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배정철/양길성 입력 2020.03.13. 17:29 수정 2020.03.14. 00:59
대출 규제에 코로나까지..
얼어붙은 강남 부동산
강남 중개업소 가봤더니
은마 주변 22곳 중 5곳만 영업
발길 끊기고 전화도 드문드문
13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앞 J공인중개업소에 들어가자 수화기 너머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압구정동 현대3차 전용 84㎡를 21억원에 팔아달라는 전화였다. “지금 그 가격에는 아무도 사는 사람이 없습니다.” J공인 대표는 한숨을 쉬며 답했다. 그는 “지난해 12월만 해도 24억원에 거래된 물건이 지금은 21억원에도 매수세가 안 붙는다”며 “2018년, 지난해 하락장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분위기가 어둡다”고 말했다. 인근의 200m 거리에 즐비한 중개업소 10여 곳은 발길 하나 없이 한적했다.
급매물 안내장 수두룩
이날 둘러본 강남구 압구정동 대치동, 서초구 반포동, 송파구 잠실동 등 네 곳의 부동산 시장은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일선 중개업소는 “사실상 개점 휴업 상태”라며 “사겠다는 사람도, 팔겠다는 사람도 없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정부 부동산 규제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까지 덮치며 ‘거래절벽’이 장기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강남 일대 중개업소에는 어딜 가나 ‘급매물’을 소개하는 안내장이 붙어 있었다. ‘재건축 단지 중 가장 싼 급매물’ ‘급한 매물 OO건 있습니다’라고 적힌 안내장이 눈에 띄었다. 문을 닫은 중개업소도 많았다. 이날 대치동 은마상가에 있는 22개 공인중개사무소 가운데 다섯 곳만 문을 열었다.
지난해까지 대치동은 뜨거웠다. 은마아파트 전용 84㎡는 지난해 11월 23억5000만원에 거래되며 최고가를 찍었다. 연초(16억9000만원) 대비 6억6000만원 치솟았다. 지난달엔 다시 3억원 떨어진 가격(20억5000만원)에 거래됐다. 은마상가 C중개사는 “거래가 안 되는데 뭐하러 출근하겠느냐”며 “가격이 얼마나 떨어졌냐는 문의만 올 뿐”이라고 말했다.
수억 낮춰야 겨우 거래
강남 아파트값은 코로나19 사태가 터진 지난달 들어 급하락하는 추세다. 지난해 ‘12·16 부동산 대책’ 이후 짙은 관망세 속에서 그나마 있던 급매물 거래도 코로나19로 완전히 끊겼다. ‘3.3㎡당 1억원’ 시대를 연 반포동도 마찬가지였다. 이날 오후 찾은 반포자이상가 1층에 들어선 중개업소 15곳에는 손님이 한 명도 없었다. 양봉규 백마부동산 대표는 “반포동 중개업소들이 전부 문을 닫기 직전”이라며 “시세 대비 1억~2억원 저렴한 급매물이 간혹 거래되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2018년 8월 입주한 반포래미안아이파크 전용 112㎡는 지난달 20일 25억500만원에 거래됐다. 지난해 11월(30억4000만원) 대비 3개월 만에 5억원 이상 급락했다. 입주 12년차인 잠실동 리센츠 아파트(전용 84㎡)는 이달 6일 16억원에 거래되며 석 달 만에 무려 5억원이 내렸다. 잠실동 L공인 관계자는 “시세가 21억원에서 18억원대로 떨어진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16억원 거래가 나왔다”고 설명했다.
압구정동에서는 지난해 11월 21억2000만원에 거래된 미성2차 전용 74㎡가 지난달 1억7000만원 낮은 19억5000만원에 손바뀜했다. 시세보다 1억원 낮은 가격이었다.
“코로나 장기화 여부가 관건”
서울 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2월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지난해 10월(1만1529건) 대비 반토막 수준인 6518건으로 급감했다.
강남구의 거래량 하락세가 도드라졌다. 올 2월 강남구 아파트 거래량은 181건을 기록해 작년 10월(700건)의 25% 수준으로 감소했다. 신만호 압구정동 중앙공인 대표는 “작년과 비교해 매물은 70~80% 늘었는데, 이달 들어 거래가 멈췄다”며 “작년 매도자 우위 시장 때와 정반대로 지금은 매수자가 앉은 자리에서 호가를 5000만원 넘게 낮추기도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 부동산 가격 하락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집값 상승세가 높았던 강남 아파트를 중심으로 가격 조정이 나타날 것이란 분석이다. 그동안 상승세에 대한 피로감도 매수세를 얼어붙게 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안명숙 우리은행 부동산센터 부장은 “코로나19로 주식 시장이 급락하면서 주택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도 꺾이고 있다”며 “급락하기보단 1~2년간 하락세를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집=안전자산’이란 공식이 유효할지도 미지수다. 안전자산으로 꼽히는 미국 채권과 금값도 이날 줄줄이 급락해서다. 한국은행이 금리 인하 가능성을 내비쳤지만 유동자금이 부동산 가격을 끌어올릴지는 불확실하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코로나19 확산으로 실물경제가 망가지면 금리를 낮춰도 집값 하방 압력은 커질 것”이라며 “2008년보다 영향이 더 클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배정철/양길성 기자 bj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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