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연합뉴스) 차대운 특파원 = '제로 코로나' 정책이 중국 경제를 심각한 위기에 빠뜨린 상황에서 경제 수장인 리커창 총리가 '제로 코로나 교조주의'에 정면으로 제동을 걸고 나섰다.
25일 열린 중국 국무원의 '경제 큰 틀 안정을 위한 전국 화상 회의'에서 리 총리는 방역 때문에 경제가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선명하게 드러낸 것으로 평가된다.
그는 "(경제) 발전은 우리나라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기초이자 관건"이라며 "방역을 잘하기 위해서는 재력과 물자의 보장이 필요하고, 고용·민생 보장 역시 발전의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리 총리는 중국의 현 경제 상황이 2020년 우한 사태 때보다도 심각한 측면이 있다면서 위기감을 솔직히 드러냈다.
그는 "특히 4월 이후로 취업, 산업생산, 전기 사용, 화물 운송 등 지표가 선명하게 낮아지고 있는데 일부 측면에서는 어려움이 2020년 심각한 코로나 충격 때보다도 더 크다"고 진단했다.
리 총리가 일선 경제를 책임지고 있는 성·시·현 지도자들에게 전달한 핵심 메시지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라는 목표에만 함몰돼 경제를 도외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는 "(방역으로의) 쏠림이나 한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행태를 방지하고 코로나19 방역을 잘하는 동시에 경제사회 발전 임무를 잘 수행해야 한다"며 "끊임없이 딜레마적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은 각급 정부가 직면한 도전"이라고 말했다.
중국 전역에서 1만명 이상의 중앙·지방 정책 책임자들이 참여한 이번 회의는 상하이 등 수십개 도시의 봉쇄 여파로 4월부터 산업생산, 소매판매, 실업률 등 주요 경제 지표들이 2020년 우한 사태 이후 최악의 수준으로 떨어져 중국 경제를 둘러싼 위기감이 급속히 고조된 상황에서 열렸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올해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정부가 연초에 정한 5.5%는커녕 우한 사태 충격으로 문화대혁명이 끝난 1976년 이후 최악이던 2020년의 2.3%에도 미치지 못할 수 있다는 관측이 대두하고 있다.
올해 3월부터 2020년 우한 사태 때보다 더욱 큰 코로나19 감염 파도를 맞이한 중국은 원칙적으로는 방역과 경제의 조화를 강조해왔다.
하지만 상하이의 '정밀 방역' 시험이 실패로 끝나면서 단 한 명의 코로나19 감염자만 나와도 전 도시를 봉쇄하는 사례가 속출하는 등 방역 지상주의가 중국 관가를 완전히 지배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중국공산당 최고 지도부인 정치국 상무위원회가 지난 5일 "제로 코로나의 총 방침을 조금의 동요도 없이 견지하고, 우리나라 방역 정책을 왜곡, 의심, 부정하는 모든 언행과 결연히 투쟁할 것"이라고 선언하면서 구호로나마 존재하던 방역과 경제 병행 기조는 완전히 허물어지고 '제로 코로나 교조주의'가 중국을 지배하는 형국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열린 리 총리 주도의 이번 회의는 '경제 사수 총궐기 대회' 성격을 강하게 띈다.
범정부 차원에서 열린 이번 회의에는 리 총리 외에도 당 정치국 상무위원인 한정 부총리, 후춘화 부총리, 류허 부총리 등 최고위 경제 책임자들이 모두 참석해 경제 위기 해결 목소리에 힘을 실어줬다.
일련의 상황을 보면 4월 지표 악화를 계기로 중국 지도부 내에서 상당한 위기감이 형성되면서 방역과 경제 사이에서 균형 유지가 시급하다는 주장을 펴온 리 총리 등 '경제 현실파'가 어느 정도 발언권을 갖게 된 상황으로 유추해 볼 수 있다.
리 총리는 각 지방정부가 각 지역 사정에 맞게 이달 말까지 중앙정부가 정한 '33종 경기부양 패키지' 정책의 구체적 시행 방안을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또한 26일 감찰조를 12개 성급 행정구역에 보내 경제 정책 이행을 직접 감독하겠다고 지방 당국을 압박했다. 방역 일변도 정책에 변화가 없으면 경제 실정에 책임을 물어 '채찍'을 가하겠다는 엄포를 놓은 것이다.
후진타오 전 국가주석과 같은 공청단파 출신으로 현 지도부 내에서 소수파인 리 총리는 오랫동안 실권 없는 총리로 인식되어 왔다.
그렇지만 그는 시진핑 주석에게 권력이 집중된 현 최고 지도부 내에서 거의 유일하게 이견을 표출하면서 폭주하는 당과 국가를 현실의 궤도로 돌려놓는 '해결사' 역할을 하기도 한다.
작년 중국에서는 지나치게 경직된 탄소 배출 저감 정책 집행의 여파로 전력 대란이 벌어져 경제에 큰 충격을 줬을 때도 리 총리가 전면에 나선 끝에야 대약진 운동식의 거친 탄소 배출 저감 정책이 완화될 수 있었다.
다만 중국 당국이 이번 국무원 특별회의를 계기로 '방역·경제 병진 노선' 복귀를 선언했지만 봉쇄 일변도의 방역 정책에 실질적인 변화가 나타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인구 2천만명의 수도 베이징은 한 달째 일일 신규 감염자가 수십명 수준에서 많은 곳을 봉쇄하고 있는데 상하이 사태 이후 이런 준봉쇄 모델이 중국 전역에서 보편화하면서 중국이 치러야 할 사회·경제적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고 있다.
중국 국무원은 지난 23일 1천400억 위안(약 26조5천억원) 추가 감세, 소비 촉진 및 투자 확대 등 내용이 담긴 '33개 종합대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코로나19 확산과 그에 따른 봉쇄가 중국 경제를 좌우하는 절대적 요인으로 부상하면서 재정·통화정책을 중심으로 한 기존의 경기 부양 정책의 의미가 크게 약해졌다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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