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론연구소 김동렬 2022. 01. 07
어원으로 보면 사이언스는 센다는 뜻이다. 과학은 세는 것이다. 그런데 세어보기 싫다. 나이스의 어원은 세지 않는다는 뜻이다. 세지 않아도 되니 좋잖아. 모든 비과학, 반과학, 반지성의 태도에는 세고 싶지 않은 마음이 도사리고 있다. 과학자는 과학하고 싶은 마음을 가져야 한다. 지식인은 지식에 대한 열망을 가져야 한다. 기필코 세어보겠다는 적극적인 마음을 가져야 한다.
김영삼은 인사가 만사라고 했다. 대통령은 인사만 잘하면 된다? 정치가 하기 싫은 거다. 대통령은 의전만 챙기면 된다? 박근혜의 멸망이유다. 신자유주의 사상도 그렇다. 작은 정부? 정부를 운영하기 싫다는 마음이 바탕에 깔려 있다. 공무원 없애고 각자도생이다. 각자 알아서 먹고 살게 하자. 왜? 일하기 싫으니깐.
너는 딱 이것만 해라. 우리는 딱 이것만 하면 된다. 이런 식으로 도처에 칸을 나누고, 장벽을 쌓고, 판도라의 상자를 덮고, 문제가 터지면 쉬쉬하고 덮자는 사람들 있다. 처세술 부류에 많다. 뭐든 1만 번만 반복하면 된다고? 제대로 하기 싫은 거다. 각자 자기가 맡은 역할에만 충실하면 된다는 무리들. 임금은 임금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남자는 남자답게, 여자는 여자답게. 말은 좋은데 그게 차별주의다. 그들은 진지하게 들어가기가 싫은 것이다.
모르면서 덤비다가 병을 덧나게 하기도 한다. 그냥 놔뒀더니 저절로 치료되는 수도 있다. 한 두 번은 저절로 치료되게 하는 요행수 바라기가 먹힐 수도 있지만 긴 호흡으로 보면 끝까지 달려들어 기어코 답을 알아낸 사람에게 진다. 지면 씹힌다. 씹히면 죽는다. 저절로 해결되기를 기다리는 무위의 방법으로는 운이 나쁘면 바로 죽고 운이 좋으면 잠시 살지만 결국은 죽는다.
뭐든 하기 싫다는 비뚤어진 자세는 과학이 아니다. 지식인의 자세가 아니다. 무슨 이념이나 노선이라는게 그렇다. 대개 딱 요것만 하자고 스스로 제한을 거는 것이다. 좌파는 왼쪽만 찾고 우파는 오른쪽만 찾는다. 게으런 자세다. 지식인은 비판만 하면 된다? 대안은 필요없고? 스스로 제한을 거는 것이다. 아빠는 월급만 착실히 갖다 주면 되고? 엄마는 애들만 잘 보살피면 되고? 학생은 공부만 잘하면 되고? 바라문 계급은 제사만 지내면 되고? 크샤트리아 계급은 전쟁만 잘하면 되고? 인류사의 모든 이념, 모든 정치노선, 모든 문예사조, 모든 철학사상에 딱 요것만 하면 되고 다른 것은 하기 싫다는 비겁한 마음이 숨어 있다.
유기농이든 신토불이든 그런 것이다. 농약이 해로우면 얼마나 해로운지 정확한 숫자를 가져와야 한다. 막연하게 장벽을 세우고 대칭을 거는 행동은 비겁한 자세다. 한의사처럼 이약 저약 마구잡이로 섞어버리지 말고 정확하게 어느 약물이 정확히 어느 분위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정확한 방정식을 갖고 와야 한다.
우리는 모든 하기 싫다는 비겁한 마음과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다. 생각하기 싫다, 대응하기 싫다, 따지기 싫다는 게으런 자들과 맞서지 않으면 안 된다. 모든 주의, 주장, 사상, 이념과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다. 칸을 나누고, 구획을 나누고, 역할을 좁히고 구석에 짱박혀서 지들끼리 속닥하게 해먹으려고 하는 차별주의자의 비겁한 마음을 이겨내지 않으면 안 된다.
모든 사상이 우리의 적이다. 부단한 상호작용이 우리의 길이다. 답은 메커니즘이다. 메커니즘은 맞물려 돌아가는 것이다. 환경과 맞물려 돌아가는 상호작용의 정도를 계속 높여가는 것이 진보다. 보수를 떼고 혼자 가는 진보는 진보가 아니다. 영역을 좁히고 역할을 줄이는 비겁한 마음이 보수다. 모든 것을 감당하는 천하인의 기개를 갖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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