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제 조양준 기자 입력 2021. 08. 16. 16:28 수정 2021. 08. 16. 16:32
고질적 부패가 아프간 軍 전투 의지 꺾어
"기술 관료 출신 대통령 수완 부족도 한몫"
30만 중 상당수가 월급만 받는'유령 군인'
탈레반, 돈으로 매수하며 빈틈 노려
탈레반 무장 대원들이 16일(현지 시간) 아프간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 근처에 배치돼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서울경제]
불과 2주도 안 되는 짧은 기간 동안 아프가니스탄 전역을 차지해버린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탈레반. 이 같은 ‘파죽지세’는 탈레반의 전투력이 아니라 아프간 군대의 ‘무능’이 원인이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부패한 정치와 군 수뇌부가 아프간 군으로 하여금 ‘무엇을 위해 싸우는가’ 하는 회의감에 빠지게 했고, 결국 병사들을 ‘무용지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16일(현지 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30만명으로 추산됐던 아프간 정규군은 미국이 지난 20년 동안 해온 투자를 바탕으로 첨단 무기와 도구로 무장했다. 또 미군 주도 하에 정기적인 훈련도 이뤄졌다. 그러나 아프간 정규군은 탈레반이 아프간을 빠른 속도로 점령하는 사이 별 다른 저항도 해보지 못했다. 아프간 병사가 오토바이를 타고 소총으로 무장한 탈레반 대원에게 붙잡히는 사례도 발생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FT는 “아프간 군의 붕괴는 아프간 정부에 대한 환멸이 근본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군 내부의 고질적인 부패로 이미 병사의 사기가 땅에 떨어졌다는 것이다. 영국 육군 장교 출신이자 아프가니스탄 분쟁 전문가인 마이크 마틴은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훈련이나 무기 부족이 아니라 ‘정치’다”라고 강조했다. 세계은행(WB) 경제 전문가 출신인 아슈라프 가니 아프간 대통령의 정치력 부재도 한 몫 했다. 마틴은 “기술 관료 출신인 가니 대통령은 아프간 군한테 대의 명분을 심어줄 수완이 부족했다”고 분석했다.
미국의 한 국제정치 전문가도 전날 CNN 방송에 출연해 “아프간 국민들은 그 동안 미국이 ‘아프간처럼 부패한 정부를 그토록 오래 지원할까’ 의문을 제기해왔다”고 전하기도 했다.
아프간 대통령궁 장악한 탈레반. /AP연합뉴스
30만명으로 추산되는 아프간 군 가운데 상당수는 월급을 받기 위해 등록한 ‘유령 군인’이라는 사실도 드러났다.
미군의 철수로 ‘지원군이 없다’는 고립감은 아프간 군대를 더욱 위축시켰다. 아프간 군은 ‘미군 없이 탈레반과 전투에서 이길 수 있을까’하고 겁을 먹은 상태였다. 전직 미군 고위 관계자는 FT에 “아무도 구조하러 오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나면 도망치거나 항복할 일 밖에 남은 것이 없다”고 했다. 이것이 34개 아프간 주도(州道)가 마치 도미노처럼 탈레반한테 점령 당한 배경이라는 설명이다.
탈레반은 그 빈틈을 노렸다. 미 워싱턴포스트(WP)는 탈레반이 지난해부터 농촌 마을 아프간 정부의 하급 관리들과 ‘밀거래’를 해왔다고 보도했다. 아프간 정규군을 상대로 ‘무기를 넘겨받는 대가로 돈을 지불하겠다’고 제안한 것이다. 실제 최전선에서 탈레반과 교전하는 아프간 경찰관들은 9개월 넘게 급여를 받지 못하는 등 악조건과 싸우다 탈레반의 거듭된 제안에 투항하는 일도 빈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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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양준 기자 mryesandn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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