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부동산 세제 개편안이 나왔다. 한마디로 다주택 보유자와 고가 주택에 초점을 맞춘 급진적인 개편안이다. 네 가지 시나리오 중 공정시장가액비율 상향 조정과 종합부동산세율, 누진세율을 동시에 올리는 안이 시행된다면 조세 저항과 부동산 시장 그리고 경기에 미치는 영향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작년 6월 이후 잇따른 부동산 대책으로 서울 강남 지역을 제외한 국내 주택시장은 이미 최악의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전세가 대비 매매가가 밑도는 이른바 ‘깡통 주택’이 수도권 인접지역까지 북상 중이다. 오피스텔 청약이 아예 한 건도 없는 곳이 나타날 정도로 시장이 얼어붙었다. 경매 시장에 출회되는 매물도 늘어나는 추세다.
한국 경제가 외환위기에 이어 또다시 위기를 겪는다면 ‘부동산발(發) 잃어버린 10년’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부동산 거품 문제로 잃어버린 10년을 겪은 대표적인 국가는 일본이다. 우리 경제에서 이 우려가 나오는 것은 부동산 거품의 형성 과정이나 거품을 해소하기 위한 정책 대응이 일본의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기 때문이다.
일단 부동산 시장에 낀 거품이 심하다. 주택가격의 적정선을 평가하는 연소득 대비 주택가격비율(P/I), 주택수익비율(P/R)이 1990년대 일본처럼 고평가된 것으로 나온다. 거품 정도도 일본의 경우 정점기에 주택총액 비중이 국내총생산(GDP)의 세 배까지 급등했다. 작년 말 기준으로 한국도 2.3배에 도달했다.
일본의 부동산 거품이 형성된 원인은 1980년대 중반 플라자 합의 이후 엔고(高)에 따른 경기둔화 효과를 우려해 경기가 활황일 때 저금리 정책을 추진한 것이었다. 한국 부동산 가격이 급등한 원인도 따져보면 60% 이상이 저금리에 기인한 것으로 추정된다.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해 종부세, 보유세, 양도세 등 각종 부동산 관련 세금을 대폭 올린 것도 일본과 비슷하다. 우리 경기가 현 정부의 핵심 경제 각료 사이에서 ‘침체’ 논쟁이 가열될 만큼 악화되는데도 작년 11월에 이어 추가 금리 인상 필요성이 꾸준히 거론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일본보다 더 우려되는 점도 있다. 일본은 부동산 거품이 발생한 주체가 토지와 중소 부동산업자가 중심이 됐으나 한국은 주택과 가계다. 한국의 가계부채는 7대 취약국으로 분류될 만큼 많다. 국제결제은행(BIS)이 가계부채 건전성을 평가하는 ‘신용 갭’(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호드릭-프레스콧 필터로 구한 장기 추세에서 벗어난 정도)은 ‘주의’ 단계다.
경기에 미치는 충격이 일본보다 크게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내 주택가격 변화에 따른 소비지출 변화 탄력성은 0.1 내외로 1990년대 당시 일본과 비슷하다. 하지만 우리 국민의 주 거주 수단인 아파트가격 변화에 따른 소비지출 변화 탄력성은 0.23으로 일본보다 높다. 특히 아파트가격이 떨어질 때 경기 둔화에 미치는 역(逆)자산 효과가 크게 나온다.
자산효과는 소비이론에서 ‘항상소득가설’과 ‘생애주기가설’에 근거를 두고 있다. 특정가구는 생애에 걸쳐 소비흐름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려는 성향을 갖고 있어 소비지출은 현재 소득과 미래에 기대되는 소득뿐만 아니라 보유자산 가치에 의해 결정된다. 한국의 경우 자산효과가 크다는 것은 생애소득에서 아파트가격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의미다.
한 가지 우려되는 것은 부동산 거품 발생 원인 중 하나로 부동산 기사를 싣는 언론 때문이라는 시각이 부동산 대책을 강구하는 사람을 중심으로 여전히 남아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한국경제신문 등이 부동산 관련 기사와 부동산가격 간 상관관계에 대한 그랜저 인과관계를 분석해 보면 의미 있는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부동산정책은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본처럼 최악의 상황은 아니지만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을 때 언론을 탓하기보다 경기에 부담을 주지 않게 ‘질서 있는 조정’을 유도해 나가거나 이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시장 패닉에 대비해 다양한 완충장치를 마련하는 데 더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정부의 바람직한 상(像)이다.
특히 올해는 해리 덴트가 《2018 인구절벽이 온다》에서 ‘한국 부동산 시장이 장기 침체에 접어들 것’이라고 내다봤던 바로 그해다. 너무 우려할 필요는 없지만 심리적인 효과는 크다. 현 정부가 부동산 시장을 연착륙시켜야 하고 한국은행이 금리 인상을 신중하게 가져가야 할 이유다.