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등 글로벌 시장에서 전자기기 충전단자를 'USB-C 타입'으로 통일하는 정책이 잇따라 추진되면서 정보기술(IT) '공룡 기업' 애플의 고심도 깊어지고 있다. 애플은 현재까지 자체 개발한 '라이트닝(8핀) 충전단자'를 모든 제품군에 적용하고 있지만, 주요 시장의 정책 변화에 따른 제품 전략 수정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다만 애플만의 독특한 제품 감성을 추구해온 '애플 마니아' 등 소비자들의 반발도 예측되는 만큼, 다양한 제품 개발 시나리오가 검토되고 있다.
5일 아이폰, 아이패드 등 애플 전자제품을 이용하는 소비자들은 USB-C 타입 변환 가능성에 엇갈린 반응을 내놨다. 애플만의 라이트닝 충전단자가 사라지는 것에 생소함을 느끼는 사용자와 소비자 편의성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모두 나왔다.
아이폰11 제품부터 4년째 아이폰을 사용 중인 이우석(32)씨는 "라이트닝 충전단자는 삼성전자 갤럭시S 제품 등과 비교되는 애플의 정체성 중 하나"라면서 "충전단자가 USB-C 타입으로 바뀌면 큰 변화라 어색할 것 같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충전단자를 통일하는 것이 꼭 편의성에 크게 도움이 되는지도 잘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반면 스마트폰은 애플의 아이폰13, 태블릿PC는 삼성전자의 갤럭시북 제품을 사용 중인 김수연(33)씨는 "충전단자가 통일되면 충전기 하나로 모든 제품 충전이 가능해 훨씬 편리할 것 같다"면서 "아이폰을 좋아하지만 애플 정체성은 디자인과 소프트웨어가 결정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IT업계에 따르면, 유럽연합(EU)은 7일 집행위원회를 열고 스마트폰과 휴대용 컴퓨터(태블릿PC) 등 전자기기 충전단자를 'USB-C' 타입으로 통일하는 법안을 논의한다. EU가 ①환경 오염을 불러일으킬 요인을 줄이고 ②소비자들이 좀 더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해당 정책에 힘을 실어온 만큼, USB-C 타입 강제법은 이른 시일 내 유럽의회를 통과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된다.
국내 시장에서도 USB-C 타입 통일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은 지난달 '전자제품 충전·데이터 접속 표준(USB-C)'의 국내 적용 확대를 위한 가이드라인 개발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USB-C 타입을 국가표준(KS)으로 제정하고 이를 적용한 제품군을 확대하겠다는 뜻이다.
일종의 규제 정책이 된 USB-C 통일 논의에 애플은 난처한 입장이다. 지난해 기준 애플의 지역별 매출액을 살펴보면, 미국 등 아메리카 지역이 40% 이상을 차지하고 있고 유럽은 24% 수준으로 그 뒤를 잇고 있다. 중국과 일본을 제외한 한국 등 아시아 지역 매출액은 한 자릿수다. 애플 입장에선 아메리카 지역 매출액이 압도적 1위지만 규제 논의가 이뤄지는 유럽과 한국의 매출 비중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여기에 USB-C 타입 전환시 새롭게 생산라인 변경과 '애플 생태계' 약화에 따른 경제적 부담도 복잡하게 얽혀 있다.
이에 따라 애플이 유럽과 한국 등 USB-C 충전단자를 강제한 지역에만 맞춤형 제품을 내놓을 가능성도 점쳐진다. 하지만 앞서 '통화 녹음' 기능에서 보여지듯 애플이 국가별 법제도에 따른 차별화한 제품 생산 전략을 세우진 않았던 만큼 충전단자 관련 생산 계획도 예단은 어렵다. 애플 역시 현재까지 구체적 대응책을 확정하진 않았다는 입장이다. 다만 외신과 IT업계는 애플이 USB-C 타입을 받아들이더라도 올 하반기 출시되는 아이폰14 제품까진 기존 라이트닝 단자를 적용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송주용 기자 juy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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