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의리 권력 동원 사회

◆의사결정학

by 21세기 나의조국 2021. 11. 27. 13:17

본문

의리 권력 동원 사회

구조론연구소  김동렬  2021. 11. 27

 

 

오늘자 유튜브 동영상 강의에 반영할 내용입니다. 

    

동원, 소집, 사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그런데 사회의 존재는 불분명하다. 부족민들은 넓은 면적에 흩어져 살다가 행사가 있을 때 모인다. 거기에 사회가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사회는 모임이고 모임은 결과다. 왜 모였는지 원인측을 봐야 하는 것이다. 사회는 집단적 의사결정의 필요성에 의하여 동원된다. 사회 이전에 집단적 의사결정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집단적 의사결정이 가능한가? 동물은 불가능하다. 언어가 없기 때문이다. 사회학은 누군가에 의해 작위적으로 제안된 이념이나 막연한 도덕이 아니라 인간의 사회적 본능과 집단적 무의식을 근거로 삼아야 한다.

 

    막연히 사회가 있다고 간주하는 것은 소설 쓰는 것이다. 홉스의 사회계약설이 그러하다. 사회는 그냥 있는 것도 아니고 계약되는 것도 아니고 집단적 의사결정의 필요성에 의해 동원되는 것이며 동원의 주체는 권력이다. 권력이 있는 집단이 인원을 동원하여 사회를 꾸릴 수 있다. 그러려면 먼저 권력이 존재해야 한다. 사회의 자원들이 직간접으로 의사결정에 참여해야 권력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권력을 만드는 절차가 동원이다. 물론 강제적인 동원은 폭력이지 권력이 아니다.

 

    사회 - 권력수렴의 결과로 이루어진 집단
    동원 - 집단적 의사결정에 따른 권력의 수렴
    권력 - 집단적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각자의 지분
    의리 - 집단적 의사결정에 참여하게 하는 공유자산

 

    가족은 선천적으로 동원된다. 가장의 권력은 원시사회에도 존재한다. 부족민은 12살이 되면 아이를 버리는게 보통이다. 일본인과 유태인은 13살이 되면 아이를 내보내는 관습이 있었고, 게르만족도 15살이 되면 자녀를 독립시킨다. 신라의 화랑도에 그 흔적이 남아있다. 부족민이 뚜렷한 국가 형태를 갖추지 못해도 국가는 있다. 동원구조가 존재하면 국가다. 전쟁에 동원되면 국가다. 광장에 동원되면 사회다. 노동에 동원되면 회사다. 생식에 동원되면 가족이다. 취미로 동원되면 동아리다. 원시 사회라도 전쟁이 존재하면 국가라는 사회가 있다고 간주해야 한다.

 

    동원은 권력을 만들고 소집은 권력을 행사한다. 오일장은 오일마다 소집된다. 새벽장은 새벽에 만짝 하고 파장한다. 시장이 상설화 되듯이 동원이 상설화 되면 사회가 된다. 원래는 전쟁이 일어날때 사람을 동원하는데 전쟁이 반복되면 상비군이 배치된다. 유목민은 여름에 목축에 종사하다가 겨울만 되면 전쟁에 동원된다. 징기스칸 때는 일년 내내 전쟁을 하게 되는게 상비군이 된 것이다. 의리는 권력이라는 지분을 낳는 자산의 공유다. 서로 공유하는게 있으므로 각자의 몫이 있고 몫을 행사하는게 권력이다. 권력을 수렴하는게 동원이다. 그 결과는 사회다.

 

    의리

 

    의리는 권력의 근거가 되는 사회적 자산의 공유다. 사회의 본질은 집단적 의사결정이다. 집단적 의사결정의 근거는 동원이고, 동원의 근거는 권력이며, 권력의 근거는 의리다. 의리는 유무형의 사회적 자산을 공유하는 것이다. 공유하면 나눠가질 수 없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면 권력의 형태로 집단에 의사결정을 위임해야 한다.

 

    전쟁이 일어나면 가담할 것인가? 천재지변이 일어나면 내가 앞장설 것인가? 외국인이라면 가담할 수 없다. 말이 안 통하기 때문이다. 이웃집에서 일어난 부부싸움에는 참견할 수 없다. 가족간의 의리를 공유하지 않기 때문이다. 무언가 서로 공유하는 것이 있어야 한다. 호르몬을 공유하고 무의식을 공유하고 언어를 공유하고 자산을 공유해야 발언권이 있고 지분이 있다.

 

    로크, 홉즈, 룻소 등의 사회계약설은 개소리고 인간은 계약한 적이 없다. 공유하는 것이 없으면 의리가 없다. 의리가 있는 집단이 의사결정을 잘해서 살아남았다. 미친 사람이 지하철에 불을 지르면 누가 그것을 막아야 한다. 그런데 양반이라는 이유로 혹은 귀족이라는 이유로, 여자라는 이유로,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방관하면 죽는다. 그 불을 끌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낸 집단이 살아남았다. 공유하는 것은 나눌 수 없으므로 위임해야 한다. 그것이 의리다.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은 의리가 부족했다. 그들은 집단의 위기에 맞서지 못했다. 권력을 생성하지 못했다. 대집단으로 도약하지 못했다.

 

    집단이 외부의 힘에 맞서 의사결정이 가능한 구조가 권력이다. 공유하는 각자의 지분을 리더가 위임받아야 의사결정이 가능하다. 약자를 차별하고 다양성을 부정하면 권력을 위임하지 않으므로 집단적 의사결정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자유 평등, 평화, 정의, 행복과 같은 말이 나온다. 그래야 인원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불을 끈다는 말이다. 그것은 억지다. 서로 공유하는게 없는데 권력을 위임하라고 외치는 말이기 때문이다. 말이 안 통하는 외국인에게 내 말에 복종하라고 소리를 지르는 것과 같다.

 

    관념은 공허하고 의리가 진짜다. 서로 공유하는 자산이 있어야 의사결정을 타인에게 위임하고 불을 끈다. 지혜가 필요할 때는 똑똑한 사람을 중심으로 뭉치고, 완력이 필요할 때는 건장한 사람을 중심으로 뭉치고, 매력이 필요할 때는 센스있는 사람을 중심으로 뭉쳐야 한다. 그 지혜와 완력과 매력을 집단이 공유하는게 의리다. 그래야 권력의 정당성을 인정하고 집단의 의사결정에 무리가 호응한다. 의리있는 집단이 의사결정을 잘 해서 살아남는다.

 

    인간은 집단에 동원된 존재다. 동원의 절차는 권력이며 동원의 근거는 의리다. 부부의 의리, 부모와 자식의 의리, 동료의 의리, 국가의 의리가 있으므로 이웃의 부름에 호응한다. 호르몬과 무의식으로 엮어진 부모와 자식의 친함은 선천적 의리다. 같은 목표를 두고 팀을 이루어 게임에 참여하는 것은 동료를 묶어주는 후천적 의리다. 선천적인 의리는 타고나는 것이고 후천적인 의리는 연습해야 한다. 동료와는 패스를 연습해서 손발을 맞춰놔야 한다. 단독 드리블의 개인기는 독점되고 패스플레이는 공유된다. 한솥밥을 먹고 한침대에서 자야 의리가 작동한다. 말로 해서는 안 되고 호르몬이 바뀌고 무의식이 바뀌어야 한다.

 

    의리는 물리적으로 빠뜨려져야 한다. 전쟁이나 천재지변과 같은 재난을 맞아 공동운명체에 빠뜨려지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합리적인 결정을 한다. 내가 타인을 위해 희생하면 타인도 나를 위해 희생한다. 내가 희생해서 그 보상을 다른 사람이 받아도 상관없다.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 자체가 다른 사람이 희생한 결과가 확률에 의해 돌고 돌다가 우연히 내게 할당된 보상이기 때문이다. 의리의 반대는 차별이다. 차별은 서로 공유하는 자산이 없다. 말이 통하지 않는다. 서로를 가족으로 인정하지 않고 동료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오랑우탄과 보노보와 침팬지는 아직도 그러고 있다. 그들은 여전히 나무에서 내려오지 못한다. 의리가 동물과 인간을 구분하는 기준이다.

 

 

'◆의사결정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국은 상생, 중국은 너죽고 나살자  (0) 2021.11.30
●● 잘난 한국인들아.  (0) 2021.11.29
이재명 지지율 안정적  (0) 2021.11.25
●● 전두환 죽고 윤석열 어쩌나?  (0) 2021.11.24
노무현 이재명  (0) 2021.11.22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