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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분노의 단독행동주의는 "고통의 절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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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21세기 나의조국 2019. 6. 2.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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トランプの怒りの単独行動主義は「苦痛の叫び」
疾風のように過ぎ去った米国一極支配、神話化された過去の呪縛
2019.5.14(火) Financial Times



                    트럼프, 분노의 단독행동주의는 "고통의 절규"


                          질풍처럼 사라진 미국 일극지배, 신화화된 과거의 족쇄


                                       2019.5.14 Financial Times    번역   오마니나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 2019년 5월 10일)


                チャーチル元英首相の未発表論文、地球外生命の可能性示す

              V사인을 내보이는 윈스턴 처칠 영국총리(당시 1950년 1월 1일 촬영).(c)AFP(AFPBB News)


 패권국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자신의 권세가 쇠퇴하는 것을 보는 것이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의한 분노의 유니래터럴리즘(단독행동주의)은, 그것이 중국과의 무역전쟁이든 쿠바에 대한 제재조치든, 힘이 있다는 증거라고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시각을 바꾸어 보면, 대통령에 의한 호전적인 트윗 폭풍은, 신화화된 과거에 의한 고통의 절규가 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접어들었을 무렵의 이야기이다.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윈스턴 처칠과의 회담에 대비할 때, 국무장관인 에드워드 스테티니아스로부터, 이 영국총리에 대한 응대법에 주의하라는 조언을 받았다.


 처칠은 전후의 새로운 국제질서를 받아들이는 것에 반드시 고생할 것이다, 영국은 오랫동안 세계의 리더의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영국인은 2번째의 역할에 익숙하지 않다 ―― 라는 것이 조언의 내용이었다.


 스테티니아스는 옳았다.


 전쟁 덕분에 영국은 파산했다. 미국은 반대로 호경기를 구가하고 있었다.평화가 도래하자, 서방측 세계의 맹주 자리는 정식으로 미국으로 옮겨졌다.영국은 마음을 정리하지 못해, 오랜동안 고통을 겪게 되었다.


 1956년에 수에즈 분쟁에 얽혀 굴욕을 맛 본 후조차, 입장의 변화를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당연히, 아직 "빅·쓰리(Big 3)"의 일각으로 미국, 소비에트 연방과 나란히 존재하고 있지 않은가,라고 영국의 정치가는 생각하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이 고민의 한탄에 대해서는, 오늘 날의 유럽연합(EU)이탈찬성파에 의한 꿈같은 이야기 "글로벌·브리튼(Global britain)"에서도 잔향을 들을 수가 있다.


*글로벌 브리튼"은 영국이 1960년대에 "수에즈 동쪽"을 포기한 정책을 수정해, 인도양에서 태평양으로 다시 진출한다는 구상이며, EU에서의 이탈에 의해 대폭 저하할 것으로 예상되는 영국의 국력을 유지기 하기위한 방책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미국의 차례다.


 트럼프씨의 외교정책이 호전적인 것은, 미국은 무엇이든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다.


 작은 나라라면, 일련의 국제룰을 따라야만 한다고 생각할 지 모르지만, 미국은 다르다. 단독으로라도, 제2차 세계대전 종료 후에 자신이 세운 다자간 관계와 돈이 들어가는 동맹따위는 없어도 해낸다,라는 것이다.


 당연히, 영국과의 비교는 상당히 정확성이 결여된다. 미국은 여전히, 걸출한 대국이다. 경제에서도, 기술에서도, 군사에 있어서도 그렇다. 세계의 준비통화로서의 미국달러의 지위는, 그외 다른 나라들에게 경제적 압력을 가할 수 있는 특이한 능력을 주고있다.


 러시아는 내리막길에 들어선 대국이다. 유라시아 대륙의 지배를 노리는 중국의 계획은, 수십년이 걸리는 프로젝트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냉전종식 후에 질풍처럼 나타난 미국 일극지배의 시대는, 질풍처럼 사라졌다.미국의 힘은 억제되고, 상대적으로 보면 꾸준하게 저하하고 있다.


 프랑스인에게 "hyperpuissance(초대국)"으로 불리던 이 나라가, 노력하지 않고도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는 미래를 상상한 것은, 그다지 오래 전의 일이 아니다. 그것이 지금, 중국에서는, 독자의 "메니페스트・데스티니(명백한 천명)"를 내거는 라이벌과 마주하고 있다.


     지위의 저하에 동반해, 미국에 절대적인 충성을 맹세하는 국가는 줄어들고 있다. 절대적인 의미에서의 쇠퇴에 직면하고 있는 블라디미르 푸틴 씨의 러시아는, 노골적으로 반항적이다.


 워싱턴은 아직 처칠처럼 마음을 바꾸지 못하고 있다.트럼프씨의 반응에는, 난폭한 로직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제2차 대전 후의 수십년 동안은, 룰에 근거하는 국제적인 시스템과 미국의 국익이 놀랄 정도로 멋지게 맞아떨어진 시대였다. 리버럴한 세계질서를 설계·구축하는 과정에서, 미국은 자신의 번영과 안전을 촉진시켰다.


 미국에게 좋은 것은 제너럴모터스(GM)에게도 좋은 것이며, 그 반대도 참(眞)이라는 격언은, 본질적으로 옳았다. 미국이 유럽과 동아시아, 중동의 평화를 떠맡은 것은, 그것이 자신의 이익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트럼프가 언급하고 있는 것은, 바로 그 시대다. 그렇게 해석하는 단서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슬로건의 "다시"라는 표현에 있다.


 대통령은, 경제력이라는 것이, 실제로는 자동차의 판매대수로 측정되던 세계, 무역이 본질적으로 관세문제인 세계, 그리고 테헤란의 정권이 반항적인 태도를 취한다면 미중앙정보국(CIA)이 쿠데타를 획책하던 세계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이 근저의 심리는, 에두아르도 캄파넬라 씨와 마루타·닷스 씨라는 유럽의 두 학자의 저서 "Anglo Nostalgia"에서 잘 설명된다. 우선, 과거를 이상화한다. 그 다음에, 이것을 세계각국의 포퓰리스트들이 선호하는 공포와 불안 속에 집어넣어 뒤섞으면, 바로 그대로, 트럼프 씨의 외교정책인 노스탈쟈가 넘쳐나는 내셔널리즘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씨의 전임자인 버락 오바마가 불운했던 것은, 이같은 세계적 힘의 이동이 미국의 이익에 매우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꽤 빠른 단계에서 이해한 것이었다.


오바마가 이끌어낸 결론은 옳았다.


 미국에는 단독행동을 취할 힘이 더 이상 없을 지도 모른다.그렇다면,자국의 이익을 지키는 최선의 방법은 동맹관계를 활용하는 것이다. 세계의 룰을 바꿀 필요가 있다면, 미국은 스스로의 권위를 이용해 회의를 소집해, 새로운 질서를 만든다――. 하지만 그 노력이 제대로 되지않고, 오바마씨는 완전히 익지 않았다든가, 연약하다는 등으로 매도되었다.


 이 문제에 대한 트럼프씨의 답은, 시스템이 더 이상 미국을 위해 작동하지 않는다면, 그 시스템을 부셔버리라는 것이다. 상당히 용감무쌍한 이야기다. 비지니스의 무대에서 과장스럽게 돌아다닌다면, 특히 그렇다. 다만, 문제가 있다. 그 방법은, 제대로 되지 않는 것이다.


 미국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과 같은 다자간 무역협정으로부터의 이탈로 손해를 보고 있다. 멕시코는, 미국과의 국경에 벽을 만드는 사업에 아직 1달러도 내지 않고 있다. 북조선의 김정은씨는 핵보유국임을 사실상 인정시키기에 이르렀다.


 이란은 미국의 제재로 고통을 느낄지는 몰라도, 주로 이익을 얻는 것은 테헤란의 강경파가 될 것으로 보인다.

 푸틴씨는 처벌받는 일없이, 시리아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베네수엘라에서도 마음대로 행동하고 있다.

 또, 트럼프가 기후변화에 관한 파리협정에서 이탈하므로서, 이제는 중국의 시진핑 총리가 모랄 면에서 우위에 서고 있다. 이런 이야기는 일일이 셀 수도 없다.


 동맹국 사이에서도 그것이―― 일본이건, 한국이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하는 유럽국가건――미국은 신용을 잃고 있다. 이들 국가들은 모두, 트럼프씨가 대통령의 자리에서 내려올 때까지 어떻게든 "버티자"는 희망이 정책에 반영되고 있다.


 아마, 그런 희망을 갖는 것은 잘못일 것이다.


 낡은 질서에 환멸을 겪고 있는 미국인은 트럼프씨 뿐만이 아니다.그러나, 대통령의 절규가 크면 클수록, 세계의 다른나라들은 귀를 기울이려고 하는 마음을 점점 잃어가게 된다. By Philip Stephens


                                                    http://jbpress.ismedia.jp/articles/-/56369



이 글은 미국의 쇠퇴를 바라보고 있는 트럼프를 과거의 화려한 미국일극시대를 그리워하며 되돌리려는 "노스탈쟈의 분노"로 포착하고 있다는 점에서 본인은 전혀 동의하지 않습니다.


 이 문제에 대한 트럼프씨의 답은, 시스템이 더 이상 미국을 위해 작동하지 않는다면, 그 시스템을 부셔버리라는 것이다. 상당히 용감무쌍한 이야기다. 비지니스의 무대에서 과장스럽게 돌아다닌다면, 특히 그렇다. 다만, 문제가 있다. 그 방법은, 제대로 되지 않는 것이다.


왜냐하면, 트럼프의 단독행동주의는 분명한 목적을 가진 "과거의 시스템(군산+딥스테이트 등)"을 붕괴하는 것에 있으니까요.



    미국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과 같은 다자간 무역협정으로부터의 이탈로 손해를 보고 있다. 멕시코는, 미국과의 국경에 벽을 만드는 사업에 아직 1달러도 내지 않고 있다. 북조선의 김정은씨는 핵보유국임을 사실상 인정시키기에 이르렀다.


 이란은 미국의 제재로 고통을 느낄지는 몰라도, 주로 이익을 얻는 것은 테헤란의 강경파가 될 것으로 보인다.

 푸틴씨는 처벌받는 일없이, 시리아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베네수엘라에서도 마음대로 행동하고 있다.

 또, 트럼프가 기후변화에 관한 파리협정에서 이탈하므로서, 이제는 중국의 시진핑 총리가 모랄 면에서 우위에 서고 있다. 이런 이야기는 일일이 셀 수도 없다.


위의 일일이 셀 수도 없는 세계의 문제에서 트럼프의 미국이 벗아나므로서, 새로운 시스템(다극화)에 의해 해결되기를 유도하고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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