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혜 입력 2021. 08. 22. 06:14 수정 2021. 08. 22. 07:34
[알지RG]
바이든의 큰 그림, 중동 미군 빼 중국 견제
바이든의 숨은 그림, 탈레반 혼란 중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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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알지RG'는 '알차고 지혜롭게 담아낸 진짜 국제뉴스(Real Global news)'라는 의미를 담은 중앙일보 국제팀의 온라인 연재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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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AFP=연합뉴스]
“우리는 100년간 쓸 수 있는 천연가스를 가졌습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2012년 연두교서에서 한 말이다. 2007년부터 본격화한 ‘셰일 혁명’은 오바마 집권 기간(2009~2016) 미국을 세계 제일의 에너지 부국으로 만들었다. ‘100년 간의 천연가스’ 선언이 나온 지 9년 후 미국은 ‘밑빠진 독’ 아프가니스탄을 손절했다. 아프간 안정이 중동 안전의 변수 임에도 그간 들어갔던 돈과 앞으로 들어갈 돈을 계산해본 뒤 결국 미군을 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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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 교수는 “1970년대 ‘석유 파동’으로 중동은 미국에 ‘사활적 이해’가 있는 지역이 됐다”며 “그런데 셰일 혁명이 일어나면서 미국의 핵심 이익에서 멀어졌다”고 설명했다.
아프간 철수의 직접적 이유는 ▲오사마 빈 라덴으로 상징되는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의 테러 위협이 한풀 꺾였고, ▲아프간 미군 주둔이 들어가는 비용만큼의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철군의 먼 원인은 ‘중동 석유’의 지정학적 중요성이 점점 줄어들면서 시작됐고, 이를 보다 분명히 알린 게 셰일 혁명이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AFP=연합뉴스]
석유를 대체하는 셰일 혁명이 아프간 철수로 이어지는 나비 효과 중 하나로 작용한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은 세계 최대 석유 매장량을 자랑하는 중앙아시아와 중동 지역의 길목에 있다. 아프간의 전략적 중요성은 ‘석유 길목’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있는 것이다. 2001년 미국의 아프간 침공을 ‘테러와의 전쟁’인 동시에 ‘석유 전쟁’이라는 분석은 그래서 나온다. 러시아와 이란, 중국을 피해 중동과 중앙아의 석유를 서방 시장으로 연결하려면 아프간을 통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아프간의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미국에 있어서 아프간의 중요도는 당연히 중동의 중요도와 비례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셰일 혁명이 시작되고 미국의 중동 원유 의존도가 낮아지면서 전략 지형도가 바뀌었다. 이희수 성공회대 이슬람문화연구소장은 “미국은 (이제) 원유를 중동에서 수입하지 않는다”며 “셰일 혁명 이후부터 서서히 탈(脫) 중동정책이 굳어져 이라크, 시리아에서도 발을 뺐고 마지막으로 아프간에서 손을 뗐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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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AFP=연합뉴스]
오바마가 시동을 건 탈 아프간 기조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조 바이든 대통령으로 이어졌다. 트럼프와 바이든은 전임자가 했던 정책을 ‘줄줄이’ 뒤집었지만, 아프간 철군이라는 큰 그림만은 이어받았다. 트럼프는 미국이 20년 가까이 공들인 아프간에서 퇴로를 마련하기 위해 탈레반 지도자를 직접 상대하기까지 했다. 이를 위해 ‘미국의 적’이었던 탈레반 2인자이자 실질적인 지도자 압둘 가니 바라다르를 협상 대상으로 선정해 2018년 파키스탄 감옥에서 그를 꺼냈다.
바이든은 “기꺼이 욕을 먹겠다”며 철군을 강행했다. 고립주의를 추구한 트럼프와의 차별성을 강조해온 그였지만 국내외 양쪽에서 리더십에 상처를 입힐 수 있는 미군 철군을 고수한 것이다. 박원곤 교수는 “바이든은 20년 전쟁에 쏟아부은 돈으로 미국의 국력이 쇠퇴한 가운데 국내 중산층을 먼저 챙기겠다는 경제 정책의 기조를 가졌고, 외교적으로는 미국의 ‘사활적 이해’가 남은 아시아(중국 견제)에 역량을 집중한다는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텍사스 퍼미안 분지의 셰일 유전에서 가스를 태우는 모습. 미국의 셰일가스 혁명은 국제 지정학 변화를 가져왔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의 저명한 지정학 안보 전문가 피터 자이한은 2017년(미국 출간) 저서 『셰일 혁명과 미국 없는 세계』에서 ‘미국은 셰일 혁명과 함께 국제무대에서 발을 빼도 되는 여건이 형성됐다’고 설명한다. 에너지 안보를 확보한 데다 미국인들의 1인당 에너지 소비량이 줄고 있어, ‘에너지 자급자족’에 다가가고 있다면서다.
자이한 교수는 “미국이 북미 대륙 이외의 지역으로부터 에너지를 수입하지 않게 되면 미국의 운명과 세계의 운명을 이어주는 가장 중요한 연결고리가 끊어진다”며 “미국은 지난 70년간 궂은일을 도맡아 했고 세계는 그런 세상에 점점 익숙해졌다. 미국은 이런 세상에서 손을 떼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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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신화통신=연합뉴스]
중국은 미국과 반대 상황이다. 경제가 성장하면서 1인당 에너지 소비량이 늘고 있고, 자원을 수입해 물건을 수출하는 게 주요한 경제 체제인 국가다. 중국이 ‘일대일로’라는 확장 정책을 펴는 이유다. 아프간이 중국에게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아프간이 일대일로에 동참하면 중동인 이란까지 내륙로가 뚫린다. 모든 내륙 수송로가 아프간과 맞닿은 신장 지역을 통해 들어온다는 점에서도 아프간은 중국의 에너지 안보에 중요한 지정학적 요충지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물론 중국은 바닷길로도 에너지·물류 통로를 뚫을 수 있다. 하지만 트럼프에 이어 바이든 역시 인도태평양 전략으로 남중국해, 말라카 해협, 인도양에서 중국을 포위하려 한다. 중국이 남중국해로 뚫고 나가려 하자 미국은 수시로 항모 전단을 보내 ‘항행의 자유’라는 완력 정책으로 중국과의 물리적 대결을 피하려 하지 않는다. 미국 정부는 아예 영국·프랑스 등 서유럽 전통의 우방과 일본·호주의 해군까지 불러 대중 전선을 꾸리려 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를 향해 여기에 합류하라고 요구한 지 오래다.
그런데 바이든 대통령이 아프간 철군을 강행하면서 중국 입장에선 뜻밖의 변수가 생겼다. 미군이 나간 것까지는 좋은 데 중국과 탈레반 공동의 적이 사라지면서 그간 수면 아래에 있었던 중국과 탈레반 간의 ‘제로섬 관계’가 향후 떠오를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할 상황이 됐다.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는 “중국은 남중국해에서 미국의 압박을 받고 있기 때문에 남중국해를 통하지 않는 에너지 루트를 개발해 왔다”면서 “내륙 파이프라인 루트는 전부 신장 지역을 통하고 있어 탈레반과 함께 수니파 이슬람 권역이 신장에 형성돼 분리 독립운동이 강화하면 에너지 안보에 차질이 생긴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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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AFP=연합뉴스]
바이든이 아프간 철군을 결정하면서 이런 상황을 모를 리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즉 바이든의 ‘큰 그림’은 미국의 지구촌 경영 전략에서 중동의 중요성이 줄어듦에 따라 그간 중동에 쏟았던 돈과 군대를 아시아태평양으로 돌려 중국 견제에 나서는 데 있다. 동시에 큰 그림 속에 ‘숨은 그림’은 아프간 혼란상을 방치해 결국 그 여파를 중국이 관리할 수밖에 없도록 하는 ‘떠넘기기 전략’이라는 관측도 있다.
바이든 정부가 출범 이후 국제사회에서 여론몰이에 나선 게 중국 당국의 신장 위구르 인권 탄압 문제다. 물론 전임 트럼프 정부 때 미국 국무부 차원에서 인권 문제를 연례적으로 제기했지만 바이든 정부는 아예 집요하게 이를 따지고 있고, 유엔 등 국제무대에서도 적극적으로 이슈화하고 있다.
레제프 타입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과 블라드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오른쪽). 2019년 10월 두 정상은 러시아 소치에서 열린 회담에서 시리아 북동부 국경 지역에 러시아 헌병대와 터키군이 공동 순찰을 하는 등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 과정에서 터키의 레제프 타입 에르도안 대통령이 돌연 신장 문제로 중국을 비난하는 일도 있었다. 그는 서구 세계와 충돌을 빚고 중국, 러시아와 밀착해온 터라 중국도 적잖이 놀랐다. 터키 역시 탈레반, 신장 위구르족과 같은 ‘수니파 이슬람’의 나라다. 김한권 교수는 “에르도안이 중국을 비난한 것은 사소해 보일 수 있지만 흥미로운 대목”이라며 “중국이 아프간에 경제적 원조를 하며 서로 협력하는 모양새를 띠더라도, 종교와 이념적 문제는 모든 이해를 넘어서는 문제로 나타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짚었다.
중국의 새로운 고민거리는 그간 탈레반의 동진을 막아온 미군이 떠나면서 탈레반이 투르크메니스탄·우즈베키스탄·타지키스탄 등 중앙아 3국과 중국 서부 신장지역까지 ‘수니파 이슬람 세력권’을 형성할 가능성이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는 “미국은 탈레반 재집권으로 인한 아프간의 혼란 상황이 미국보다는 인근 지역의 부담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중국이 생각도 하기 싫은 최악의 시나리오는 탈레반이 신장 위구르 독립운동에 개입하며 ‘하나의 중국’이라는 중국의 일체성이 흔들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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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7월 2일 아프가니스탄 헬만드 주에 있는 캠프 드와이어에서 미 해병대가 칸자르 작전의 일환으로 헬리콥터 수송을 기다리고 있다. [AFP=연합뉴스]
미국의 아프간 철군이 한국엔 어떤 나비효과를 가져올까.
바이든 대통령은 19일(현지시간) 미국 ABC 방송에 출연해 “한국, 대만, 나토 등 동맹은 아프간과 다르다”고 했다. 하지만 한국은 여러모로 긴장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미국의 아프간 철군이 국제사회가 각인시킨 건 미국의 핵심이익이 사라지면 미군도 떠난다는 철저한 실리주의 원칙이다.
현재까지 한국, 대만, 나토 모두 미국엔 핵심이익이다. 나토는 2차대전 후 만들어진 대서양 동맹을 지탱하는 축이자 러시아의 서진을 막는 미국판 만리장성이다. 대만은 중국의 대양 진출을 위협하는 교두보다. 한국의 미군은 사실상 중국을 견제하는 최전선이자 자본주의 진영의 핵심 생산국인 일본을 미리 보호하는 최전방 기지다. 즉 현재로선 모두 미국의 핵심이익을 지켜주는 곳이다.
하지만 핵심이익은 영구적이지 않다. 9·11테러 이후 엄청난 병력과 재정을 투입해야 했을 정도로 중요했던 아프간을 20년 후 미국은 미련 없이 떠나고 있다. 한반도 역시 향후 20년 후에도 미국의 핵심이익이라고 장담하는 건 교만이다.
■ ◆셰일가스
「 진흙이 쌓여 만들어진 퇴적암층인 셰일층에 존재하는 천연가스. 한곳에 몰려 있는 유전지대 천연가스 와 달리 비전통가스로 분류된다. 셰일가스는 암반 틈 에 퍼져 있어 채굴이 어려웠다. 그러나 수직으로 땅을 뚫고 들어간 뒤 지표면과 수평으로 사방을 훑을 수 있는 수평시추 공법이 개발돼 경제성 있는 채굴이 가능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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