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언 시월이라!
어느덧 시월이다. 올 해 사나운 날씨에 시달리고 나니 벌써 시월이다. 작년 초여름부터 여태껏 몸에 이런저런 탈이 나서 겨를이 없는 마당에 동영상까지 하느라 글쓰기는 많이 소원할 수밖에 없었다. 몸만 아프지 않았어도 둘 다 열심히 했지 않았겠나 싶은데 한 해가 벌써 저물어가고 있다.
저번 겨울 몸이 불편할 때 문득 생각이 들었다, 10년 전만 해도 하룻밤을 꼬박 새워도 한 숨 자고 나면 거뜬했고 때론 하루 나절에 200자 원고지 수 백 매를 메울 수 있었는데 이제 그런 몸은 내게 남아있지 않구나, 의욕이 없는 게 아니라 그 의욕을 실어줄 몸이 이젠 아니다 싶어서 이제부터야말로 슬슬 죽음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죽음을 歸路(귀로)를 안내해주는 에이전트로 여길 수 있도록 준비해봐야지
이 글을 접하는 대부분의 독자님들은 죽음이 아직 눈앞의 일이 아닐 것 같으니 조금만 얘기해본다.
죽음을 준비한다는 것의 要旨(요지)는 이렇다. 죽음을 어느 날 쳐들어올 무례한 침입자로 받아들이지 말자, 그래선 괜히 마음만 힘들 것 같다. 달리 생각해보자, 가령 한 여행객이 즐겁게 길을 떠나서 그간에 많이 즐기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지치기도 해서 이제 슬슬 편안한 내 집과 잠자리 그리고 日常(일상)으로 돌아가고픈 때가 되었다 싶을 때 마침 나타나서 당신의 歸路(귀로)를 잘 안내해 드릴 테니 함께 가시지요 하는 믿음직한 에이전트로서 여길 수 있도록 준비해두어야 하겠다는 얘기이다.
아닌 게 아니라 나 호호당의 여행도 이제 슬슬 끝나가고 있으니 더욱 그렇다.
우리가 해외여행 갔을 때 당연히 즐겁지만 며칠 지나면 피곤이 몰려온다, 그래도 모처럼 나선 거 열심히 볼거리 먹거리 즐길 거리를 포기할 순 없으니 열심히 그런 것들을 다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여객기에 몸을 실었을 때의 느낌이란 거 있지 않은가. 또 그 비행기가 인천공항 활주로에 무사히 터치했을 때 느끼는 안도감 같은 것도 있지 않은가. 나 호호당은 죽음 또는 저승사자를 그런 귀로길의 여객기처럼 맞이해보자는 얘기이다.
에이전트가 말하길 “나 왔네, 자네의 歸路(귀로)를 잘 안내해서 자네의 편안한 집까지 모셔다 줄 터이니 이제 나가보시자고, 사흘 정도 말미야 줄 수도 있고.”
“아뇨, 바로 나가시죠, 이번 여행 많이 즐겼고 정리할 건 다 했으니 아무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하고 웃으며 따라나설 수 있도록 준비를 해둘 생각이다. 그리고 세월은 금방 갈 것이다, 올 해도 어언 시월이 되었듯이.
심상치 않은 우리 증시
증시에 대해 좀 얘기할 것이 있어서 해본다.
작년 6월 3316.08 포인트란 최고점을 찍고 난 뒤 지속적으로 하락해온 증시였다. 올 초부터 본격 하락을 거듭하다가 최근 9월 말엔 2134.77까지 내리면서 공포를 안겨 주었다. 무려 35%의 하락이었다. 시총 최상위인 삼성전자 역시 10만 전자를 외치던 개미들의 흥분 속에 96,800원까지 올랐다가 최근 51,800원까지 내렸으니 그 역시 46%, 거의 반토막이 났다.
그리곤 10월 들어 반등을 좀 해서 그저께 10월 5일엔 2254 포인트까지 120 포인트가 오른 상황이다.
하지만 반등이 조금 왔다고 혹시 바닥을 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은 아예 하지도 말라는 얘기를 드린다. 바닥을 벗어나라면 일단 2315 포인트 위로 올라가서 굳히기를 한 다음에 상승의 기미를 보이면 모를까 지금은 전혀 그럴 때가 아니다. 그냥 하락 중의 일시적인 반등 장세라 봐야 한다.
최근 증시에서 진짜 중요한 대목은 코스피 기준으로 말해서 최근 증시하락의 저점이 2134포인트였는데 이는 우리 증시의 장기 상승선인 12년 이동평균선, 주봉으로 보면 624주 이평선을 찔렀다는 점이다. 이게 아주 중요하다. 건드려선 아니 될 선을 건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 증시 그리고 한국 경제 자체가 이제 절대절명의 기로에 서 있다는 얘기를 드린다. (그렇기에 나 호호당의 경우 작년 8월에 매수한 코덱스 인버스를 지금껏 정리하지 않고 있다.)
12년 장기 이동평균선은 우리 경제의 명목성장이 유지되느냐를 결정하는 선이라 하겠는데 현재 그 수치는 2197 포인트, 줄여서 그냥 2200 포인트이다. 그러니 2200 포인트를 지킬 수 있느냐의 여부가 우리 경제의 향후 10년을 정할 것이라 보면 되겠다. 무너뜨리고 내려갈 경우 그건 바로 우리 경제의 장기침체가 시작될 것이다.
그러니 이 선에서 버티느냐의 여부가 중요한 것이지 혹시 증시가 바닥을 친 게 아닐까? 하는 여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시월 들어 나타난 약간의 반등은 일단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냥 이 선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단기적으로도 그렇다.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우리 시각으로 10월 13일에 발표될 것인데 최근 사우디가 석유 감산을 택하면서 미국의 기대를 저버렸다. 인플레이션을 더욱 부추길 전망이란 얘기이다. 그러니 증시의 반등 여부는 10월 13일까진 크게 의미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호호당의 증시 비밀 기술 한 가지 공개해보면
증시 동향을 살피는 데 있어서 나 호호당이 연구해온 비밀의 기술 즉 秘技(비기) 한 가지를 알려드릴까 한다. 해마다 6월 21일 경에 夏至(하지)가 있는데 하지 이후에 증시가 어떻게 움직이냐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는 말씀 드린다.
하지 이후 내리거나 약간 올랐다가도 그 선을 깨고 내리면 하락하게 된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 여기에 힌트 하나를 더 드리면 올 해 하지와 전년도 하지를 비교해보면서 전망해보면 보다 정밀한 예측을 할 수가 있다는 점이다.
물론 미국 증시의 경우 연기금 펀드로 인해 자금의 지속적인 유입이 있기에 일시적으로 왜곡되는 일도 있지만 결국 본질을 비켜가진 못한다. 관심 있으신 분은 잘 기억해두시길.
하지는 그 해의 전망이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 시점인데 그로부터 내리면 그 해 전망이 어둡다는 얘기가 되고 반대일 경우 전망이 좋다는 얘기가 되니 그렇게 된다. (물론 24 절기 전체를 살피는 고도로 정밀한 방법도 있지만 그건 여기에서 논의할 주제가 아니라서 그만 둔다.)
우리에겐 시간과 역사를 폐기하고 갱신하는 놀라운 능력이 있다는 사실
돌아와서 얘기이다. 시월이 가고 있으니 이제 올 해도 묵었다. 온 산과 들에 알록달록한 단풍을 좀 보여주다가 어느새 모두 지고 시들해질 것이다. 그러면 11월 하순이 되어 썰렁해지고 연말이 될 것이다.
해가 묵었다는 말, 그 의미를 한 번 생각해보라. 때가 많이 지났다는 말이니 많이 낡았다는 말도 된다. 낡은 것은 어느 때에 이르러 폐기해야 한다. 그러니 이제 낡은 해를 폐기할 때가 다가온다는 말이 된다.
낡은 것을 떠나보내고 새 것을 맞이하면 그건 更新(갱신)이다. 해가 바뀐다는 말은 우리가 시간을 갱신한다는 뜻이고 그를 또 좀 따져보면 우리 스스로의 삶을 바꾸고 갱신한다는 말도 된다.
해가 바뀌면 우리의 삶도 새롭게 갱신된다. 이 말을 하고 싶어서 앞의 말들을 했다.
우리가 살면서 연말을 보내고 새 해를 맞이할 때 으레 하는 말로서 이런 게 있다. 지난해의 좋지 않았던 일들은 싹 흘려보내고 이제 새롭고 참신하게 열심히 잘 해봅시다, 이런 말을 하지 않는가. 그게 바로 시간과 삶의 갱신이다. 연장하면 그건 새롭게 천지를 창조하는 엄청난 갱신이다.
천지창조는 하느님만이 하는 것도 아니요, 수백억 년 전의 빅뱅으로 이루어진 것도 아니다. 우리 모두 해마다 낡은 역사를 폐기하고 새 역사를 창조하고 있다. 우리에겐 그런 대단한 능력이 있다는 말을 지금 나 호호당은 한다.
올 해에 뭔가 이룬 게 없거나 힘들기만 하고 얻은 것이 없다면 연말에 가서 낡은 해와 시간 그리고 그 해에 겪은 흑역사를 폐기해버리고 새 해를 맞이하면 된다. 새로운 시간으로 갱신하고 창조한 뒤 다시 잘 해보면 되는 일이다. 그렇지 않은가?
진짜 힘들어지면 오히려 온정이 되살아날 것도 같은데
시월은 수확의 달이다. 정확히 말하면 10월 23일이 霜降(상강)이니 그로서 알차게 수확한 자는 시월이 아름답고 풍요롭게 여겨질 것이고 그렇지 못한 자는 憂愁(우수) 또는 悲感(비감)을 가질 것이다.
올 한 해 글로벌은 아무래도 수확이 별로인 것 같다. 그러니 내년엔 많은 어려움이 닥쳐올 것이다. 그러나 그건 大局(대국)에 관한 일, 힘들수록 가까운 사람끼리 온정을 나누면 그 정도 어려움이야 뭘 그리 큰일이겠는가.
“나의 아저씨”란 드라마가 기억난다. 전편에 걸쳐 고통스러워서 도중에 몇 번이고 그만 볼 까 싶었지만 결국 다 보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그 고통의 얘기들을 끌고 나가게 하는 힘은 드라마 속 가상의 동네인 ‘후계동’이란 다소 쳐지는 동네에 옹기종기 모여 사는 형제들과 동네 친구들이란 점이다. 정희네 가게에서의 술자리야말로 그 많은 고통을 잊게 해주고 치유해준다. 사람을 위로할 수 있는 건 역시 사람 간에 나누는 溫情(온정)밖에 달리 없다는 생각을 일깨워준 좋은 드라마였다.
몇 년 사이 우리 사회가 꽤나 냉소적이란 생각을 한다. 그런데 앞으로 더 어려워지면 오히려 사람 간에 더 애틋하고 살갑게 살아가는 세월이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품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