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21.08.21. 오후 1:00
5월부터 홍남기 5차례, 노형욱 3차례 '경고성 메시지'
아파트 실질가격 등 각종 지표 제시하며 집값 고점론
공급 폭탄, 금리 인상, 연구기관 전망 등 근거로 제시
'공포 마케팅'으로 추격 매수 자제시키기 위한 의도
통하지 않는 경고…6·7월에도 서울 집값 급등 양상
전문가 "공급부족이 고점 경고 등 다른 요인 압도"
[서울=뉴시스] 강세훈 기자 = 정부의 '집값 고점론' '집값 상투론' 경고 발언 수위가 점점 강해지고 있다. "진중한 결정을 해 달라"는 간곡한 요청으로 시작된 경고가 시장에 통하지 않자 이제는 "골이 깊어질 때 굉장히 큰 문제가 생긴다"는 엄포로 바뀌었다. 정부의 '공포 마케팅'이 가격 부담, 공급 폭탄, 금리 인상, 가계 대출 규제 등과 맞물리면서 시장의 추세 전환으로 이어질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21일 정부에 따르면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집값 우려를 처음 표명한 것은 지난 5월24일 확대 간부회의에서다. 이 자리에서 홍 부총리는 "외환위기 등 부동산 가격 급등 후 일정 부분 조정 과정을 거친 경험을 감안해 진중한 결정을 해 달라"고 말했다.
이어 6월3일 제23차 부동산시장 점검 관계장관회의에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조정을 받기 이전 수준인 과거 고점에 근접했다는 점을 감안해 한 방향으로의 쏠림을 경계해야 한다"고 했고, 같은 달 30일 회의에서는 "지나치게 높은 가격으로의 추격매수 보다는 정확한 정보와 합리적인 판단 하에 의사결정 해 달라"고 말했다.
지난달 30일에는 대국민 담화까지 발표하며 "지금은 불안감에 의한 추격매수보다는 향후 시장상황, 유동성 상황, 객관적 지표, 다수 전문가 의견 등에 귀 기울이며 진중하게 결정해야 한다"고 했다.
노형욱 국토부 장관도 가세해 여러 차례 경고성 메시지를 내놨다. 그는 지난 19일 "역사적으로 경험했지만,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 골이 깊어질 때 굉장히 큰 문제 생긴다"고 경고했다. 최근 3280선까지 올랐다가 보름 만에 3060선까지 떨어진 코스피처럼 집값도 단기간에 빠르게 하락할 수 있다고 경고한 셈이다.
경제 수장들이 집값 조정을 가능성을 잇따라 언급한 것이 단순한 직관에 의한 것은 아니다.
이들은 우선 아파트 실질가격, 주택구입 부담지수, 소득대비 주택가격 비율 등 부동산 관련 여러 지표를 따져볼 때 지금 가격이 사상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는 점을 근거로 '집값 상투론'을 펴고 있다.
기재부에 따르면 물가상승률을 배제한 서울 아파트 실질 가격이 미국발 세계 금융 위기 직전인 2008년 5월을 100으로 할 때 2013년 79.6까지 떨어졌다가, 지난해 12월 98.8, 올해 5월 99.5까지 상승했다.
또 KB국민은행이 가구 소득 대비 주택 가격 비율(PIR) 집계를 시작한 2008년 12월 서울의 평균 집값은 중위 소득 기준 11.9배였지만, 올해 3월에는 17.8배까지 뛰었다. 서울에서 중간 소득 가구가 중간 가격대 집을 사려면 17.8년 동안 소득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한다는 뜻이다.
또 한국주택금융공사의 주택금융연구원이 조사한 올해 1분기 서울의 주택구입부담지수(K-HAI)는 전분기 대비 12.8포인트(p) 상승한 166.2로 전고점(2008년 2분기 164.8)을 넘어섰다.
이는 해당 지수를 산출하기 시작한 2004년 이래 최고치다. 주택구입부담지수는 중간 소득 가구가 표준 대출을 받아 중간가격의 주택을 구입할 때 상환 부담을 나타내는 지표다.
이 같은 통계 지표를 근거로 "현재 집값은 기초체력 대비 고평가된 수준이다. 조정국면을 맞이하는 것은 시기의 문제이지 언젠가는 온다"(노형욱 국토부 장관, 7월 11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정부는 또 지난달 22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부동산 전문가 패널 1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94.6%가 현 주택가격 수준이 고평가 됐다고 답한 것도 경고성 발언과 함께 제시하고 있다.
정부는 또 '폭탄' 수준의 주택 공급량을 집값 하락 가능성의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 정부는 그동안 발표한 공급정책이 추진되면 앞으로 10년 동안 수도권에 31만 가구(서울 10만 가구)가 매년 공급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분당, 일산 등 1기 신도시가 29만 가구인 점을 감안하면 10년 동안 매년 1기 신도시 규모의 주택이 수도권에 공급되는 만큼 집값 과열이 진정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정부는 지난달부터 집값을 잡기 위한 또 다른 카드로 3기신도시 등에 대한 사전청약을 시작했다. 올해 사전청약 물량도 3만2000가구까지 대폭 늘리기로 한 상태다.
사전청약은 본 청약 1~2년 전에 아파트를 조기에 공급하는 제도로, 현 시점에서 공급 물량이 늘어나는 만큼 정부는 매수심리가 꺾이는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이 예고돼 있다는 점도 거듭 주지시키고 있다. 금융시장 등의 관측에 따르면 연내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이 높고, 이르면 이번 달 26일 열리는 금통위에서 금리인상이 단행될 가능성도 있다.
금리가 올라가면 대출에 따른 원리금 상환 부담이 늘어나기 때문에 그만큼 주택 투자 수요가 줄어들게 된다. 이런 과정 속에 집값이 조정 국면에 들어갈 것이라는 게 정부의 생각이다.
노 장관은 "한국은행 총재가 연내에 금리인상 가능성을 언급했다"며 "통화정책이 추진되면 집값 안정에 상당 부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거듭 강조하고 있다.
이 같은 요인들을 근거로 집값이 비정상적으로 많이 올라 하락 위험이 있다는 게 경제수장들의 공통된 견해다. 하지만 현재까지의 상황만 놓고 보면 이같은 경고성 메시지는 시장에 전혀 먹혀들지 않고 있다. 오히려 집값은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고공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홍 부총리 경고 발언이 있었던 5월 이후에도 한국부동산원의 서울 주택종합 매매가격지수는 5월(0.40%) 6월(0.49%), 7월(0.60%) 등 상승폭이 확대되고 있다. 7월 수치는 작년 7월 이후 1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오른 것이다.
시장 참여자들의 아파트 매수 심리도 점점 강해지고 있다. 국토연구원의 7월 부동산시장 소비자심리조사에 따르면 서울 주택매매시장 소비심리지수는 145.7을 기록해 전달(141.6) 보다 4.1포인트 상승했다.
소비자 심리지수는 전국 152개 시·군·구 6680가구와 중개업소 2338곳에 대한 설문조사를 통해 산출한 것으로 기준선(100)을 넘으면 집값 상승이 계속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더 많다는 뜻이다.
정부의 집값 경고에도 오히려 집값이 더 빠른 속도로 치솟자 수요자들 사이에선 "정부 말을 반대로 해석하면 돈을 번다"는 조롱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부동산114 윤지해 수석연구원은 "정부의 고점 경고와 가격 부담감, 금리 인상 가능성, 세금 중과와 가계 대출 규제 등에도 불구하고 공급부족이라는 수급 요인이 다른 변수를 압도하는 분위기"라며 "본청약과 공사기간 등을 고려하면 실제 입주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이는 만큼 기존 주택시장에서의 매물 잠김 현상이 완화되기 전까지는 단기간에 추세 전환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강세훈 기자(kangse@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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