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혜은 입력 2019.03.02. 13:00
[더,오래] 박혜은의 님과 남(43)
남편과의 여행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사실 남편은 발걸음 향하는 대로 어디든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에 비해 꼭 계획대로 움직이지 않더라도 여행지에서의 동선이 머리에 그려져 있지 않으면 살짝 불안한 것이 저입니다. 물론 나 좋아하는 일이지만 이번 여행도 준비는 저의 몫이었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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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함이 더 쉽게 드러나는 가족 여행
가까운 친구라도 몇 날 며칠을 온전히 함께 있기는 쉽지 않으니 오래 알던 사이라도 여행지에서는 때때로 상대방의 작은 감정에 더 예민하게 반응하게 되곤 합니다. 몰랐던 부분을 발견하게 되기도 하죠. 친구들과의 여행에서는 조금 참거나, 이해하고 지나가게 마련이지만 가족 여행에서는 불편함이 더 쉽게 드러납니다. 이내 아차차 하지만 꼭 말하지 않더라도 나의 표정에 불편함이 드러나 있기도 합니다.
가족이니까 더 잘 알아주었으면 하거나 어떻게 몰라주냐는 마음이 큰 셈이겠지요. 그 마음이 친구들에게서처럼 순화되지 않고 그대로 표현되면 여행이 더는 즐겁지 않기도 할 겁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후 요즘 푹 빠져있는 드라마 ‘로맨스는 별책부록’을 보자니 한 장면이 유독 마음에 들어옵니다. 같은 회사에 근무하는 부부가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둘은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고 나타나죠. 서로 눈치만 보다 어느 날 아내에게 누군가 물었습니다.
“아니, 이혼은 왜 했어? 이상하잖아. 없는 집 둘째 아들인 거 몰랐던 것도 아니고 시조카들이랑 여행 다니고 조카들이 다 자식 같다며? 근데 왜 갑자기 이혼이냐고?” 아내의 첫마디는 다음과 같습니다. “내 편이… 내 편이 아니더라고.”
늘 그렇듯 큰일의 시작은 작습니다. 사건은 지하상가에서 가족의 물건을 사던 아내가 마음에 드는 구두를 발견하면서 시작됐죠.
마음엔 들지만, 덥석 사진 못하고 가격만 묻는 아내에게 상점 주인은 말합니다. 사지도 않고 만지작거리기만 할 거면 그냥 가라고 말이죠. 상점 주인의 목소리가 좋지 않자 앉아 있던 남편은 그냥 하나 사서 나가자 말하지만, 아내는 안 사겠다며 휙 돌아서 나옵니다. 어디에선가 많이 본 익숙한 상황인 것도 같습니다.
그런데 진짜 기분 나쁘다며 툴툴거리는 아내에게 남편은 한 마디 덧붙입니다. “아니 장사하다 보면 이상한 사람 많잖아. 짜증 났겠지. 아니 당신 솔직히 신발 살 생각도 없었잖아. 계속 가격만 물어보고….” 그런데 그 말에 발끈한 아내는 사람 가득한 지하상가에서 크게 소리치기 시작하죠.
“지금 누구 편드는 거야? 지금 누굴 감싸고 있는 건데? 저기 저 신발가게 주인이 당신 형이야? 당신 아들이야? 처음 보는 사람이 당신 부인한테 재수가 없네 마네 하고 있는데 자빠져서 시집이나 읽고 있다가…. 내가 남이야? 지금 누구 편을 들어야 하는데. 네가 이해해야 할 사람은 저 사람이 아니고 나야. 당신 지금 이해해야 할 사람 저 사람 아니고 나야 나.”
당황한 남편은 알았다며 아내를 달래려 들지만, 아내는 뒤돌아 가버립니다. 남자는 진짜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죠. 처음 있는 일도 아니었을 테니 말입니다. 그런데 아내는 그날 문득 깨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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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에게도 인정받는 호인 돼야
그 마음 하나를 몰라준 것이 결국 부부를 남으로 만든 셈이죠. 많은 분이 이 장면에 공감했다는 글을 남깁니다. 많은 분이 밖에만 나가면 세상 최고 호인이지만 오직 나만이 함께 사는 상대방의 배려 대상에서 제외됐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인생을 여행길에 많이 비유합니다. 그렇다면 결혼 생활은 내 인생의 제일 긴 여행 기간일 수 있지 않을까요. 친구들과의 여행보다 가족과의 여행에서 신경 쓰고 챙겨야 할 마음이 더 많다는 의미일 겁니다. 나는 지금 인생의 여행길에서 내 아내나 남편에게도 인정받는 호인인가요?
박혜은 굿커뮤니케이션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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