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초대박을 터뜨렸던 3저 호황
오래 전 1986년부터 1988년까지 3년에 걸쳐 우리나라는 그야말로 초대박이 난 적이 있었는데 이를 “3저 호황”이라 불렀다. 세 가지가 낮아지는 바람에 흔히 단군 이래의 최대 경기 호황이란 말이 붙을 정도로 경기가 좋았다. 뿐만 아니라 그를 통해 처음으로 무역수지가 흑자로 돌아섰으며 그 흑자의 규모 또한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야말로 달러가 국내로 쏟아져 들어왔다.
당시의 3低(저)는 낮은 국제금리와 낮은 원유가, 그리고 달러 약세 즉 저 달러였다.
다시 말하면 그 직전까진 앞에 말한 저 세 가지가 모두 비쌌다는 말이 된다.
1979년 당시 우리는 국가부도 상태였는데 일약 반전의 계기를 맞이했으니
우리나라는 1979년에 디폴트 즉 국가 부도 상태였다. 가장 큰 원인은 이른바 오일 쇼크 때문이었다. 달러도 없는 마당에 높은 유가로 인해 도저히 경제를 유지할 수가 없었다. 인플레이션이 무려 30%를 넘었다. 당시 우리는 남미의 베네수엘라, 그리고 최근엔 스리랑카와 터키가 그런 것과 같았다.
당시 시절은 미국과 소련이 저마다 꼬붕들을 모아서 전 세계적으로 짱짱하게 대결 구도를 형성하고 있던 살벌한 냉전의 시대였다. 이에 동아시아 쪽의 최일선 꼬붕인 우리가 너무 망가질 것을 우려한 미국은 그 무렵 엄청나게 잘 나가던 일본의 옆구리를 찔러서 우리에게 40억 달러라고 하는 당시로선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지원을 해주게 했다. 이를 “한일경제협력”이라 했다.
전두환 정권 시절이었는데 강권의 독재를 펼치던 전두환은 경제가 죽든 말든 민생이 어렵든 말든 무식하게 고금리 정책을 펼쳐서 일단 인플레이션을 때려잡았다. (물론 일본이 대준 40억 달러라고 하는 뒷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그 무렵 미국 역시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져 허덕였지만 살인적인 고금리 정책으로 인플레이션을 잡은 뒤 금리를 내렸다. 뿐만 아니라 미국은 대일 무역적자를 줄이기 위해 일본을 협박한 결과 1985년에 저 유명한 “플라자 합의”를 했다. 일본 엔화를 초강세로 유도하고 반대로 미국의 달러를 왕창 저렴하게 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미국은 석유 카르텔을 통해 고유가를 유지하던 중동의 나라들을 이간질시켜서 원유가를 낮추는데 성공했다. 대표적으로 사우디아라비아 왕실 사람들을 꼬드겨서 카르텔을 붕괴시켰다.
그 결과 국제적으로 금리가 저렴해졌고 엔화 급상승으로 인해 달러도 저렴해졌으며 원유가도 왕창 내렸다. 이른바 3低(저)가 이루어진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당시 국제무역환경은 우리에게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엄청난 橫財(횡재)를 안겨주었다. 일단 원유가가 저렴해지자 무역수지면에서 엄청나게 편안해졌다. 뿐만 아니라 당시 우리는 만성적인 달러 부족으로 끊임없이 미국을 비롯한 우방국들로부터 차관, 즉 국가 간의 대출을 통해 달러를 조달하고 있었는데 국제금리가 확 낮아지면서 우리 산업과 수출기업들에게 무지막지한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결정적인 것은 당시 우리는 일본 기술과 제품을 카피하거나 모방, 때론 일본의 기술을 훔치기도 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제품을 만들어 해외시장에 수출하고 있었다. 간단히 말하면 ‘짝퉁’이었는데 이게 일본 엔화가 비싸지자 우리 수출제품의 가성비가 “메이드 인 자팬”보다 대거 좋아져서 수출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는 점이다.
그로서 무역흑자가 감히 생각지도 못하던 수준으로 늘어나면서 그 이후 우리는 늘 무역흑자국이 되는 발판을 만들었다. 이게 바로 1986-1988년까지의 이른바 3저 호황이었다.
3저 호황의 중간점인 1987 丁卯(정묘)년은 1964년 입춘으로부터 시작한 60년에 걸친 우리 국운에 있어 미래에 대한 희망이 창창한 夏至(하지)의 운이었다. 그야말로 당시 우리나라는 운세가 바야흐로 쭉쭉 뻗어가기 시작했던 셈이다.
모든 것은 3저 호황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 바람에 증시는 1985년 말부터 1989년 초까지 무려 700 %, 즉 7배나 올랐으며 아파트 가격도 오르기 시작했고 그러자 자연스럽게 아파트 공급이 급격하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중산층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이후 달러를 써야하는 해외여행도 1990년부터 자유화가 되었으며 수입도 자유화되기 시작했다.
그 이전엔 설사 해외여행을 갈 수 있는 여권이 나왔다 해도 들고 나갈 수 있는 달러가 지극히 제한되어 있었기에 일부 부유층 사람들은 부족한 달러를 남대문이나 명동의 암달러상을 통해 웃돈을 주고 샀다. 해외 물품 또한 수입하려면 정부로부터 건건이 수입허가를 받아야만 했다. 그 바람에 외제 물품 즉 일제나 미제는 대부분 密輸(밀수)를 통해 들어오거나 아니면 미군 부대에서 빼돌려져서 암시장에서 거래되었다. 그래서 당시엔 외제 물건을 그냥 쩨라고 불렀다. 쩨!
3저 호황을 통해 수출이 드라마틱하게 늘어나고 무역수지 흑자가 누적되자 외국 자금들 또한 우리 시장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 결과 1992년 자본시장이 개방되었고 그로서 만성적인 자금부족 문제가 사라졌다.
그때를 돌이켜보자니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하지만 말을 줄인다. 단지 그 무렵부터야말로 우리 대한민국이 제법 살 만 해지고 또 선진으로의 발걸음을 떼어놓기 시작했던 때란 점만 강조해둔다.
그 이후 1997년 외환위기를 겪긴 했어도 우리 경제의 힘은 전혀 위축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2002년 무렵부터 보다 더 많은 외국 자금이 국내금융시장으로 유입되기 시작했다. 본격 유입은 2003년이었지만 말이다.
30년이 흘렀으니 3저의 반대 흐름이 나타날 까봐 우려해왔는데 역시나!
1986-1988년간의 3저호황으로부터 30년이 흐른 시점은 2016-2018년간이었다. 그 무렵부터 우리 경제는 침체가 완연해졌고 성장률도 급격히 떨어졌다. 이 무렵 나 호호당은 우리 국운이 冬至(동지)에 이르렀기에 더 이상의 성장은 사라지고 기존의 것을 지켜나가기 바쁜 시점이란 생각에서 혹시나 과거 3저 호황의 반대되는 흐름이 나타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을 하고 있었다.
걱정은 틀리지 않았다. 사물은 30년이 흐르면 반대흐름이 나타나고 그게 6년이 더 지나 36년이 되면 완연해진다. 3저 호황이 시작된 1986년에서 36년을 더하면 바로 올 해 2022년이 된다.
3고 惡材(악재)의 등장
시작은 해프닝과도 같은 올 해 2월의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이었다. 우크라이나는 세계적인 식량대국이고 러시아는 에너지 자원 대국이다. 특히 유럽은 이 두 나라의 자원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다. 그렇기에 에너지를 필두로 각종 원자재의 가격 상승이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이번엔 미국이 중국을 꺾어놓기 위해 스스로 글로벌화를 때려치웠다. 글로벌화를 압축적으로 말하면 중국에서 생산된 저렴한 물건을 가져다 쓰는 것을 말한다. 이게 이제 끝나고 있다.
또 장기 지속된 양적완화의 부작용으로서 드디어 높은 인플레이션이 나타났다. 이에 미국은 선제적으로 금리를 올려가고 있다. 덩달아 달러도 급상승하고 있다.
어쩌다보니 졸지에 3高(고)의 물결이 닥치기 시작한 것이다. 에너지를 필두로 높은 원자재 가격, 높은 금리 그리고 강한 달러, 이렇게 세 가지가 모두 강세를 보이고 있으니 글로벌 경제는 이미 침체가 시작되고 있으며 특히 우리 경제에는 더더욱 좋지 못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3高(고) 악재에 더해서 새롭게 3 가지 악재가 등장했으니
첫째는 중국의 성장 또한 이제 마무리되고 있다는 점이다. 2008년 금융위기를 우리가 비교적 쉽게 넘길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중국이 엄청난 속도로 성장을 하고 있었기에 우리 또한 대중국 수출을 통해 엄청난 재미를 보았기 때문이다.
2008년 이후 중국은 무지막지한 채권 발행을 통해 조달한 돈으로 무지막지한 규모의 인프라 투자를 했고 그로서 성장률을 유지해왔다. 게다가 지방정부 또한 부족한 재정을 메우느라 아파트 공급에 열을 올려왔다. 그런데 이미 3년 전부터 중국은 아파트의 공급 과잉으로 시세가 내리기 시작하면서 지금은 심각한 상태로 접어들었으며 자칫 금융위기로까지 번질 수 있는 리스크도 엿보이고 있다.
그렇기에 이제 우리 경제가 중국과의 거래를 통해 재미를 볼 가능성은 사실상 없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둘째로 미중간의 경쟁이 더 격화되면서 우리에게 큰 부담이 되고 있다. 최근의 반도체 칩4 동맹이라든가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 법안의 시행, 나아가서 재생 에너지 이슈인 RE100 등은 우리 경제에 많은 부담을 안겨주고 있다.
3高(고)의 악재에 대해 우리가 대응할 수 있는 여지는 별로 없다. 오히려 미국의 선제적 금리 인상에 대해 우리가 섣불리 따라갈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엄청난 가계부채와 소규모 자영업자들의 부채, 일부 수출 대기업을 제외하면 상당수 기업들이 금융이자도 갚지 못하는 상황인 까닭이다.
우리는 무역 그리고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이다. 그런데 3高(고)로 인해 글로벌 경제의 약한 고리에서 문제가 생겨날 경우 그 악영향을 즉각적으로 우리에게 큰 부담이 될 것이란 점도 있다.
3高(고) 악재가 내년에 가서 어느 정도 해소될 수 있을지 그거야 미지수이겠으나 우리 국운으로 볼 때 전혀 그럴 것 같지 않다. 오히려 내년부터 본격화될 글로벌 경기침체에서 우리야말로 대응능력이 가장 떨어진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안고 있는 결정적인 약점은 바로 부동산과 아파트 가격의 버블이다. 고금리 추세 속에서 아파트 시세의 급속한 하락 또는 지속적인 하락이 나타날 경우 그 자체만으로도 금융위기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길고 긴 내리막 세월을 보내야 할 것이니
그렇기에 이제 우리 경제는 길고 긴 시련의 길목으로 접어들었다는 것이 나 호호당의 생각이다. 내리막길을 10년간 갈 것이고 나름의 그 바닥에서 다시 어느 정도 일어서기까지 다시 10년의 세월이 걸리지 않을까 추산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