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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정부 이해하기 위해 알아야 할 "한국의 역사적 고양감"의 실태

일본관련

by 21세기 나의조국 2019. 4. 4.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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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在寅政権を理解するために知るべき韓国の「歴史的高揚感」の実態
その主観的世界の中で日本は軽いものに 
2019年 4月 3日 木村 幹         



        문재인정부 이해하기 위해 알아야 할 "한국의 역사적 고양감"의 실태


                              그 주관적 세계 속에서 일본은 가벼운 것으로  
 
                              2019年 4月 3日 木村 幹(기무라 칸)           번역  오마니나


고양감이 지배한 2.28과 3.1


얼마 전의 이야기가 된다. 지난 달 말인 2월 28일 아침, 필자는 서울로 향하는 기내에 있었다. 다음 날, 올해 3월 1일이 1919년에 발발한 3.1운동으롭퉈 100주년이 되는 기념일에 해당해, 서울 시내의 각처에서는 대규모 행사가 예정되어 있었다.


그래서, 한국정치, 특히 그 민족주의의 현상에 대해 연구해 온 사람으로서, 꼭 그 현장을 보고 싶다고 생각한 것이다.


기내에서는 여느 때처럼, 배포되는 한국신문들을 모두 받아, 좌우 이데올로기에 관계없이 모두 읽어보았다. 서울에 도착하기 전에 머리 속을 정리를 하고, 또 시들시들해진 한국어 능력을 조금이라도 회복시키기 위해서다.


그러나, 3.1운동 100주년을 축하하는 전 날의 한국신문에서는, 이와 관련된 기사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것은 당연했다. 왜냐하면 전 날인 2월 27일부터 베트남의 하노이에서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고 있어, 한국사람들은 그 향방을 숨을 죽이고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날 아침, 필자가 기내에서 본 한국신문의 논조는 뚜렷한 특징이 있었다. 그것은 좌우 이념적인 구별없이, 이 때의 북미 정상회담에 있어서 무언가 합의가 이루어질 것 임을 대전제로 해서, 다양한 논의가 전개되었던 것이다.


배경에 있었던 것은, 이러한 한국신문 각 지가 주요한 정보소스로 삼고 있던 한국정부 자신이, 회담에 대해 낙관했던 점이다. 물론, 한국인들도 북미대화의 주요의제인 핵폐기를 위해 여러가지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몰랐던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한국 국내에서 낙관적인 분위기가 지배한 것은, 이 시기의 한국, 특히 문재인 정권을 지지하는 진보파들에게 특수한 고양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한반도를 둘러싼 상황이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아니 자기자신이 움직이고 있다는 고양감이었다.


반도정세의 "운전자론"


하지만, 이러한 한국의 분위기는 우리에게는 조금 이상해 보인다. 왜냐하면, 북미대화의 주체는 말할 것도 없이, 미국과 북한 양국이며, 한국은 여기에 직접 참가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이, 그런 협의에 자신들의 노력의 결과를 투영해서 이해한 배경에는, 이유가 있었다.


이 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문재인 정권이 성립한 2017년 봄의 시점까지 소급하지 않으면 안된다. 당시는 북조선이 빈번한 핵무기와 탄도미사일 실험을 반복하던 시기여서, 북조선을 둘러싼 국제환경은 극도로 긴박한 상태였다.


같은 해 1월에는, 전년의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취임해, 새대통령은 북조서에 대한 무력공격의 가능성조차 내비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가 주장한 것이 "운전자론"이라는 인식이다. 그들은 말한다.한반도 문제를 하나의 자동차에 비유하자. 이 자동차에는 이 문제에 관련된 국가, 즉, 미국, 중국, 또 일본과 러시아, 그리고 물론 남북한 2개국이 타고 있다.


그러나, 운전석은 하나이며, 모든 나라가 자유롭게 자신의 원하는 행선지로 이 자동차를 가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이 한반도 문제라는 자동차 운전석에 앉아있던 것은, 미국이나 중국이라는 강국이며, 본래 당사자인 남북한 양국은 뒷좌석에 실려, 운반되는 상태였다.


그렇기 때문에, 중요한 것은 이 자동차가 어디로 갈 지를 결정하는 것보다,우선은  당사자인 한반도 국가들, 특히 한국이 운전석에 앉는 것이다. 그리고 이 자동차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그 후, 한반도의 남북한 사람들이 자유롭게 논의해 결정하면 된다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문재인 정부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사는 한반도를 둘러싼 문제인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존재를 완전히 무시한 듯이, 북조선과 주변국들이 사태를 추진하는 것에 대한 강한 불안과 불만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문재인 정부가 주창한 "운전자론"은, 단순히 "좌파" 문재인 정권이 그 이념에 따라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이런 이념적 차이를 넘어선, 많은 한국사람들의 감정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고 할 수있다.


북에서 불어온 돌연한 순풍


이 단계에서는, 그것은 한국의 일방적인 "기대"에 지나지 않았다. 문재인 정권이 성립한 2017년 봄의 단계에서는, 북-미는 격렬하게 대립해, 막 성립한 문재인 정부가, 이 관계에 관여하는 것은, 어렵게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회는 돌연히 왔다. 2018년 1월 1일, 늘 있는 "신년사"에서, 북조선의 지도자인 김정은이 한국과의 대화의지를 밝혔기 때문이다.


이것에 한국정부가 날아가는 형태로 시작된 남북회담은 예상 밖의 속도로 진행되면서, 불과 2개월 후인 3월 상순, 한국정부는 남북 정상회담을 개최할 것을 발표했다.


아울러, 한국정부는 북조선으로부터 미국과의 회담제의를 전달해, 트럼프 정부는 이것을 그 자리에서 수락했다.

한국에게 중요한 것은, 이렇게 해서 북조선의 의뢰을 받는 형태로, 사실상, 북미협상의 중개자 역할을 부여받은 것이었다.


한국의 중개자 역할은, 그 후에도 이어져,  5월 말에 트럼프 대통령이 돌연 북미 정상회담 중단을 발표했을 때에는, 직후에 판문점에서 제2차 남북 정상회담을 개최해, 북미의 연결역으로서의 역할을 다하는 장면도 존재했다.

이러한 "북조선과 미국을 한국이 중개한다"는 것이야 말로, 그야말로 문재인 정권이나 한국사람들이 원했던 사태였다.


그런 이유로 북미대화의 진전은, 한국에게 그 자체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되었다.협의의 진전 이상으로, 그 협의에 한국이 관여하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고, 그 관여가 일정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즉, 이 상황이 보여주는 것은, 한반도라는 이름의 자동차의 운전석에 앉아 있는 것은 한국이며, 북미는 한반도라는 자동차를 한국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유도할 수 없다고, 문재인 정부는 이해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상황은, 한국의 내셔널리즘을 고양시켰다. 그들은 말한다. 지금까지 소국으로서 무시되어 왔던 한국이, 마침내 미중과 함께, 한반도의 향방을 결정짓는 중요한 협의에 관여하고 있다. 이러한 사태의 출현은, 한국이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이루어, 진정한 선진국의 일원이 된 증거라고.


고양된 끝에, 일본은 보이지 않게되다


그러나, 이러한 한국 민족주의의 고양은 하나의 부산물을 가져왔다. 왜냐하면,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는 자신들이 움직이고 있다는 고양감은, 오히려 다른 나라, 특히 북미 협상의 당사자인 북조선과 미국을 제외한 나라들의 존재를 - 적어도 과거와 비교해 - 경시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말할 필요도 없이, 그 전형이 일본이었다. 올해 1월 10일에 열린 연례 신년 기자회견에서, 대일문제에 대한 발언을 대통령이 회피하려고 한 것, 나아가, 2월에 도쿄에서 열린 심포지엄에서 대통령 보좌관이 "북조선 문제에 일본의 역할은 없다"고 말했던 것에 나타나는 것처럼, 한일관계의 악화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의 관계자는 그 개선을 서두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 배경에는, 이러한 대일관계의 경시가 자리잡고 있다.


일본의 한반도에서의 영향은 이미 크지 않으며, 그렇기 때문에, 한일관계가 악화되더라도, 한국은 한반도 문제의 운전석에 계속 앉아 있을 수 있다. 이러한 문재인 정권의 인식은, 정부관계자들의 대일정책에 대한 규율을 잃게해, 결과적으로, 정부 곳곳에서 마치 일본을 고의로 자극하는 것처럼 보이는 언동이 속출하게 된다.


그것이 전형적으로 나타난 것이, 올해 2월 국회의장의 "천황 사죄발언"이었다. 이 발언은, 그 내용 이전에, 그 제기 방법은 도무지 한일관계의 악화를 근거로 한 신중한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국회의장 자신의 설명은 오락가락했다. 거기에는 대일관계의 중요성을 고려하지 않고, 안이하게 발언할 수 있는 분위기가 있으며, 또 발언해도 좋다는 이해가 존재했다.


그렇기 때문에, 지난 3월 1일의 3.1운동 100주년은, 식민지시기에 발발해,그리고  일본의 힘 앞에 일찌감치 어쩔 수 없이 좌절된 3.1운동으로부터 100년을 거쳐, 힘을 기른 "선진국 한국"의 성장을 축하하는 것이 될 터였다.

그 결과, 이 때, 행해진 각종 이벤트는, 일본 미디어가 "기대"하고 기다렸던 것 같은, "반일"색이 강한 행사는 되지 않았다.


즉, 일본언론이 대대적으로 거론한, 일본대사관 앞과 그 지척에 있는 위안부상 앞에서 열린 대일관계를 규탄하는 "분노를 터뜨리는"집회가, 최대라도 수백명 정도의 사람들 밖에 모우지 못한 것에 대해, 수만 명을 훨씬 넘는 광화문 앞의 메인장소에서 보여진 것은, 이 100년 동안의 민족의 발전을 축하하고, 또한 향후 한층 더 성장을 기원하기 위해, 스테이지 위에서, 노래하고, 춤추고, 또 전통예능을 즐기는 "밝은" 한국사람들의 모습이었다.


아니, 이 표현 조차도 사실 정확하지 않다. 왜냐하면, 위안부상 앞에서 행해진 일본정부를 규탄하는 집회 조차, "밝고" "즐거운 듯" 자신의 운동을 북돋아주는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그들의 모습이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소국이기 때문에 자신의 힘없음을 한탄하는 과거의 한국인들의 모습은 없으며, 자신들이 받드는 "인권"이나 "민주주의"의 가치를 믿고, 거기에서 "뒤떨어진" 일본을 "내려다 보며" 가르쳐 주려고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존재했다.


그렇다고는 해도, 그것은, 다양한 행사에서, 이 사회의 "그림자"를 볼 수 없었던 것을 의미하지 않았다.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대한 비판이 뒤로 물러나는 가운데, 곳곳에서 나타난 것은, 북조선을 둘러싼 문제와 심각해지는 사회격차 문제를 둘러싼, 한국내 좌우 양파의 대립이었기 때문다.


광화문 앞의 광장에서는, 문재인 자신이 기념연설을 하면서, 자신의 한반도 정책이라고 칭하는 "신한반도 체제"구상을 쏟아내, 북미 정상회담의 결렬 직후인데도, 북조선과의 대화 지속에 강한 의지를 나타냈다.


이에 대해, 거기에서 수km 남쪽에 위치한 남대문 부근에는, "태극기 부대"로 통칭되는 이 또한 만명이 넘는 보수강경파가 집결해, 태극기와 성조기, 나아가 탄핵을 받아 옥고를 치르고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진을 앞세우고, 북조선과의 대화를 추진하는 문재인 정부를 맹렬히 비난했다.


광화문 광장 주변에는, 일자리 문제를 둘러싸고 보다 강력한 시책을 요구하는 좌파 노동조합의 천막도 여기저기 있어, 이 사회의 강한 이념적 분단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 되었다.


그러한 것이 나타내는 것은, 지금의 한국인들의 압도적인 관심이 국외가 아니라, 자신의 국내를 향하고 있다는 것이며, 또한 적어도 그들이 이해하는 한--이 사회를 둘러싼 문제는 실제로는, 대외관계보다도, 국내문제에 있어서 보다 심각하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들의 민족에 대한 자신감의 고양과 맞물려, 대외정책, 특히 그 중요성이 사라지고 있는 일본과의 관계는, 그들의 시야에는 들어오지 않는 상황이 되고 있다.


강조해야만 하는 것은, 그들의 행동을 이해하고 예측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자의식이 어느 정도, 객관적 상황에 부합하느냐보다, 그들의 주관적 인식 그 자체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것은 또한 그들의 주관적 인식이 객관적 상황과 어떤 관계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를 둘러싼 상황은 급속도로 바뀌고 있다. 하노이에서의 북미 정상회담 결렬 후, 북미 회담은 제대로 되지 않고, 북조선은 핵시설을 재가동시켜, 3월 21일에는, 제3차 남북 정상회담의 합의로 설치된 남북연락사무소에서, 자신들의 요원을 철수시켰다.


2018년, 문재인 정권이 구축한 대화의 기반은 급속히 상실되고 있어, 정권을 떠받치는 진보세력 속에는 동요가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크게 부풀어 오른 한국인의 "자신감"이 무너져, 그들은 다시 한 번 자신의 발등을 다시 바라보게 될 것인가. 아니면, "자신감"의 기반 붕괴는, 한국을 더욱 더 내적인 갈등을 격화시켜, 대외관계를 간과하는 방향으로 끌고 갈 것인가.


북미의 "중개자"를 맡고있는 문재인 정권의 태도와 맞물려, 커다란 분수령이 될 것 같다.


                                     https://gendai.ismedia.jp/articles/-/63766?page=5


하지만, 이러한 한국의 분위기는 우리에게는 조금 이상해 보인다. 왜냐하면, 북미대화의 주체는 말할 것도 없이, 미국과 북한 양국이며, 한국은 여기에 직접 참가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이, 그런 협의에 자신들의 노력의 결과를 투영해 이해한 배경에는, 이유가 있었다.


북미 비핵화 협상에서 "한국의 존재"는 어떤 것인가? 반대로 말하면, 북미대화에서 한국이 "소외"된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라는 이야기와 통하는 것입니다만, 존재감의 상실은 곧 남북대화에서 주도권을 상실하는 것으로 이어지는 것임은 설명할 필요가 없겠지요. 반대로 북의 주장대로, 북미 양자협상을 통해, 한반도의 주요문제(=핵문제)를 해결하게 되면, 향후 한반도 정세에서 주도권은 북측이 쥐게 될 것은 분명한 것입니다.


그러나, 필자도 지적하듯이 북은 미국에게 대화를 직접 제안한 것이 아니라, 분명히 "한국"을 통해서, 그리고 미국 역시 "한국"을 중재자로 인정한 결과, 북미정상회담이 성사되었다는 사실은, 이미 그 시점에서, 아니 그 전부터 한반도 비핵화 문제를 북미가 아니라, 남북미가 나아가 남북 중심으로 해결해나가야 한다는 "플랜"에 의한 것이라는 분석은 아직도 잘 드러나지 않고 있습니다만, 하노이 북미회담 결렬이야 말로, 북미 중심의 비핵화 협의를 남북 중심으로 전환하기 위한 "퍼포먼스"라는 것은 이제 곧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북미회담 결렬과 동시에 문재인 정부가 "신한반도 체제"를 천명한 근본적인 이유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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