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비즈 최상현 기자 입력 2021. 08. 25. 11:01
더 무거워진 양도세에 '차라리 증여'가 대세
집값 고공행진에 관망세 뚜렷
다주택자 절세 매물 '뚝'
예정된 중개보수 인하도 일부 영향
대출 규제로 수요자 구매력 급감
“‘거기 아파트값이 얼마쯤 하나요’라고 물어왔다가 가격을 듣고는 ‘아…’하고 끊는 경우가 부쩍 늘었어요. 이제 대출도 잘 안 나온다는데 10억 넘는 집을 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서울 마포구 A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이같이 말하며 “반대로 매물을 내놓으려던 사람이 ‘세금 다 내고 나면 갈 데가 없을 것 같다’며 거두는 사례도 있다”면서 “사는 입장에서나 파는 입장에서나 참 어려운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8일 오후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한 부동산 모습. /연합뉴스
이달 들어 서울을 중심으로 ‘거래절벽’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25일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8월 아파트 매매 거래량은 710건으로 집계됐다. 법정 실거래 신고기한이 아직 남아있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앞서 5월부터 7월까지의 평균 거래량(4322건)이나 전년 동월 거래량(4981건)과 비교하면 현격히 낮은 수치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이처럼 ‘거래절벽’이 발생한 이유로 크게 다섯 가지 정도를 꼽았다.
①양도세 무서워 안 팔아...‘차라리 증여’ 선회도
첫 번째 요인은 세 부담 심화에 따른 ‘매물 잠김’ 현상이다. 지난 6월부터 다주택자와 단기 거래자에 대한 양도소득세 최고세율이 75%로 인상됐다. 규제지역 내 다주택자의 경우 이전보다 10%포인트(P) 더 무거운 양도세를 내게 됐고, 보유 기간이 2년 미만인 주택을 매매할 때는 차익의 60~70%를 세금으로 내야 한다.
이에 매매대신 증여를 택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 통계에 따르면, 지난 5월 서울의 아파트 거래 9428건 가운데 증여는 1261건으로 전체의 13.4%를 차지했다. 그러나 6월에는 아파트 거래 7421건 가운데 1698건이 증여로, 그 비중이 22.9%로 훌쩍 뛰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시세 차익 대부분을 양도세로 납부하는 것보다는, 언젠가는 내야할 세금인 증여세를 부담하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면서 “앞으로 집값이 더 오를 거라고 전망되는 만큼 쉽게 내놓지 않으려는 심리도 작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일러스트=정다운
② 놔두면 오를 텐데...‘관망세’ 지속
두 번째로, 집값이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는 점도 거래절벽이 일어나는 요인이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8월 셋째 주 수도권 아파트 매매가격은 한주 새 0.40% 올랐다. 주간 통계 작성을 시작한 2012년 5월 이래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KB국민은행 리브부동산이 집계한 서울 부동산 매매가격 전망지수는 지난달 122.8로 3월(107.6) 이후 4개월 연속 상승하고 있다. 서울 성동구 C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손바뀜이 뜸한 가운데, 간혹 거래가 이뤄졌다 하면 신고가가 찍히는 상황”이라고 했다.
③ 이제 팔아도 재산세 내는데...절세 매물 ‘실종’
세 번째 요인은 절세를 목적으로 상반기에 쏟아졌던 다주택자 매물이 급감했다는 점이다. 과세기준일인 지난 6월 1일 이후에는 집을 팔아도 재산세 부과를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아실’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매물은 지난 5월초 약 4만8000개에서 8월 23일 기준 약 3만8000개로 석 달여 만에 21%가량 감소했다. 리브부동산이 조사하는 매수우위지수는 지난달 103.3으로 5개월 만에 ‘매수자 많음’ 상태로 전환됐다.
④ ‘반값 복비’도 영향
정부의 부동산 중개보수 개편에 따른 ‘매매 미루기’도 거래절벽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지난 20일 국토교통부는 6억원 이상 거래에 대한 중개 수수료를 낮추는 내용의 ‘부동산 중개보수 및 중개서비스 개선 방안’을 확정했다.
개선안에 따르면 9억원짜리 아파트를 매매할 때 나오는 중개보수가 현행 810만원에서 450만원으로 크게 줄어든다. 서울은 6억원 이상 고가 아파트가 대다수인 만큼 중개보수 인하 효과도 가장 크게 나타날 전망이다.
⑤ 멀어진 집값과 좁아진 은행 문
마지막으로 실수요자의 구매력 약화가 거래량 급감의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의 평균 아파트값은 11억930만원에 달하는데, 1년 전(8억8183만원)과 비교하면 2억원이 넘게 오른 것이다.
이처럼 진입 장벽이 높아진 상황에서 대출 규제까지 심화했다. 금융당국은 지난달 시중은행 가계대출에 개인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40% 한도 규제를 적용했다. 이달 들어서는 신용대출도 연 소득을 초과해서 받지 못하게 됐고, 대출 증가율이 높은 일부 은행에서 주택담보대출을 중단하는 사태까지 잇따르고 있다.
윤지해 부동산114 수석연구원은 “서울은 안 그래도 가격 부담감이 크고, 매물이 부족해 매도인이 호가를 높게 부르는 상황”이라면서 “여기에 대출 규제가 수요자의 유동성까지 죄며 서울 아파트는 거래가 급감했고, 상대적으로 싼 경기·인천으로 수요가 몰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현재의 거래절벽은 계절·시기적 요인과 규제 중첩이 빚어낸 복합적인 결과”라면서 “당분간 이런 상태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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