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시대를 넘어 120세 시대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평균 수명이 길어지면서 60세에 은퇴해도 40년에서 길게는 60년을 더 살아가야 한다. 길어지는 노후 만큼 더 많은 노후준비가 필요해지고 있다. 대표적인 노후준비 방법은 연금이다. 연금만으로 은퇴 후 생활비의 대부분을 충당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대부분 은퇴를 앞둔 50대에 이르러서야 연금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는 게 현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 연금에 크게 신경 쓸 일이 없었다. 연금은 노후를 위한 최후의 보루로써 ‘절대 잃어서는 안 되는’ 자산, 중간에 해지하지 않고 버티면 되는 ‘지키는’ 자산이라는 인식이 강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연금시장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연금이 ‘늘려가는’ 투자의 대상으로, 더 나아가 은퇴를 앞당겨줄 수 있는 수단으로 변화하고 있다. 그리고 그 변화의 중심에는 퇴직연금이 있다.
퇴직연금은 우리나라 3대 연금인 국민연금, 퇴직연금, 개인연금 가운데 최근 5년간 가장 빠른 성장세를 보이며 노후준비의 중요한 축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연금가입자 입장에서도 매년 한달치 월급이 퇴직연금으로 준비되고 있는 만큼 꽤 비중 있는 연금자산이기도 하다.
사실 퇴직연금제도가 도입되기 전까지만 해도 퇴직금은 투자의 영역이 아니었다. 퇴직금은 퇴직 전 3개월 평균급여에 근속년수를 곱한 값이므로 근로자 입장에선 승진해서 급여를 더 많이 받고, 오래 다녀 근속년수를 늘리면 더 많은 퇴직연금을 받을 수 있었다. 퇴직연금 DB확정급여형 가입자도 크게 고민할 것이 없었다. 기존 퇴직금 방식과 동일한 방식으로 ‘정해진’ 퇴직급여를 받기 때문이다.
DC형 가입자 증가세… “연금투자 관심 가져야”
이와 달리 퇴직연금 DC확정기여형 가입자는 투자의 영역에 있다. 회사가 아니라 본인이 퇴직연금을 직접 운용해야 한다. 예금 등에 넣어 안전하게 쌓아갈 수도 있고 주식형펀드 등에 투자해 적극적으로 늘려갈 수도 있다. 급여수준과 근속년수가 동일한 입사동기라도 투자 결과에 따라 퇴직연금 계좌의 잔고가 크게 달라질 수 있는 셈이다.
따라서 퇴직연금 DC형 가입자는 연금가입자를 넘어서 연금투자자의 역할이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개인형IRP 가입자도 마찬가지다. 퇴직연금 DC형 또는 개인형IRP 가입자라면 지금부터라도 연금투자자로서 투자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퇴직연금통계에 따르면 2020년 기준 퇴직연금 전체 가입자 2명 중 1명(50.2%)은 DC형 가입자다. 그 다음으로 DB형(47%) 병행형(2%) IRP특례형(1%) 순이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DB형 가입자(56%)가 DC형 가입자(42%) 보다 더 많았다.
저금리 기조와 직접투자 관심 증가에 따른 가입자가 직접 운용할 수 있는 DC형으로 가입자 이동, 퇴직연금제도 신규도입기업의 DC형 제도 선택에 따른 신규가입자 증가가 DC형 가입자 증가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DC형 가입자 증가는 곧 퇴직연금 시장에서 개인의 운용 재량권이 확대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퇴직연금 적립금 비중 추이를 살펴보면 DB형은 감소(2015년 68%→2020년 60%) 한 반면 가입자가 직접 운용하는 DC·IRP형은 확대(15년 32%→20년 40%)하며 퇴직연금시장의 변화를 이끌고 있다.
그동안 퇴직연금시장은 원리금보장상품에 치우친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저성장·저금리 경제환경에 따라 원리금보장 상품의 금리가 낮아지면서 연금자산도 물가상승률 이상의 적정 수익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점점 확산되는 분위기다.
이러한 인식 변화는 퇴직연금 운용방식의 변화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주식, 펀드와 같은 실적배당형으로 운용되는 적립금이 2015년 8조5000억원에서 2020년 27조2000억원으로 최근 5년간 3배가 넘는 규모로 크게 늘어난 것이다.
실제 수익률도 변화를 보이고 있다. 최근 5년간 연환산 수익률을 살펴보면 실적배당형이 연 3.77%로 원리금보장형(연 1.64%) 보다 2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퇴직연금은 은퇴시점까지 장기간 운용되는 특성상 연 1%의 차이가 큰 금액 차이를 가져온다. 수익률 제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향후 원금보장형에서 실적배당형으로 운용방식 변화가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기대가 모아진다.
올해는 퇴직연금제도 도입 후 가장 큰 변화로 기대되는 ‘디폴트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이 도입되는 해다. 디폴트옵션은 퇴직연금 DC·IRP형 가입자가 별다른 운용지시를 하지 않을 경우 사전에 미리 정한 방법적격투자상품으로 운용하는 것을 말한다. 퇴직연금이 가입자의 무관심 속에 방치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조치다.
넛지(nudge)란 타인의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을 말하는데, 디폴트옵션은 미국 퇴직연금 활성화를 가져온 대표적인 넛지 사례로 손꼽힌다. 우리나라도 디폴트옵션 도입에 따라 퇴직연금 적립금이 보다 적극적으로 운용됨으로써 퇴직연금 장기수익률이 제고돼 노후자산형성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디폴트옵션을 통해 퇴직연금의 운용성과에 대한 평가가 활발해짐에 따라 금융회사 간 상품개발노력 등 시장 내 수익률 경쟁이 보다 가속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퇴직연금 수익률 제고를 위한 연금시장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노후자산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연금자산을 만들기 위해서는 장기적 관점에서 보다 적극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디폴트옵션 도입에 따라 퇴직연금 운용에 도움을 받을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 가입자 스스로 퇴직연금 운용에 관심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원리금보장형 상품에 편향돼 있다면 매년 단계적으로 실적배당형 상품 비중을 늘려가며 다양한 투자경험을 통해 나에게 맞는 투자방식을 찾아야한다. 연금투자는 긴 호흡이 필요하다. 짧은 시간에 해결하려 하기보다 차근차근 준비해 간다면 누구나 연금부자로 은퇴할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