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셋 찌르고 겨우 친아버지 찾았는데 죽었다. 일해는 떠나고 일베는 망했다. 대본이 있으면 연기는 곧잘 하는데 프롬포터 꺼지면 도리도리도 못하고 죽을 맛이다. 문상을 갈텐데 어제는 광주에서 절하고, 오늘은 목포에서 술 쳐먹고, 내일은 두환에게 절하면 웃기잖아.
전두환은 맹랑한 군인이었다. 박정희가 프로레슬링 보는데 전두환이 ‘각하! 저거 다 쇼라고 하던데 왜 보나요? 축구나 틀어보시죠?’ 이랬다가 귀퉁배기 쳐맞았지만 되레 신임을 얻었다. 다들 미친듯이 아부하는데 아부도 할 줄 모르는 놈이 재규하고 두환이지. 두 놈은 믿을만 해.
재규는 박정희를 처단했고 두환이는 박정희의 죄를 두 배로 늘려 놓았다. 전두환 아니었으면 더 빨리 민주화가 되었겠지만 역사라는게 그리 만만치가 않다. 갈짓자 행보를 피할 수가 없다. 박정희에게 당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환상을 가지고 삽질을 해서 더 나빠졌을 수도 있다.
아직도 박정희 광신도가 반이나 되지만 반까지 줄여놓은 사람이 전두환이다. 그는 죽는 순간까지 사죄하지 않았다. 왜 사죄하지 않았을까? 잘못한게 뭔지 모르기 때문이다. 대본대로 연기했는데? 대본을 쓴 넘이 잘못했지. 전두환에게 엎드려 절받기 사죄요구는 의미가 없다.
지금에 와서 일본에게 사죄받는 것도 의미가 없다. 우리가 일본에 못 이기면 사죄라도 받아야 하지만 일본을 이기면 사죄는 필요없다. 응징하면 된다. 받은 만큼 돌려주는 거다. 사죄를 받고 용서하느니 전두환 세력을 이겨서 처단하면 된다. 노태우도 죽고 전두환도 죽었다.
앓던 이가 빠졌다. 세월 이기는 장사는 없다. 역사는 젊은이가 이긴다. 사람들이 깨달았으면 좋겠다. 구조론은 이념이 사기라고 말한다. 상호작용이 있을 뿐 옳고 그름이라는 것은 없다. 도도한 에너지의 흐름이 있다. 장강의 뒷물결이 앞물결을 밀어내는 것은 그냥 물리학이다.
때로는 구관이 명관이다. 그렇다고 해서 구관을 다시 불러오려고 하면 안 된다. 우리가 신관을 잘 가르쳐야 한다. 세종 같은 좋은 임금은 다시 오지 않고 이순신 같은 좋은 장군은 다시 오지 않는다. 우리는 과거의 향수를 버리고 우리 시대의 새로운 게임에 적응해야만 한다.
옳고 그름의 집착은 자신이 능동적으로 게임을 설계하지 않고 남들이 차려주는 밥상에 메뉴만 고르겠다는 소극적인 태도다. 남의 밥상을 받으면 길들여진다. 우리에게는 옳고 그름의 판단이 아니라 산전수전 공중전의 경험치가 필요하다. 시행착오와 오류시정이 필요하다.
그때 그 시절 우리가 순진했다. 노무현도 착하게 하다가 당했고, 문재인도 착하게 하다가 당했다. 그때도 그랬다. 전두환은 별로 잘못한게 없다. 대본을 써준 노태우와 허삼수, 허화평, 허문도가 더 죽일놈들이다. 당시 국민과 3김은 군부세력의 발호를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사태를 안이하게 본 것이다. 그들의 악랄한 권력의지를 읽어내지 못했다. 순진하게도 박정희가 군부를 잘 억눌러 놓았다고 믿은 것이다. 순진하게 정치보복을 금지한 김대중의 뜻을 이명박이 존중할 줄로 믿고, 순진하게 윤석열이 임명권자에게 복종할 지능이 있을 줄 알았다.
그래봤자 감옥행인데 이명박이 설마? 쿠데타 해봤자 전두환 신세인데 윤석열이 설마? 역사적으로 설마는 항상 사람을 잡아왔다. 우리가 순진했다. 박정희는 수방사와 보안사를 운영하며 쿠데타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정치군인을 주변에서 확실하게 제거했다고 믿은 거다.
그런데 쿠데타 막는 수방사와 보안사가 쿠데타를 감행한다. 쿠데타 막는 전두환이 쿠데타 하고 공직자 감시하는 윤석열이 쿠데타를 한다. 세상이 항상 이런 식이다. 사람을 믿으면 안 된다. 사람 뒤에 세력이 붙어있기 때문이다. 좋은 사람도 나쁜 세력이 붙으면 나빠진다.
왜 전두환은 사죄하지 않을까? 사죄는 쉽다. 잘못했습니다. 한마디만 하면 된다. 그다음은? 그다음 동작이 생각나지 않아서 사죄하지 않는다. 사죄하고 바로 양주 먹어? 윤석열처럼 광주에서 사죄하고 목포에서 폭탄주 돌려? 이상하잖아. 전두환은 연기를 못했을 뿐이다.
전두환은 역사의 수레바퀴에 치어 푸줏간에 매달린 한 덩이의 고깃덩어리에 불과하다. 뇌는 원래 없었다. 박정희는 그의 무뇌를 좋아했다. 차지철과 전두환. 두 짱돌을 양 손에 쥐면 안심이 된다. 전두환을 감정적으로 미워할 필요는 없지만 밟아줄 때는 확실히 밟아줘야 한다.
누구를 미워하는 감정은 내 수명만 단축시킨다. 감상은 필요없고 우리는 물리학자의 자세로 그를 도구로 삼으면 된다. 이런 경우에는 밟아주는게 예의다. 노무현의 죽음과 조국 탄압은 우리를 뭉치게 했지만 전두환, 노태우의 죽음과 이명박 박근혜 구속은 저쪽을 분열시킨다.
신차는 밟을수록 길들여지고, 구형차는 밟을수록 폐차된다. 죽음 앞에서는 겸허해야 하지만 그는 40년 전에 죽었다. 타이밍에 맞게 부고가 날아왔을 뿐이다. 이렇게 또 한 시대가 정리되는 것이다. 낡은 것에 대한 어리석은 미련을 버리고 새것을 잘 길들여서 써먹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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