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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류문명의 맹점

◆의사결정학

by 21세기 나의조국 2022. 2. 8.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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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론연구소  김동렬  2022. 02. 07

 

무엇이든 기본이 중요하다. 방으로 들어가려면 문을 열어야 한다. 성관계를 하려면 옷을 벗어야 한다. 모든 문제는 연결의 문제이며 연결하려면 연결이 가능한 상태에 도달해야 한다. 외출을 하려면 신발을 신어야 한다. 일을 하려면 밥을 먹어야 한다. 여행을 하려면 차에 기름을 채워야 한다.

 

    사유를 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언어가 필요하다. 동양수학이 발전하지 못한 것은 유클리드의 원론이 없었기 때문이다. 점, 선, 면, 입체, 무게를 일컫는 단어가 있어야 한다. 수학의 출발점은 집합론이다. 집합이라는 말이 있어야 한다. 기하학을 하려면 기하라는 단어를 먼저 배워야 한다.

 

    소실점을 가르치지 않고 미술교육을 하겠다는 것은 숫자를 가르치지 않고 수학교육을 하겠다는 것이며 한글을 가르치지 않고 국어교육을 하겠다는 것이다. 미술은 눈으로 보는 데서 시작한다. 보는 연습을 시켜야 한다. 자기도 모르게 보는 위치를 바꾼다. 정면을 피하고 측면을 보고 있다.

 

    이집트 부조를 보면 알 수 있다. 얼굴은 측면, 가슴은 정면, 허리는 측면이다. 인체를 세 토막 내 놓았다. 음악이라면 화음이다. 귀로 듣지 않고 음악을 할 수는 없다. 이게 화음이다 하고 내게 소리를 들려준 음악교사는 없었다. 일곱살 꼬마도 전혀 배운 적이 없는 화음을 알아낸다는데 말이다.

 

    그림은 그림 자체의 질서가 있고 음악은 음악 자체의 질서가 있다. 그것을 인정하는 데서 교육은 시작된다. 그 질서를 존중해야 한다. 밥은 먹겠지만 수저는 들지 않겠다거나 여행은 하겠지만 차에 기름은 넣지 않겠다거나 하고 억지를 부리면 피곤한 거다. 강아지를 훈련시켜도 그러하다.

 

    세상에 규칙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납득시켜야 한다. 불러서 오지 않 개는 훈련시킬 수 없다. 앉아, 기다려를 배워야 다른 훈련이 가능하다. 개가 규칙을 따르지 않는게 아니라 그게 규칙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거다. 모든 것의 기본은 언어다. 언어는 의미다. 의미를 알아야 생각할 수 있다.

 

    의미의 의미가 뭔지 내게 알려준 사람은 없었다. 막연히 감으로 때려맞출 뿐 사유의 출발점이 되는 의미가 뭔지 아는 사람이 없다는게 인류문명의 맹점이다. 어린아이 손에 칼을 쥐어준 것처럼 위태롭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논리학을 배워야 한다. 논리학 이야기의 90퍼센트는 쓰레기다.

 

    논리는 딱 하나만 배우면 된다. 전제와 진술이다. 언어가 링크라는 사실을 알면 된다. 인간이 한 방향으로 의미의 링크를 따라가지 않고 타인과 핑퐁식 떠넘기기 대화를 한다는 사실을 아는게 중요하다. 자극하고 반응하며 주거니 받거니 상호작용 하다보면 우연히 의미에 도달하는 식이다. 

 

    사유가 이런 식의 주먹구구라면 곤란하다. 두 사람이 하는 대화를 혼자서 하는게 사유다. 소크라테스는 노상 질문을 던졌지만 자기 자신에게 먼저 질문해야 한다. 의미는 사건의 연결이다. 이 내용을 적어도 초등학교 3학년때까지 배워야 한다. 그림은 눈, 음악은 귀, 언어는 연결이다.

 

    언어는 도구의 일종이다. 인간은 도구를 써서 사건을 연결한다. 손과 발도 도구가 된다. 신체를 쓰든, 자연물을 쓰든, 언어를 쓰든 사건의 연결에 성공하면 의미가 있고 연결에 실패하면 의미가 없다. 이러한 내막을 모르므로 상대방을 자극해서 뭔가 수를 내보려고 하니 세상이 시끄럽다.

 

    모든 것은 연결이며 연결은 너와 나의 연결이다. 혼자서는 연결이 없다. 일방적인 선언을 하면 안 된다. 인간의 잘못은 일방적 선언을 하는데 상대방이 적절한 대꾸를 안해줘서 헛발질이 되니 화가 나서 자극의 강도를 높이는 형태로 일어난다. 좋게 말해서 안 되니 주먹이 나가는 식이다.  

 

    출발의 점을 찍고 연결의 선을 긋고, 방향의 각을 좁히고, 타이밍을 맞추고 도착점을 확인해야 연결된다. 누가, 누구를, 어디서, 언제, 어떻게 만나는지다. 보통은 주변의 도움을 받는다. 적당히 눈치를 보고 얼쩡대다보면 연결되어 있다. 그렇게 5천년은 버텼는데 문득 서양에 정복되어 있다. 

 

    코로나19는 인류문명의 위기 징후를 드러낸다, 윤석열의 반역은 민주주의 위기의 징후다. 아마추어와 결별해야 하는 지점이 있다. 우리가 사건의 출발점과 도착점을 사유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해줘야 한다. 가르치지 않으면 교육이 된다는 노자사상을 버려야 한다.

 

    모르니까 하는 소리다. 아는 사람은 도구를 사용한다. 도구에는 손잡이가 있다. 차에 타지 않고 운전을 배우는 방법은 없다. 말을 탈줄 알아야 기사가 되고 총을 쏠줄 알아야 포수가 된다. 오냐오냐 해줬더니 어리광이나 부리는 수준이하 졸업해야 한다. 그게 퇴행행동임을 알아야 한다.

 

    일제가 침략하자 일제히 서당을 다니고, 서양문명이 밀려들어오자 용화교 백백교 증산교 같은 사이비를 믿는 것이 퇴행이다. 미사일과 핵무기 놔두고 영화는 맨주먹으로 액션을 찍는다. 서구의 민주주의를 가르쳐 줬더니 천황제로 되돌아간다. 좋은 것을 주면 나쁜 짓에 쓰는게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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