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당적 협력체제 없이는 집값을 잡을 수 없다 지난 9.13조처로 조금 안정화 되나 싶던 집값이 다시 고공행진을 할 기색을 보입니다. 현 정부가 잘못한 사례 중 하나로 ‘집값 폭등’을 드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갑니다. 서민들의 입장에서 볼 때 이처럼 집값이 천정부지로 뛰는 것은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지요. 젊은이들의 결혼, 출산 기피 현상의 근저에도 바로 이 주택문제가 도사리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현 정부하의 집값 폭등은 과거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의 비슷한 현상과 근본적인 차이를 갖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잘 기억하고 계시겠지만, 그때는 주택 투기를 하라고 사람들 등을 떠밀지 않았습니까? 이명박 정부는 경기부양을 위해 부동산 투기억제책을 줄줄이 풀어 겨우 안정세를 굳혀가던 집값을 다시 상승세로 반전시켰습니다. 박근혜 정부는 이에서 한 술 더 떠 투기하라고 사람들 등을 떠미는 정책까지 서슴지 않았습니다. 반면에 현 정부는 주택을 투기의 수단으로 삼는 일은 막아야 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습니다. 그리고 문제가 크게 불거질 때마다 나름대로 집값을 안정시키려는 노력을 지속해 왔습니다. 그런데도 ‘백약이 무효’라는 식으로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오늘에 이른 것입니다. 나 역시 부동산 전문가가 아니라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묘안을 갖고 있지는 못합니다. 다만 경제학자로서 집값 폭등 역시 근본적으로는 수요과 공급의 문제인 만큼 주택에 대한 수요와 공급을 조정하는 방법밖에 없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말도 그런 차원에서 하는 말이라는 점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사회에는 크게 보아 공급을 통해 집값을 안정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과 수요를 통해 집값을 안정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는 두 집단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공급측면을 중시하는 사람들은 재건축 규제 혹은 그린벨트 규제 등 주택 공급을 제약하는 규제를 철폐할 것을 주장합니다. 그리고 공급물량이 충분히 확보되면 집값은 저절로 안정될 것이라는 주장이 뒤따릅니다.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보수성향의 사람들이 이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또한 내 주위를 보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계층들이 이 입장을 지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구요. 이 입장을 취하는 사람들은 투기수요를 억제하기 위한 정책에 냉담한 태도를 갖고 있는 게 보통입니다. 내 돈 갖고 집을 몇 채를 사든 정부가 관여할 바 아니라는 생각이 깔려 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나는 솔직히 말해 이 입장에 전혀 동의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보기에 집값 폭등의 핵심적 원인은 투기수요에 있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공급이 늘면 집값이 안정된다는 것은 맞지만, 현실적으로 투기수요를 잡지 못하는 한 공급의 증가로 문제는 해결하려는 시도는 ‘언발에 오줌 누기’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는 게 내 믿음입니다. 일부에서 일어나는 주택투기가 무슨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느냐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주택시장의 특성상 작은 규모로 일어나는 투기라 하더라도 전체의 시장 판도를 뒤흔들 수 있는 여지가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잘 아시듯 집값은 ‘자기실현적 예측’(self-fulfilling prophecy)의 성향이 강합니다. 사람들이 어느 동네 집값이 뛸 것이라고 예상하면 실제로 천정부지로 뛰어오르는 현상이 뒤이어 나타나는 걸 여러 번 목격하지 않으셨습니까? 이 자기실현적 예측이 작용하는 과정에서 핵심적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투기적 수요이며, 그런 의미에서 소수에 의한 투기적 수요라 할지라도 핵폭탄급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투기적 수요를 잡지 못하면 아무리 공급물량을 늘려도 집값을 안정시킬 수 없다는 것이 나의 믿음입니다. 돈 많은 사람들이 재태크의 수단으로 여러 채의 집을 사재기하는 걸 막지 못하는 한 공급물량이 늘어 보았자 아무런 효과도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투기 억제를 위한 정부의 정책수단도 거의 고갈되어 가는 상황입니다. 투기 억제를 부르짖는 나로서도 더 이상 어떤 투기 억제책을 새로이 도입하라고 주장하지 못하는 형편입니다. 개인과 시장의 자율을 크게 위협하는 규제책을 도입해 집값을 안정시킨다는 것은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을 태우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앞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나는 현재의 정책 틀 안에서도 집값이 안정될 여지가 충분하다고 봅니다. 최근 올해 종합부동산세 고지서가 발송되자 보수언론은 ‘세금 폭탄’이 떨어졌다고 난리를 쳐대고 있습니다. 집 한 채 갖고 있는 은퇴자에 문제가 있다는 점은 나도 인정하지만, 다주택 보유를 막는다는 취지에서 보면 그 정도의 부담은 당연한 것이 아닙니까? 다주택자에 대해 솜방망이 정도 휘두른다 해서 누가 겁을 내겠습니까? 올해부터 종부세 세율이 비교적 큰 폭으로 올라 다주택 보유자에게는 상당한 압력이 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도 주택을 팔려고 나서는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고, 오히려 집을 더 사재려는 투기적 수요는 여전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정책의 효과가 거꾸로 나고 있는 셈인데, 과연 이런 일이 왜 일어날까요? 문제의 핵심은 미래에 대한 사람들의 ‘예상’(expectation)에 있습니다. 만약 부동산 투기를 억제하는 현재의 틀이 앞으로도 그대로 유지될 것으로 예상한다면 울며 겨자먹기로 집을 내놓는 사람들이 생길 겁니다. 그러나 정부가 바뀌어 이 정책기조가 무너져 버리고 다시 부동산 투기를 조장하는 기조로 돌아갈 것을 예상한다면 문제가 다릅니다. 몇 천만원 세금 부담이 무서워 집을 팔았는데 몇 년 후 집값이 몇 억원 올랐다고 하면 집을 판 사람들은 얼마나 후회가 크겠습니까? 그런데 그동안 우리가 경험해 본 바에 따르면, 그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아주 크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종부세 부담이 아무리 무겁다 해도 몇 년만 버텨보자라는 심정으로 한사코 버티고 있는 것이 바로 지금의 현실인 것입니다. 바로 이 대목에서 초당적 협력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입니다. 지금 보수언론이 말하는 걸 보면 종합부동산세는 당장이라도 폐지되거나 유야무야한 존재로 약화시키는 것이 바람직한 일입니다. 보수야당은 이 문제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표명하고 있지 않지만, 지난 정부가 한 일을 보면 그들이 집권했을 때 또 다시 종부세를 이명박 정부 때의 수준으로 후퇴시킬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수세력이 다시 정권을 잡으면 투기억제 기조는 무너질 것이라는 예상이 매우 큰 개연성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바로 이런 예상이 여러 가지 부동산 투기 억제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투기수요가 판을 치는 근본적 이유가 되는 것이구요. 내가 문제 해결의 열쇠라고 보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예상을 보기좋게 뒤엎는 일입니다. 그럴 가능성이 희박하지만, 자유한국당이 자신이 집권한다 하더라도 현재의 부동산 투기억제 기조는 그대로 유지할 것이라고 공약한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투기수요는 곧 잠잠해질 것이라고 장담합니다. 자유한국당도 집값을 안정시켜야 한다는 원칙론에는 이의가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내 말을 믿고 그런 공약을 한 번 해보았으면 하는 것이 내 간절한 바람입니다. 특히 강남이 그렇지만 현재 폭등지역의 집값은 거대한 다단계 구조에 의해 떠받혀지고 있는 형국입니다. 경제학에서 폰지게임(Ponzi game)이라고 부르는 피라미드 형태의 다단계 구조입니다. 밑에서 새로운 투기세력이 계속 떠받혀 주기 때문에 상층부에서 가격이 계속 올라가는 것이지요. 그렇지 않다면 아파트가 평당 1억원에 거래되는 납득할 수 없는 일은 일어나지 못합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듯, 다단계 피라미드의 궁극적 말로는 ‘붕괴’(collapse)밖에 없습니다. 거품은 영원히 커질 수 없고 어느 단계에 가서는 반드시 터지고 말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투기수요를 그대로 방치해 거품이 계속 커지도록 놓아두는 것은 마치 거대한 시한폭탄을 장치해 두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위험천만한 일입니다. 거품 붕괴가 일어났을 때 경제에 얼마나 큰 타격이 오는지는 이웃 일본이 너무나도 생생하게 보여주지 않았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경제가 어려운 터에 부동산 시장 거품 붕괴까지 일어난다면 우리는 거의 파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을지도 모릅니다. 이런 위험을 사전에 막기 위해서는 보수야당이 애국심을 발휘해 초당적 협력체제 구축에 참여해 주어야 합니다. 이것은 당리당략의 차원을 넘어서는 국가경제 존립과 관계되는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이준구 /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명예교수 * 본 글은 이준구 교수님의 홈페이지(WWW.JKL123.COM)에서 퍼온 글 입니다. |
http://surprise.or.kr/board/view.php?table=surprise_13&uid=1228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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