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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론적 행동주의

◆의사결정학

by 21세기 나의조국 2022. 1. 10.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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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론적 행동주의

구조론연구소  김동렬  2022. 01. 09

 

 

 '구조주의'라는 말은 선점되어 있고 구조론의 제자가 가야할 길을 표상할 적당한 단어를 찾지 못하고 있다. 아는 것은 실천되어야 한다. 하나의 행동은 다른 행동으로 연결된다. 앞의 행동이 다음 행동을 제한하는 것이 권력이다. 우리는 권력이라는 핸들을 잡아야 한다. 남의 있는 권력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무에서 새로 권력을 만들어보여야 한다. 

    구조는 존재의 핸들이다. 핸들이 권력이다. 권력은 세상을 움직이는 지렛대다. 구조는 중립적인 도구요, 기능이다. 권투는 홍코너와 청코너가 있지만 링은 중립이다. 골대는 나누어져 있지만 축구공은 둥글다. 어느 편도 들지 않는다. 

    힌트가 되는 말로 구조기능주의라는 말이 있다. 유기체처럼 상호작용하며 진화하고 장악해 들어간다. 세상은 어떤 목적과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처음 주어진 기능이 발달하여 점차 장악하는 것이다. 철학자의 주의 주장이라는게 대개 선한 의도와 목적을 앞세우고 '이것을 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좋으니까' 하며 일방적으로 선언하는 것이다. 생물의 진화는 고상하고 멋진 이상을 향해 달려가는게 아니라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구조와 기능이 발달하여 점차 장악해 들어가는 것이다.


    자연히 핸들을 잡게 된다. 왜냐고? 그것은 자연법칙이다. 상호작용하면 가장 효율적인 위치에 의사결정중심이 만들어지고 중심은 변방을 장악한다. 엔트로피의 법칙에 따라 반복적으로 중앙이 변방을 이겨먹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더 큰 게임을 벌여 새로운 중심을 찾아내기를 반복한다. 

    이러한 존재의 본질에 다가선 사람이 공자와 니체다. 나머지는 너절한 소리를 늘어놓았을 뿐이다. 대개 두려움에 떨며 자기소개를 한 것이다. 환경이 질문하고 인간이 거기에 반응한다. 그들은 환경에 적응하려고 한다. 틀렸다. 공자와 니체가 공세적으로 환경에 선전포고 했다. 그러나 니체는 신을 죽이지 못하고 간을 봤을 뿐이다. 반응이 궁금해서 슬쩍 찔러본 거다. 공자는 괴력난신을 정면으로 부정했다. 공자는 대체재를 제시한 점에서 다르다. 초인은 신을 대체하지 못하지만 군자는 신을 대체한다. 신이 목적이라면 군자는 기능이다. 삶에는 목적지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기능이 발달하여 스스로 목적지를 만들어낸다.

    니체는 정신의 발달을 3단계로 구분했다. 부담을 짊어진 낙타의 단계, 사슬을 끊어낸 사자의 단계, 천진난만한 어린이의 단계다. 그것은 환경을 극복하려는 태도다. 정동이 아니라 반동이다. 도구를 장악한 사람은 정해진 길을 간다. 핸들을 쥔 사람은 최대한의 성능을 끌어낸다. 니체는 인간에게 지워진 짐을 내려놓으려 했고 공자는 도리어 그것을 멋지게 요리해 보였다. 손에 쥔 것이 있어야 한다. 놓아버리고 도망치려는 노예와 악기를 쥐고 연주하려는 주인의 눈빛이 같을 수는 없다. 다만 긍정적으로 해석하기로 하자면 공자나 니체나 권력에 대한 태도라는 점에서 같다.

    인류의 가장 위대한 발명은 신이다. 신을 발명한 자가 누구인지 모르지만 노벨상 줘야 한다. 신의 정체가 무엇일까? 권력이다. 기독교의 신은 중앙의 절대권력이요, 괴력난신은 너절한 변방권력이다. 인간들이 도무지 말을 들어먹지 않기 때문에 '말 좀 들어라. 이 화상들아.' 하고 길게 말하기보다 '신' 한 글자로 조지는게 합리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거다. 사실이지 신은 인간이 발명한게 아니다. 신 개념은 추상개념인 권력을 의인화 하여 파악하는 방법이다. 권력은 자연에 있다. 권력은 지렛대다. 지렛대는 도구다. 문명은 도구의 진화다. 인간은 도구 진화의 결을 따른다. 

    존 레논의 이매진처럼 자의적으로 상상한 몽상가의 이상주의를 내세우면 안 된다. 신도, 종교도, 국가도, 사유재산도 없으면 평화만 있는게 아니라 도구를 잃고 비참해진다. 바로 죽는다. 의사결정을 못하므로 난폭한 환경의 변덕에 제압된다. 이기지 못하므로 진다. 아무리 몰려도 도구를 손에서 놓지 말아야 한다.


    신이 죽었다면 권력이 죽은 셈이다. 신을 살려야 한다. 변두리의 작은 권력을 탐하는 소인배의 졸렬한 마음을 버리고 중앙의 큰 권력에 도전하는 군자의 결기를 보여야 한다. 삿된 길을 버리고 정도로 가야 한다. 각종 음모론, 사차원, UFO, 외계인, 주술, 한의학, 유기농, 신토불이, 생태주의, 비건, 문화상대주의, 노장사상, 손자병법, 처세술, 개인주의, 허무주의, 회의주의, 종교, 다단계, 성질, 기운, 기계론, 결정론, 운명론, 연속적 사고, 진정성, 성찰 기타등등 근거없는 소인배의 퇴행행동과 싸워야 한다. 동물적인 본능과 무의식을 따르는 것이 소인배의 퇴행행동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환경의 선제적인 공격에 후수로 반응하는 것이다. 권력의 법칙은 주도하면 살고 반응하면 죽는다는 것이다. 도구를 쥐고 이겨서 살아야 산다.


    열거한 내용 중에 한 번 읽어볼만한 것도 많다. 그러나 본질에서 각도가 틀어져 있다. 본을 바로잡은 다음 잡을 끌어들여 풍성하게 가꿀 수는 있으나 잡을 본으로 삼으면 망한다. 정도를 가는 사람이 종교나 한의학이나 유기농이나 생태주의를 양념으로 추가하는 것은 무방하나 그것을 본으로 삼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환경에 제압당해 삐딱선을 타려는 유혹을 극복하는 것이 극기복례다.

    결따라 가야 한다. 결이 기능이다. 기능은 추가된다. 인류는 전진한다. 목적지를 찾는다며 배를 버리지 말고 우리는 업그레이드 된 더 좋은 배를 가져야 한다. 항해는 계속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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