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인텔이 차세대 서버용 CPU(중앙처리장치) 대량 양산 일정을 연기하면서 국내 메모리 반도체 업계가 뒤숭숭하다. 데이터센터 업체들은 통상 신규 CPU가 나오면 이를 교체하는 과정에서 이에 최척화된 규격의 D램도 함께 바꾸는데, 인텔의 CPU 생산 일정 연기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에는 악재가 되기 때문이다.
10일 관련 업계와 외신에 따르면 인텔은 올 연말에 들어서야 서버용 CPU 사파이어래피즈의 본격적인 양산을 시작할 것으로 전망된다. 인텔은 본래 이 제품을 2021년에 출시할 예정이었으나 일년 뒤로 한 차례 일정을 연기했다. 이후 올해 1분기에 시범 생산을 시작해 2분기부터 대량 생산에 돌입할 계획을 밝혀왔으나 또다시 그 시점이 미뤄진 것이다.
인텔의 데이터센터 및 AI그룹 총괄 관리자인 산드라 리베라는 지난 7일(미국 현지시간) 뱅크오브아메리카 시큐리티스 글로벌 기술 컨퍼런스에서 사파이어래피즈의 램프업(장비 설치 후 양산까지 생산능력 증가를 의미)이 당초 예상보다 지연될 것이라 밝혔다. 구체적 시점은 언급하지 않았다. 리베라는 "계획했던 대로 1분기에 초기 샘플을 제공했고 현재 플랫폼 및 제품 검증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삼성전자와 같은 메모리반도체 기업에는 악재다. 마이크로소프트나 아마존 등 데이터센터 업체들은 신규 CPU가 나올 때마다 이를 함께 구동할 D램과 낸드플래시 주문을 늘리기 때문이다. 데이터센터는 IT(정보통신) 서비스 제공이 필요한 장비를 한 건물 안에 모아서 운영·관리하는 시설을 말한다. 현재 기준으로 통상 하나의 센터에 D램만 2000만GB(기가바이트)가 요구되는 것으로 알려진다.
서버용 D램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D램 총 매출 가운데 40% 안팎을 책임지는 제품이다. 다른 제품 대비 고부가가치라 캐시카우(핵심 수익원)으로 통한다. 2017~2018년 슈퍼호황기의 최대 실적을 비롯해 올해 1분기 당초 제기됐던 부정적인 업황을 뚫고 호실적을 낸 핵심 배경이다.
아울러 DDR5를 지원한다는 점에서 사파이어래피즈는 특히 주목을 받아 왔다. DDR5 현재 PC와 노트북, 서버 등에 널리 쓰이는 DDR4를 대체할 차세대 규격이다. 개선된 선단공정을 적용하기 때문에 메모리 업체는 수익성을 개선할 수 있다. 삼성전자로 예를 들면 DDR5를 업계 최소 선폭인 14나노(㎚, 1나노미터는 10억분의 1m) EUV(극자외선) 공정에서 만들고 있다. 직전 세대보다 생산성을 20% 개선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역시 인텔의 신규 CPU 출시에 대한 기대감을 내비쳐왔다. 삼성전자는 지난 4월 1분기 실적발표에서 "하반기에 하이코어 CPU 전환 확대에 따른 서버 수요 강세가 기대된다"며 차세대 인터페이스 판매를 확대해 고부가가치 제품 판매 비중을 높여 시장 리더십을 확대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SK하이닉스도 당시 "DDR5를 지원하는 CPU 출시로 하반기에 고사양 서버 수요가 증가할 것"이라 언급했다.
업계 한 인사는 "인텔이 글로벌 CPU 시장에서 갖고 있는 압도적인 점유율을 고려하면 부진에 따른 여파는 적지 않다"며 "일부는 경쟁업체인 AMD가 빈자리를 메꿀 것이라 관측하지만 데이터센터 업체들은 전통의 강자인 인텔 제품을 선호하는 것이 사실"이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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