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론연구소 김동렬 2022. 02. 15
귀족정의 수호자 브루투스가 구태의연한 삽질로 공화정의 몰락을 앞당긴 것이 맞다. 카이사르는 사람을 함부로 믿다가 죽은 것이다. 세상은 도구에 의해 작동한다. 로마의 도구는 군단병이다. 팽창한 군대를 어떻게 문민통치 하에 붙잡아둘 것이냐가 역사게임의 본질이다.
전시에 군대는 독재관 밑으로 들어가고, 원로원은 독재관을 암살하는 방법으로 문제를 쉽게 해결하고, 이에 독재관은 암살을 피하려고 근위대를 두어 경호를 맡긴 것이 독재로 흘러간 것이다. 브루투스의 카이사르 살해는 무수히 일어났던 민중파 집정관 암살과 같은 것이다.
부르투스는 자기 친아버지를 죽인 폼페이우스 편에 붙어서 카이사르와 싸우다가 어머니에게 의절당했다. 아비를 팔아먹고 어머니에게 버려진 자다. 당연히 죽어야 하는 자를 카이사르가 살려준다. 생명의 은인을 죽였다. 속주에서 48퍼센트 이자의 고리대금업을 했다는데.
그를 후원하던 키케로도 그 사실로 충격을 받았다. 무지렁이 백성은 사람취급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전형적인 보수꼴통의 사고를 가진 자다. 그가 공화정에 매달린 것은 아버지를 팔아먹고 혈혈단신이 되어 의지할 곳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진중권의 변절공식과 같은 것이다.
갈 곳이 없으면 그냥 할 수 있는 것을 한다. 카이사르를 죽일 의사도 없었는데 동료의 꼬드김에 넘어갔다. 진중권의 변절도 같다. 직장이 경북 하고도 풍기다. 그 동네 살면 그렇게 된다. 심지가 굳지 못한 소인배는 주변환경에 동조화 된다. 누나 진회숙을 보면 알만하다.
진중권은 단순히 패거리의 수준에 맞춰 동조화 된 것이다. 철학의 빈곤 때문이다. 브루투스는 암살자의 무리가 듣보잡이었기 때문에 카이사르 덕에 명성을 얻은 브루투스가 자기 이름을 판 것. 암살은 또다른 암살을 낳고 누구도 승복하지 않는 악순환이 계속될 뿐이다.
전쟁에 나가서 땅을 얻으려는 병사와 그 땅을 가로채려는 귀족들 사이의 게임. 갑자기 영토가 늘고 토지를 얻은 병사는 기고만장해진다. 그 무질서를 핑계로 기득권을 유지하려고 한다. 역사는 도구의 발전을 반영하여 하나의 밸런스에서 또다른 밸런스로 옮겨가는 것이다.
그 과정에 시행착오와 일시적인 언밸런스와 과도기의 혼란은 피할 수 없는 것이며 주변에 경쟁할 나라가 많으면 비교적 쉽게 문제를 해결하고 변방에 고립되어 경쟁자가 없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러시아든 중국이든 북한이든 쿠바든 변방이기 때문에 삽질이 오래간다.
일본 역시 변방이 되었고 한국도 마찬가지다. 변방에 안주하면 언밸런스를 또다른 언밸런스로 돌려막는 갈라파고스 현상이 일어난다. 문제를 정면으로 해결하지 않고 또다른 문제로 물타기 하는 악순환의 반복. 천하가 다 썩었는데 민주당만 홀로 고고하기는 불능이다.
그렇다고 다 같이 썩어서 죽자는 퇴행은 받아들일 수 없다. 이를 악물고 더 큰 게임을 벌이고 중앙으로 쳐들어가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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