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론연구소 김동렬 2022. 02. 06
어린아이 손에 권총이 쥐어져 있다면 위험하다. 최순실 수중에 권력이 들어가 있다면 위태롭다. 인간의 사유에 맹점이 있다면 좋지 않다.
사람들이 언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은 눈으로 뻔히 보고도 대충 뭉개는 경향이 있다. 눈으로 뻔히 보고도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하거나 눈으로 뻔히 보고도 소실점을 보지 못하는게 그렇다. 그러면서도 태연하다는게 더 이상하다.
모든 이상한 것은 어떤 둘이 맞물리는 접점에서 일어난다. 보통은 그 부분을 뭉갠다. 얼버무린다. 노래를 부를 때 반주에 맞추어 들어가는 지점이 있다. 그 타이밍을 어떻게 잡는지 나는 아직 알아내지 못했다. 말해주는 사람도 없다. 다들 눈치로 어떻게 하는 모양이다. 말로 설명해주면 어디가 덧나나? 아무도 그것을 내게 말해주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런 부분은 원래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길치에게 길을 설명해주기 어렵다.
주먹보다 말로 하는 것이 낫다지만 인간이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영역은 좁다. 말로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니 대화는 말꼬리잡기가 된다. 말싸움에서 진 사람이 결과에 승복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중요한 90퍼센트를 놔두고 사소한 10퍼센트를 두고 공방을 버리니 말싸움에 졌다고 승복할 이유가 없다. 어느 쪽으로도 결론을 내지 못하는 지루한 교착상태가 이어진다. 집단의 의사결정에 실패하고 마는 것이다. 결국 전쟁에 의존하게 되어 다 같이 죽는다. 인간의 비극이 그 가운데 있다.
세상은 넓고 개소리는 많다. 다양한 개소리를 몰아서 한 방에 해결하려면 답은 원점과 연결고리와 방향성이다. 원점은 구조다. 밸런스의 균형점이 구조다. 연결고리는 에너지다. 방향성은 기세다. 밸런스는 특이점을 찍을 수 있다. 찾아내야할 한 점이 있다.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기는 쉽다. 점으로 수렴되면 진실이고 반대로 확산되면 가짜다. 에너지는 형태를 바꾸므로 연결고리가 된다. 방향성은 엔트로피를 따르므로 추론할 수 있다.
구조의 점 - 대칭의 균형점이 있다.
에너지의 선 - 형태를 변화시켜 사건을 연결한다.
기세의 각 - 엔트로피의 방향성이 있다.
간단하다. 점을 찍고 선을 잇고 각을 좁히면 된다. 현장을 찍고, 범인과 현장을 연결하고, 범위를 압축하면 된다. 문제는 그런 것을 가르쳐주지 않으려는 태도다. 초등학교 미술수업때를 떠올려보자. 선생님은 아무 것도 가르치지 않았다. 그냥 자유롭게 그려봐. 그릴 수 없다. 물감을 섞어도 내가 원하는 색이 나오지 않는다. 그려놓고 보니 다른 색이 되어 있다. 젠장. 그림에 흥미를 잃게 되었다. 연필 밑그림은 쉽게 그렸는데 색칠이 안 된다.
원래 미술은 가르치지 않는 거야. 좌파 특유의 비뚤어진 철학이 문제다. 김만철 일가족이 귀순했을 때 진실이 드러났다. 북한에서는 미술기교를 가르친다는데? 미국도 같은 실수를 저질렀다. 스푸트니크 쇼크다. 수학이라는 것은 원래 가르치는게 아냐. 만약 흐류쇼프의 야심이 없었고 그래서 스푸트니크 쇼크가 없었고 미국이 계속 수학을 중고교생들에게 가르치지 않았다면?
초딩시절 소실점을 몰라서 그리다가 찢어버린 도화지가 몇 장이냐고. 버스를 그리면 앞과 옆과 위를 동시에 그리게 된다. 정면도와 측면도와 평면도가 붙어 있으니 어색하다. 당연히 가르쳐야 한다. 무지가 미덕이라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그게 빌어먹을 반지성주의다. 가르치는게 미덕이다.
지하철시의 문제는 지적한 바 있다. 트릭을 쓴다는게 문제다. 제목을 참고하지 않으면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는 시는 가짜다. 꼼수로 쓴 거다. 영화배우들도 대사를 칠 때 트릭을 쓴다. 심하게 거슬린다. 송강호처럼 한 호흡에 자연스럽게 말하지 않고 리듬을 타고 끊어서 말하는게 그렇다.
사실 그것을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국어책 읽듯이 하는 배우도 있지만 유튜브에 영화소개 하는 동네비디오방과 비슷하게 리듬을 타는게 보통이다. 말의 시작점과 끝단을 높이고 그때마다 한 호흡을 끊으며 리듬을 타면 뇌 속에 저장된 기억을 잘 끌어낼 수 있다. 문제는 그런 꼼수를 지적하는 사람이 없는 거다. 사실 말하기가 애매하다. 그냥 송강호처럼 자연스럽게 말하라고 말할 밖에.
말하기 애매한 부분을 말하지 않은 결과 문명은 위태롭게 되었다. 본을 놔두고 말단에 매몰된다. 중요한 본질을 놓치고 곁가지로 씨름한다. 좌파든 우파든 생산력의 혁신이라는 본질에서 벗어난 개소리를 하고 있다. 말하기 좋은 부분만 물고 늘어지는 것이다. 147억 짜리 비리는 뭉개고 10만원 어치는 물고 늘어진다. 이쯤되면 누구도 결과에 승복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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