 알고 있다.
2022년 11월 초순에는 G7 외무장관 회의가 독일에서, 중반에는 인도네시아(서양의 낙원 발리섬!)에서 G20 정상 회담이 개최되었다. 실질로서도 뉴스 가치로서도 주목을 받은 것은 정상 회담이다. 외무장관급 회담과 정상 회담이라는 차이 때문이 아니다. G7은 ‘서측’의 모임에 불과하지만, G20에는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의 주요 국가(러시아도 중국도 인도도 터키도)가 참가하기 때문이며, 거기에서는 ‘서측’의 의도가 쉽게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침 그때 폴란드로 러시아제 미사일이 떨어졌다는 사건이 전해지자, G7은 급거 내부 회합을 가졌다. ‘서측’은 현실의 ‘국제 사회’에서 이미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는 언급할 여유는 없지만, 특히 최근 라틴 아메리카에서 일어나고 있는 커다란 변동(통상은 ‘좌경화’라고 바로 서측 견해에서 편견을 갖고 있지만, 베네수엘라와 볼리비아에서 볼 수 있듯이, 그것보다는 훨씬 거리가 먼, 궤멸된 선주민 문화의 계승과 재통합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은, ‘서양’이 비폭력적으로 극복되는 세계의 미래(만약 그것이 존재할 수 있다고 하면)를 예감케 한다.
(『世界』, 202301월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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