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ST 전기 및 전자공학부 교수이자 뇌과학자 김대식이 로마에 관한 책을 냈다고 했을 때 이 문장이 문득 떠올랐다. ‘모든 지식인은 로마사를 통과한다.’ 로마의 영광을 상징하는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처럼 많은 학자, 작가들이 로마에 대해 공부하거나 책을 남기기 때문이다.
‘군주론’을 쓴 이탈리아 정치이론가 마키아벨리는 ‘로마사 논고’에서 로마 공화정을 정치철학적으로 분석했다. 일본 소설가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인 이야기’로 전 세계인을 로마사 전문가로 만들었다. 과학과 인문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대표적 융합 지식인인 김대식은 로마를 어떻게 보았을까. 신간 ‘그들은 어떻게 세상의 중심이 되었는가’에서 그는 로마 제국이라는 ‘먼 거울(distant mirror)’에 오늘날을 비춰보면서 미래에 대한 전망을 제시한다.
4부로 구성된 책에서 저자는 우선 로마의 유래를 추적한다. 이어 위대한 로마 제국이 왜 몰락했는지를 살펴본다. 다음엔 오늘날까지 계승된 로마의 흔적을 서술한다. 마무리는 오늘날의 시사점이다. 저자는 과학 역사 철학 예술 등 학문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역사를 새로운 시각으로 들여다본다. 또 로마사가 현재 우리에게 영감을 주는 지점을 예리하게 짚어낸다.
로마의 기원은 ‘제0차 세계대전’에서 출발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1·2차 세계대전은 익숙한데 0차 세계대전은 낯설 것이다. 기원전 1200부터 약 300여년 동안 세계화된 문명 간에 일어난 전쟁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문명의 강자였던 아시리아, 히타이트, 이집트의 패권 전쟁이다. 이집트 문서에 따르면 ‘바다 민족들’이라는 침략자가 등장한다.
이들은 호메로스의 고대 서사시 ‘일리아스’에 나오는 아카이안일 수도 있다. 아카이안은 그리스인을 가리킨다. 전문가들은 일리아스에 나오는 트로이 전쟁이 당시 바다 민족들의 거대한 전쟁의 하나일 수 있다는 가설을 제시한다. 로마는 이 바다 민족과 이집트의 유산을 이어 받은 뒤 지중해라는 바다를 중심으로 형성된 나라라는 것이다.
세계를 제패하던 로마는 왜 멸망했는가. 저자는 이 질문에 대해 “불평등은 몰락의 징조”라고 답한다. 로마 공화정 당시 군인은 모두 시민이었다. 무기와 갑옷을 스스로 구입할 수 있는 중산층 시민만이 군인이 될 수 있었다. 자진해서 참전한 이들이었다. 그러므로 당시 전쟁에서는 반드시 지켜야 할 룰이 있었다. 모든 전쟁은 수확기 전에 끝나야 한다는 것이다.
봄에 씨를 뿌리고 전쟁에 나가 가을 전에는 돌아와야 생계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로마가 팽창하면서 문제가 생긴다. 어떤 전쟁은 귀국하기까지 10년 이상이 걸릴 정도로 장기전이었다. 한 집안에서 장성한 남성 2명이 5~10년 돌아오지 못하면 남은 가족은 어떻게 할까. 자산가들에게 비싼 이자로 돈을 빌려야 했다. 중산층은 이 빚 때문에 가축, 땅, 집을 차례대로 잃었고 나중에는 노예로 전락했다. 공화정 마지막 시기에 로마의 실업률은 무려 70~80%에 달했다. 전쟁에서 돌아온 이들을 맞는 건 노예가 된 가족뿐이었다. 핵심 계층인 중산층이 무너지고 가계 부채는 사회 문제로 대두된다. 저자는 이런 빈부격차, 로마 시민권자의 특혜, 노예 반란이 로마 공화정 몰락의 3가지 이유라고 지적한다.
그럼에도 로마의 문화와 역사는 다시 영광을 누린다. 410년 로마 제국이 동서로 분열된 뒤 중세 암흑기를 거쳐 로마 문명은 다시 미래를 향해 내딛는다. 기술자, 지식인, 부호들이 이슬람 세력에게 점령된 콘스탄티노플을 떠나 서유럽으로 이동한다. 이들의 이주는 로마 문명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전되는 것을 뜻했다. 아메리카 대륙 발견으로 대규모 시장이 창출되고, 인쇄술 발명으로 종교개혁과 과학혁명의 기반이 마련되면서 유럽은 르네상스를 거쳐 인류 문명의 중심으로 우뚝 섰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하지만 저자는 현 세계가 멸망한 로마 제국의 형상을 닮아가고 있다고 우려한다. 부의 불평등이 갈수록 심화되고 난민을 제일 하위로 한 백인 남성 중심의 인권 피라미드가 형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미국, 중국 등 주요 국가는 독재적 성향의 강력한 지도자를 선망한다.
책은 우리가 로마의 역사에서 배울 수 있는 것들을 제시한다. 풍부한 사진과 그림이 수록돼 지루하지 않다. 내용은 묵직하지만 문장이 간결해 책장도 술술 넘어간다. 그러나 저자의 강연을 바탕으로 책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전개가 치밀하지 않고 산만하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다. 깊이 있는 해설보다는 저자가 로마사에서 얻은 통찰에 초점을 맞춰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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