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23 08:03:52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남침으로 한반도에 전쟁이 발발했다.
1950년 9월
642명의 재일동포 청년들이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한 번도 밟아보지 못한 땅이고
한국어조차 하지 못했지만
이 땅을 조국이라 여기며
아무도 부르지 않았지만 조국을 위해 나섰다.
일본의 미군 기지에서 3일 간의 훈련을 받고
그들이 가장 처음 밟은 한국땅은 인천이었다.
인천상륙작전에 투입되어 용감하게 싸우고 누군가는 전사했다.
거듭된 진격으로 백두산을 보고 오기도 하고
장진호에서 쓰라린 추위에서 죽어가는 동료들을 보기도 했다.
1953년
휴전으로 3년간의 전쟁이 마무리 되었다.
135명은 전사하여 조국의 흙이 되었다.
265명은 일본에 있는 가족의 품에 돌아갔다.
하지만 242명은 일본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1952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이후 일본은 주권을 회복했다.
그리고 그들의 눈에 재일한국인은 눈의 가시였다.
그들이 일본 국적을 포기했다는 핑계로
전쟁의 끝까지 남아 있던 242명을 들여보내주지 않았다.
그들은 무작정 부산항으로 향해
집으로 돌려보내달라 외쳤지만 소용없는 메아리일 뿐이었다.
가족에게 편지를 보내고 싶어도 일본은 받아주지 않았다.
그들의 생사를 모르는 가족들도 그들에게 편지를 보낼 수 없었다.
수 십년 동안이나 서로의 소식을 알지도 듣지도 못했다.
그렇게 또 다른 이산가족이 생겼다.
2013년 방영된 KBS다큐
'63년의 그리움, 내 딸 미요코 - 전쟁으로 잃어버린 딸을 찾아 나선 재일학도의용군 출신의 할아버지 이야기' 입니다
재일학도의용군으로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에 참전했었고,
51년 3월에 한 번 더 지원해 조국의 땅을 밟았다가
일본에 있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된
김운태씨의 이야기를 다루었습니다
당시 일본에는 세살배기 딸 미요코씨와,
둘째를 임신중인 만삭의 아내 기미코씨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게 가족과의 마지막이었습니다
지난 2013년, 63년만에서야 딸 미요코씨를 찾아
일본으로 갔으나
자격이 없다는 이유로 일본 측에서 정보조회를 거부해
딸을 찾지 못한 채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그 후 이런 그의 안타까운 사연이 일본에 기사화되면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이를 통해 자신이 미요코라고 알려온 분과
간신히 연락이 닿게 됩니다
(이 부분은 위 영상의 링크 39:59쯤 부터 시작하는데..
한번쯤 직접 보시길 권합니다 너무나도 안타깝네요..)
전쟁의 아픔과
제대로 청산되지 못한 과거로 인한 피해가
모두 담겨져 있는 슬픈 역사라는 생각이 드네요
꼭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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