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론연구소 김동렬 2022. 10. 27
-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쓴 글입니다. -
처음 방문하는 사람은 이름 때문에 헷갈릴 수도 있다. 구조론과 서구 구조주의 철학은 다르다.
주의'와 '이론'의 차이에 주목하자. 우리가 구조에서 답을 찾아야 하는게 아닌가 하고 의견을 내는 것과 이것이 구조다 하고 실물을 제시하는 것은 다르다. 생물이 진화했을지도 모른다고 추측하여 그 쪽으로 방향을 잡아가는 것과 DNA라는 실물을 제시하는 것은 다르다. 차원이 다르다.
무슨 '주의'라는 것은 이쪽으로 한 번 가보자고 사람을 불러모아 놓고 주변의 반응을 보는 것이다. 사람을 모아서 세력을 만들고 목청을 높이다 보면 뭐가 되어도 되겠지 하는 것이다. 권력을 만들고 싶은 욕망이 그 배경이 된다.
이론은 방정식이 있다. 미지수가 있으면 방정식이고 미지수가 움직이면 함수다. 활을 쐈는데 맞지 않으면 과녁이 잘못되었거나 화살이 잘못되었거나 어느 하나는 잘못된 것이다. 잘못된 것을 미지수 X로 놓고 찾아내는 것이 방정식이다. 과녁 자체는 멀쩡한데 과녁이 뒤로 살살 움직여서 화살이 맞지 않았다면? 미지수 X의 움직임을 추적하는 것이 함수다.
이론은 원인에서 출발하여 결과에 도달하는 경로를 제공한다. 수학적 뒷받침이 없이 그냥 마구잡이로 떠들면 주의다. 자본론이든 진화론이든 국부론이든 어설프게나마 미지수 X를 찾아가는 루트가 있다. 진화론은 복잡도가 증가한 DNA가 X다. 국부론은 경제성장이 X다. 자본론은 보다 세련된 의사결정구조가 X다.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도 비슷한 것이 있다.
큰 틀에서 보자면 자본론이야말로 구조주의적 접근의 원조가 된다. 어설프지만 토대와 상부구조의 방정식이 있다.
서구 구조주의 철학은 마르크스의 폭주에 대한 반성에서 비롯된 다양한 모색의 일환이다. 마르크스를 정면으로 치지 못하고 이건 좀 아니지 하고 의문부호를 다는 정도다. 마르크스는 계급투쟁이라는 답을 제안한다. 너무 단호하게 말하니까 과연 그게 다일까 하고 브레이크를 걸어준 사람이 레비 스트로스다. 그게 전부다.
구조론은 서구 구조주의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그러나 큰 틀에서의 방향성은 일치한다. 과학이 그 자체로 구조이기 때문이다. 모든 사상은 결국 구조의 바다로 모이게 되어 있다. 큰 틀에서 보면 자본론이든 진화론이든 국부론이든 정신분석학이든 조금씩 구조주의적인 시도가 있다.
구조론의 아이디어는 린네의 생물분류법에서 나온 것이다. 린네가 생물을 분류했으므로 나는 무생물을 분류하기로 했다. 생물이 종속과목강문계로 계통을 밟아 진화한다면 무생물도 발생하는 계통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그것으로 되는 그것이 있어야 한다. 물질은 그냥 짠! 하고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질, 입자, 힘, 운동, 량의 계통을 밟아서 되는 것이다.
원자론은 그냥 원자가 있다고 선언할 뿐 원자가 만들어지는 함수가 없다. 이론이 없다. 그러므로 원자가설이지 원자론이 될 수 없다. 창조설도 제공하는 방정식이 없다. 그러므로 창조론이 될 수 없다. 론에 미치지 못하는 설이다.
레비 스트로스의 주장은 부족민을 관찰해보니 그곳에도 나름대로 의사결정구조가 있더라는 말이다. 이걸로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방정식을 제공한 마르크스를 깨지 못한다. 마르크스가 문명과 야만을 대립구도로 본다면 레비 스트로스는 야만도 소박하지만 문명의 속성이 잠재해 있다는 견해인데 다양성을 존중하자는 좋은 말이기는 하지만 큰 의미는 없다. 구조론과 연결시킬 수 있는 단서는 있다. 보편적인 의사결정구조로 발전시키지 못했을 뿐 구조 개념을 찾아낸 것은 성과다.
현대 서양철학은 마르크스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해서 곤경에 처해 있다. 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다른 길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 레비 스트로스가 마르크스주의에 제동을 걸었을 뿐 대체재를 생산하지는 못했다.
구조론은 서양정신을 통째로 깬다. 마르크스주의를 떠받치는 이항대립적 사고의 출처는 기독교 사상이다. 뿌리를 찾자면 기독교의 이원론은 세상을 선과 악으로 나누는 조로아스터교의 이분법을 수입한 것이다. 동양정신에 없는 서양정신의 특수성이다. 동양의 중도와 중용은 이항대립을 부정한다. 율곡의 기 일원론이 특별히 평가되는 이유다.
서구문명은 수학의 토대에 세워져 있다. 집은 수학으로 짓고 삶은 조로아스트교로 사는게 뭔가 잘못된 것이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일치시켜야 한다. 구조론은 생산력 일원론이다. 하드웨어 역할을 하는 산업의 생산력과 소프트웨어 역할을 하는 정치의 생산력 사이의 상호작용이 사회를 발전시키는 엔진이 된다.
구조론은 수학과 과학의 연결고리다. 모든 과학에는 나름대로 구조가 있다. 구조는 변화의 경로를 추적하는 방정식을 제공한다. 음악이든 미술이든 정치든 사회든 유행이든 마음이든 그런 것이 있다. 엔진 역할을 하며 동력을 제공하는 구조가 반드시 있다.
레비 스트로스는 구조를 보자고 제안했고 나는 구조론이라는 도구를 사용하여 실제로 구조를 본다. 부족민이 우리도 과학적으로 한 번 해보자고 말은 하지만 실제로는 푸닥거리나 하기 마련이다. 과학과 주술은 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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