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총리' '말년 총리'로 불리며 존재감이 희박해진 중국 공산당 서열 2위 리커창 총리가 목소리를 높여가며 이목을 끌고 있다. 요지는 과도한 방역으로 경제가 무너지고 있다며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시진핑 국가주석의 치적이지만 성장의 최대 장애물로 전락한 '제로 코로나'에 대한 비판이며 동시에 권력 투쟁의 한 장면이라는 해석까지 나온다.
블룸버그통신은 중국 현장 관리들이 제로 코로나를 엄수하라는 시진핑 주석과 무너지는 경제를 방관해서는 안 된다는 리커창 총리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고 최근 보도했다.
매체는 익명을 요구한 8명 지방정부 고위 관리들과 재정 관료들의 말을 인용해 "현장에서 딜레마는 윗선으로부터 (제로 코로나 이행에 관한) 강력한 명령이 (경제를) 망치고 있다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블룸버그는 이중 4명은 제로 코로나 정책을 편들었다는 점을 들며 "코로나19를 통제하는 게 여전히 우선순위라는 견해를 유지하면서 방역에 실패하면 경제 살리기 기회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현재 중국 공직 사회 분위기를 그대로 보여준다. 가을 제20차 당대회를 앞둔 시점에 리커창 총리 목소리가 커지는 건 공직자들에게 혼란을 주기 충분하다. 리 총리 언행을 권력 지형으로 연결해 해석하면서다.
리 총리의 강경 벌언은 지난 25일 열린 국무원 회의에서 확인된다. 그는 성·시급 지방 정부 경제 책임자뿐 아니라 말단 현·구 지방 정부 책임자까지 10만명이 넘는 공직자들을 모아놓은 자리에서 "2020년 우한 사태 때보다 더 심각한 위기"라며 방역이 경제를 더 이상 망치게 해선 안된다고 말했다.
이날 회의는 인민일보 등 관영 언론에 보도됐다. 그러나 많은 부분이 실리지 않았다. 일반적인 상황에서 공산당 기관지가 당 서열 2위 총리 발언을 '편집'했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회의 참석자들에 의해 알려진 '보도되지 않은' 내용을 보면 리 총리는 치솟는 실업률(4월 6.1%)은 (공산당에)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업률 관리는 공산당과 정부의 영원한 숙제다. 높은 실업률은 공산당 체제에 대한 불만을 키우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리 총리가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업무보고에서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신규 일자리 1100만개를 창출해 실업률을 5.5% 이내에서 관리하겠다고 한 건 이런 맥락이다.
리 총리는 또 경제가 살아야 지방정부 재정도 늘 수 있다고 했다. 자연재해 등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면 중앙 정부가 추가로 줄 돈이 없다는 설명도 있었다. 방역에 몰입하다 재정이 무너져도 중앙 정부에 손 벌리지 말라는 경고다.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 안정적인 곡물 생산이 필수라는 점도 강조했다. 코로나19를 핑계로 이 부분에 소홀히 했다가는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지난해 하반기와 같은 대규모 정전사태를 막기 위해 석탄 채굴을 지속하라는 지시도 있었다. 시진핑 주석의 '2060 탄소중립'과 대치된다.
편집된 내용은 모두 시진핑 주석과 반대되는 의견들이다. 공산당 내 권력 다툼으로 해석되는 이유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66세 리 총리가 1년도 남지 않은 임기 중 후임 총리 인선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며 "그의 목표는 시 주석이 최소 5년 더 통치하려 할 때(가을 3연임 확정 전망) 그에 대응할 수 있는 중량급 인사를 앉히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 매체는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 주룽지 전 총리 등 전직 지도자들이 시 주석 연임 시도에 불만이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시 주석은 사회 통제에 몰입하고 있다. 경제가 무너지면서 곳곳에서 방역에 대한 불만이 높아지는 것과 관련 있다. 홍콩 명보는 최근 "왕샤오훙 중국 공안부 당서기가 최근 중국 주요 공안 인사를 지휘하고 있다. 이 인사는 결국 시 주석이 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왕샤오훙은 시 주석이 푸젠성 근무 시절 인연을 맺은 핵심 측근이다.
시 주석이 너무도 강력한 1인 체제를 구축한 나머지 비판의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지도부 상황을 고려했을 때 리 총리 발언을 과잉해석 한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중국 정치·경제 전문가 이철 박사는 한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리 총리가 '지금 경제를 회복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건의를 시 주석에게 하자 시 주석이 '그래? 그럼 뭔가 해보든가'라는 반응을 보이면서 리 총리가 드라이브를 건 것으로 보는 게 맞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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